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목> 324호(2006년 1월호)
http://samok.cbck.or.kr/review/review.php?category=24&doc_id=11289&page=4&do=view
골프장은 어떤 점에서 반생태적인가?
글 이경재
골프장 입지 조건
보통 골프장 하나의 단위는 18홀로 구성되며, 각 홀은 티그라운드, 페어웨이, 그린으로 이루어져 홀당 골프를 치는 것은 티그라운드에서 공을 쳐서 페어웨이를 거쳐 그린의 홀에 공을 넣는 것이다. 지름 4cm가량의 공을 클럽으로 치고 굴리기에 경기를 하는 홀 안에는 나무와 같은 장애물이 없이 오로지 키 2cm 미만의 잔디만을 심어 놓고 있다.
홀당 평균 폭은 100m 정도이고 18홀의 전체 길이는 6~7㎞로서 최소 면적이 18~20만 평인데 이 면적은 경기를 위한 공간으로 완전하게 잔디만이 생육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완충 지역, 클럽하우스, 연습장, 경기용 도로 면적까지 합하면 보통 18홀당 30만 평의 토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름 4cm 정도의 공을 도구로 굴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경기장의 경사가 거의 평지에 가까워야 하며 잔디가 균질하고 곱게 가꾸어져야 하는 것이다.
유럽과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차이
골프 역사는 일부에서는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일반적으로 15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것이 현대 골프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는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기에 유럽과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유럽은 최근 마지막 2만 년 전 빙하가 알프스 산 이북까지 내려왔는데 빙하가 이동하면서 대지 지표가 침식되어 평지에 가깝게 지형이 변화하였다. 이런 평지 땅에 산림 생태계가 발달하면서 숲이 형성되었으나 게르만 민족 이동 이후, 특히 로마 시대에 유럽 대륙을 로마인이 점령하면서 산림은 불태워지고 개간되어 가축 방목지와 농경지로 바뀌었다. 이렇게 산림이 방목지와 농경지로 크게 변화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림의 대부분이 방목지로 변화되면서 4천 년간 가축이 좋아하는 사료 식물들이 보호되고 관리되어 왔다. 이런 사료 식물은 벼과 식물로서 잔디 종류가 주종을 이루게 된다. 유럽 대륙 중 알프스 북부 지방의 중요한 방목지와 농경지는 북위 47~55°사이에 분포하고, 스코틀랜드는 북위 55~58°사이에 놓여 있다. 영국 런던은 북위 51°인근에 위치하는데 겨울에 거의 얼음이 얼지 않으며 여름에 선풍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선선하다. 이 지역은 온대 기후로 서안 해양성 기후대에 속하며 런던의 연평균 기온이 9.5℃이고 연 강수량이 750~800mm이지만 사시사철 고루 내린다.
유럽 대륙은 고위도 지방이면서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이 서늘한 기후인데 대서양의 멕시코 만류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대에서 주종을 이루는 풀 종류가 사철 푸른 잔디인 벤트그라스 등의 종류로서 한지형 잔디라고 하는데 기온이 15.5~24.0℃일 때 생육이 잘된다. 이런 잔디는 키가 커지면 훌륭한 가축의 목초이고, 키를 2cm 미만으로 깎으면 골프 치기 좋은 잔디밭이 되기에 유럽에서 골프장 조성은 자연 지형 변경이 없이 흔히 자라는 한지형 잔디를 가꾸기만 하면 되기에 환경 친화형 스포츠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만 년 전의 마지막 빙하가 백두산 이북 곧 만주까지 내려와 만주 평야가 넓게 분포하고 있는 반면, 우리 국토인 한반도는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재 남한 면적은 10만㎢인데 2002년 현재 임야가 64.5%, 농경지 20.5%, 기타 15%로 구성되고 있다. 기타 15%에는 도시적으로 개발된 면적이 포함되어 있는데 국토 면적의 5%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민족은 좁은 국토에서 산을 보호하고 강을 끼고 농경지를 조성하고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왔다. 이 역사가 5천 년 가까이 되었으니 자연 친화적인 삶이 뼈에 사무쳐 있다. 이런 국토에서 살아오는 동안 경험지리학인 풍수지리설이 신라 때부터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은 삶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좁은 국토이건만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65%가 산인지라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자연 지형이기에 많은 생물들의 서식처로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사람과 뭇 생물을 한 형제로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이런 생물들의 둥지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한 뙈기의 논과 밭을 조성하며 사람과 뭇 생물들과의 생존을 항상 염두에 두어 왔다. 이와 같은 환경 친화적인 삶이 5천 년 동안 계속되면서 전 국토의 20.5%를 농경지, 5%를 도시화 지역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런 균형된 토지 이용에 18홀의 골프장 조성을 위해 30만 평의 땅을 취할 장소가 없다. 30만 평의 땅을 얻으려면 조상들이 사랑하면서 껴안고 살았던 뭇 생물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그들을 죽음까지 몰아내야만 하는 생명체의 백정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뭇 생물들과 형제로서 살면서 그들을 돌보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인간들이 생활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놀음을 위해 뭇 생물의 백정 노릇을 한다는 것은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골프장 건설과 자연환경 파괴
남한 국토 면적이 10만㎢에 불과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 종류는 4천5백 종류이다. 영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국토 면적이 24만㎢이지만 자생 식물이 천여 종도 되지 않는다. 먹이 연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자생 식물의 종류가 이 정도이니 공생하는 곤충, 양서·파충류, 포유류, 토양 미생물 등의 종류는 엄청날 텐데 현재 가늠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좁은 국토에 많은 종류의 자생 식물이 살려고 하니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 30만 평의 산림에는 어림잡아 식물 200~400종류, 양서·파충류 20여 종, 곤충 기천 종, 포유류 십여 종, 토양 미생물 기천 종이 먹이 연쇄를 형성하고 있다. 산림에 골프장을 만들려면 경사진 땅을 파고 메워 평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와 어울려 살던 뭇 생물들을 일시에 몰아내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뒤집어 평지로 만들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백여 년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땅을 사람과 뭇 생물들이 어울려 사는 생명의 공간으로 생각해서 땅을 허물고, 물을 오염시키는 일을 금기하였다. 일례로 전통 조경 사상에 차경법(借景法)이라 해서 마루에 앉아 앞산을 보았지 유럽과 같이 공원이라 해서 원래 살고 있던 생명체들을 쫓아내고 사람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감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근대 서양 문물에 의한 산업 사회를 건설하면서 압축 고도성장 시대를 거치는 동안 땅을 잉여 가치를 낳는 자본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땅에 많은 생명체가 살기에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평당 얼마짜리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많은 생명체가 사는 자연 지형 땅보다 깎아 내어 평지가 된 땅을 선호한다. 곧 현대의 땅의 가치는 잉여 가치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만이 귀중하게 여겨질 뿐이다. 생물 백정 시각에서 바라본 관점이다. 그러므로 심산유곡 산림을 싸게 사서 중장비로 깎아 뭇 생명체를 다 죽이고 뱃살을 드러낸 채 죽어 있는 대지를 골프장으로 만들어 비싼 값에 팔고들 있다.
골프장은 중요 부분에는 오로지 잔디만 심고, 변두리 지역은 조경수를 띄엄띄엄 심은 다음, 밑에 잔디를 심게 된다. 이런 상태를 만들려면 경사진 자연 지형을 훼손하여 지상부 생명체를 모두 죽이거나 몰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잔디를 심으려면 흙의 낙엽층과 부식층을 놔둘 수가 없다. 이를 놔두면 흙 속의 풀과 나무 종자가 자라나 잔디가 살 수가 없어 지상부에서 0.5~1m 정도의 흙을 모두 파 버리고 강모래를 덮고 잔디를 심게 된다.
골프장을 산림에 조성하는 것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구실을 하는 온갖 생명체를 없애 버리고 골프하기에 적당한 잔디라는 식물만을 키우는 것이다. 사라지는 생명체를 난치병 치료제 원료이니, 일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기능이니, 비가 오면 자연 저장하는 댐 기능이니 하는 이런 인간 중심적인 이용 가치는 따지고 싶지 않다.
골프장을 조성하려면 현행법으로 사전 환경성 검토를 거치게 되어 있다. 이런 환경성 검토에서 생태계 가치를 정량화하는 기준으로 녹지자연도(綠地自然度) 분류 기준이 있다. 여기서는 생태계를 11등급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1: 도시화 지역
2: 농경지
3: 과수원
4: 조성 초지(잔디밭 등)
5: 자연 초지
6: 인공림
7: 이차림1(20년 이하 자연림)
8: 이차림2(20~50년생 자연림)
9: 자연림(50년생 이상 자연림)
10: 고산 초원
0: 수면
골프장과 같은 체육 시설은 녹지 자연도 등급 8 이상은 안 되고, 등급 7도 대상지의 50% 이상이면 협의가 안 된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농경지, 곧 논과 밭을 골프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어 초기에는 싼값의 농산물이 수입되다가 우리 농업이 무너진 뒤 식량이 무기화가 되면 우리가 다시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시대가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미래를 대비한다면 농경지는 폐경지가 되더라도 골프장을 만들면 안 된다. 농경지 특히 논을 골프장으로 만들려면 물이 고이지 못하게 성토를 하고 모래를 0.5m 이상 덮고 잔디를 심어야 한다. 이런 상태로 몇 년 지나면 다시 논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산물 개방으로 일부 논을 폐경작지로 해야 된다면 묵논 형태의 습지로 유지해야 한다. 습지인 만큼 후에 논으로 충분히 환원할 수 있다.
오천 년 동안 좁은 국토를 보전과 이용처를 구분하여 알뜰하게 조성한 사람과 뭇 생명체의 생활 터전에 몇십만 평의 죽음 공간인 골프장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골프장 운영 시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비가 오는 날 골프를 치는 것을 보면 골프장의 잔디밭은 배수가 잘 되도록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골프장 조성 시 산 흙을 다 들어내고 10cm 정도 깊이로 콩자갈을 깔고 그 위에 30cm 정도의 강모래에 일부 피트모스를 섞어 평지를 만든 다음 잔디를 심었기 때문이다. 배수가 잘되기에 조금만 가물어도 잔디가 자라는 데 필요한 물을 빨리 공급해 주어야 하고, 따라서 관정을 파서 물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골프장은 보통 농경지보다 상류에 위치하기에 골프장에 사용하는 지하수량이 과도하면 아래 농경지는 물이 없어 농사를 짓기가 어렵게 된다.
골프장에 심는 잔디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럽에서 자생하는 벤트그라스 같은 한지형 잔디로 보통 15.5~24.0℃에서 잘 자라며 골프장의 티그라운드나 그린 지역에 꼭 식재한다. 고급 골프장에서는 잔디 전체를 이런 한지형 잔디로 식재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고려잔디 같은 난지형 잔디로 보통 26.6~ 35.0℃에서 잘 자라며 골프장의 페어웨이 지역에 식재한다.
잔디는 식물인지라 모래가 대부분인 땅에서는 영양분이 부족하여 비료는 필수적으로 뿌려야 한다. 잔디라는 한 종류의 풀이 넓은 면적에 살게 되면 각종 병충해와 경쟁하는 풀들이 침입할 수밖에 없다. 넓은 잔디밭은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는데 자연환경 안에서 생태계가 파괴된 지역은 다시 생태계 발달을 위해 각종 식물과 곤충들이 살기 시작한다. 잔디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식물, 곤충, 미생물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고 잔디만이 살게 하는 것으로 이런 생물들이 살지 못하게 하려면 농약(살충제, 제초제 등)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골프장은 풀, 곤충, 미생물이 침입하기 전에 예방적으로 농약을 뿌려야만 하기에 골프장은 일상적으로 농약을 뿌릴 수밖에 없다. 20~30년 동안 계속 농약과 비료를 주면 흙에 축적되기에 다시 흙, 모래를 새롭게 바꾸어 주고 잔디를 다시 심어야 한다. 대체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지정된 휴장일에 농약과 비료를 뿌릴 수밖에 없다.
우리 자연환경에 맞지 않는 운동을 위한 골프장 조성 때문에 수많은 생물체를 죽이고 몰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운영 중에도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물, 농약, 비료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어야 한다. 사람이 뭇 생명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사람도 뭇 생명체와 똑같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사람은 뭇 생명체와 형제이다. 다만 뭇 생명체들을 잘 보살피라는 사명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이런 사명을 망각한 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도 않고 다만 즐기기 위해 만드는 골프장으로 우리 인간의 형제들을 수없이 죽이고 내쫓는 생태계 백정이 하느님에게 용서받겠는가? 그러면 우리 사람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가를 반문하는 것조차 어리석을 수 있다.
이경재 |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학 박사 학위(환경 생태학 전공)를 취득하였고,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있다. 『우리 땅 곳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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