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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괴산 운천농원에서 자라고 있는 미선나무. |
‘미선나무를 아시나요?’
대한민국 대표나무 격인 미선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선나무는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이른바 ‘고유종(固有種)’이기 때문이다. 미선나무는 봄의 전령(傳令)이다. 이른 봄에 개나리보다 일찍 꽃이 피며, 개나리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난다. 꽃 색깔은 흰색이 기본이지만 분홍색, 상아색 등도 있다.
미선나무는 개나리와 함께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키가 1~1.5m 정도로 가지 끝은 개나리와 비슷하게 땅으로 처져 있다. 가지 색깔은 자줏빛이 돌고 작은 가지는 사각형으로 돼 있다. 잎은 마주보고 나며 잎의 길이는 3~8㎝이다. 5월에 씨앗이 여물고 열매 1개에 씨앗이 2개씩 들어 있는데 열매 모양이 부채를 닮아 부채 선(扇)자를 써서 미선나무라고 부른다.
미선나무는 꽃도 멋있지만 향이 일품이다. ‘미선나무 향기가 퍼지면 웬만한 식물의 향기는 묻혀버린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미선나무는 향기가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선나무는 남북한이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만큼 귀하신 몸이다. 우리나라는 미선나무 자생지 5곳을, 북한은 미선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자생지는 충북 괴산의 송덕리·추점리·율지리 등 3곳, 충북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 전북 부안군 등에 각각 1곳 등 모두 5곳이다. 단일 수종으로서는 가장 많은 수다. 이들 지역은 모두 석회암층이다.
북한은 1980년 평양 대성산의 미선나무 한 그루를 천연기념물 제1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대성산 미선나무는 야생 상태가 아니라 1965년 봄 평양시 대성구역 룡북동에 사는 한 주민이 정원에 심어 키우던 것을 대성산으로 옮겨심은 것이다. 천연기념물 지정 이유에 대해 북한 당국은 “대성산 미선나무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1속 1종의 희귀한 특상 식물이며 물푸레나무과의 식물학적 연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한다”고 밝혔다.
충북 괴산군은 미선나무 자생지가 가장 많아 주목 받는 지역이다.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의 미선나무 자생지는 괴산군의 자생지 세 곳 중 가장 먼저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받았다. 이곳 미선나무들은 산골짜기 작은 시내 옆의 경사진 야산에서 자라고 있다. 이 자생지는 유명세를 타서 사람들이 마구 가져가는 바람에 미선나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문화재청은 “괴산 주민들을 중심으로 미선나무 보존위원회가 결성되고 서울대 관악수목원과 자연보존협회가 참가해 미선나무를 되살리는 작업을 펼쳐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괴산군 장연면 추점리의 미선나무 자생지는 농경지로부터 가까운 작은 야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생지는 흙이 적고 곳곳에 큰 바위와 굵은 돌이 쌓여 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미선나무가 생존능력이 약해서 다른 나무들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에서 경쟁을 피해서 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생지는 군락(群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미선나무가 전체적으로 분포하지만 빽빽이 모여 있지는 않다. 1970년에 천연기념물 제220호로 지정됐다.
괴산군 칠성면 율지리의 미선나무 자생지도 1970년에 천연기념물 제221호로 지정됐다. 이 자생지는 율지리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야산 중턱에 있다. 자생지 주변에는 자연환경이 좋지 않은 탓에 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나도국수나무, 짝자래나무, 갈마가지나무 등 작은 나무들만 보인다. 또 백선, 고사리, 오이풀, 큰까치수영 및 대사초 등 초본류(草本類)도 보인다. 이곳의 미선나무도 유명세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사람들의 손을 타는 바람에 한때 완전히 사라졌으나 다른 곳의 미선나무를 옮겨와 복원시켰다.
괴산군에는 자생지 외에도 미선나무가 대량으로 자라고 있다. 칠성면 지곡리의 운천농원에는 미선나무 20여만그루가 자라고 있다. 김병준 대표는 “선산에 있는 미선나무를 몇 그루 캐서 집에 옮겨 심은 것이 이렇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미선나무는 국가 생물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1992년 체결된 생물다양성협약이 고유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로열티 등의 권리를 인정해줌에 따라 지구촌이 ‘고유종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종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생물자원대국인 코스타리카의 경우 국립생물다양성연구소가 1997년부터 다국적제약사인 머크(Merck)사에 코스타리카 고유 동식물 시료를 제공하고 이를 상품화해 파생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말리는 흰빛잎마름병에 저항성을 가진 자국산 야생벼의 유전자 특허를 내고 상업적 이익에 대한 로열티를 전세계로부터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은 코스타리카를 방문, 코스타리카 내에 ‘생물자원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코스타리카의 풍부한 생물자원을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최근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고유생물종 도감’에 따르면 한반도의 고유종은 2322종이다. 이 가운데 곤충류가 1031종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식물 515종, 갑각류 162종 등이 서식하고 있다.
미선나무는 크기가 적당하고 꽃 색깔과 향기 등이 뛰어나 관상수로 적합하다. 그러나 우리가 고유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뒤늦었던 탓에 미선나무도 해외로 반출됐다. 김창렬 한국자생식물원장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한국의 미선나무를 관상수로 재배해 비싼 값에 팔고 있으며 해외의 웬만한 식물원에서도 미선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선나무를 한국 대표나무로 키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호에만 치중하는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대 생명과학과 김주환 교수는 “미선나무를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되 식물원이나 국책연구기관 같은 곳에서 미선나무를 대량 재배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