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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생태여성론’ 거목 문순홍 1주기

by 마리산인1324 2007. 1. 28.

 <나비야 청산가자> 2006.02.23 10:09

http://cafe.daum.net/nbychungsan

 

 

'삶을 되살리는 여성주의' 당신을 기억합니다.

 

- ‘생태여성론’ 거목 문순홍 1주기

 

 

 

촛불이, 혼불처럼 너울거렸다. 지난 17일 ‘생태여성론’(에코페미놀로지)의 거목 고 문순홍 박사의 1주기 추모 행사가 서울 권농동 밝은사회국제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그의 동료와 지인들은 추모식과 함께 유고선집 <생태학의 담론> <정치생태학과 녹색국가>(아르케)의 출판기념회를 그 없이 열었다.

 

김지하 시인(생명과평화의 길 이사장)은 이날 “그는 내 생태학 선생”이라며 “사람들이 너무 그를 기억해주지 않았지”라고 안타까워했고, 정상명 대표(풀꽃평화연구소·화가)는 가진 것 모두를 털어 걸인에게 주고 자신은 먼 길을 걸어갈 만큼 순수하던 그의 면모를 되새겼다. 문 박사가 가르친 젊은 에코페미니스트 공동체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최이윤정씨는 서정주 시인의 시를 낭독했다.

 

문 박사는 한국형 생태여성론과 생태정치학을 개척하고 지난해 1월28일 4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성균관대와 독일 루드비히-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호주 멜번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면서 존 드라이젝 등 생태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했다. 생태사회연구소, 불교환경교육원, 생명민회, 여성환경연대, 바람과물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참여 지식인이기도 했다. 서구생태론의 우리식 변형을 꿈꾸며 생태여성론을 동학·원불교·증산도의 언어와 접목했고, 300여 명에 이르는 여성 환경활동가를 심층 인터뷰해 ‘한국의 여성환경운동’(아르케)을 펴냈다.

 

한국형 생태정치학 개척하고… 참여지식인으로 활동하다
48살의 나이로 요절해… ‘생태학의 담론’등 유고선집 나와

 

문 박사의 생태여성론은 생태여성주의와(에코페미니즘)도 선을 그었다. 그는 “생태여성주의가 여성주의적 틀을 견지한다면, 생태여성론은 생태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체제에 물음을 제기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여성(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페미니즘이 실천적 과제로서 생명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 ‘생명으로서 자아와 세계 인식에 도달하는 여성주의적 방법이 있는지’를 끝없이 질문했다.

 

 

 

자기 몸의 결정권으로서 낙태가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현 세대 자기발언권과 자기결정권은 고려되지만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관계축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스스로 말한 대로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같은 또 다른 권력집단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는 부작용” 때문에 조심스럽긴 했지만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이야기였기에 여성주의자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그의 학문은 추상이 아니라 손에 잡힐 만큼 구체적인 삶 위에서 전개돼야 하는 것이었고,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 변혁의 도구였다. 모심과살림연구소 윤형근 연구원은 “문 박사는 근대화, 산업화, 서구화 속에서 배제·타자화·주변화된 자의 목소리의 복권을 꿈꿨다“고 설명했다. 제자인 윤박경 연구원(바람과물연구소)은 그가 주장한 ‘녹색정치’에 대해 “지역 사람들의 삶·몸·자아의 각성과 실천이 토대가 돼야 한다고 늘 말했다”고 전한다.

 

삶을 되살리는 순환적인 흐름을 문 박사는 ‘지금, 여기’에서 설명하고 싶어했다. 유고선집인 <정치생태학과 녹색국가>에서도 그는 생명과 생태지역을 정치의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사진 여성환경연대 제공

 

http://www.hani.co.kr

 

 

 

[생태여성론의 선구자]

문순홍(바람과 물 연구소 소장)

 

 

 

퍼슨웹은 인터뷰를 준비하던 즈음, ‘지금 문순홍은 투병중이며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대체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접한 문순홍의 저서와 관련자료는 이미 퍼슨웹을 매료시킨 후였다. 몇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획에서 문순홍을 제외할 수 없다는 생각은 점차 신념으로 바뀌었다. 대면 인터뷰가 전화 통화로 대체되긴 했지만, 문순홍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각인됐다.

 

직접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문순홍을 그토록 붙잡으려 한 것은 바로 문순홍과 분리할 수 없는 ‘생태여성론(Eco-feminology)’이 발산하는 매력 때문이었다. ‘생태학’ ‘생태주의’라는 용어가 막 사회적으로 익숙해지려는 지금, 그보다 한 발짝 앞서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을 실천해온 문순홍이란 인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생태여성론은 생태여성주의(Ecofe- minism)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 이론이자 관점이다. 생태여성주의가 자연과 여성의 모성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여성의 환경활동에 의의를 부여하는 입장이라면, 생태여성론은 관계적 세계라는 틀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상호보완적인 긴장관계를 부여한다. 따라서 생태여성론은 현재의 남성(성) 중심적 사회체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사회를 이끌 주체로서의 여성(성), 그리고 대안사회 구성의 가치와 원리로서의 ‘여성적인 것’에 무게를 싣는다.

 

이런 시각은 생태 논의의 한국적 수용을 위한 움직임들이다. 실제로 문순홍은 설문조사와 300여 명에 이르는 여성 환경활동가를 심층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한국 여성 환경운동의 시원(始原)과 역사를 점검하고 현 시점에서 여성 환경활동가들의 현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에서 생태여성론의 실천(‘한국의 여성환경운동’, 아르케)을 시작했다. 동시에 생태여성론 개념들을 19세기 말 등장한 동학과 원불교, 증산도 등의 언어로 바꾸고 이를 개념화·이론화하는 공동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생태여성론 논의를 좇다보면 생활정치, 미시정치적인 관점이 배어나고 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른바 정치생태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생태여성론의 특성은 문순홍의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고개 끄덕이게 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당초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문순홍은 박사후 과정으로 여성학을 공부했다. 때문에 정치학과 여성학을 섭렵한 문순홍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1980년 대학 졸업 후 문순홍은 외교안보연구원 유럽 관련부서에 근무했다. 당시 그곳의 신문들은 반전평화운동, 녹색당, 학생들의 빈집 점령운동 등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기본 물음이 노동과 반독재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문순홍은 혼돈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이는 석사과정 지도교수로 사실상 생태사상의 한국적 원조라 할 수 있는 임효선 교수를 만났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임교수는 문순홍에게 정치사상의 기초로서의 ‘자연관’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며, 문순홍은 근대 서구철학의 자연관과 동양적 자연관의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년간의 독일 유학에서 얻은 자기성찰은 내가 나의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귀국 후 문순홍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연장선 위에서 서구철학의 자기반성(?), 일명 철학의 종언 혹은 포스트모던 논쟁판을 기웃거리게 됐다.

 

여성 환경활동가 300여명 심층 인터뷰

 

문순홍의 관심 분야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생태패러다임과 이와 관련된 사회적 물음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패러다임 변동에 관심이 있었던 문순홍은 변동의 방향이 생태적인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변동을 일으키는 생태 위기는 분할된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 추상화된 보편성과 이 보편성에 기반한 체제억압성에서 구체적 개인들(개체들)의 살아 숨쉬는 능력 복원하기의 문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이 안에 여성과 자연의 자기 목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순홍은 말한다. “내가 연구해야 할 곳은 아카데미에 갇힌 연구실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현장이었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은 생태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 작업은 이 생태란 단어를 이해시키는 데 집중돼 있었다. 동시에 내 관심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시각 형성에, 현장에 참여하는 건강한 시민 형성에 있었다.”

 

5월31일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사가 서울 광화문 앞에서 대장정을 마감했다. 생태여성론의 입장에서 문순홍은 그 행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생태여성론은 지역과 관련하여 물리적이고 추상적인 공간 개념보다는 구체적 삶이 진행되는 장소 개념을 선호한다. 이 장소는 행정적·정치적·경제적 목적의 구획 속에 닫힌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장소는 강, 산맥, 동식물대에 의해 분리되기도 하지만(닫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넘어서는 영성에 의해 열리기도 한다.

 

한국의 환경운동에서 동강 영월댐 건설 반대운동은 그런 운동방식에서 한 획을 그었다. 그것은 영월·정선·평창으로 닫힌 영성(동강과 자신의 삶과의 관련성에 대한 인식)을 한반도 전역으로 열어놓았던 것이다. TV 화면에 펼쳐지는, 또 현장방문에서 확인한 동강의 아름다움은 전국민의 생태적 감수성을 흔들어놓았고 동강이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 할 이유를 이해시켰다.

이에 비해 새만금 간척사업은 동강의 사례와는 달라 새만금에 대한 생태 감수성을 지역에서 전국으로 열어놓을 기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새만금이란 지역을 행정적·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가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삼보일배 행사는 이 기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삼보일배 행군은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내 안의 자기-타자-긍정성을 탐진치의 억압에서 풀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통해 인간과 지역 이해관계에 갇혀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시각을 한반도, 동북아, 세계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운동을 넘어 자기혁명의 수행이고 이 수행을 통해 나와 타자가 해방된다는 의미에서 생명축제의 전조다.

 

문순홍은 당분간 강의와 외부 활동을 쉬고 있는 상태지만 최근 문순홍에게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에코페미니스트 모임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www.ecofeminist.org)’은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 같은 책을 출판하며 여성 환경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사진: 퍼슨웹문화기획집단 www.personwe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