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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농업정책

역발상 신념이 일궈낸 ‘5℃ 이온쌀’(국정브리핑 070130)

by 마리산인1324 2007. 3. 12.

 

<국정브리핑> 2007.01.30

 

 

역발상 신념이 일궈낸 ‘5℃ 이온쌀’

[15인의 농업 희망 메시지] ①피엔라이스 나준순 대표
우리 농업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개방이라는 대세 앞에서 우리 농업인들은 세계 각국의 농산물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이제 보조적 역할에 머물던 여성농업인들은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또 결혼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농촌 사회의 새로운 문화도 만들어 가고 있다. 국정브리핑과 농림부는 모두 15회에 걸쳐 △개방에 맞서 차별화된 우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농업인 △특유의 섬세함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여성농업인 △우리 땅에 뿌리내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결혼이민자들을 만나 우리 농업의 희망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피앤라이스 나준순 대표가 생산현장에서 ‘5℃ 이온쌀’을 들고 있다.
미국산 칼로스 등 수입쌀과의 치열한 경쟁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이와 함께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지난해보다 2.4% 감소한 78.8kg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등 국내 쌀산업은 도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다고는 해도 쌀은 여전히 한국인의 주식이다. 또한 쌀은 아직도 우리 농업인들이 가장 많이 농사짓는 품목이기도 하다. 흔하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렵고, 새로운 시도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피엔라이스 대표 나준순씨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발상의 전환과 신념으로 극복해냈다. 나 씨가 ‘5℃ 이온쌀’을 처음 시도했던 6~7년전만 해도 나 씨의 성공을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발상과 신념이 만들어낸 성공신화

좋은 쌀을 만드는 데는 재배 과정 못지않게 가공이 중요하다. ‘5℃ 이온쌀’의 혁신과 성공 신화는 여기서 출발했다.

갓 추수한 우리 햅쌀의 경우 외국의 고급쌀과 비교해도 밥맛이 월등히 좋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쌀은 점점 맛이 떨어졌다. 관건은 ‘어떻게 저장하느냐’였다. 햅쌀 맛 그대로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나 씨는 외항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외항선에서는 오랜 항해 기간을 대비한 냉각저장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다. 10년간 선박엔지니어로 배를 탔던 그의 이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지금은 쌀 농업에서 냉각 저장 시스템이 더 이상 낯설고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냉각 저장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존에는 대부분 햇볕이나 불에 쬐는 방식으로 쌀을 말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저온 저장 시스템이 전국 미곡종합처리장(RPC)을 통해 굉장히 많이 보급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도입하는 트렌드죠. 하지만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심지어 미친 놈 소리를 들었어요. 무려 7년동안 초기 시설이나 설비에 엄청난 투자비용이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우리 농업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주변에는 ‘기행’으로 보였을 나씨의 실험은 계속됐고 마침내 ‘5℃ 이온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5℃ 이온쌀’은 인제대하교·보건대학교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개발됐다. 이 쌀은 섭씨 5℃로 저온 저장하고 이온수로 씻는 방식이다. 가공할 때 1차 산성 이온수로 살균처리하고, 2차 알칼리 이온수로 표면 가공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제품의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며 쌀의 저장성이 길어져 맛 좋은 쌀을 유지해 준다. 저온저장이 미생물이나 공기 중의 산소 등으로 인해 쌀이 변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로

그의 굽히지 않는 고집과 신념은 곧 보상으로 이어졌다. 1999년 ‘5℃이온쌀’과 ‘메뚜기가 노는 철마쌀’로 상표 등록을 마치면서 나씨는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1년에는 5℃ 이온 쌀의 ‘이온수를 사용한 쌀의 세척방법’으로 특허를 획득했고 ‘한국일보 2001 하반기 히트상품’, ‘삼성경제연구소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됐다.

‘5℃ 이온쌀’이 포장 출하되는 모습

지금 나준순표 쌀은 대형할인점과 백화점 등 전국 3000개 매장에서 판매된다. 2004년 6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 참가해 380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모두가 ‘수입 저가 쌀의 공습’을 걱정하고 있을 때, 나 씨가 경영하는 피엔라이스는 반대로 해외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타진한 결과다.

폐(廢)터널을 쌀의 금광으로

비용절감을 고민하던 나 씨는 어느 날 버려진 터널 이야기를 들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도로를 내기 위해 산 사이를 뚫어 만든 터널이 많다.

이번에도 주위의 반대는 거셌다. 터널에는 습기가 가득한데 어떻게 곡물을 저장하겠느냐는 얘기였다. 반대에 부딪힌 나 대표는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했다.

터널의 습기는 항습장치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명대학 냉동공조과 정기철 교수가 이 계획에 동참했고 1년여 연구개발 끝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발상이었어요. 모두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시도해 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죠. 안 될 거라는 지레 짐작을 버리고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 그게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경쟁력은 개방화에 필수

나 씨는 현재 김해평야 40~50%에 가까운 농가와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지금도 틈틈이 재배 지역을 찾는다. 친환경 쌀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눈으로 보고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나 씨가 그 아름다움에 반했던 철마는 지금도 메뚜기, 반딧불이가 노는 청정 지역이다. 부산 지역 절반 이상의 상수도를 책임지는 곳이다. 때문에 철마는 무농약 혹은 무독성 농약을 소량 이용하는 친환경농법이 보편화돼 있다. 맑고 깨끗한 이 곳에서 자라는 벼를 보면서 더 좋은 쌀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재확인한다.

풍년농산 미곡종합처리장이라는 상호를 ‘피엔라이스(PN RICE)’로 변경한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그 해 여름 태풍 매미의 피해로 풍년농산은 설비시설만 2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상호를 바꾸고 위기를 극복하자는 마음을 다졌다.

PN은 풍년(Poong Nyun)의 머리글자에서 가져왔다. P&RICE 즉 사람(People)과 쌀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사람이 먹는 쌀을 소중히 만들겠다는 의지다. 밀려오는 외국 농산물, 점점 규모화하고 치열해지는 쌀 시장, 그 틈바구니에서 경쟁하고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사람을 위한 좋은 쌀을 만드는 데 있다고 믿는다. 결과는 그 믿음의 부산물이다. 사업가로서의 센스와 아이디어, 현대적인 마인드를 가진 나씨도 마음만은 옛 농부 그대로다.
농림부 홍보지원팀 (bunigee@maf.go.kr) | 등록일 : 200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