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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활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③ 털털히 뒤집는 ‘역발상’(한겨레신문 070201)

by 마리산인1324 2007. 2. 6.

 

<한겨레신문> 2007-02-01 오후 02:52:22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87901.html

‘희망 한 단’ 사들고 읊조리듯 그렇게…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③ 털털히 뒤집는 ‘역발상’
한겨레
» 장사익의 털덧신. 하도 오래 신어 뒷 축이 달아 있다. [화보]
장사익은 자유롭다.
 

턱수염도 부시시 기르고, 다림질이 필요없는 바지에 편한 털덧신을 신고 다닌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알아보는 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편하게 산다. 지갑엔 보통 2만~3만원이 있다. 신용카드도 쓸 일이 많지 않다. 이런 장사익의 자유로움과 편함은 상식을 뒤집는 ‘역발상’으로 그의 음악에 그대로 묻어난다.

 

상여소리 엮어 만든 노래 끝부분에
흥겨운 곡조로 반전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땅 충남 광천에서 불리는 상여소리(만가)를 엮어 만든 <하늘 가는길>의 백미는 마지막 부문이다.

 

“간다 간다/내가 돌아간다/ 왔던길 내가 다시 돌아간다/어-허아 어허야/ (중략)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잎진다 설워마라/명년 봄이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한번 간 우리인생 낙엽처럼 가이없네” 라며 가는 이를 애닯아하던 장사익은 막판에 흥겨운 곡조를 연출한다.


 

“하늘로 간다네/버스타고 갈까 바람타고 갈까 구름타고 갈까/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

 

그 어떤 소리꾼이, 아니 시인이, 하늘가는 길이 신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하늘로 가는길’을 ‘정말 신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소리꾼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연인, 인기는 구름 같은 것”

 

장사익이 ‘소리판’을 벌린다고 하면 한달전에 전 좌석이 매진되곤 한다. 천여명의 고정팬들은 그가 이땅 어디서 판을 벌리든 찾아간다.

 

심지어 그가 외국에 초청받아 갔을때, 그 외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인데도 따라다닌 수십명의 ‘광팬’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인기’를 물어 보았다.

 

“인기요? 인기는 무대 위에서나 있는 것이죠. 무대 밑에 내려오면 누구나 같아요. 무대 위에서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고, 무대 아래에 내려오면 자연인이 되는 것이지요. 인기라는 것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같아요. 옆에서 ‘너 인기 좋다’라고 말하면 물론 기분이야 좋죠. 그러나 인기는 있다가 없어지는 것. 집착하면 다쳐요.”

 

» 냉장고에 붙어있는,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소리판 포스터. 실내 곳곳에 붙여 놓았다.
그는 지난해 처음 노래하는 맛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첫 앨범인 <하늘 가는길>이 나온지 10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노래하는 맛을 느꼈다니?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게 노래하는 것이구나. 아마도 난생 처음 노래하는 맛을 느낀 것 같아요.”

 

태평소로 대회 휩쓸고
국악피아니스트 임동창 만나 본격 ‘소리’

 

그는 3년전부터 국악기는 손을 놓았다. 나이 탓인지 소리도 하고 악기도 부는 것이 힘에 부쳤다고 한다. 그가 바닥의 인생에서 탈피하고자 ‘딱 3년만 해보자’고 잡았던 태평소는 사실 오늘의 그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태평소는 민간음악에서 당차고 센 소리로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흥을 돋구던 악기다. 태평소에 탁월한 실력을 보인 그는 전주대사습 공주농악(93년)과 금산 농악(94년)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이어 <한국방송> 국악대제전 뜬쇠사물놀이(95년)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하며 국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장사익은 ‘소리꾼’으로 본격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각종 공연이 끝난 뒤 갖는 뒤풀이에서 장사익은 국악과 가요을 넘나들며 엄청난 ‘내공’이 함유된 노래를 불러젖혔다. 이 즈음 국악피아니스트며 작곡가인 임동창씨도 만났다. 임씨의 권유로 장사익은 노래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대박’ 이 터졌다.

 

시민단체 집회에 별 대가 없이 출연한 ‘재야 소리꾼’

 

장사익은 시민단체가 여는 각종 집회와 모임에서 어렵지 않게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유명 가객이다. ‘재야 소리꾼’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장사익은 별 대가없이 집회에서 노래하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민주화 시기에 별로 한 게 없어요. 민중가요 한 곡도 몰라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거죠.”

 

창 밖의 하늘은 꾸물꾸물하다. 기상대 예보로는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북한산을 배경으로 시원스럽게 내라는 함박눈을 보면서, 거장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문득 정원(10평 남짓)에 울려 퍼지던 피아노 연주가 궁금해졌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장사익이 자신의 정원에 있는 나무과 풀잎들, 정원 옆의 큰 바위, 그리고 자신의 집에 놀어오는 산짐승들에게 들여주기 위해 정원에 설치한 라디오. 방수를 위해 백화점 포장지로 씌운 이 라디오에는 자동 타이머가 장착돼 있어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에프엠 라디오 방송이 자동적으로 자연을 향해 방송된다.

집 뜰 나무와 풀, 산짐승 들으라고 자동 타이머 라디오

 

» 장사익이 뜰에 나갈때 신는 검정 고무신. 한쪽은 250. 다른 한쪽은 255. 짝짝이다.
“라디오에 자동 타이머를 설치해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에프엠 방송을 틀어 놓아요. 뜰에 있는 나무와 풀, 곤충, 그리고 놀러오는 산고양이 같은 짐승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죠. 좋아들 해요. 가까이 온 산짐승들은 소리치면 가지만, 음악소리 듣고는 가지 않아요.”

 

어릴적, 고향 광천의 들판이 그리워서 일게다.

그러고 보니 정원 한 옆에 방수종이로 싼 카세트라디오가 있다. 비에 젖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검정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자세히 보니 한짝은 250사이즈이고, 다른 한짝은 255사이즈이다. 짝짝이가 대수랴.



“70~80이 되도록 무대에 설 그런 꿈꿔요”

 

마무리하는 질문을 던졌다.

 

“희망이 뭔가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더욱 온화해지며 대답한다.

 

“늘 꿈을 꿉니다. 나이 70~80이 되도록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 무대에 설 수 없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때의 무대는 더욱 멋있을 것입니다 . 읊조리듯, 씨부렁거리듯,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가고 싶어요. 늘 꿈꿔요. 그런 행복함을…”

 

그의 5집 <사람이 그리워서> 타이틀곡인 ‘희망 한단’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채소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희망 한단에 얼마예요”

 

순박한 아줌마는 이런 엉뚱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현답’한다.

 

“채소나 한단 사가세요”

 

장사익의 행복은 채소 한단에도 만족해진다. 마침내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끝)

 

» 소리꾼 장사익에게 풍경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글·사진 <한겨레>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


장사익의 ‘희망 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