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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책] 스피노자 ‘에티카’ /한겨레20050804

by 마리산인1324 2013. 2. 17.

<한겨레신문> 2005.08.04 17:4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5041.html

 

 

창조주는 없다 우주 자체가 '신'일 뿐

고전 다시읽기/ 스피노자 ‘에티카’

 

- 이 정우 /철학아카데미 대표 -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상속을 포기한 뒤로 스피노자는 주로 렌즈 깎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서민의 모습. (<신학-정치론>(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김호경 옮김, 책세상 펴냄)에서)

신은 세계를 만든 조물주도 아니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도 아니며 차라리 동북아 문명에서 사용해온 ‘자연’에 가깝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유물론적 합리주의와 독일 관념론의 자연철학,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 스피노자’ 연구의 성전이 됐다 

 

스피노자(1632~77)는 <지성개선론>에서 그의 철학의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체험이 나로 하여금 사회생활 가운데 생기는 대부분의 일들이 헛되고 소용없음을 깨닫게 한 뒤에, 내가 두려워했던 모든 일들이 다만 내 마음속에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 외에는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뒤에, 나는 마침내 이런 문제를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즉 정말 값진 것, 그리고 그 가치를 내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이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것. 그것을 발견하고 획득함으로써 내가 계속적이고 완전한 행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그런 무엇.”

 

<에티카>는 바로 이 ‘무엇’을 펼치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 펼치면 당황하게 된다. 일반적인 책들에게서 기대하는 풍경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정의, 공리, 정리, 따름정리, 증명, 설명, … 등 수학에서나 볼 수 있는 서술 체계가 펼쳐져 있다. 일체의 주변적 이야기는 배제된 채 합리적 논증만이 이어진다. 말초적인 감각에 익숙해져 조금만 생각을 해야 하면 포기해버리는 현대인들에게는 거의 고행에 가까운 지적 노력이 필요한 책이다. 그러나 <에티카>를 완독한다면 그 사람은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지적 봉우리들 중 하나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며,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향을 잡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에티카> 전체는 5부로 되어 있다. 1부는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이라고 불리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주제는 ‘신()’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신은 세계를 만든 창조주도 아니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들도 아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유일무이한 이 세계, 이 우주이다. 그에게는 신이 곧 자연인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연’은 인간과 문화에 대비되는 세계의 반쪽이 아니다. 세계 자체, 우주 자체가 자연이며, 차라리 동북아 문명에서 사용되어 온 ‘(자연)’에 가깝다.

 

그러나 물론 우리가 만나는 현실적 존재들이 모두 신은 아니다. 사물들은 신과 별개의 존재,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그러나 사물들 자체가 신들인 것은 아니다. 사물들은 신=자연이 표현된 것이다. 우리 얼굴은 웃는 모습, 찡그린 모습, 화난 모습,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얼굴 자체는 하나이지만 그 얼굴이 표현되는 표정들은 극히 다채롭다. 그렇다고 해서 표정들이 얼굴과 떨어져 존재하는 그 무엇도 아니다. 표정들은 얼굴의 표현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접하는 구체적인 사물들은 그것들 자체로서는 신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으로부터 절연되어 있는 피조물들도 아니다. 사물들은 신=자연의 표현물들이다.

 

사물은 ‘신=자연’의 표현물들


스피노자는 신=자연의 표현에서 크게는 두 층위를 나눈다. 우선 신=자연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정한 길들이 있다. 스피노자가 ‘속성들’이라고 부른 그 길들은 무한하지만, 그것들 중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두 가지는 물질과 정신이다. 달리 말해 물질과 정신은 신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물질, 정신, …등의 속성들이 신=자연에서 유래하는 어떤 것들이 아니다. 신=자연이 물질이고, 정신이고, …인 것이다. 물질과 정신은 다시 스스로를 표현한다. 예컨대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본다면, 내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입술이 떨리는 것은 물질이라는 속성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고, 내 마음 속에 슬픔이 가득 차는 것은 정신이라는 속성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과 정신은 결국 신이라는 존재는 여러 표현들 중 둘이다. 따라서 그 근원에서는 하나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는 물질이 정신으로 환원되는 것도, 정신이 물질로 환원되는 것도, 또 전혀 별개인 두 존재인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한 존재의 여러 표현들인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

 

우리 자신에게 정신 속성은 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으로 성립하며, 물질 속성은 몸, 신체로 성립한다. 내 몸의 모든 변화들은 물질 속성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며, 내 마음의 모든 변화들은 정신 속성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 기하학적으로 그린 원과 그것의 대수학적 공식이 궁극적으로 하나인 것과 같다.

 

스피노자는 이런 큰 구도 하에서 몸과 마음의 변화(스피노자는 이런 변화를 ‘변양’이라고 부른다. 즉 양태 변화라고 부른다)를 다루는데, 이 내용이 2부와 3부를 장식한다. 2부는 주로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3부는 주로 감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스피노자는 인식/지식을 세 수준으로 구분해 보았다. 첫 번째 수준의 인식은 경험적 인식이다. 두 번째 인식의 수준은 합리적 인식, 과학적 인식이다. 첫 번째 수준의 인식이 현실 속에서 몸과 마음이 변양됨으로써 생긴다면, 두 번째 수준의 인식은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수학적 인식이다. 예컨대 첫 번째 인식 수준에서 태양을 보자면 몇 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빛나는 노란 쟁반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인식 수준에서 보자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불덩어리인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수준의 인식도 있다. 이것은 철학적 인식으로서, 세계의 어떤 부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인식, 종합적인 인식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신=자연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연의 한 양태에 불과한 인간이 신=자연을 인식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 경이로움이 있다.

 

철학사를 수놓은 그 어떤 주저들도 <에티카>만큼 감정에 많은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3부 전체가 감정론이며, 이 논의는 4부와 5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속담은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진리이다. 스피노자의 감정은 감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인간이 타자들과 부딪쳐 가면서 살아가는 와중에서 계속 변해가는 것, 감응해 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극히 수동적인 감응으로부터(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인생) 극히 능동적인 감정까지(신=자연과의 사랑에 도달하는 인생) 다양한 층위들이 펼쳐져 있다. 스피노자의 실천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신을 사랑하고, 그래서 결국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그래서 4부와 5부의 주제는 노예로서의 삶과 자유인으로서의 삶이다.

 

노예의 삶과 자유인의 삶

 

근현대를 통틀어 <에티카>의 영향력은 지대한 바가 있었다. 18세기 계몽시대에 이 책은 유물론적 합리주의의 성전이었다. 서구 문명의 양 날개인 헬레니즘(그리스 형이상학)과 히브리즘(기독교)를 맹공하면서 펼쳐진 계몽사상에게 <에티카>는 유물론과 합리주의의 최고의 결합체였다. 그러나 19세기 초가 되면 <에티카>는 역으로 독일 관념론의 ‘자연철학'의 성전이 되기도 했다. <에티카>는 이렇게 대조적인 두 사조에 영향을 끼칠 만큼 다면적이고 풍부한 저작인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부활한 스피노자는 정치적 스피노자이다. 현대 스피노자의 연구의 초석을 닦은 마르샬 게루의 <에티카> 연구와 스피노자 사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그리고 스피노자 연구서로서 아마도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마트론의 <스피노자에서의 개체와 공동체>가 1968년과 1969년에 연달아 나옴으로써 스피노자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후 스피노자 열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서평자 추천도서>

에티카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서광사 펴냄(1990), 1만원

(현대에 통용되는 번역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질 들뢰즈 지음, 이진경 옮김

인간사랑 펴냄(2003), 2만5000원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 불을 붙인 걸작)

 

스피노자와 정치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2005), 2만2000원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관한 수준 높은 연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