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이야기/생태환경

[성명서]거제 송진포 주민

by 마리산인1324 2007. 2. 26.

 

<성명서>

http://blog.naver.com/ghh5569/130014528441

 


우리 송진포 주민들은 절대로 골프장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이른바 농한기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 송진포는 두 번째 농번기를 맞습니다. 조생종 양파를 심어 내년 봄에 거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로부터 우리 마을엔 물이 부족했습니다. 마사토로 이루어진 흙은 물을 가두지 못해 비가 오면 금방 인근 바다로 빠져나가는 토질입니다. 본디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척박한 토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을 주민들은 땅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 토양에 맞는 작물을 찾아 헤맨 끝에 양파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전 주민이 허리를 펴고 쉴 틈도 없이 추수가 끝난 논에서 다시 거름을 넣으며 양파농사를 지으며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일찍 출하되는 송진포 양파는 경상남도 농산물 공판장에서 맛이 달고 품질이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우리 마을 주민들이 자부심과 남다른 긍지도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민들은 거제시 외곽지 한 켠에서 그렇게 열심히 땅을 일구고 땅에 기대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헐값에 송진포 야산과 주변을 매입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여전히 죄없는 우리 마을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습니다.

약 6년 전, 야트막한 마을 뒷산 30만평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해서 전주민이 분연히 일어나 대동단결해서 싸웠습니다. 할머니들 주머니에서 만 원, 오 천원씩 십시일반, 우리 마을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자금을 모았습니다.

멀리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까지 가서 그토록 추운 날, 꽁꽁 언 손발로 ‘제발 우리를 내버려둬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날 (주)대우의 책임자는 사무실을 찾아간 주민대표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로소 진실을 말하더군요.

“그래요, 사실입니다. 장목 관광단지는 관심 없어요, 골프장이 노른자예요!”

(주)대우가 우리 시에 근사한 관광단지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전 거제시민이 장밋빛 희망에 들떴던 일이 한순간의 비웃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삼년을 싸웠습니다. 사업자는 추진하던 골프장을 중단했고, 우리 마을은 힘든 싸움 끝에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주)로이젠으로 이름만 바뀐, 여전히 전 대우그룹 김우중 가족과 그 주변인들은 500억을 들여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며 사업신청을 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해서 우리는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그 힘든 싸움을 또 해야 한다는 말인가, 왜 세상은 조용하고도 열심히 사는 힘없는 농민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토록 괴롭히는가. 골프장 바로 옆에서 사시사철 농약을 마시며 어떤 누가 살고 싶은가, 물이 귀한 마을에 하루 천 톤씩 사용한다는 지하수를 뽑아내면 주민들은 바닷물을 떠 마시며 살고, 농사는 어떻게 지으라는 것인가.

심지어 골프장 근처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골프장 측에서도 사주지 않고, 정부도 안전한 농산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골프장에서 뽑아낸 잡초조차 사료나 거름으로 쓰이지 못하고 폐기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우리 거제시는 알고나 있는지,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골프장만 지어서 있는 사람들 놀이터만 만들어 주면 능사란 말입니까.

우리 송진포 주민들은 골프장과 함께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시사철 160가지나 친다는 농약중독으로 죽어가라는 말과 같으며, 정 살기 싫으면 헐값에 땅 팔고 집 팔아서 떠나든가, 하는 식입니다. 송진 마을과 골프장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골프공이 날아와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맞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집단 이주를 시켜서 지금처럼 환경적으로 안전하고, 양파농사를 지어서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대체해주십시오. 그나마 정든 고향을 버리고 가겠지만, 정든 땅을 버리고 가야만 하는 뼈아픈 일을 차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겠지만, 주민들이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그것입니다.

거제시와 경상남도, 무엇보다 관광단지는 이제 모르겠고 오로지 골프장만 짓겠다고 말을 바꾼 (주)로이젠 관계자들은 우리 주민들의 분노와 외침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어차피 골프장과 마을의 동거는 불가능한 일, 아무리 어질고 선한 농부들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2006년 12월 1일

송진포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