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비행에는 목적이 있다
1
비가 내렸다 하늘의 문을 열고 구름의 늑골을 지나 가는 비는 아스팔트 위로 버려진 단어들에 무게를 달고 발자국을 흐리고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단단해진 생각들이 아래로, 집 떠난 물들이 아래로, 자꾸만 떨어지는 가는 비를 따라 젖은 너도 아래로 낮은 허공에서 조각조각 부서질 때, 바지밑단에서부터 차오르던 네 얼굴은 바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장미의 붉은 열정을 품고 네 사랑을 쥐고 신이 난 두 손이 흥겹게 춤추고 황소보다 빠른 걸음이 너에게 가는 길, 하행선 따라 은사시나무도 손 흔들며 축복의 씨앗을 마구 흩날리던 그 길 위로, 가는 비는 내린다 한 개피 담배를 물고 백지처럼 하얀 너를 내뱉으며 가장 느린 걸음이 너에게 가는 길, 그리움에 잠긴 두 손이 숨죽이며 너의 聲域으로 들어갈 때, 가슴에서 뿌려지는 가는 비에 내 발목은 잘리고 너에게 가는 길, 그 조각난 길은 구름의 어깨에 메어있다
2
밤이 되면, 제가 오는 길목을 서성이다 아니, 너를 정복하려다 끝내 집을 나간 나의 북소리를 알지 못했다 너는, 계속 흐르고 나는 지난 것을 너라 여기며 나비처럼 낮은 비행을 하고 허공에 떠있는 시간을 밟으며 걸음은 그러나, 너에게 가는 마지막 길을 그리고 있다 무너지는 가는 비에 밟히며 십분 전 즈음 만났던가 외진 가로등, 그 익숙하고 소심한 잔등을 다시 내 발등이 모두 밀어내고 달려드는 돌멩이 몇 개를 멍들게 하고 걸음은, 맥없이 주저앉는다 눈을 감고 가는 비를 적시는 너의 얼굴을 훔치고 그것을 다시, 베개 밑으로 가져갈 때까지는 가장 높은 허공으로 갈 수 없다 톱니처럼 맞물려 노래할 수 없다 카나리아보다 높은 옥타브를 가진 너도 그 옥타브에 걸린 동전만한 해와 은빛나무숲도 만날 수 없다
3
비가 내렸다 하늘의 문을 열고 구름의 산을 넘나드는 가는 비는 아스팔트 위로 남겨진 이들에 무게를 달고 날개마저 부러뜨리고 그러므로, 그들은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두 원을 그리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비처럼 고독한 비행을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가는 비를 기다리고 낮은 허공으로 스며드는 누군가를 찾는 법이다
윤승준
/괴산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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