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08 19:30
부제: 나의 동양고전 독법
세상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단어라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동양고전이 그중 하나 아닐까요. 저는 한자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고, 집에 아버지가 보시던 사서삼경이 서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로 치면 고전을 접할 기회는 무수였지만, 매번 쇠락한 언어의 분절음만 느끼고 돌아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06년 연말.
연휴동안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던 말일의 어스름 새벽,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더군요. 수십해 되도록 알기 힘들었던 동양 사상의 정수를 이제서야 느끼다니. 동양적 사유체계의 거대함과 제 무지의 날들에 대한 아쉬움, 이제라도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 그리고 이를 파고 들춰낸 한 지식인의 끝없는 천착에 대한 감동까지, 복합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너무 거대하여 압도된 바도 있지만, 완결한 내용에 손을 대면 어떤 식으로라도 흠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지만, 그래도 제 배움을 위해 정리는 해볼까 합니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사상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말하기 전에 신영복 선생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회대 교수인 신영복 선생은 68년에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20년만에 옥문을 나서게 됩니다. 20년이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의 세월에 해당합니다. 어찌보면 존재감이 느껴지는 제 평생이라 해도 좋지요.
옥중에서 선생은 고전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3권밖에 반입이 안되는 당시의 제도 탓에 오래 보는 책을 택한게 고전이었다고 합니다. 운이라고 말하긴 가혹합니다만, 사상범이 몰려 있던 탓에 한학의 대가인 이구영 선생을 만나 독학의 모자람을 보완하게도 되었나 봅니다.
20년의 세월동안 읽고 또 읽어 깨달은 동양 고전의 세계. 좌파로 혁명을 꿈꾸던 지식인이 재능과 꿈을 삭혀 오늘의 세태에 맞게 다시 살려낸 새로운 옛 사상. 그리고 고전이 외면받는 세상. 신영복 선생이 무지한 신입생의 교양과목으로 강의하듯 쓴 책이 바로 이 책 '강의'입니다.
강의의 고전 독법은 이렇습니다.
서구문화의 큰 줄기는 이성의 헬레니즘과 종교의 헤브라이즘입니다. 다시말해 과학과 종교가 이질적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왔지요. 하지만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과학과 종교간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과학이 질주하면서 종교를 압도하기 시작한 후, 물질 자체로 포커스가 옮겨지면서 자기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존재론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반면 동양문화는 인문주의입니다. 고립된 자아의 계발과 승화라는 존재론이 아니라, 사회라는 맥락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규정하는 관계론이지요. 또한, 이데아(idea)처럼 닿지 못할 이상계를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이루고 있는 자연을 모델로 합니다. 따라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중용이라고 표현하지요.
바로 이 부분에서 동양 고전을 새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신영복 선생은 역설합니다. 서양사상이 지배적인 현실이지만, 제어되지 않고 날뛰는 과학과 물질의 세상을 완충하는 보다 완전한 시각이 동양 고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첫 챕터인 신영복 선생의 고전 독법은 이 책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동양 사상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이 부분만 읽어도 크게 배우는 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은, 첫 챕터를 읽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을겁니다.
사실 책에도 나오지만, 엄청난 세월과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사상체계와 고전을 한권 책에 담고 그를 짧은 글로 다시 다뤄보는것은 태산 준령앞에 호미를 들고 나서는 바와 같겠지요. 저는 그 호미 앞의 티스푼이구요. 그래도 제 개인의 배움을 체화하는 목적과 블로거들과의 공유라는 목적으로 총 5회에 걸쳐 책의 주요 장면을 다시 엮어 연재를 해보려 합니다.
강의 (1/5): 신영복 선생의 고전 독법
강의 (2/5): 태초에 3경이 있었으니
강의 (3/5): 공자 앤 프렌즈
강의 (4/5): 도를 아십니까
강의 (5/5): The others
신영복 선생의 강의 리뷰 5편은 제가 출장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1/8~1/12일까지 매일 PM 7:30분에 자동 발행됩니다.
다섯 글은 유기적으로 이어지므로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올블로그와 이올린 쓰시는 분들은 리뷰 카테고리에 등록 신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통은 등록을 위해 제가 자천을 합니다만 이번엔 어렵겠습니다. -_-
세상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단어라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동양고전이 그중 하나 아닐까요. 저는 한자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고, 집에 아버지가 보시던 사서삼경이 서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로 치면 고전을 접할 기회는 무수였지만, 매번 쇠락한 언어의 분절음만 느끼고 돌아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06년 연말.
연휴동안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던 말일의 어스름 새벽,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더군요. 수십해 되도록 알기 힘들었던 동양 사상의 정수를 이제서야 느끼다니. 동양적 사유체계의 거대함과 제 무지의 날들에 대한 아쉬움, 이제라도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 그리고 이를 파고 들춰낸 한 지식인의 끝없는 천착에 대한 감동까지, 복합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너무 거대하여 압도된 바도 있지만, 완결한 내용에 손을 대면 어떤 식으로라도 흠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지만, 그래도 제 배움을 위해 정리는 해볼까 합니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사상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말하기 전에 신영복 선생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회대 교수인 신영복 선생은 68년에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20년만에 옥문을 나서게 됩니다. 20년이면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의 세월에 해당합니다. 어찌보면 존재감이 느껴지는 제 평생이라 해도 좋지요.
옥중에서 선생은 고전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3권밖에 반입이 안되는 당시의 제도 탓에 오래 보는 책을 택한게 고전이었다고 합니다. 운이라고 말하긴 가혹합니다만, 사상범이 몰려 있던 탓에 한학의 대가인 이구영 선생을 만나 독학의 모자람을 보완하게도 되었나 봅니다.
20년의 세월동안 읽고 또 읽어 깨달은 동양 고전의 세계. 좌파로 혁명을 꿈꾸던 지식인이 재능과 꿈을 삭혀 오늘의 세태에 맞게 다시 살려낸 새로운 옛 사상. 그리고 고전이 외면받는 세상. 신영복 선생이 무지한 신입생의 교양과목으로 강의하듯 쓴 책이 바로 이 책 '강의'입니다.
강의의 고전 독법은 이렇습니다.
서구문화의 큰 줄기는 이성의 헬레니즘과 종교의 헤브라이즘입니다. 다시말해 과학과 종교가 이질적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 왔지요. 하지만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과학과 종교간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과학이 질주하면서 종교를 압도하기 시작한 후, 물질 자체로 포커스가 옮겨지면서 자기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존재론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반면 동양문화는 인문주의입니다. 고립된 자아의 계발과 승화라는 존재론이 아니라, 사회라는 맥락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규정하는 관계론이지요. 또한, 이데아(idea)처럼 닿지 못할 이상계를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이루고 있는 자연을 모델로 합니다. 따라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중용이라고 표현하지요.
바로 이 부분에서 동양 고전을 새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신영복 선생은 역설합니다. 서양사상이 지배적인 현실이지만, 제어되지 않고 날뛰는 과학과 물질의 세상을 완충하는 보다 완전한 시각이 동양 고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첫 챕터인 신영복 선생의 고전 독법은 이 책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동양 사상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이 부분만 읽어도 크게 배우는 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은, 첫 챕터를 읽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을겁니다.
사실 책에도 나오지만, 엄청난 세월과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사상체계와 고전을 한권 책에 담고 그를 짧은 글로 다시 다뤄보는것은 태산 준령앞에 호미를 들고 나서는 바와 같겠지요. 저는 그 호미 앞의 티스푼이구요. 그래도 제 개인의 배움을 체화하는 목적과 블로거들과의 공유라는 목적으로 총 5회에 걸쳐 책의 주요 장면을 다시 엮어 연재를 해보려 합니다.
강의 (1/5): 신영복 선생의 고전 독법
강의 (2/5): 태초에 3경이 있었으니
강의 (3/5): 공자 앤 프렌즈
강의 (4/5): 도를 아십니까
강의 (5/5): The others
신영복 선생의 강의 리뷰 5편은 제가 출장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1/8~1/12일까지 매일 PM 7:30분에 자동 발행됩니다.
다섯 글은 유기적으로 이어지므로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올블로그와 이올린 쓰시는 분들은 리뷰 카테고리에 등록 신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보통은 등록을 위해 제가 자천을 합니다만 이번엔 어렵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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