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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이야기/괴산 소식

김양희 국장 사퇴 재 권고문(勸告文)(충북인뉴스 070330)

by 마리산인1324 2007. 3. 31.

 

<충북인뉴스>2007년 03월 30일

http://www.cbinews.co.kr/news/read.php?idxno=34880&rsec=MAIN§ion=MAIN

 

 

 

복지여성국장 사퇴 재권고문

김승환 대표,'목련꽃잎으로 하늘을 가리는가'

 

충북인뉴스 cbi@cbinews.co.kr

 

 

김양희 국장 사퇴 재 권고문(勸告文)
- 上黨淵文化塘 鴻鵠停春夜宴
-김승환(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어제 눈꽃 날리던 연못 상당연(上堂淵) 문화당(文化塘)에 오늘 하얀 목련 날린다. 일만 줄기 백설 꽃비 떨어지던 홍곡정(鴻鵠停)엔 일천 줄기 목련 꽃비 가득하다. 우리 인간이 목련처럼 피었다가 바람에 날리거나 허망하게 밟히는 것은 운명의 이치이니 세상을 탓할 바가 아니다.

 

        2007년 봄날, 준수한 인걸들이 홍곡정에 모여 앉아 곡차 경연을 벌렸다. 연유가 분명치 않으나 술잔에 떨어진 것이 눈꽃인가 목련인가를 다투게 되었음은 화사한 꽃그늘 때문인 듯하다. 정우택 지사께서는 분명히 눈꽃이라 하고, 충북시민사회단체는 분명히 목련이라 하자, 신선 이태백이 하얗게 웃으며 눈꽃인들 어떠하며 목련인들 어떠하랴 하고 파안대소를 한다. 때는 바야흐로 빙륜(氷輪)은 아직 우암에 걸리지 않고 다만 목련 그림자가 황홀한 주삼경(晝三更).

 

        그러나 세상에는 이치가 있는 것이고 항간에는 명분이 있는 법. 오늘 창밖에 핀 목련을 눈꽃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얀 목련을 붉은 목련이라고 하여도 틀림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하얀 목련을 눈꽃이라고 해서야 이치에 맞겠는가! 연희는 흥이 식어 상당연 문화당의 형세가 서로 사나워 마침내 목련이 목련으로 보이지 않았다.

 

        2007년 봄, 충청북도 도청 문화당의 형세를 본다하면 관리는 미몽에 갇혔고 목민관은 위엄에 닫혔다. 주군은 말한다, 위엄을 잃으면 이미 주군이 아니고 권위를 다치면 지사(知事)가 아니라고 말이다. 관리와 주위 인사들은 답한다, 지당한 언사이고 당연한 처사라고 말이다. 아, 세태가 그러한가, 권세에 취함이 오늘 달빛 아래 청주(淸酒)에 취한 충북인의 모습과 같다. 오늘 내 한숨은 지하의 이백(李白)을 탄복케 하는 글을 쓰지 못함이고 내일 내 한탄은 창천(蒼天)을 날아야 할 붕새 홍곡(鴻鵠)이 충북도청 담장 안에 갇혀 있음이라. 오늘의 쟁투가 사소한 말의 향연이 아니고 대의와 명분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백목련 백 줄기에 희희(喜喜)하고 자목련 천 줄기에 낙락(樂樂)할 수는 ! 없다.

 

        관리는 말한다, 김양희씨의 충북 복지여성국장 임용은 정당하게 행사된 인사권이므로 처음부터 시민단체가 동의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겠는가하고 말이다. 그런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2007년 1월 19일 국장 임명 전부터 여러 가지 부당함을 들어서 이 인사의 불가함을 선언한 이후, 일관된 자세로 오늘에 이르렀다. 개방형 임용직은 다른 직위와 같지 않다는 점, 심사과정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점, 체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다는 점, 해당 부분의 경력이 떨어지는 점 등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충청북도 도청의 더욱 완고한 답변은 그 모든 것은 박사(博士)이기 때문에 논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저 박사라는 것이 무엇인가. 박사란 학문 연구를 위한 최소! 한의 자격이니 이것만으로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이 주장과 발화는 급기야, 대체 어떤 박사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왔으니 표절과 대필의 의혹이 제기된 것은 필연적 결과라 할 것이다.

 

        김양희 국장의 2005년 2월 박사학위 논문은 논(論)과 문(文)에 현격히 미달한다. 논문의 핵심 개념도 혼동하고 있으며, 실험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중요한 결과라고 결론에 써 두었고, 자신의 연구결과라고 하면서 다른 연구자의 주석을 달아두는가 하면, 똑같은 사진을 다르다고 주장하는 등, 허다한 오류가 있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일진대 차라리 목련 꽃잎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쉬워 보인다. 더욱 한심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대학교수들이다. 단 한 번이라도 읽었더라면 수정 지시를 했을 내용의 논문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으로 통과시켜주었으니, 명문 사학(私學)의 이름이 아깝고 세계적인 대학은 강 건너 불이라고 해야 하리라. 대체 논문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 ?? 이것은 필시 없는 향기에 취해 공연한 희극의 제목. <련목구희(蓮木求熙)>.

 

        차라리 김국장 양희 박사여, 여성쥐와 남성쥐의 성차별을 연구했노라고 주장하여 한바탕의 웃음이라도 선사하시라. 실험쥐일지라도 고결한 위엄을 지켜주는 것은 생명에 대한 예의다. 그러매 서랑서녀(鼠郞鼠女)의 안락사에 관한 복지적 관점을 가졌다고 주장하시라. 그런 정도의 해학이라면 시민단체 또한 익살로 받아줄 아량이 없지 않다.

 

        아와 비아의 투쟁 또는 인정투쟁(認定鬪爭)이란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헤겔의 이론이다. 목숨 건 인정투쟁을 통과한 자만이 진정 자기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며, 마침내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최후 인정의 고결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몸과 자기 영혼을 증오하고 다른 몸과 다른 영혼을 갈망한다면 그것은 자기부정의 가련한 존재가 될 뿐이다. 김국장이여, 백목련을 백목련이라 하고 자목련을 자목련이라 하며, 표절을 표절이라 하고 대필은 대필이라 하시라. 그것이 자기인정의 고결한 지위에 오르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현세의 국장(局長)보다 더 값진 것이다.

 

        희(噫)라. 당자로 인하여 사회가 소란하니 자신을 던지는 지혜도 필요한 법.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는 사퇴(辭退)의 아름다운 자세는 길이 빛나고 그 지혜를 찬양하는 소리 충북 하늘에 높으리라. 옛 장주(莊周)는 죽음을 놓고서도 풍장을 치면서 기뻐했다는데 그것은 지혜로운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결연한 사퇴 후 귀거래사를 부르면서 무심강을 건너간들 무엇이 대수겠는가. 순결하고 고귀한 백목련처럼 양희 국장이여, 결연함을 보이시라.

 

        이 이전 속에서 투구를 거꾸로 쓴 이도 있다. 인사권 행사에 문제가 있음을 정당하게 지적한 것을 두고 ‘좌파의 억지’로 인식하는 꿈속을 헤매는 이가 있다. 그 성명 삼자는 오장세, 세상은 그를 일러 충북도의회 의장이라 한다. 불편부당하고 공명정대해야 할 의장이 가진 흑백논리의 이분법은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천인이 분노할 발언이다. 대저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가 좌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사태를 그 자체로 직지(直指)하며 상황을 그 자체로 인식하는 시민운동을 사상 공세로 비난하는 의장의 발화는 붉은 목련을 좌파 목련으로 매도하는 것과 같다. 의장이 이런 편파적인 세계관을 가졌을진대, 충북도의회의 공명정대함은 심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항간에는 충북 시민사회민중단체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 일로 충북 도민들에게 감정적 불편을 드리고 홍진(紅塵)을 불러 소란을 피운 점에 대해서 정중하게 사죄를 드린다. 아픈 자성과 고난의 반성과 일신우일신하는 자세로 정진 또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수한 조롱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의 노선을 걷는 것은 대의가 곧 목숨이고 명분이 곧 생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이익을 얻으려 함인가. 아니다. 홍곡 정우택 지사와 겨루고자 함인가. 아니다. 인간 김양희 씨를 미워하는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인가. 그도 아니다. 명예와 황금을 초개(草芥)같이 여김은 사회변혁운동가의 첫 번째 덕목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사회변혁운동가의 두 번째 덕목이다. 시민단체가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과는 반대의 길을 가야만 한다. 단지 이기고자 한다면 이판과 사판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별 뜻이 없고 다른 목적도 없다. 단지 옳기 때문에 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충북사회에 시민사회민중단체를 원한과 증오로 대하는 진희(珍稀)한 인사들이 있다는 것은 자목련 가지에서 백목련이 핀 것과 같다.

 

        김국장이여, 우리는 국장 못지않은 아픈 마음으로 사퇴(辭退)를 재차 권고한다. 양희국장이여, 꽃 비단 길 사뿐히 가시라 즈려 밟고. 우리는 알고 있다. 용솟음치는 분노와 솟구치는 원망의 감정이 일렁인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아득한 심사가 일천 줄기 목련 꽃비로 떨어져 쌓이고 있다는 것도. 봄에 비를 맞는 것도 슬픈 일이거늘, 화사한 달밤에 꽃잎을 밟는 것이 어찌 기쁜 일이겠는가.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목련은 빛나는 희생의 보석일지니 그 명예가 지방정부 국장보다 휘황히 빛나리라.

 

        희(喜)라. <2007년 충북>이라는 이름의 연극 막은 내리고 한바탕 꿈을 깬 우리는 다시 연희를 시작한다. 옛 봄밤에 달빛 아래 취했던[飛羽觴而醉月] 이백의 춘야연도 이보다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황홀한 마음을 가다듬어 나는 이렇게 쓴다. <어제 북풍의 눈꽃은 오늘 목련으로 피어, 지는 황혼 상당연에 꽃그늘로 일렁인다. 해금 명인의 산조(散調)는 신묘하여, 홍곡정 처마 끝에 어스름을 잫는다. 가인(佳人)의 노래 연못에 구르고, 흥취는 높아라 찰라같은 인생의 꿈. 소쩍새 달 부르는 소리 명랑하고, 그 달에 얹힌 꽃잎은 애연하다. 목련 꽃비 가뭇없이 비껴 날 때[木蓮雨澤斜飛塘], 그 꽃잎 술잔에 띄워 달빛까지 마신다. -끝-

 

 

*상당연(上黨淵) 문화당(文化塘) 홍곡정(鴻鵠停)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충북도청 뜰에 두개의 연못 상당연(上黨淵) 문화당(文化塘)과 홍곡정(鴻鵠停)이 있다고 전함

 

2007년 0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