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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청양 고운식물원 이주호 원장(한겨레신문 070605)

by 마리산인1324 2007. 6. 6.

 

<한겨레신문> 2007-06-04 오후 09:13:30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213909.html

 

 

45년간 어릴적 꿈 키우고 심었습니더
한겨레 권복기 기자 김경호 기자
» 충북 청양군의 고운식물원을 만든 이주호 원장은 자라는 세대에게 물려줄 자산의 하나로 식물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원장이 지난달 30일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식물원 안을 돌아보고 있다. 청양/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청양 고운식물원 이주호 원장

 

돈이 으뜸가치인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돈이 되고 안되고가 어떤 일을 할지 말지를 재는 가늠자가 됐다.

하지만 고운식물원 이주호 원장은 세상과 다른 잣대를 가진 드문 사람이다. 그가 충남 청양군 군량리에 만든 식물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돈이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청양은 경남 함안이 고향인 그에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객지다.

 

돈벌이는 고사하고 그는 1990년 땅을 사서 지금의 식물원을 꾸미는 데 그동안 번 돈을 거의 다 쏟아 부었다. 2003년 문을 열었으나 지금까지도 돈이 계속 들어간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 식물원은 그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자 자신을 낳고 길러 준 이 땅에 되돌려줄 수 있는 자신만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식물원을 통해 우리나라 야생화와 희귀 멸종 식물들을 보전하고 일반인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려 주고 있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지금도 조경 사업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털어넣고 있는 까닭이다.

 

전국 훑고 80여개국서 나무·풀·조각 사모아 동네 뒷산처럼
외국에서 희귀종 가져올땐 ‘현대판 문익점’ 노릇도
“힘들어도 식물원은 내가 이 땅에 살다간 흔적이 될낍니더”

 

» 청양 고운식물원 이주호 원장
수십년을 내다보고 그런 긴 세월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나무를 심는다. 식물원을 만드는 사람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45년 전이었다. 이주호(63) 고운식물원 원장이 식물원을 준비하기 시작한 때가. 충남 청양군 군량리에 자리한 식물원은 그의 머릿속에서 오랜 세월 곰삭아서인지 화려한 꽃과 나무가 많은 초입과 달리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동네 뒷산에 와 있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눈 밝은 이들은 이곳에 숨어 있는 갖가지 진기한 나무와 기화요초를 알아본다. 붓꽃원, 야생화원, 작약·모란원, 비비추원, 수국원 등 20여 개의 테마 공간은 하나하나가 발길을 떼놓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다. 빠른 걸음으로 대충 둘러보는 데만 1시간30분이 걸린다. 뿌리내린 식물에 눈길 한 번씩만 줘도 하루해가 짧다. 고운수목원에는 단풍, 무궁화, 소나무, 생강나무, 비비추, 은방울꽃, 제비꽃, 나리 등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와 풀이 많다. 히어리, 등칡, 미선나무, 구상나무, 백량금, 가시연꽃, 모데미풀, 광릉요강꽃, 갯취, 삼백초 등 희귀종이나 멸종 위기의 식물들도 만나볼 수도 있다.

 

이 원장은 식물원을 이야기할 때면 자식 자랑하는 부모처럼 얼굴이 환해진다. 식물원은 그의 어린 시절 꿈이었다. 경남 함안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주린 배를 채우려 산과 들을 쏘다니며 머루, 다래, 진달래꽃, 민들레꽃 들을 따 먹고 도라지와 더덕을 캐 먹으며 자랐다. 그러면서 언젠가 나무와 풀을 스스로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조경 사업을 하면서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현실 속에서 조금씩 키워 왔다. 마음에 드는 나무와 풀꽃을 모으고 조각 작품과 민속공예품도 사서 모았다. 사업차 전국을 다니면서 땅도 눈여겨봤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수도권은 땅값이 비쌌고, 환경도 좋지 않았다. 청양은 두 가지 모두 좋았다. 고향인 함안보다 조건이 훨씬 좋았다. 1990년 11만평을 사서 다음해 첫 삽을 떴다.

 

“돌산이어서 돌을 골라 내는 데만 17개월이 걸렸습니더. 토질이 좋지 않아 트럭 수천대분의 마사토나 사질토를 사다 부었습니다.”

 

2년 동안의 터닦기를 마치고 식물을 심기 시작했다. 부산 기장, 전남 나주, 구례, 충남 청양, 전북 정읍 등 그동안 빌린 땅에서 키우던 나무를 옮겨다 심었고 다른 나라 수목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필요한 수종을 사들였다. 다른 나라 식물원 견학도 많이 다녔다. 오대양 육대주의 80여 나라를 방문했다. 좋은 씨앗을 받으려고 우리나라 산은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백두산에도 8차례나 올랐다. 현대판 문익점 노릇도 했다.

 

“10년 전쯤 세계 3대 식물원 가운데 하나인 영국 왕실 식물원 큐 가든에서 향과 빛깔이 좋기로 이름난 노루오줌을 반쯤 캤을 때 관리자에게 들켰어요. 뿌리를 보려고 했다고 얼버무린 뒤 주위를 배회하다 다시 캐다가 다른 관리자에게 또 걸렸어요. 세 번 시도해서 간신히 캐 올 수 있었습니다. 식물원은 제대로 구경조차 못 했습니다.”

 

2003년 도쿄식물원에 갔다 우리나라에 없는 수국을 발견해 줄기를 잘라 올 때 안내원에게 들켰을 때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데 조직 분석에 필요하니 가져가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7년 전 백두산에서 매발톱을 캐 올 때도 관리원에게 들켜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몰래 캐 온 식물은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

 

식물원은 그렇게 점점 꼴을 갖춰 갔지만 가족들은 힘이 들었다. 지금은 함께 식물원을 가꾸고 있지만 아내 윤미선(59)씨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둘째 딸이 지금 프랑스에서 불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프랑스에 가는 줄도 몰랐어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더.” 이 원장은 지금도 조경 회사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식물원 운영비로 쏟아 붓고 있다. 직원 21명과 인부 30명으로 51명이 일하는 이 식물원은 관람객이 하루 평균 1500명이 넘어야 운영을 할 수 있다. 개원 첫해에 비해 5배나 늘었지만 아직도 하루 관람객은 800여명. 그나마 관람객이 는 것도 ‘자연스런 수목원’이라는 원칙을 조금 양보해 일부 지역에 화려한 꽃을 심고, 물놀이터, 동물원 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마뜩해하지 않지만 이병엽 상무와 지수진 과장이 모른 척 밀어붙인 일이다.

 

“힘들어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합니다. 꿈을 이루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꺼. 제가 이 땅에 살다 간 흔적이 이 식물원이 될 낍니다.” (041)943-6245. www.kohwun.or.kr

 

청양/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