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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신영복

강의 (3/5): 공자 앤 프렌즈

by 마리산인1324 2007. 1. 16.
 
 
 
2007/01/10 19:30
 
동양 철학이나 동양 사상 하면 유학을 떠올리게 되고, 그만큼 근엄하거나 고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유가는 기타 철학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 사상계를 정리하고 동양 사상을 주도적으로 정립해온 학파이니, 그만큼의 브랜드 노후화가 수반하는게 당연하겠습니다.

먼저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사람입니다. 이 때는 철기발명과 우경, 심경 등 농업혁명으로 인해, 생산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잉여생산물에 의한 수공업 상업이 발달한 시대입니다. 따라서 국가간 질서가 재편되며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전쟁과 혼란이 점철된 기간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자-제후-대부-사-서인의 위계질서가 재편, 정립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배경하에 일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말만 해도 먹고 사는 '지식인' 계층이 탄생합니다. 요즘 말로 정신노동의 상품화를 이룬 이 사람들, 바로 제자백가입니다.

이 제자백가의 시기가 저는 동양 사상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이론도 30년은 커녕 3년도 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2000년을 넘어 생존하는 사상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탁월함을 지나 보편적 진리를 찾아냈음입니다. 바로 이론간의 무한경쟁이 가져다 준 선물일테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의 공자, 인도의 붓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긴 안목으로 보아 동시대 인물이라는 점이지요. 인류가 비로소 먹고 사는 걱정에서 벗어나 의미있게 살고자 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 논어
따분한 소리, 공자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하지만, 주역의 그랜드 마이스터 공자께서 집필한 그 만큼, 신영복 선생은 논어를 인간관계론의 보고라고 봅니다.

쉽게 말하자면, 논어의 핵심주장인 인(仁) 자체가 사람간의 관계를 의미하지요. 사람(人)이 둘(二) 모였잖습니까. 인은 사회적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소통의 방식이자 사전적 불상사 방지의 규제 시스템인 예(禮)도 관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입니다. 신(信)은 아예 국가 경영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합니다. 국경 개념 없는 시대에서 신은 더욱 중요하니까요. 무엇보다도,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력 역량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인데, 잠재력은 인간적 잠재력이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한은 인간성의 실현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강론합니다. 따라서 신, 또는 신뢰는 사회적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관계론적 지침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일부에서 공자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족들의 규제 방식인 예와 일반 시민의 규제 방식인 형(刑)을 나눈 것이나, 지칭 자체도 인(인)과 민(민)을 구분하여 사용했음을 들어 계급주의적인 시각으로 본다는거죠.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고전 독법은 강력히 비난합니다. 사상은 시대와 사상가의 상황적 산물임을 인정하고 그러한 맥락하에서 취할 부분을 취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버릴 점에 부수하여 매몰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실제로 공자의 사회 구조적 업적은 이겁니다. 당시의 사농공상(서인) 대 공경대부(귀족) 간의 계급구조 사이에 전문 관료와 지식인 계층인 유(儒)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지요. 지식사회의 main work force인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의 연원은 그리도 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한가지. 공자의 사상 중 새겨둘만한 말이 있습니다.
군자불기(
君子不器)인데,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즉 정형화된 전문인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양의 베버부터 다양한 논의가 있었나봅니다. 전문성의 거부는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잊지 말아야할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이는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기자가 기자같고, 형사가 형사같고, 검사가 검사같으면 이미 직업이 인간을 망쳤다고 했습니다. 군자불기를 현대적 맥락으로 되살린거죠.


2. 맹자
사실 맹자는 공자의 직접 제자가 아닙니다. 한 100년쯤 후세의 인물입니다. 공자의 춘추시대에서 더욱 격렬한 글로벌 경쟁체제로 심화된 전국시대의 인물입니다.
맹자는 무수한 사상의 갈래 속에서 당대 구루급인 묵자, 양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유가의 위치를 정립한 학자입니다. 따라서, 최강의 논리력을 보유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옛 서당에서 문리를 틔우려면 맹자를 읽어야 하고, 단 한권의 고전을 고른다면 맹자를 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맹자의 사상은, 개인 수준의 관계론인 인을 확장해 사회적 관례론인 의를 개념화하였습니다. 그래서 최대의 업적은 바로 공자의 사회화를 꼽습니다. 공자의 뛰어난 사상체계를 실용적 체계로 잡았다고 보면 됩니다. 실용성이란 정권과 지식인의 운영지침이라는 관점에서의 실용성을 의미합니다.
인이 타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사랑하는 측은지심이라면, 의는 악을 미워하고 징계하여 선을 이끄는 수오지심이 핵심이지요. 맹자의 성선설도 이러한 의 개념을 이끌기 위한 전제인 셈입니다. 인간은 본디 선하므로 사회적 규제와 교육시스템으로 본성을 유지하자고 주장하여, 공자적 관계론의 확장판인 유학 2.0을선언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맹자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장 놀란점은, 혁명론의 태두란 사실입니다. 맹자의 의 개념과 민본사상에 따르면 임금과 사직은 백성의 평안을 위해 설치한 mechanism이므로, 의를 저버린 사람은 사회적 가치가 없다고 귀결됩니다.
제선왕이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을 어찌 생각하냐 묻자 맹자의 대답은 냉엄합니다.
인을 짓밟는 자를 적이라 하고, 의를 짓밟는 자를 잔이라 합니다. 잔적한 자는 필부입니다. 주의 무왕이 일개 사내인 주(紂)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등에 식은 땀이 나지요. 이렇게 극단화된 사회적 사랑과 관계론인 의 개념이 당시 생존이 화두였던 전국시대의 왕들에게 채택되지 못한 사실도 이해가 갑니다. 결국 통일은 법가에서 이뤘습니다. 하지만, 치세의 통치 이념으로는 인과 덕을 주무기로 화합을 이뤄내는 유가가 나머지 두 천년의 주류로 자리잡았음은 너무도 잘 알고있는 역사지요.

책 전체에 걸쳐 좋은 글이 너무 많지만, 맹자는 제 기억을 위해 인용을 남겨 놓고 싶습니다.

진심(盡心)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 하고,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했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그 물결을 봐야 한다. 일월의 작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미추는 법이고,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한 벼슬에 나가지 않는 법이다.

새벽에 이 글을 읽다가 벅찬 가르침에 눈물이 글썽했다지요.

이루 상(離婁上)
(전략)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 남이 자신을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휴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기업도 스스로를 말아먹은 연휴에 시장과 경쟁자가 문을 닫아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