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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③(데일리서프라이즈 060814)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데일리서프라이즈>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48442

 

 

박홍규 “아나키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다”
[8.15 기획-아나키즘③]]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
입력 :2006-08-14 17:31:00   이응탁
아나키즘(anarchism), 흔히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란 의미로 번역이 된다. 아울러 아나키즘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아나키스트(anarchist)는 보통의 사람들에겐 강권적 국가나 권력에 저항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낭만적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기도 한다.

들어봄직 하지만 생소한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 생활 속에서 아나키즘을 실천하고 있는 박홍규 영남대학교 교수에게 2006년 대한민국에서 아나키즘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그는 “국가주의나 산업주의에 젖어있는 한국사회에서 그에 대한 가장 큰 반발로서 아나키즘은 의미가 있다”며 “아나키즘이 절대적 사상으로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신장시킬 사상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손수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박홍규 교수. 그는 노동법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전공을 넘나드는 저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 등을 강조하며 아나키즘을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특히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위해선 작은 공동체 단위의 자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박 교수는 지난 2001년 뜻을 함께하는 교수들과 한국 아나키즘학회를 만들어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10일 오전 전화로 이뤄졌다.

“아나키즘, 국가에 대한 부정이 아닌 국가주의에 대한 반대”

▲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 ⓒ지유철닷컴 
‘아나키즘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박 교수는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딱 부러지게 ‘이거다’고 하기가 힘들다”고 답했다.

이어 “아나키즘이란 이름 아래 비슷한 생각이나 이념을 갖는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섞여서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아나키즘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적 이론, 이념 등의 방식으로 한 번도 구성돼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굳이 이를 간결히 설명하자면, ‘강권적 권력과 권위에 대해 저항하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 자치를 존중·강조하는’, ‘근대화, 산업화, 기계화,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정복이나 파괴를 반대하는 자연회귀적인 요소를 공통으로 갖는’ 사상” 이라고 짧지 않게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아나키즘하면 무정부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며 “정부와 국가를 부정하기 보다는 국가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자치, 자연을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개인적으로 아나키즘이 뭐라고 물으면 ‘자유, 자치, 자연’ 이 세 가지라고 답할 수 있다”며 “이를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빗대 ‘삼자주의’(三自主義)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나키즘은) 국가권위주의, 국가주의에 대한 반대”라고 덧붙이며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중앙집권적 정부,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강권적 권력과 권위”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국가나 정부가 중심이 돼 절대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나 개인의 자기결정권(자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나키즘의 입장”이라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가령 민주화란 이름으로 80,90년대 운동을 한 것도 절대적인 국가주의로 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가치를 찾자는 것이었다”며 “아나키즘은 좀 더 강한 개인의 가치나 존엄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가주의는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시대에 강고하게 된 것으로 이후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뿌리는 여전히 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라나라에서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면도 있어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훼손돼선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자치 공동체와 이를 아우르는 공동체 연대로서 국가”

박 교수는 아나키즘을 이야기하면서 특히나 ‘자치’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자치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치 공동체로, 개인의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과 관련해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자치 공동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국가나 민족 개념이 필요하지 않는지를 아나키즘이 고민하는 것 같다.”

그는 국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공동체의 연대로서 국가와 정부, ‘개인 - 공동체’ 위의 집산체, 연대체로서 국가를 규정했다.

▲ ⓒ지유철닷컴 

‘현재의 지방자치제가 아나키즘에서 말하는 자치를 얼마나 실현시키느냐’의 질문에 대해선 “결코 완전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방자치체가 자생적인 자기 가치를 창조하는 공동체라기보다는 국가 경영단위의 중소 단위 정도”라며 “아직까지 국가와 지방의 관계를 볼 때 결코 완전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일본과 비교해도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방자치는 고유한 색깔을 띠면서 공동결정으로 자기들의 삶을 모색하는 자치 공동체여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자치 공동체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많다고 말하며 “서양 사람들의 이론서를 읽고 이를 시골마을에 적용하는 것을 보니까, 추상적으론 되지만 실제 해보면 말이 안되는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안사안마다 자치를 어느정도 규모에서 하는 것이 적절한 지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직접적 회의를 통해 결정할 경우 100명 단위도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주민투표가 필요한 사안의 경우 몇 만 단위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자치 공동체에 대해 “적합한 실험을 해보고 해야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보건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문화공동체나 예술공동체 등이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한국사회에서 아나키즘의 의미는… “개인의 자유 신장”

“우리 사회는 너무도 국가주의나 산업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가장 큰 반발로서 아나키즘을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나는 아나키즘 자체에 대해 대단히 실용적인 입장이다. 아나키즘은 절대적 사상으로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신장시킬 사상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왜 아나키즘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같은 대답을 내놨다.

그러나 ‘아나키즘이 대안이냐’는 물음에는 “자유·자치의 신장, 자연주의나 생태주의와 같은 것이 아나키즘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며 반문했다.

박 교수는 이어 “아나키즘은 보편적 가치를 좀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사실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중복되는 것이 많다”면서 “아나키즘이 (대안으로써) 독창성이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등이 완전히 이뤄진다면 더 이상 아나키즘을 말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불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며 “사회의 잘못된 흐름, 물신주의, 산업주의, 권력주의 등 온갖 세습적 가치에 대해 거부하고 가라고 하신 것인데 이를 아나키즘과 연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나키스트의 기준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 … “나는 ‘반푼수’”

▲ ⓒ지유철닷컴 
박 교수에게 ‘당신은 아나키스트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박 교수는 “개인적으로 조금은 그런 실천을 한다”며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거나 직접 농사를 짓고 컴퓨터를 거의 쓰지 않는 것 등을 꼽았다.

그는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등도 제 판단에서는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한) 적정규모를 넘어선 것 같다”며 “딱 부러진 이론적 기준이 있어서 (이같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제 생각에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아나키즘의 실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무 탐욕스럽고 욕망적 삶에서는 아나키즘이 있을 수 없을 거 같다. 자가용을 쓰지 않는 것은 생태문제에 앞서 굉장이 욕망적인 무엇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차를 좁은 나라에서 타고 다닌다는 것이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대형 승용차를 탄다. 이런 것이 우리가 산업화 사회에서의 욕망의 분출을 보여주는 상징이 아닌가 한다. 핸드폰도 마찬가지고…….”

그는 “우리 생활의 욕망의 도가니 같은 모습이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소박함에서 보자면 싫은 것”이라며 “생활의 분잡함, 생활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본적으로 아나키즘에서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연주의라는 것도 결국 소박주의고, 단순주의”라고 덧붙였다.

“내가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할 때 기준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좀 전에 (‘당신은 아나키스트인가’란) 질문에 답변하기 힘든 이유는 내 자신이 공동체 마을 건설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 등 몇몇 실천적인 면에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자유학교를 만드는 모임을 구상하고 있는데,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없다. 반푼수다. 반쪽짜리 아나키스트다.”

그는 “아나키즘이나 아나키스트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행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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