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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새로운 아나키스트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수유+너머 연구실> 일본잡지읽기세미나팀  2004.11.22 23:53:52

http://www.transs.pe.kr/japan/

 

The_New_Anarchists.hwp

 

<현대사상> 2004년 5월(일본)

 

새로운 아나키스트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ver)

 

안도우 타케마사, 사회운동사/일본정치사상

쿠리와라 야스시, 아나키즘운동사/일본정치사상

                               

    지식인과 활동가 사이, 혁명의 이론가와 실천가 사이에 깊은 틈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생각하기란 어렵다. 저술가들은 오랜 기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사회운동을 향해서 포지션 페이퍼 같은 평론을 발표해 왔다. 지금 현실에서는 거대한 운동이 세계각지에서 출현하려하는 이 시기를, 그들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거나, 최악의 경우 그 현실을 경멸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단 2,3년 사이에 지구상의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역사의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변화시킨 '반 글로벌화 운동' 이라고 불리는 운동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중상(中傷)모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무지의 결과일 수도 있고, 운동에 적대적인 어떤 것이 명백한 『뉴욕타임즈』같은 정보의 원천에서부터 수집된 자료에 의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보적인 출판물 중에 쓰여진 것조차 대부분이 핵심을 비껴가고 있으며, 적어도 운동의 참가자가 현실의 운동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류학자로서, 주로 급진적으로 직접행동적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몇 가지의 오해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왜 주저하게 되는가를 말하자면 오랜 동안 자신을 급진파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유주의파였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해 사회정의를 추구하였지만, 자본이나 국가와 같은 지배적 제도의 존재에게 진지하게 도전한다라는 방법은 취하지 않았다. 혁명적 변화를 목도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다수조차 다음을 전면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급진적인 정치를 창출해 내는 에너지의 대부분이, 지금까지 대개는 버려져 사라져간 아나키즘의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것, 그리고 이 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필연적으로 아나키즘에 경의를 표하고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나키스트로서 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문맥에 있어서일까를 설명하는 것은 조금 핵심을 벗어난다1). 직접행동이라는 개념은 정부에 호소하여 그 행동을 수정하게 하는 정치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에 물리적으로 대항하여 대안을 구상한다고 하는 형태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리버테리안(Libertarian)의 전통에서 직접 생겨난 것이다. 아나키즘이란 그 운동의 중심이며, 그 정신이다. 즉 그것은 운동의 무언가 새로운 희망에 가득 찬 원천인 것이다. 다음에서 나는 그 운동에 관한 세 가지의 가장 자주 발생하는 오해를 밝혀 나갈 것이다. 그 오해란 우리가 '글로벌화' 라고 부르는 무엇과 대립하고 있다, 우리가 폭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수미일관한 이데올로기를 결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모든 관점을 조명하고 급진적인 지식인이 스스로의 이론적 실천의 재창조를 어떻게 생각해야할 것인가를 나를 제안할 것이다.


글로벌화 운동?


    '반 글로벌화 운동' 이라는 말은 미합중국의 미디어의 조어(造語)로서, 활동가들은 그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무언가에 반대하는 운동이라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자유주의란 일종의 시장원리주의 또는 시장 스탈린주의로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는 가능한 방향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 지도는 경제학자와 기업의 선전가 등의 엘리트들이 쥐고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여러 제도에 의해 담보된 전능한 권력이 떠맡겨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제도에는 약간 정도의 민주적 설명책임이 동반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부터는 그러한 권력은 주로 IMF나 WTO, NAFTA와 같은 선거가 없는 조약(條約)적 조직을 통해서 행사되어갈 것이다. 만일 여기가 아르헨티나나 에스토니아 혹은 대만이라면 솔직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신자유주의 운동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합중국에서는 어떤 말을 사용하는가가 항시 문제이다. 여기서는 미디어기업이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강한 결속(一枚岩)을 이루기 때문이다. 볼 수 있는 것 전부가 신자유주의다라는 것이 배후에 있는 현실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말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관련된 문제는 '자유무역'이나 '자유시장' 과 같은 선전어를 이용하여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국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곤란한 위치에 처해 있는 것을 염려하게 된다. 만약  N 워드(N[Neo liberalism] word-the N word)를 팸플릿이나 신문발표에 게재하면 경보 벨이 즉각 울려 퍼진다. 즉시 배제되어 교양 있는 엘리트로서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안적 표현을 만들어 내려는 여러 시도가 있어왔다. 우리는 '글로벌한 정의의 운동' 이다, 우리는 '기업의 글로벌화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등의 식으로 말이다. 특별히 훌륭하다거나 만족시키는 표현은 단 하나도 없다. 결과로서 여러 회의 중에 연설자들이 '글로벌화 운동' 과 반글로벌화 운동' 을 교차로 사용하는 것을 듣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화 운동' 이라는 용어는 현실에는 꽤나 적절하다. 만일 글로벌화라는 언어가 국경의 소멸, 사람과 재산과 사상의 자유로운 운동을 의미한다면, 그 운동자체가 글로벌화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는 집단의 다수, 특히 제일 급진적인 집단이 일반적으로는 IMF나 WTO보다 훨씬 더 글로벌화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예를 들면 1· 18이나 11· 30 과 같은 지구 규모의 행동일(行動日)을 (후자는 1999년 WTO시애틀회의에 대한 첫 항의의 목소리이다) 최초로 불러일으킨 것은 'People's Global Actions (이하 PGA)' 라고 불리는 국제 네트워크였다. 그리고 PGA 자신은 유명한 '인간다움을 위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륙간회의’(International Encounter for Humanity and Against Neoliberalism)에서 생겨났다. 이 회의는 1996년 8월에 우기의 치아파스의 무릎높이까지 오는 정글에서 발족되어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쓴 대로 '세계중의 온갖 저항에 의해' 시작되었다. 50개국 이상의 사람들은 ‘La Realidad’ 라는 사파티스타가 손에 넣은 마을로 몰려들었다. '대륙을 넘어서는 저항의 네트워크' 라는 비전은 제2 La Realidad 선언안에서 전개되었다. '우리는 여러 개별의 투쟁과 저항으로 이루어진 집합적인 네트워크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대륙을 초월한 네트워크를, 인간다움을 향한 저항의 대륙을 초월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것을 선언한다.'

 

 

․ 권력이 수행하는 전쟁에 저항하는 여러 목소리의 네트워크.

․ 인간다움을 위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뿐 아니라 투쟁하고 저항하는 여러 목소리의 네트워크.

․ 권력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죽음에 대항하는 다섯 대륙을 넘어선 네트워크2).


    선언이 밝히고 있는 것은 PGA가 '조직적 구조'가 아닌 어떠한 중심이 되는 지도자도 결정작성자도 없고, 어떠한 사령부도 계급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네트워크이다. 저항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 모두인 것이다.

 

    다음해 '이제 진절머리 난다!'(Ya Basta!) 그룹인 유럽에서의 사파티스타 지지자들은 스페인에서 2번째 대륙간 회의를 조직했다. 네트워크 프로세스라는 발상은 거기서 제출된 것이다. PGA는 1998년 2월 제노바회의에서 생겨났다. 당초 그것은 스페인과 영국과 독일의 아나키스트 집단이나 급진적인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이하의 여러 조직들을 포함했다. 인도의 간디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적인 농민연맹인 KRRS[Karnataka State Farmer's Association], 인도네시아나 스리랑카의 어민연합체, 아르헨티나 교원조합,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에콰도르의 쿠나인과 같은 원주민 그룹,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민운동' 중남미의 도망 노예에 의해 설립된 커뮤니티의 네트워크, 그 밖의 여러 조직. 인터넷으로 대체되기 이전까지 PGA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으로서 기능한 캐나다 우편노조, CLAC[Anti-Capitalist Convergence] 라고 불리는 몬트리올 아나키스트 그룹을 제하면, 장기간 북미가 언급된 적은 거의 없었다.

 

    운동의 기원이 국제적이라면 그 요구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이태리의 Ya Basta! 그룹의 세 가지 강령은 '기본적인 수입'의 보편적 보증, 글로벌한 시민권,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그것은 실질적으로는 보호주의의 잠행적 형태인 특허권에 극도적인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다)를 요구하고 있다. 그 국경을 넘은 네트워크는 '비합법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를 슬로건으로 걸고, 폴란드와 독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경위에, 시칠리아 섬에, 스페인의 탈리파 갑(岬)에 독창적인 저항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걸쳐 캠프장이나 실험장을 조직해 왔다. 활동가들은 국경 경비원으로 분장하고 오델강에 보트로 만든 다리를 만들었고, 클래식 풀(full) 오케스트라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봉쇄하고, 이민자의 국외추방에 저항했다(피추방자들이 루프트한자 항공과 KLM 네덜란드 항공의 비행 중에 질식사한 것을 항의했다). 이 여름캠프는 쉔겐 정보시스템(the Schengen Information System)인 스트라스브르그에 대항하여 계획되었다. 그 시스템이란 유럽 안에 속한 몇 만에 달하는 공항터미널에 관한 조사와 관리 데이터베이스이며 이민자와 활동가등 관리자들이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 대상이 되었다.

 

    점점 더 많은 활동가들은 다음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고 있다. 그것은‘글로벌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비전이 자본과 상품의 움직임에 상당부분 제한당하고 있다는 사실, 현실에서는 사람과 정보와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항하는 장벽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중국의 국경 경비원의 규모는 NAFTA의 조인 이래 거의 세배로 확대되었다. 만일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을 빈곤층으로 밀어 넣는 것이 효과적으로 불가능하다면 NIKE나 GAP이 원정 생산을 해야 할 동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면 모든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해체될 것이다. 현대세계의 '주권' 쇠퇴에 대해 논할 때에는, 이것 역시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前) 세기의 국민국가에 의한 중심적인 성과는 세계 가운데에 엄격히 감시당하는 장벽의 균일한 격자를 설치한 것이다. 이러한 관리의 국제 시스템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싸우고 있는 대상이다.

 

    이러한 연접, 즉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국가의 탄압 메커니즘(경찰, 감옥, 군사화)이라는 광범위한 연결은 우리 자신이 국가에 의한 억압의 누진적인 증가에 직면함에 따라, 그 분절 속에서 점점 눈에 띄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경은 프라하에서의, 더 후에 니스에서의 IMF회의 중에 유럽에서 주요한 문제가 되었다. 2001년 여름 퀘벡 시에서 치뤄진 FTAA[미주무역지역]수뇌회의(summit)에서 이전에는 (적어도 백인에게 있어서는)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양 보여진 선이 돌연 글로벌시민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에 의해 청원권 요구운동에 대항하는 요새로 바뀌었다. 그 안에서 연회를 하는 국가의 수뇌들을 민중과의 접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퀘벡 중심에 세워진 3km의‘벽’은, 인간다움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가 현실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리키는 최적의 상징이 되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철사로 만든 칼과 뭉쳐진 갈고리가 설치된 검은 벽(Black Block), 그 벽을 철강노동자를 위시하여 모호크족의 전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파괴하는 광경은 운동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념비의 하나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과 초기의 인터네셔널리즘과는 놀랄 만큼 대조적이다. 이전에는 대체로 서양의 조직모델을 세계의 다른 부분에 수출하고 끝났다. 이 점에 관해 말하자면, 흐름은 오히려 역이다. 대중적인 비폭력 시민적 불복종을 포함하여 카피된 운동 기술의 많은 부분, 아마 거의 대부분은 글로벌세계의 ‘남’쪽에서 최초로 발전했다. 넒은 시야에서 보면 아마 이것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일일 것이다.


억만장자와 어릿광대


    미디어 기업에 있어서는 대규모의 행위가 일어나면 언제나 '폭력적'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주문처럼 반복되어 주창되어 왔다. '폭력적 항의' '폭력적 충돌' '경찰은 폭력적인 항의자의 본거지를 진압했다' 더욱더 나아가 '폭동'이라는 용어조차도 이용된다(다른 용어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것을 간단한 영어로 묘사해보자. 페인트탄을 던지고 빈 가게의 창문을 파괴하고 교차로를 봉쇄하려고 손을 잡고 있는 민중. 그리고 그들을 봉으로 내리치는 경관. 이렇듯 실로 폭력적인 집단은 경찰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을 때 위에 서술된 용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합중국 미디어는 아마도 이에 있어서 가장 심한 범죄자이다. 직접행동이 전투적이 되기 시작하고 2년이 된 지금에도 합중국의 활동가가 누군가에게 신체적인 상처를 입혔다라는 사례를 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중국 미디어는 이런 식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권력자를 가장 곤란스럽게 하는 것이 운동이 휘두르는 ‘폭력’이 아니라 이에 대한 상대적인 결여라는 것이다. 정부기관은 무장저항이라는 익숙한 형태로 빠져들 것을 거부하는 듯한 혁명운동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를 전혀 모른다.

 

    [운동에 있어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노력을 하고자 하는 것이 항상 자각되고 있다. 한때 표지에 따라 행진하는 것을 대신할 유일의 선택지는 간디적인 비폭력 시민적 불복종이거나, 철저한 폭동이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되어 왔다. 현재‘직접행동네트워크’(Direct Action Network)나 '거리를 돌려받자'(Reclaim the Streets) ' 블랙 블락스' (Black Blocs) '흰 작업복' (Tute Bianche) 과 같은 여러 집단은 모두 독자적인 방법으로 그 안에 전혀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그러한 여러 집단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민적 불복종의 '새로운 언어' 라고 부르는 것을 발명하여 Street Theater나 Street Festival, 그리고 비폭력전쟁이라고 밖에 부를 길이 없는 행위의 여러 요소를 조합하려고 한다.‘블랙 블락스'와 같은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사용된 비폭력 전쟁은,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를 피한다는 의미에서 비폭력인 것이다. 예를 들면‘Ya Basta!’는 흰 작업복을 입는다는 전술로도 유명하다. 타이어 튜브로 만든 고무 사슬과 고무로 제작된 귀여운 튜브들, 헬멧이나 내약품성의 흰 점프 수트까지 정성들인 의상으로 치장한 남녀(영국에서는 '흰 작업복' 은 Wombles 로 불려진다). 조롱하는 듯한 복장을 한 군대가 부상과 체포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면서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려고 하는 때, 그 골계스런 복장은 인간을 만화의 캐릭터, 즉 볼품없고 다루기 힘들고 바보 같지만 불멸의 존재와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치장한 사람들이 풍선이나 물총으로 경찰을 공격할 때, 혹은 프라하나 다른 장소의‘Pink Bloc’처럼 요정같이 치장하고 깃털로 만든 총채로 경찰을 간지럽힐 때 그 효과는 더욱 강해진다.

 

    미국의 당 대회에 있어서 부시 혹은 고어를 위한 억만장자들이 장난스럽게 예술적으로 진부한 소재를 사용한 턱시도나 이브닝드레스를 몸에 걸치고 경찰의 포켓에 가짜 돈다발을 찔러 넣는 연출을 했다. 이로서 그들은 경관이 이의를 주창하는 자들을 억눌러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그 누구도 한치의 마음의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아마도 경관은 턱시도 차림의 누군가를 때려눕히는 것에 대한 혐기요법을 제공받고 있을 것이다.‘혁명적 아나키스트 어릿광대 모임(The Revolutionary Anarchist Clown Bloc)'은 좌석의 높은 자전거를 타고 무지개색의 가발을 쓰고 기-기- 소리가 나는 작은 망치를 들고 서로를 (혹은 억만장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경관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들의 콜은 눈에 띄는 표적이었다. '민주주의? 그런 거 엿 먹어' ' 단결한 피자는 지지 않아' (단결한 민중은 지지 않아의 패러디) '헤이호, 헤이호. 하하, 히-히-'! 라는 구호가 '콜을 넘겨! 반응을 해주지! 콜을 넘겨!' 라든지 모두가 맘에 들어 하는 '세 글자자리 콜을 넘겨! 세 글자 자리 콜을 넘겨! 반응 해 줄께!' 등의 목소리와 함께 외쳐졌다.

 

    퀘벡시에서는 중세의 기병대를 따라 작성된 거대한 활〔'창조적 아나크로니즘 협회' (the Society for Creative Anachronism) 좌파 간부집회로부터 수조를 받아 작성된〕로부터, FTAA 회장에게 부드러운 장난감들이 쏘아졌다. 비폭력이긴 하지만 비상으로 전투적인 충돌 형태를 취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고대의 전쟁기술을 학습했다. 퀘벡시에는 방패를 든 병사나 장갑보병이 있었다(전자는 주로 아이슬랜드의 에드워드 왕자에서 유래했고, 후자는 몬트리올에서 유래했다). 그 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어 로마 양식의 방벽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 방벽은 예술적인 표현형식이 되었다. 만일 교차로를 횡단하는 듯한 거대한 뜨개질의 거미줄을 만들면 그 교차로는 정말로 횡단 불가능해 질 것이다. 오토바이를 탄 경관은 파리처럼 걸려든다. 팔을 넓게 펼친 '해방인형(거대한 인형)'은 사차선 도로를 봉쇄할 수도 있고, 동시에 Snake Dance는 자동차 봉쇄의 한 형식이 될 수도 있다. 런던에서 열린 지난번의 메이데이에서, 홈리스를 위해 메페아(영국의 고급주택가의 호텔)를 점령했고 옥스포드가의 센츄리(도요타의 고급차)를 팔아서 게릴라적으로 Gardening을 하는 'Monopoly Board Action' 이 계획되었지만 여기서 반역자들은 삼엄한 단속과 폭우에 의해 약간만 방해 당했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전투적인 활동가('지구해방전선'[the Earth Liberation Front]와 같은 환경운동과격파)조차도 사람에 (더는 동물까지도) 위해를 가하는 듯한 일은 철저히 피했다. 이렇듯 [운동에 있어서] 전통적인 여러 범주가 후퇴했음에도, 체제는 힘을 동시키고 사물을 익숙한 범주(단순한 폭력)로 기를 쓰고 돌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제노바에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체제는 여러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행사할 구실로서 파시스트 무뢰한들에게 폭동을 일으키도록 조작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형태의 기원은 1960년대의 이피(히피보다 정치색이 농후한 반체제 젊은이들), 이탈리아의 메트로폴리탄 인디안 묘기나 게릴라 씨어터, 7, 80년대의 독일, 이탈리아의 스크워터 투쟁, 나리타 공항 확장에 반대하는 농민의 투쟁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원은 사파티스타나 다른 남쪽 지역의 운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로 대표되어 온 것은 비폭력적인 시민적 저항에의 권리를 끊임없이 부정해온 민중이 그러한 권리를 손에 넣으려는 시도, 즉 신자유주의의 허세와 그 겉보기의 주장을 민주화하려는 호소, 권력을 '시민사회'에 따르게 하려는 시도이다. 사파티스타의 사령관이 기술하듯, 그것은 더 이상 군대이기를 바라지 않는 군대이다(적어도 이 오년간 그들은 진짜 총을 소유한 적조차 없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마르코스는 게릴라전이라는 일반적인 전술에서의 전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민중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거나 혹은 우리들과 함께 싸우려하거나 하는 둘 중의 하나일거라고 우리들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중은 이러한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수천 명, 수만 명, 수백만 명의 모든 민중은 우리와 함께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소멸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대화를 할 것을 원했다. 이 일은 우리의 계획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사파티스모'나 '네오 사파티스모' 를 정의 내리려는 움직임을 종결시켰다.3)

 

 

    지금 EZLN은 멕시코 군사기지로의 '침입'을 조직하려는 군대이다. 군사기지 안에 수백의 반역자들이 밀고 들어가 완전 비무장의 상태에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주둔병들에게 창피를 주려는 것이다. 이처럼 '토지 없는 농민의 운동'의 대중행동도 미(未)사용 토지를 비폭력적으로 재점령한다는 방법으로 브라질에 있어서의 광범위한 도덕적 권위를 획득하고 있다. 어느 쪽 사례에서도 명백한 일이지만, 만약 20년 전에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도를 했었다면 그들은 총살당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아나키와 평화


    그 기원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도 이들 새로운 전술은, 운동에 포함되어 있는 아나키즘의 보편적 착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아나키즘적인 착상이란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비정당화 시키고, 해체시키는 일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국가권력으로부터 더욱 광범위한 자율적 공간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평화가 일반화된 분위기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 평화의 분위기야말로 지금 실로 투쟁 속에서 궁극적으로 내기되어지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그 점이 21세기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것이다. 우리들은 맑스주의자 정당이 급속하게 개량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로 변해버렸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아나키즘, 아나코 생디칼리즘이 혁명적 좌파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 내야한다.[하지만] 실제로는 제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상황은 일변했다. 우리들이 언제나 말하듯, 볼셰비키의 성공은 스페인에서의 빛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아나키즘의 쇠퇴를 초래했고, 공산주의를 전면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이것과는 다른 관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19세기 후반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업국간의 전쟁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마음속 깊이 믿고 있었다. 식민지적인 확장은 늘상 있어왔지만 프랑스 혹은 영국 본토에서의 전쟁이 생각되지 않는 것은 오늘날과 동일했다. 1900년대까지 여권(passport)의 사용조차 오래된 만행이라고 여겨졌다. 대조적으로 '짧은 20세기'는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폭력적이었고 세계전쟁을 하거나 혹은 그 준비를 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거대한 살인기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정치적 유효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을 때에는, 아나키즘은 급속하게 비현실적이 되어가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점이 제시해주는 것은, 정의상 아나키스트는 살인기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결코 우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 능력이 상당히 긴 맑스주의자 정당이, 아나키스트와 비교해 볼 때 현저히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듯 생각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결되고 공업국간의 전쟁이 다시 생각될 수 없는 것으로 된 시점에, 아나키즘도 역시 19세기 말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좌익의 바로 중심에 위치하는 국제운동으로서 재출현한 것이다.

 

    만일 이것이 맞다면 현재의 '반테러리스트' 동원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도박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해 진다. 단기적으로 보면 일이 상당히 중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9 ․ 11’이전에 우리들이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공중에게 납득시키려는 수단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여러 정부들은, 지금은 자신들이 백지위임장을 수여받은 듯 느끼고 있다. 수많은 선량한 민중이 지금도 혹독한 억압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20세기와 같은 레벨의 폭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선 있을 수 없다. ‘9 ․ 11’의 공격은 명백히 일종의 우연으로 달성되었다(역사적으로 최초로 실행된 어림짐작으로 일어난 대대적인 테러리스트의 계획). 핵병기의 보급에 의해서 지구상에는 점점 더 광범위한 지역이 실제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전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금지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만약 국가의 건전한 상태가 전쟁이라고 한다면, 아나키스트형 조직화의 전망은 호전되는 쪽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실천


    글로벌화 운동에 대한 진보적인 출판물의 여러 비판은, 운동이 전술적으로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중심적인 테마와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결여하고 있다라는 비판이다(이것은 앞서 기술한 미디어기업의 주장과도 동일하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는 전혀 무관계한 일련의 주장--무미아의 해석, 책임과 의무의 소멸, 오래된 삼림의 보호--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어리석은 어린이들일 뿐이다). 또 한 가지 공격은 여러 형태의 구조나 조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운동이 병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라는 것이다. 비통한 것은 시애틀로부터 2년이나 지나서 내가 이런 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글로벌화 운동은 특히 북미에서는 민주주의를 재발명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조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조직형태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조직형태 그 자체가 그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국가와 정당, 기업과 같은 탑다운(top-down)형 구조를 대신하여 수평적 네트워크를 창조하고 성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는 탈중심화된 비계층적인 합의민주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글로벌화 운동은 합의민주주의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그 운동은 궁극적으로 일상생활 전체를 재발명하도록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급진주의의 여러 형태와 다르며 운동은 우선 무엇보다도 정치적 영역 안에서 자기를 조직화한다. 라는 것은 이 정치적 영역이야말로(자신들의 거대한 무기를 경제로 이전하였다) 권력자에 의해 널리 방기되어온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십년이상 북미의 활동가들은 집단자체의 내적인 프로세스를 재발명하는 것에 막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쏟아왔다. 이것에 의해 직접민주주의가 실제로 기능하는 것의 가능한 모델을 창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특히 서구적인 전통의 외부에서 예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예들은 다수결보다는 오히려 합의를 견출하는 어떠한 프로세스에 의거하고 있다. 결과로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조직수단이 점점 빈번하게 이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대표자회의(spokescouncils), 유연집단(affinity groups), 촉진수단(facilitation tools), 탈주(break outs), 어항(fish bowls), 관심의 블록(blocking concerns), 방관자(vibe-watchers)이다. 이들 전부가 민주적인 프로세스의 형태를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민주적인 프로세스란 반대 의사를 눌러버리지 않고, 지도적인 입장을 만들어내지 않고, 혹은 자유로운 동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이니셔티브를 고양시키며, 최대한 유효한 연대를 획득하려는 프로세스인 것이다.

 

    컨센서스 프로세스의 기본적인 이념은, 투표보다는 오히려 여러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적어도 거부당하지 않을 듯한) 제안을 가지고 모인다는데에 있다. 우선 제안을 행하고 그로부터 '여러 관심사'를 묻고, 그것들에 착수하려 한다. 그룹 내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관점에 입각해 제안의 원안을 추가하기 위한 '우호적 수정'을 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안의 변경을 행한다. 이로써 여러 가지 관심사에 제대로 착수하고 있다는 것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종으로 콘센서스를 구할 때 누가 'Blocking' 하고 있는지 '방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어떤가를 묻는다. 방관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이 행위에 참가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그 행위를 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는 없다'라고. 방해한다는 것은 ' 이 행위는 그룹의 기본원리를 깨뜨리고 그 존재 목적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방해는 거부권으로서 기능한다. 즉 어떤 사람이라도 블록킹하는 것을 통해 완전하게 제안을 부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블록킹이 정말 이치에 적합한 행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른 종류의 집단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대표자회의는 작은 '유연그룹' 간의 조정을 행하는 큰 집회이다. 대표자회의는 시애틀이나 퀘벡과 같은 대규모의 직접행동 전(前)이나 그 사이에 자주 열린다. 각각의 유연집단(네 명에서 스무 명 사이 정도)은 ‘대표자’를 선발한다. 그리고 그 대표자가 좀 더 큰 집단 안에서 각각의 집단을 위한 의견을 말할 권한을 부여 받는다. 대표자만이 회의에서 컨센서스를 도출하는 실제의 프로세스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 전에는 그들은 다시금 유연집단으로 탈주(break out)한다. 그리고 각자의 집단은 대표자가 어떤 입장을 취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다(이것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또한 탈주는 대규모 집회가 소규모의 집회로 분열되는 때에 일어난다. 소규모의 집회에서는 결정 작성이나 제안의 보편화가 초점에 놓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과 제안은 집회가 다시 소집될 때 집단전체 앞에서 승인을 구하고 제시되는 것이다. 만일 사태가 늪에 빠진 듯한 생각이 들면 문제 해결을 위하여 혹은 사태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촉진수단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브레인스토밍 부문을 요청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단지 의견을 진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안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거수, 즉 구속력이 없는 사전의견조사를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항(Fish Bowls)은 의견의 심각한 차이가 존재할 때 이용된다. 예를 들면 각각의 편에서 남성 한명 여성 한명의 두 명씩 대표를 선발하여, 한 가운데 그 넷을 앉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그 주위를 둘러선다. 그리고는 네 명이 집단 전체의 제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통합, 타협을 함께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까의 여부를 모두가 함께 판단하는 것이다.

 

구상하는 정치

 

    다수의 시도는 진전도중에 있다. 민주주의 문화, 그것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창출해 내려는 것은 괴롭고 동시에 평탄하지 않는 작업이며, 비틀거림과 출발(start)에서의 실패를 부득이 하게 겪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길가에서 우리와 대면한 대부분의 경관(警官)이 증명하듯,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는 놀랄 만큼 효과적이다. 그러한 행동에 진지하게 참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크게 변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한순간이어도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아마도 '직접행동네트워크'와 같은 여러 조직들을 생각할 때는 그들을 분파주의적인 맑스주의자, 나아가 분파주의적인 아나키스트집단과는 정 반대 것으로 보는 것이 알맞다.4) 집권적인 민주주의 ‘정당’은 완성된 올바른 분석을 할 것을 강조하고, 이데올로기적인 균일성을 요구하며 현재의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조직형태 아래에서 평등주의적인 미래의 비젼을 나열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이러한 여러 조직들은 열린 형태로 다양성을 탐구한다. 논의에서는 항시 특정행동의 방침에 초점이 맞춰진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타인을 자신의 견해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토는 이것이다. '당신이 지금 아나키스트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의 장기적인 비전은 당신 자신의 문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한 원칙이 실제로는 얼마나 멀리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인가, 그 원칙에 기반한 복잡한 사회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상의 것을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이렇듯 아나키스트들의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것은, 그들의 실천의 기초가 되는 반권위주의 원칙이다. 그리고 그들의 더욱 명시적 원칙 중 한 가지는, 반권위주의적으로 끊임없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직접행동네트워크가 소외에 관해서 제기하는 여러 문제, 그것이 정치적 실천에 미치는 광범위한 의미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혁명적인 정치기반이 따로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 조차, 그 프로젝트에 가장 찬동적인 집단이 예술가, 음악가, 작가, 그 밖의 소외 없는 생산 형태와 관련된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 혹은 집합적인 형태로서 우선 사물을 상상하고 그 다음으로 그것을 만들어 낸다는 현실의 경험과, 대안적인 사회, 아울러 창조성이 소외당하지 않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를 묘사하려는 능력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혁명적인 제휴가 의거하고 있는 곳은 사회의 가장 소외되지 않는 사람들과, 가장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동맹이라고 제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혁명은 이러한 두개의 범주가 가장 널리 중첩될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어도 다음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은 거의 언제나 소작농과 직인, 더 말하자면 새롭게 프롤레타리아화된 소작농과 직인들이고, 몇 세대에 걸쳐 임금노동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토착 민중의 투쟁이 새로운 운동 속에서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경향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억압당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로컬한 저항이나 반란만이 아니라, 글로벌한 제휴 속에서 소작농과 직인을 포함하는 것이 가능해진 지금에서야 그들이 글로벌화 운동을 자극하는 역할을 필연적으로 맡게 되는 것이다. 

 

-------------------<원문>

<New Left Review> 13, January-February 2002

http://newleftreview.org/II/13/david-graeber-the-new-anarchists

 

David Graeber-The New Anarchists. NLR24704.pdf

 

 The New Anarchists

 

Is the ‘anti-globalization movement’ anything of the kind? Active resistance is true globalization, David Graeber maintains, and its repertoire of forms is currently coming from the arsenal of a reinvented anarchism.

 

David Graeber

 

David Graeber-The New Anarchists. NLR2470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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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_New_Anarchists.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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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raeber-The New Anarchists. NLR2470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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