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79772.html 기사등록 : 2006-12-21 오후 07:10:18
[세설] 쿠데타둥이의 일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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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이듬해에 태어난 나의 십대는 반공포스터와 이십대는 최루탄과 함께 보냈다 그러나 고통과 비탄의 시대는 지금도 반복되어 ‘박정희의 적자’임을 주장하는 자들과 보내고 있다 | |
추억은 아름답다. 설령 고단하고 힘든 세월이었어도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들이란 윤색되고 채색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가끔씩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내주었던 파우스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의 한 구절을 뽑으라면 아마 십대를 꼽을 것이다. 이십대의 청춘이 목련처럼 피어나기 전 채 여물지 않은 투박함이 매콤한 무의 냄새가 되어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거나 배 밭의 달콤한 향기가 되어 불현듯 웃음짓게 만드는 힘이란 이즈음의 내겐 십대의 추억을 더듬을 때가 아니고는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5.16 군사쿠데타가 있었던 이듬해에 태어나 쿠데타둥이의 언저리에 그 지번을 두고 있는 내 십대의 추억은 공교롭게도 그 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끝이났다. 나의 십대, 다른 말로는 박정희시대라고 불리는 그 시대에 대한 나의 추억에 특기할 만한 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아침저녁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해야 했고 이승복처럼 공산당이 싫어야 했으며 미술시간엔 불조심포스터와 함께 반공포스터를 그려야 했다거나, 초등학교 시절엔 줄자로 손바닥을 맞았고, 중학교 시절 후에는 박달나무 봉이나 대걸레 자루로 터져야 했다고 해서, 또는 선생들이 자신의 학생들을 이런 변태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는 동안 우리 부모들은 촌지란 이름의 봉투로 그 사랑을 되돌리는 일들을 빈번하게 목격했다고 해서 나의 찬란했던 십대의 추억이 털끝만큼의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나의 십대 후반이란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떨어진다 해도 일 센티미터 길이의 머리털에는 가르마를 내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박정희시대는 그 시대가 그의 죽음으로 종말을 고한 것처럼 보이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처럼 보이던 시절, 그러니까 바야흐로 내가 청춘의 시대를 향해 약간은 불안하지만 한껏 폼을 잡고 이십대의 문턱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뒤늦게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내 이십대의 시작은 지독하게 매운 최루탄 연기와 군대가 학교 앞마당에 설치한 카키색 군용텐트와 정문 앞에 세워둔 장갑차 앞에 서야 했다. 또 한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피가 뿌려졌다. 그건 박정희시대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수 있었던 박정희시대는 그렇게 내 이십대를 가로막고 불의와 학살, 야만과 잔인함으로 뒤범벅을 만들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내가 목격하고 되돌아보았던 박정희시대란 다른 무엇보다 발전이란 미명 아래 한 줌의 행복이 다수의 불행과 같은 무게로 취급되는 불의의 시대였다. 그 불행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세대가 감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며 개발독재의 논리란 당대의 세대가 존재하지 않는 다음의 세대를 위해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착취의 논리에 불과했다. 또한 그 시대는 동의에 의해 유지되는 시대가 아니라 무력! 과 공포로 유지되는 사회였다. 그 시대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시대였다.
세월은 흘렀고 어느 때인가 나는 박정희시대가 마침내 종말을 고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역사의 시침이란 얼마든지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즈음의 세상 돌아가는 꼴에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으며 그런 세상이 예비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공포와 전율을 느낀다. 관 속에서 썩은 시체가 걸어 나와 뼈만 남은 손으로 얼굴을 더듬는 일도 그보다 공포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박정희시대를 찬양하고 그 시대를 미화하며 심지어는 그 시대의 적자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아니 그보다도 그런 자들의 선동에 묵묵히 놀아나는 사회의 미래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시대의 부활이다. 그 시대란 다수의 비탄과 한숨, 피와 땀, 고통과 원한으로 얼룩져야 하는 시대이며 오직 한 줌의 소수만이 자유를 얻는 시대로 그 한 줌의 소수란 다름 아닌 박정희시대를 통해 양분을 얻고 기득권을 공고히 한 바로 그 오래된 소수이다.
그건 또 이런 시대이다.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와 상통하는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논리가 소수에게는 자유를, 다수에게는 족쇄를 채우는 시대, 박정희시대로부터 유래한 악랄한 부동산투기와 빈부의 극심한 격차가 만개하며 자본에게는 지상의 천국을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지옥을 실현하는 그런 시대이며 다른 점이라곤 탱크와 총, 음습한 지하실의 고문을 대신한 세련된 기교의 우민정치와 기하급수로 늘어난 지디피(GDP)의 파이가 흘린 (조각이 아닌) 부스러기의 환영에 팽창한 중간계급의 허위의식과 탐욕이다.
쿠데타둥이로서 내 인생은 온전히 박정희시대와 함께 흘렀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그 음울한 강물을 타고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으레 그렇듯이 다시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유재현/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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