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사상 이야기/종교

이제 삶의 가치를 얘기하자(도법, 070126)

by 마리산인1324 2007. 2. 21.

 

<경향신문> 2007년 01월 26일 18:03: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1261803301&code=990335

 

 

[낮은 목소리로] 이제 삶의 가치를 얘기하자

 

〈도법스님/생명평화탁발 순례단장〉

순례 길에서 확실하게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다수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관념적으로 다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요한 고민거리나 대화들은 돈, 집, 정치, 자동차 따위였고 삶의 목표 또한 이것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오로지 ‘부자와 일등이 행복하다’는 지식과 믿음이 우리 사회를 휩싸고 있었다.

이러한 지식과 믿음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과연 행복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세계 제일의 부자요, 강한 나라라는 미국을 보자. 부자와 일등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미국만은 “우리는 이만하면 충분해. 더 이상 필요 없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은 더 부자, 더 강자를 향해 온갖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까지도 불사하면서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반생명·비인간적인 일등주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속성으로 볼 때 이러한 이기적 소유 욕구는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또한 부자와 일등을 향해 가는 과정 자체는 반생명·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삶의 연속인데, 그 삶이 어떻게 인간적이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부자와 일등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장난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부자와 일등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일까. 말에 속고 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또는 삶의 문제들을 실사구시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첫째,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자기 자신과 생명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구를 막론하고 내 삶의 주체, 내 삶의 최고 가치는 당연히 나 자신이요, 내 생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은 자신을 올바르게 아는 일일 터이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진보니 보수니, 정치니 경제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온갖 관심과 열정을 다 바친다. 그렇지만 정작 내 생명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인생을 정상적으로 사는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내팽개치는 짓이다.

둘째,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꾸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 소유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투자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고 자신을 가꾸는 것이라고 여긴다. 자기 존재 가치를 가꾸는 데 투자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그러다 보니 진보주의자라고 하든 보수주의자라고 하든 정치, 경제, 집, 자동차 등 자기 밖의 것들을 다루는 솜씨는 하느님 수준인데, 자기 존재 가치를 가꾸고 다루는 능력은 거의 무능력에 가깝다.

신문 방송을 보면 우리의 삶, 우리의 사회를 다루는 의사들이 대단히 많다. 마치 서로가 자신이 최고 의사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병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정확한 원인을 찾는 노력보다는 빨리 처방을 내리고 약을 쓰려고만 한다. 그럴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존재가치 가꾸는데 투자하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유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 끝없는 불만과 갈등으로 삶을 소진시킬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무지로부터 깨어나는 일이다. 잃어버린 길을 찾는 일이다. 근원적 진리와 존재가치에 눈뜨는 일이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기독교와 불교, 기업가와 노동자,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참된 가치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근원적 관점에서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너도 나도 나섰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만 어떤 문제를 다룰 때마다 본질은 실종된 채 이해득실을 가르는 분파와 피폐한 영혼만 재생산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