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7-06-26 11:41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18247&ar_se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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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숨 좀 트겄네요. 여기 계신 분덜이 많이 도와주셨지만, 마을간사님이 없는 동안 마을휴게소 짓고, 운영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이제 마을간사님이 오셨으니깐 우리 힘차게 마을 한 번 살려 보자구요. 자, 건배!"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지만, 마을간사제가 운영된 이래 처음 마을간사 환영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뒤, 이젠 마을회관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노래방 기계를 안주삼아 본격적인 춤판을 벌인다. 고단한 농촌의 하루건만 자정이 돼서야 겨우 한바탕 잔치가 정돈됐다. 마을의 소중한 인연을 뜻깊게 맞이하고 싶은 마을주민들의 마음이다. 산초재배 등 공동사업으로 으뜸마을 가꾸기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와룡마을에 듬직한 마을간사 김종학(45)씨가 새로 부임했다. 올해 초부터 귀농을 준비하던 차에 마을간사제를 알게 되어 군청에 문의를 하였고, 마침 일하자는 제의를 받아 귀농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20여년간 제조업 분야에서 한길을 걸었던 전형적인 서울 사람의 변신이 궁금하다. 하지만 '도시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땅과 벗하며 귀농의 꿈을 실현'하는 데 마을간사만한 게 또 어디 있으랴. 가막리 살림꾼 곽중근 간사의 하루 국내 최초로 진안군청에서 시행중인 마을간사제는 이미 농촌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신선한 대안으로 알려진 사업이다. 마을 기반 조성에 핵심이랄 수 있는 지역 인재양성을 위해 지난 2006년부터 마을 개발사업이 활발한 12개 마을에 마을간사를 배치했다. 마을 활동을 도와줄 젊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필요성에 더해, 귀농자의 수많은 실패 사례를 참고삼아 지역 정착을 경제적으로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마을간사제 운영의 한 측면이다. 즉 농촌 마을과 도시민 귀농을 연계시켜 도농상생의 길을 모색한다는 발상이다. 바야흐로 한국 농촌사회의 새로운 희망, 마을가꾸기의 메카로 진안군이 언급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 사실 진안군 마을간사제는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난 마을간사를 단순 소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통해 마을간사의 의미를 좀 더 곱씹어 보고 싶었다. "더운데 어떠세요? 차라리 방앗다리에 난 고추들을 많이 따버리세요. 그리고 (고추밭에) 추가되는 면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정확히 작업일지를 기록해야 해요." 독서지도사를 하다 작년 진안읍 가막리에 정착한 마을간사 곽중근(51)씨. 방송대 농학과에서 공부하다 친환경농업에 관심이 생겨 흘러 흘러 진안군에 정착한 곽 간사의 하루는 여느 농민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셔츠 주머니에 삐죽이 나온 USB야말로 그의 하루를 담고 있는 상징이랄까. 지난해 곽 간사의 제안으로 가막리 몇 농가는 고추, 율무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해 가구당 500만원에서 1천만원 정도 소득을 올렸다고. 올해 면적을 좀 더 넓혀 마을 전체가 친환경 농업 단지로 인증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인증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작업은 모두 곽 간사의 몫. 제초제 대신 부직포를 고추밭에 깔았던 것은 곽 간사의 꿈인 친환경마을로 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이른 새벽. 곽 간사는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문자센터로 향한다. 작년 한해 바빠서 미뤄뒀던 밭일을 하기 위해서다. 곽 간사의 밭은 개인 소유가 아닌, 방문자 센터에 묵는 이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체험학습장. 다 자란 상추를 뽑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수박밭도 손질한다. 대학에서 공부했던 친환경농법을 말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직접 해보면서 마을주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원대한(?) 포부가 있기에 밭일은 즐거운 현장이다. 건너 마을에 있는 학교에 두 아들을 보내고 본격적인 간사 활동을 시작한다. 곽 간사는 오전까지 마을 소식지 원고를 최종 마무리해야 한다. 복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군청 마을만들기 팀에 복사를 부탁할 예정이다. 다른 마을 간사는 통통 튀는 기질을 살려 마을방송을 인터넷에 올린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지난 주 우연한 기회에 자매결연 맺었던 인터넷 카페 주인과 쪽지를 주고받았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픈 도시인들이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다. 카페에 마을의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글을 올려도 된다는 것과, 가끔 오프모임을 체험마을센터에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한 건 크게 올린 느낌이다. 오후엔 도농교류 가이드학교 강의를 듣기 위해 구례에 간다. 군청에서 마을 만들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구자인 박사가 공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워낙 강조한 탓에 처음엔 떠밀리듯 갔지만 이젠 마을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부라 생각하고 열심을 내고 있다. 저녁에는 으뜸마을추진위원회 정기 회의가 열린다. 안건은 산림청과 숲가꾸기 협약을 맺을 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간단하게나마 회의록을 준비하고 임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도 해야 한다. 와룡마을 신입 간사 환영회에 가서 동료 간사들과 오랜만에 한 잔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귀농에서 귀촌으로..."간사가 먼저 달라져야"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사업이지만, 그럼에도 발상의 참신함 때문인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마을간사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이미 절반 정도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자기 혼자를 위해 마을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요. 자기를 마을 사람으로 바꿔야 해요. 마을의 변화야 말로 가장 큰 보람이에요. 친환경마을로 만든다, 약 치지 말고 비료하지 마라, 해봤자 씨도 안 먹혀요. 참고 인내가 필요하지요. 같이 어울리면서 그분들이 하기 쉬운 일부터 바꾸는 거지요."
그래서 관록이 붙은 농부도 쉽지 않은 농사를 곧바로 시작하기 보다는 일단 텃밭 수준에서 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출발일 수 있다. 대신 농사와 연계된 각종 직업을 찾는 것은 어떨까. 생산된 것을 가공해서 상품화하는 역량을 발휘하거나, 방과후학교나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고, 산촌유학을 기획하거나 잡지편집 같은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자기 전문 분야를 마을에서 펼치는 것은 본인에게도 정착한 마을에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농업에 대한 전망을 잡기 힘들고, 문화생활에서 소외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교육 문제야말로 농촌을 빠져 나가게 만드는 핵심적인 문제예요." 가막리 곽 간사에게도 마을의 다양성이 되살아나는 것이 희망이다. 마을간사로서 자신의 소임이 어디에 가 닿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는 셈이다. 폐교된 마을 학교에 다시 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 마을 학교가 복원되는 것은 마을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를 다시 살린다는 건 실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를 위해 귀농한 사람들의 자원이 잘 공유되고 나눠질 필요가 있다. 안천면 노채마을 최대영(58) 간사의 경우, 기공체조 지도자의 경험을 살려 매일 저녁 마을회관에서 주민의 굳어진 몸을 돌보고 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 팀에서는 귀농인 자료를 모아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운영할 계획이라 한다. 서로의 재능이 마을 곳곳에 유통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말이다. 이미 마을간사협의회가 서로의 필요를 돌보며 재능을 나누는 구실을 충분히 하고 있지만 말이다. 마을간사제의 미래가 밝은 이유다. 마을간사, 공무원·시민운동의 미래?
전혀 반대로 대안적 시민운동은 또 어떨까. 선언에서 그치는 운동이 아니라 일상에 파고들어서 삶을 변화시키는 시민운동이 되어야 한다면 마을간사야말로 바람직한 미래의 시민운동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공무원이니 하는 생각보다는 마을주민이라는 생각이 필요해요. 다 농촌을 빠져 나가는 데, 들어오니깐 별난 사람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아요. 마을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을 낮추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길 밖에 없어요." 해석의 과잉이 이뤄진 걸까. '동네 김치를 다 자기 김치'처럼 받아먹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마을주민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는 곽 간사의 반론이지만, 새로운 직업, 운동이 태동하는 운명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온 느낌만큼은 지울 수 없다. "내가 짐작컨대 당신은 세상에서의 당신의 자격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 당신은 아주 적은 돈을 받고 나라에 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주식 중개소에서 수 천 루피를 벌지 모르지만, 우리의 목적에는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성실한 봉사가 그 자체의 보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소박한 환경 속에서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할 이상적인 노동자를 원한다."-<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간디 지음) '마을일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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