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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하정호님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2013. 11. 15

* 이번 달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보낸 칼럼 원고

 

 

고향을 등진 피로한 삶에 대하여

- 하정호 /광주광역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 -

 


차창에 비친 내 모습
’93.11.19. 차창에 비친 내 모습. 울산행. 밤.


’93년의 늦은 가을 밤, 울산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 지친 몸을 실었다. 책도 읽히지 않아 독서등마저 꺼버린 차 안은 질주하는 도로만큼이나 어두웠다. 눈을 감아도 잠들지 않고 의식은 더 또렷해졌다. 강경대 군의 타살로 시작된 대학 초년의 봄은 군홧발에 짓이겨지고 교정과 거리 여기저기를 떠돌던 민들레 홀씨들도 산산이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랫말처럼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비에 젖은 거리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우산 속으로 사라져갔다. 가을 낙엽처럼 교정의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던 나도 안식을 찾지 못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만 마음을 어지럽힐 뿐 갈피가 잡히는 것도 아니어서 애꿎게 노트만 긁적이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지금도 그 그림 속의 나는 퀭한 눈으로 나를 의미 없이 바라보고 있다.

뒤러와 렘브란트, 고흐. 근대의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는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자화상을 그린 사람으로 꼽힌다. 1500년에 뒤러는 모피 외투를 가지런히 잡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자신을 그리고,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스물아홉 살의 나를 내가 지닌 색깔 그대로 그렸다”라고 써 놓았다. 당시까지도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은 그리스도나 왕에게만 허용되었다 하니, 그 용기와 자부심이 참으로 대단하다. 뒤러는 자신이 지닌 색깔이 그리스도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나 보다. 공방에 소속된 이름 없는 수공업자로 잊히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서명을 남기려는 노력은, 근대를 특징짓는 개인주의의 물결로 이어졌다. 신교도(Protestant)들이 구습에 반대하고 그리스도를 추존한 것도, 예수가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유대교 제사장들에게까지 당당히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광야에서 외쳤기 때문이리라.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로부터 130년 뒤 23살의 렘브란트도 자화상을 그렸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모습은 뒤러에 비해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그리스도의 신화에 의탁하지 않아도, 값진 옷을 입고 고귀한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은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렘브란트의 청년기 자화상은 보여준다. 이제는 너도나도 자기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렸고 자신의 개성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구별되기를 원했다. 그로부터 또 260년이 지나면 우리는 한껏 개성을 드러내는 고흐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고흐의 자화상에는 뒤러나 렘브란트에게서 볼 수 있는 자부심이 묻어 있지 않다. 왠지 모르게 그의 작품에 끌리기는 하지만, 고흐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우리를 애써 밀쳐내는 듯하다. 그의 초상은 동경이 아닌 연민의 대상이되, 그렇게 보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자존심이 물감 속에 짓이겨져 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몇 해 전 고갱에게 자화상을 보내며 고흐는 이런 편지를 덧붙였다. “이 작품은 동시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사회로부터 희생당한 가련한 자들이고, 모든 것을 사회에 친절로 반환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반 고흐의 자화상

근대의 오디세이아
이러한 자화상의 변화는 근대의 긴 여정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가 ‘나’에 대한 물음을 던진 이후, 정체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혀왔다. 칼립소는 트로이 전쟁을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를 7년 동안이나 애틋한 사랑으로 붙잡아 두고, 영원한 삶과 재물과 권력, 훌륭한 잠자리를 주겠다고 하였지만 집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였다. 온갖 부귀영화는 자신을 잊게 만들 뿐, 오직 공동체 속에서만 온전한 사람일 수 있다고 그리스인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근대인은 오디세우스보다는 고향을 떠난 예수를 더 좋아했다. 예수도 재물과 권력을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오디세우스와 달리 유대 민족을 위해 로마와 전쟁을 치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유대 율법을 거부하여 고향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근대인들은 예수를 따라 홀로 기도하며 구습을 혁파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재물과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아니, 그보다는 자유로운 도시의 공기가 맡고 싶었던 근대인들은 재물과 권력을 탐하여 고향을 등지고 예수를 팔았을 뿐이다. 마치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 종교개혁은 30년 전쟁으로 유럽을 난도질했고, 프랑스혁명은 단두대에서의 평등을 낳았으며, 혁명을 수출한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가 되어 혁명을 배반했다. 과학의 진보와 산업의 발달은 가난한 노동자가 매음굴로 찾아들게 하였고, 사람들을 가스실로 실어가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불태웠다.


 

오디세우스와 칼립소가 있는 환상적인 동굴


고향을 등진 사람의 피로한 삶에 대하여
오디세우스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다. 어디를 가든 시민의 삶은 엇비슷하다. 뉴욕과 도쿄와 상해의 마천루가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옆집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지금의 삶은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년을 같이 보낸 동료 직원의 집안사정을 알게 되는 때는, 청첩장을 받거나 부고를 들을 때일 뿐이다.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무리로부터 벗어나 처음으로 화폭 속에 혼자 들어앉았을 때 뒤러의 모습은 예수의 표정처럼 근엄하였지만, 4백년 뒤 고흐의 모습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가련한 자’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의 청년들은 고향을 버리고 기회의 땅으로 떠나지만, 병들고 지친 몸으로, 때로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부모에게 던져지기도 한다. 수능이 끝난 지금, 부모들은 자식과 헤어질 날들을 세고 있을 것이다. 학자금을 만드느라 등뼈가 휘어지더라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자식을 보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생각할 것이다. 아니, 시험은 단지 통과의례일 뿐 가족의 마음은 이미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의 굴레로부터 놓여난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자유를 얻은 대신 고향과 가족을 잃어버렸다.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낸 칼립소는 슬픔에 겨워 죽었지만,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고향도, 가족도, 사랑도, 그렇게 격정적이지 않다.

교육현장에서는 입시제도를 탓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수능 문제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문제집 풀이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는 무엇 하며 보낼 것인가? 효를 가르쳐도 부모는 일하러 가고 집에 없다. 충을 가르쳐도 전장에서 총을 들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이념은 우리를 병들게 하였지만, 근거 없는 실용주의는 4대강을 파헤쳐 자연마저 병들게 하였다. 그것이 잘못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 해서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답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지치고 병든 우리는 치유를 바라고 멘토를 찾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고 한다. 면역학적 시대는 항생제와 함께 종언을 고했다. 21세기는 우울증, ADHD, 성격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신경성 질환의 시대이다. 면역학적 구도에서는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를 뚜렷이 가르고 나 아닌 것들을 밀쳐내고 나를 지키려 애썼다면, 이제는 남과 구별되는 나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자들은 오히려 왕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푸코는 학교가 병영과 같은 규율사회라고 하였지만,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했다. 이 시대의 교사는 학생에게 규율을 훈육하려 애쓰기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남들보다 빨리 진급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자기를 경영하는 성과주체가 된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교사의 입이 입시와 무관한 것을 말하면 곧장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린다.
오늘날의 신경증은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사회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든다. “오직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남들도 다 하는’ 시대에는 하지 못하는 자가 바보가 되고, 너나 나나 성과에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너덜너덜해진 문제집이 교무실에 빼곡히 쌓여 있어도 부끄러워하는 교사가 없고, 그런 교사를 존경하는 학생도 없다. 다만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동병상련의 환자들만 교실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밤, 『이방인』의 뫼르소는 이런 생각을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시간 같았었다. ……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뭇 생명이 꺼져 가는 교실의 한 구석에도 우수가 깃든 휴식시간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급히 대안을 찾아 떠도는 발걸음이 아니라, 조용히 교실 한 편에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이다. 어둠이 깃든 차창에서 피폐해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떠나온 가족의 모습과 어릴 적 친구들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 볼 일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하는 놀음’을 시작하고, 우리의 자화상에도 배경처럼 이웃들이 다시 찾아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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