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②(데일리서프라이즈 060814)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데일리서프라이즈>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48415

 

 

“생활이 저항,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아나키스트”
[8.15 기획-아나키즘②]팔순의 아나키스트 김원식 “생활이 저항,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아나키스트”
입력 :2006-08-14 17:27:00   김세옥
▲ 지난 2005년 열린 3.20 반전평화집회의 풍경(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원식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2월1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었다. 날짜를 기억할 수 있는 까닭은 간단하다. 전 세계 민중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각국 정부들이 이라크 침공 및 파병을 계획하고 있던 그 해 1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3차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이들이 ‘국제적인 반전행동을 펼치자’고 결의한 날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 모두 다른 1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평화’라는 공통의 가치를 말하기 위해 모인 그날, ‘반전(反戰)’이 아닌 ‘비전(非戰)’이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있는 김원식 할아버지는 당시 다른 신문사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었던 기자의 눈을 끌었다.

구호만 색다른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조금은 달랐다.

해당 집회의 성격에 맞는 구호와 민중가요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부르는 (적확한 표현인진 모르겠지만) 흔한 풍경이 아니라, 히피적인 차림새에 큼지막한 알파벳 A를 동그라미 안에 써넣은 배지를 가방과 옷에 붙이고 통기타 연주에 맞춰 저마다의 평화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주변에 가득했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왜 ‘반전’이 아닌 ‘비전’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다르냐는 이어진 질문에 할아버지는 “반전은 전쟁의 존재를 전제한 것이지만 ‘비전’은 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구호”라고 대답했다.

저마다 평화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평화를 위한 전쟁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이에 저항하기 위해선 전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비전’이란 구호야말로 적극적인 반전을 의미한다는 얘기였다. ‘전쟁에 반대한다(Anti War)’와 ‘전쟁은 안된다(No War)’라는 말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설명은 머리 한 쪽을 울렸다.

궁금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할아버지와 주변의 사람들이 어디서(어느 단체를 통해) 이날 집회에 참여하게 됐는지. 할아버지 옆에 있던 한 청년이 대답을 거들었다. “우린 아나키스트(Anarchist)예요.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필요한 게 바로 아나키죠.”

세계화와 전쟁의 시대의 대안이 아나키? 좀 더 많은 얘기들이 궁금했지만, 혼자서 집회 전체를 취재해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더 이상의 질문을 잇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후 3년이 흘렀다. 2003년부터 매해 진행되는 3·20 국제반전행동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아나키즘(Anarchism)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떠오르곤 했지만 스스로 구체화시키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오던 가운데, 최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불공정함이 논란이 되면서 FTA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흐름에 반대하는 전 세계인의 목소리를 관심 있게 보면서 다시 한 번 아나키즘을 향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 계기가 생겼다.

외국의 반(反)세계화 움직임에 대한 글을 읽던 중 “시위대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인식하고 있진 못하지만, 그들이 바로 아나키스트다”라는 구절을 접하면서다. 해당 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할 유의미한 수단으로서 아나키즘을 꼽고 있었다. ‘왜 아나키즘이 대안일 수 있을까’란 질문이 다시금 생겨남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생활 속에서 이미 모두가 실천하고 있는 비폭력 저항, 의식적으로 해야

▲ 팔순의 아나키스트 김원식 할아버지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세옥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난 9일 오후 서울 역촌동에 위치한 할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아나키즘이 왜 현 시대의 대안일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 초간의 침묵 후, 할아버지가 되물었다. 그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나키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냐고.

취재를 오기 전 아나키즘에 대한 두어 권의 책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관련한 몇 가지 글을 읽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대답할 수 있는 녹록한 질문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대답은 자료를 읽으면서 ‘이들이 중요시 여기는 건 이런 게 아닐까’하고 막연히 추측하며 집약시켰던 내용이었다. 우물우물 쭈뼛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인정하되, 나의 자유를 위해 다른 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를 허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할아버지가 바로 되물었다. “그게 아나키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인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몇 가지 책과 자료를 읽으며 그런 게 아나키즘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기자가 말한 내용) 그게 바로 나의 아나키즘이다. 오늘 (기자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나, 김원식의 아나키즘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은 개인의 것으로 각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에는 하나가 더 붙어야 한다. 바로 ‘연대’다. 할아버지는 “아나키즘은 각자 다르면서도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를 허물기 위해 서로 연대를 하는데, 그 연대에는 위계가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물론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사회주의에도 위계가 있고, 자본가와 당의 엘리트 두 개의 체제로 세상을 지배하던 이들 사상은 사실상 똑같은 원리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말했다.

1923년에 태어나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 시절부터 좌익 활동을 하고, 남로당에 입당해 당 정치 지도원으로 전쟁을 경험하고, 1958년 사상범으로 체포돼 10년 동안 비전향 장기수로서 옥살이를 한 이가 하는 말이기에 무게가 남달랐다.

‘왜 아나키즘이 대안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할아버지가 떠올랐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옳다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신념’을 바꾸기가 이미 쉽지 않은 중년의 나이었던 그로 하여금 인식의 틀을 새로 짜도록 만든 아나키즘이 갖고 있는 답이 무엇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연대를 위해 조직을 갖출 필요는 없다고 했다. 또 이 연대의 방식은 ‘비폭력 직접행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비폭력 직접행동 방식은 무엇일까.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우리 모두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생활 자체가 비폭력 저항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우리 사회는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로 굴러간다고 하는데, 이번 (7·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만 봐도 20% 투표율에 10% 당선이다. 그럼 나머지 80%의 행위는 무엇인가. 안 찍는 것은 찬성한다는 의미라는 등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내가 볼 땐 ‘그간 50~60년 동안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를) 해봤는데 모두 다 도둑놈으로 결국 그 놈이 그 놈이더라, 그런데 무슨 투표냐’라는 게 80%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 자체를 (현 체제에 대한) 비폭력 저항으로 볼 수 있다.”

할아버지는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존재와 생활만으로도 벌이고 있는 이 같은 비폭력 저항을 좀 더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식적으로’란 말은 체제와 집단 그리고 국가가 아닌 척 하면서 저지르고 있는 폭력을 허물기 위해 또 다른 대항 체제나 집단, 국가를 만들라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의 아나키즘은 생활 속에서 국가적 폭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우르르 달려들어 그 폭력을 허문 뒤 ‘이제야 없어졌군’ 하면서 다시 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위에 저항하기 위한 체제를 만들어 또 다른 권위를 만들어 내지 않고, 그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씩 하나씩 개인의 자유를 지배하려 드는 권위를 허물고 나면, 언젠가는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를 허물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 두 번 잘 안됐다고 포기할 필욘 없다. 생활이 바로 저항이니까

세계의 논란의 중심엔 언제나 미국이 있다. 5년 전 발생한 9·11 테러를 응징하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은 미국이다.

그러나 CNN 등 최근의 외신은 “9·11 당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붕괴는 세계적 테러집단 알카에다의 소행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배후일 수 있다. 이 빌딩 붕괴의 직접 원인은 테러리스트들의 항공기 공격 테러가 아니라 건물 내부에 설치된 폭약 때문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무역센터가 조작된 폭약에 의해 붕괴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하며 미 정부가 9·11 테러를 용인함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미국은 자유와 평화를 앞세우며 2차 대전 이후에만 80여개 국가의 크고 작은 전쟁에 관여해왔고, 그로 인해 200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남미 등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反)세계화 운동의 규탄 대상 역시 미국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미군기지 평택이전과 한미 FTA 협상 체결에 대한 미국의 강요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현재를 사는 많은 이들이 미국을 이 시대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권위로 여기고 있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김원식 할아버지는 미국의 실상을 알리지 않는 교육과 그렇게 받은 교육에서 우수성을 발휘해 사회의 지식인층으로 편입한 사람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할아버지는 “(자유와 평화를 억누르며) 현재를 지배하는 체제에 봉사하면서 부당한 권위를 획득하고 먹고 사는 게 바로 인텔리(intellectual) 그룹”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FTA, 미군기지 이전 등 미국과 관련한 협상을 담당하는 정부 측 인사들을 향해 시민사회가 “철저히 미국식으로 교육받은 숭미주의자”라고 문제제기하는 것과 궤가 닿아 있는 말이다.

이렇듯 자유를 지배하는 권위를 뒤집는 사상에 아나키즘이 속해 있다고 볼 때, 그것이 왜 시대의 대안인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대답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권위에 반대하는 한 두 번의 행동이 설사 잘 되지 않아 언뜻 실패로 보일 지라도, 저항하는 것이 바로 생활이라면 그 자체가 권위를 허무는 기초가 될 수 있으며, 밑에서부터의 자유·자치의 길은 그 시간 동안 자연스레 닦일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날 3시간 여 동안 할아버지의 아나키즘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나키즘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탓으로 그 많은 얘기들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하나의 궁금증이 더 추가됐다.

할아버지의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처럼 생존 자체가 저항이며 운동이라면, 나와 남의 자유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역사가 나아가도록 만들어 나가는 생활이라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조적으로 내뱉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게 세상이지, 없는 놈이 참아야지 어쩌겠냐’ 등과 같이 억울하게 순응하는 법을 배운 상황에서 나오는 말들은 필요를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궁금증이다.“ ”

ⓒ 데일리서프라이즈 & dailyse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