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6년 07월 28일 18: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7281802011&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평화’에 이르는 길 | |
사람들은 늘 평화를 이야기한다. 평화를 찾아 절에도 가고 인도, 티베트, 히말라야를 가곤 한다. 그 곳에서 평화를 느끼고 왔다며 다시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내용을 짚어보면 평화에 대한 환상을 좇거나 착각에 빠져 지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일상적으로 평화라는 말은 무성한데 현실적으로 평화의 삶은 있지 않다.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의 정체는 어디에 있는가?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평화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밖의 절, 인도, 하늘 등 그 어느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디에도 무지갯빛 평화는 있지 않았다.
-정체성 확립 늘 깨어있어야-
굳이 말하자면 평화는 손뼉소리와 같은 존재였다. 조건이 형성되면 그 순간 그 자리에 현재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시공간 그 어디에도 말로만 있을 뿐 삶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손뼉소리처럼 평화는 안에 있다거나 밖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누구에 의해 주어지거나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으로 조건을 만들면 있는 것이고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조건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평화인 것이다.
이쯤에서 구체적으로 평화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 보자.
평화라는 말은 싸움, 전쟁에 대한 상대적 표현이다. 싸움과 전쟁의 원인인 무지, 불신, 불만, 갈등, 대립, 분노, 증오가 없는 상태, 즉 싸움과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인 것이다. 화목과 평화의 원인인 이해, 신뢰, 비움, 나눔, 관용, 만족이 있는 상태, 즉 신뢰와 사랑이 작동하는 상태가 평화인 것이다. 이 정도일 뿐이다. 그 밖의 특별한 무엇이 있지 않다.
평화는 그 어디에 있는 것도, 그 누구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주체적으로 평화의 삶을 살아야만 실현되는 것이 평화이다. 그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먼저 주체적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 생명의 실상은 본래 분리 독립되어 있지 않다.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 온 우주가 모두 참여하여 이루어진 것이 내 생명이다. 내가 곧 우주며, 우주가 곧 나인 것이다. 존재의 실상인 이 사실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고 확신해야 한다.
다음은 정체성에 대한 깨어있음과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가꾸어야 한다. 한몸 한생명의 관점에서 너와 나, 나와 사회, 나와 자연 등 매순간 매상황의 실상을 잘 보고 파악하고 이해하여 지혜롭게 깨어있어야 한다. 어떤 상대,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침착함, 부드러움, 여유로움, 안정됨의 자기 집중, 즉 주체적으로 평정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물론 이 밖에도 생리적 조건, 사회적 조건, 자연 환경적 조건 등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총체적이다. 다만 여기에선 주체적 조건을 확립하면, 기타의 조건들은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능함을 밝혀 둔다.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한몸 한생명인 진리의 세계관을 갖고 늘상 지혜로운 깨어있음과 흔들림 없는 평정의 상태로 너를 대하고 사회를 대하고 자연을 대할 때 평화의 길을 찾게 되고, 평화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목적지 아니라 과정의 산물-
평화는 결코 도달해야 할 목적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조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산물이 평화인 것이다. 한 마디로 평화의 조건은 평화로움뿐이다. 지금 바로 평화에 도달하는 길은 평화로움 말고 다른 길이 있지 않다.
그 어디 그 누구도 평화로움을 떠나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 곳,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 끊임없는 평화로움만이 평화에 도달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이다. 모색하고 모색한 끝에 순례단이 합의한 결론이다.
〈도법스님/생명평화 탁발순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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