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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반 세계화 운동에 있어서의 아나키즘 /타나까 히까루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수유+너머 연구실> 일본잡지읽기세미나팀

http://www.transs.pe.kr/japan/

 

현대사상 2004년 5월호(일본)

 

 

반 세계화 운동에 있어서의 아나키즘

- ‘진정한 세계화’를 모색하는 아나키스트들에 부쳐 -


타나까 히까루(田中ひかる. 사회사상사)


들어가며


반 세계화 운동 속에서 활동하는 아나키스트들의 견해, 무엇보다도 그들이 ‘아나키즘’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주된 분석 대상은 ‘가장 래디컬한’ 반 세계화 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을 ‘아나키스트’라 규정하고, 그들의 주장을 ‘아나키즘’이라고 일률적으로 부르고 스스로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예일 대학 조교수(인류학) D. 그레이버와 A. 그루버칙의 견해다. 그레이버의 논문은 이미 일본에서 간략한 요약으로 소개되어 있는데,1) 나는 그 이외의 자료까지 포함하여 그레이버 그룹의 견해를 드러내고자 한다(이 이후 괄호 안 쪽수만 표기할 경우 그레이버의 논문에 관한 주(注)다). 한편 이를 위해 본고의 대상이 미국의 아나키즘에 한정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우선 그레이버의 주장에 나타나는 특징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신아나키스트」를 구세대의 당파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secterian) 아나키스트 및 반문명 기치를 내건 원시주의자(primitivist)와 구별한다. 2. 운동의 반권위주의적인 원리, 바로 그곳에 아나키즘 이데올로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3. 조직 등 ‘자율적 영역’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새로운 사회 모델의 구축을 모색하는 것을 중시한다. 4. 이상의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아나키스트’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이나 운동 형태에서 ‘아나키즘’을 발견한다.

 

결국 그레이버 그룹은 아나키스트라 불리건 말건 자신들이 정의하는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에 합치되는 사람들을 ‘아나키스트’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나는 지금까지 ‘아나키’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그 결과 ‘아나키스트’를 자칭하기에 이른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명명되고 또한 주장된 사상을 ‘아나키즘’이라 규정하고 대상을 좁히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척시켜왔다.2) 나와 그레이버 그룹의 이와 같은 개념 규정의 차이는 운동 밖에 있으면서 여전히 역사연구에 종사하는 나와, 운동 내부에 있는 그들과의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라는 개념을 주체적으로 규정하고, 거기서부터 세계를 내다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려는 그들의 사고에는 공감하는 점이 있다. 왜냐면 나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라는 관계가 인간사회에 있는 한,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나키즘은 아직 유효한 사상이라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상정한 아나키즘이란 가장 넒은 의미에서는 이런 것이다. 모든 ‘권력관계’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아나키즘 특유의 불신감’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싶다고 갈망하는 모든 인간’에 불신감을 품고, 그와 동시에 ‘전인류의 평등, 자유, 그리고 제 권리의 실현이라는 원칙에 바탕을 두면서, 인간관계에 관한, 새로운 방향성의 전개를 모색하고 있는’ 사상과 운동이다.3) 이하에서는 우선 그레이버 그룹의 주장을 분석하는 전제로서, 아니키, 아나키스트,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정의해두자.


(1) 아나키, 아나키스트, 아나키즘

 

오늘날 반 세계화 운동에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신문 등에 보도되고 있는데,4) 자칭 아나키스트들의 목소리는 일부 미디어를 제외하면,5) 일본에서 보도되는 일이 없을뿐더러 그들이 왜 아나키스트라 자처하는지 등은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무정부 상태’라는 말을 정치적 혼란이란 의미에서만 사용하는 그런 일부 미디어를 두고,6) 아나키스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일본만이 아니라 독일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다. 이름이 알려진 신문 지상에서 현재 이라크에서의 상황이 ‘아나르히-Anarchie'라 불릴 때면 동시에 ‘카오스’, ‘무법상태’ 등으로 형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나키스트 계열의 잡지 ꡔ풀뿌리 혁명 Graswurzelrevolutionꡕ의 편집자 B. 드뤼케는 이 기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라크에서 ‘혼란이나 비인간적 상황’을 야기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국가에 의한 테러’, ‘군대와 전쟁’, ‘국가의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폭력’이다. 아나키라는 말은 이런 사태와는 하등 관계가 없고 본래는 그리스어에서 ‘무지배 ohne Herschaft’를 의미하는 말이다, 라고 한다.7) 이상과 같은 반론은 다음에 거론할 아나키스트에 의한 전통적인 주장과 거의 합치한다. 1884년 독일 출신의 아나키스트 요한 모스트(1846-1906)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원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상당한 전개가 이뤄지고 있고 전투적인 프롤레타리아트 중에서도 진보적인 인사가 있는 노동운동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활동을 표현하는 데에, 사회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나 넓고 불명확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나키즘 Anarchismus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 완전히 우둔한 자들, 결국 너무나 고뇌가 적은 자들은 이 외국어(아나키즘)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아나키즘’이란 무지배 Nichth Herschaft 혹은 지배의 결여 Herschaftslosigkeit를 의미한다, 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만일 동료가 이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고 어떤 엉거주춤한 입장도 취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진실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은 아나키스트가 아니어서는 안된다, 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왜냐면 어떤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는(즉 ‘아르키 Archie'를 행사하는) 그런 상태를 자유 혹은 평등한 상태다, 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단지 악의에서 나온 것이던가, 아니면 그자가 구제할 길 없는 멍청이기 때문이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배가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지배하는 자가 있다. 지배당하는 자는 노예 이외의 어떤 존재도 아니다. 왜냐면 지배는 노예제와 쌍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지배(Archie)를 바라는 자는 노예제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노예제가 없는 지배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바라는 자는 무지배를, 즉 아나키를 추구하는 것이다(Most, p.4).


여기서 모스트도 지적하듯이 아나키란 많은 정치학 용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기원으로 한다. an-archia라는 말은 ‘시작’ 나아가서는 ‘지도자’나 ‘지배’를 의미하는 arche와 부정 접두사 a(모음 앞에서 an이 된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일 것이다. 사전에는 ‘지도자/지도원리를 갖지 않는 것’ 이외에도 ‘무질서, 무사법상태, 무정부상태’라는 번역어가 실려 있는데(古川, 1, 87, 165, 166쪽), 호메로스는 anarchos라는 형용사를 군대에서의 지휘관의 부재를 그릴 때 사용하고 있었을 뿐이다(Ludz/Meier, pp.49-50). 일설에는 그뒤 플라톤이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그리고 아나키와 폭정’이라는 정치체제의 순환을 묘사하고, ‘아나키’에 정치적이며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는데,8) 그런 의미에서 보다 빈번하게 이 말이 사용되는 것은 16세기 혹은 17세기 이후 유럽에서였다고 한다(Ludz/Meier, p.49). 물론 칸트처럼 ‘폭력없는 법과 지배’를 ‘아나키’라고 정의한 자도 18세기에 출현하지만(Ludz/Meier, p.77),9) 19세기 이후에는 정치나 경제의 ‘혼란’이나 ‘무질서’를 ‘아나키’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보인다. 이 말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호메로스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나키라는 말이 반드시 정치적 혼란의 의미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아나키스트들 자신의 정의를 보면 더욱 명확해지는데, 그 전에 내가 ‘아나키’라 표기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두어야겠다.

 

anarchism을 ‘아나키즘’이라 표기하는 예를 종종 보는데, anarchy는 ‘지배(체제) archy'를 ‘부정 a(모음 앞에서 an이 된다)’라는 의미이며, 모스트의 정의에 따르면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는 ‘무지배’ 혹은 ‘지배의 부재’라 번역되어야할 단어다. 이 점에서 보자면 anarchy에 있는 r의 음을 누락시키고 ‘아나키’(‘아나키즘’이나 ‘아나키스트’)라 표기하는 것은 ‘부정되는 대상이 ‘지배’다, 라는 본래의 의미를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물론 영어의 경우 다른 유럽 언어와 달리 어두에 있는 a에 악센트가 있기 때문인지, r이 발음되지 않는다는 記述도 있지만,10) 다른 한편 발음된다고 지적하는 기술도 적잖이 존재한다.11) 따라서 우선 영어에서조차 r 음이 발음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유도 있고, 그러나 그 이상으로 ‘부정/부재’라고 형용되는 대상이 ‘지배’라는 것, 이라는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라는 단어에 담은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아나-키-’가 아니라 ‘아나키’(‘아나키스트’, ‘아나키즘’)라는 표기를 채용하고자 한다. 이 이외에 ‘무정부 상태’(‘무정부주의자’,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어가 있는데, 아나키스트들의 이념으로부터 보자면 ‘무지배’ 등의 역어가 anarchy에는 적절하다는 점에서 ‘무정부상태’라는 번역어는 채용하지 않겠다.

 

그건 그렇고 ‘아나-키-’에 뒤이어 역사상 등장하는 것이 ‘아나-키스트’라는 단어고, 이게 사용된 비교적 오래된 예는 프랑스 혁명기의 일로(Ludz/Meier, pp.79-82), 주로 정적을 비장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이 때에는 ‘범죄는 방임되고, 재산은 침해받고, 개인의 안전은 유린된다’와 같은 사태로서 ‘아나키’가 설명되고 있다.12) 이리하여 프랑스 혁명 이후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아나키’와 ‘아나키스트’라는 단어가 밀접히 결부되면서 사용되어갔다고 생각된다.

 

이들 단어의 해석을 크게 전도시킨 것이 주지하다시피 프루동이다. ꡔ재산이란 뭔가ꡕ(1840)에서 그는 ‘아나키’라는 단어에 본래 ‘지배자, 통치자의 부재’ 그리고 ‘자유’라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나키에야말로 ‘질서’가 있다고 주장했다(Ludz/Meier, pp.97-98).13) 이후 ‘아나키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나지만, 자신을 ‘아나키스트’라 부르는 사람들이 곧장 다수 출현한 것은 아니다. 바쿠닌은 프루동을 좇아 아나키를 긍정적으로 의미부여하고, 자기를 아나키스트라 규정했지만, 그의 주장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경위에 대해서는 역시 다른 기회에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아나키스트’를 자인하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다수 출현하는 것은 1880년 이후라는 나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어쨌든 이후 나타날 아나키스트의 특징은 이전과 달리 ‘아나키즘’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자주 사용하고 또 ‘무엇이 아나키즘인가, 누가 아나키스트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해갔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아나키스트’나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이 명확화되거나 또 분류되면서, 그 결과 세계의 모든 지역, 모든 시대에, 그러한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사상이나 운동이 ‘발견’되어갔다. W. 고드윈(William Godwin, 1756-1836), M.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는 그 대표일 것이다. 따라서 ‘아나키’, ‘아나키스트’, ‘아나키즘’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재해석 혹은 강조하는 그런 논의와 작업이 이루어지기 이전, 마찬가지 의미에서의 ‘아나키즘’이나 ‘아나키스트’는 당연히 그런 식으로는 인식될 수 없었을 터이고, 역으로 그 이후가 되면, ‘권위를 부정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는 모두 아나키스트다’(Woodcock, p.11; 일역, Ⅰ, 1쪽)라는 규정이 등장하고, 나아가 현실의 다양한 사태에서 ‘아나키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은 왜 ‘아나키스트’라 자처하고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였으며, 거기서 이상을 발견했는가. 결국 그건 ‘지배’가 있는 것을 ‘질서’라 간주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프루동처럼 ‘지배가 없는’ 것을 ‘질서’라 보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고, 바꿔 말하자면 ‘아나키’를 둘러싼, 크게 나누면 두 가지 해석이 왜 생겨났는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내 생각에는 어느 해석을 채용하느냐는, 다음과 같은 모스트의 견해를 곧장 이해/지지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인간이 자유로이 될수록 개인에 대한 강제가 적어질수록, 나아가 개인의 기호나 재능, 그리고 능력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질수록, 상호 반감, 증오나 분열의 원인이 줄어들고, 누구나 연대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다. 개인의 자유가 증대되면 인류가 원자처럼 분해된다는 식으로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오히려 인간은 상호 경의와 애정을 보이게 된다.’

 

‘지배’나 ‘법’ 없이 ‘질서’나 ‘연대’는 생겨나지 않으며 ‘자유’의 증대에도 한도를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나키’라는 상태는 있어서는 안될 상태이며, 따라서 이 단어는 무질서나 혼란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만 해석될 수 있고, 모스트의 주장은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거꾸로 ‘자유’가 증대되면 ‘연대’가 생겨난다는 모스트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은 ‘아나키’를 ‘무지배’ 나아가서는 ‘질서’라고 해석하는 것조차 동의하고, ‘아나키스트’라 자칭하거나 ‘아나키즘’을 스스로 공공연히 지지하는 이념의 명칭으로 채용하는 일도 이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차이가 생겨나는 건 왜인가. 이는 지금 ‘무지배’(=아나키)를 자유와 연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상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도 ‘자유 감각’14)이라 말할 법한, 일종의 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감성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이하에서는 최근 아나키즘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


(2) 재정의될 아나키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지금껏 ‘아나키’나 ‘아나키즘’의 정의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15) 단 나는 지금 다양한 변형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서도 ‘아나키스트’라 자기규정하는 한은 역시 다른 사상이나 운동과 자기를 차이화하는 포인트는 자신들 사이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특히 1945년 이후 아나키즘(이후에는 장음 표시를 안할 것임-옮긴이)에 관한 해석이 변용되고 있다. 예컨대 약 30년전인 1960년대 중반경 D. 게란은 유고슬라비아와 알제리아의 ‘자주관리’에서 ‘아나키즘’이 실현될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또 그는 아나키즘을 ‘현대의 대산업’, ‘현대기술’,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액추얼한 이론이다, 고 주장했다.16) 이런 주장은 그 이전의 아나키즘 해석에 대한 게란의 반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R. 칸첸은 다음과 같은 사태에 대해 아나키스트가 이의를 제기해왔다고 지적한다.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경제발전」, 「인간에게 만족 불가능한 노동을 부여하지 않는 기술적 진보」, 「인간이 생산력을 충분히 관리하여 사회적 생산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을 방해하는 그런 산업 발전」, 「특정 생활양식을 만들어내는 중앙집권적이고 통합된 질서」, 「역사 발전을 “과학적으로ꡕ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조적인 사고 시스템」. 칸첸에 따르면 이런 사태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아나키스트는, 예전에는 그 주장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혹은 「진보」에 역행한다고 비난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아나키스트의 주장이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 칸첸에 따르면 그 원인은 경제/사회의 위기, 특히 에콜로지의 위기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낡은 사고가 막다른 곳에 처한 데서 찾을 수 있다.17) 그렇다고 한다면 ‘현대의 대산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 게란의 해석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던 셈이 된다.

 

단 산업사회의 변화나 환경문제에 의해 아나키즘이 재평가되게 되었다고 설명하면, 1945년 이전에 형성된 모든 아나키즘이 1980년대 이후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C. 밀스테인은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은 상황주의, 에콜로지를 아나키즘에 결부시킨 M. 북친의 제 사상, 반핵운동, 아웃노메, 사파티스타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용되어온 것이며, 다양한 ‘반권위주의 충동’의 ‘수렴’이 현대 아나키즘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18) 이것이 미국에 한정되는 얘기라 해도, 변용의 경위라든가 과거와 현재의 접속이나 단절이 불명확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그레이버 그룹의 견해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산업사회의 변화나 환경문제, 다양한 사회운동의 영향에 의해, 아나키즘이 변화되고, 혹은 재해석되어왔다는 점을 확인해두고, 다음으로는 그레이버 그룹이 ‘신아나키스트’라 부르는 래디컬 반세계화 운동이 탄생하는 경위를 그레이버 그룹의 설명에 의거하여 보기로 하자.


(3) ‘신아나키스트’의 등장


그레이버는 ‘신아나키스트’의 역사를 1996년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반세계화운동에 있어서 아나키스트 운동임을 명언하고 있는 ‘블랙 블록 Black Bloc'의 웹사이트를 보면,19) 데모에 있어서 「경찰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안전을 확보함과 함께, 가두에서 보다 많은 자유를 초래하기」 위해, 「거대한 블록」을 형성했다, 라는 독일의 1980년대의 아웃노메 운동에 관한 기술로부터 착상이 얻어진 것이 블랙 블록이라는 운동이며,20) 블랙 블록으로서 운동이 개시된 것은 1988년,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 대한 항의행동이 최초라고 설명하고 있다.21)

 

그러나 그들이 널리 주목받은 것은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의 반WTO 항의행동에 참가하고부터고, 게다가 그들의 일부가 나이키나 스타벅스 등 글로벌한 자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점포를 파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만 주목한다면, 반세계화 운동에서 아나키즘의 역사는 거기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레이버의 설명에 따르면 99년에 시애틀에서 일어난 WTO에 반대하는 항의 행동에 이르기까지는,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반세계화운동이 형성되는 경위가 있었다.

 

그레이버가 그리는 ‘신아나키스트’ 이야기는, 96년에 멕시코의 치아파스주에서 개최된 「인간성을 위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대륙간 네트워크, 인간성을 위해 싸우는 대륙간 저항의 네트워크」의 설립이 선언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네트워크」란 「조직구조」가 아니라 「중앙사령부도 결정자도 없고」, 「중앙명령기관도 위계」도 없으며, 「저항하는 우리 모두가 네트워크가‘라고 규정되는 것이었다(pp.63-64).22)

 

다음해인 97년, 이탈리아에서 결성된 사파티스타를 지지하는 그룹 「야 바스타 Ya Basta!(이제 됐다니깐)」가 스페인의 제2회 「대륙간회의」에서 네트워크에 관한 논의를 진척시켰다. 그레이버의 설명으로는 불명확하지만, 아마도 이 회의의 영향도 작용해서, 다음해인 98년 세노바에서 열린 회합에서는 네트워크 「민중 세계화 행동 Peoples Global Action](이하 PGA라고 약칭)이 결성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유럽의 아나키스트와 래디칼한 노동조합, 인도의 사회주의자 농민연맹,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의 어민조직, 아르헨티나의 교원조합, 뉴질랜드나 에쿠아도르의 원주민 조직, 브라질의 토지 없는 노동자 운동, 캐나다의 우편노동조합 등이 가세하였다(p.64).23)

 

이런 래디칼한 반 세계화파에 의한 기본적 주장을 보면, 예컨대 「야 바스타」의 경우, 그 강령에 전세계에서 보장되는 「기본임금」, 지구규모의 시민권,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새로운 테크놀로지(우선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자유로운 관여가 제창되고, 「진정한 세계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99년에 결성되는 「국경폐절 네트워크 noborder network」는 「누구도 비합법이 아니다 No one is Illegal!」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민자 강제송환에 대한 감시와 항의행동, 독일-폴란드 국경의 오델 강에 배를 이어 다리를 만드는 퍼포먼스에 의해, 국경을 없앨 것을 호소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p.64).24) 그레이버의 설명으로는 불명확하지만, 필시 이러한 네트워크가 오늘날의 래디컬한 반 세계화 운동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GA에 관해서는 다른 국제 아나키스트 조직에 의한 해설이 있다. 거기서는 PGA의 성격이 반 세계화 운동에서 「반자본주의이자 반국가세력」으로서 규정되고, 토빈세 도입을 요구하는 ATTACT(Association pour une taxation des transactions financières pour l'aide aux citoyens) 등의 「개량주의」파, 그리고 2001년에 개최된 국제사회 포럼에서 등장한 「강력개량주의」파로 구별된다.25) 다른 분류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어쩌면 PGA는 반 세계화파의 「래디컬파」에 있어서도 더욱 래디컬한 「다양한 아나키스트 집단」이라 간주될 그룹이 될 것이다(헬드/맛그루, 161쪽).

 

물론 최후까지 남은 문제는 PGA에 참가하는 조직 구성원 전체가 아나키스트를 자인한다던가, 혹은 아나키즘에 공명하고 있는 건지, 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확인하는 일은 지금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그들을 ‘신아나키스트’라 범주화하는 그레이버 그룹이 아나키즘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이하에서 검토하겠다.


(4) 운동으로서의 아나키즘


우선 그레이버에 의하면 「반 세계화 운동」이란 명칭은, 미디어에 의해 붙여진 레테르에 지나지 않는다. 운동이 반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시장원리주의」며 「시장 스탈린주의」다. 이 이데올로기에서는 「인류사의 발전이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상정되고, 이를 실현해가는 것이 UN통화기금(IMF), UN무역기구(WTO) 나아가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같은 조직에 집결하여, 거대한 권력을 부여받은 일부 엘리트들이다(p.62). 그들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실은 자본과 상품의 움직임을 확대시키지만, 사람과 정보의 움직임을 제한한다는 성격을 지닌다(p.64). 이에 대항하는 운동은 모두 세계화의 산물이지만, 그중에서도 그레이버가 참가하여 그가 「아나키스트‘라 부르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가장 래디컬한」 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국경의 소실, 사람과 사상의 자유로운 이동이고(p.63), 이것이야말로 「참된 세계화」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인정하면 값싼 노동력에 의한 생산을 가능케 하는 지역이 소실되어 버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붕괴되는 것이다(p.65).

 

이 경우 그레이버는 본인이 아나키스트라 자칭하는 しないを問わず、「가장 래디컬한」 반 세계화 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을 「아나키스트」라 규정하고, 그들의 주장을 「아나키즘」이라 일률적으로 부른다. 또 그레이버는 그루버칙과 함께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1세기의 세계적인 혁명운동」에는 「탈집권화」, 「자발적 연합」, 「상호질서」, 「네트워크 모델」이라는 특징과 원칙, 혹은 실천이 보이고, 또 이와 같은 운동은 「낡은 사회의 껍질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아나키즘」의 사고방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 고 한다(Graeber & Grubacic).

 

한편 그레이버 그룹은 반 세계화 운동에 보이는 현재의 아나키즘을 성립시킨 배경으로, 「혁명가들」이 「혁명」을 「어떤 위대한 묵시록적 순간」에 도래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극히 장기적인 과정」이며, 나아가 「최종적인 귀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 왜냐면 「정치기구의 통제권을 장악함으로써 자본주의를 극복하려고 한 다양한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Graeber & Grubacic). 즉 사회주의권 붕괴가 「혁명가들」에게 새로운 「혁명」 개념을 초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그레이버 그룹은 앞서 보았듯이 아나키즘을 「낡은 사회의 껍질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상이라 규정하고, 구체적으로는 「의도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싶은 사회와 비슷하게 조직을 만드는」 것(그들은 prefigurative politics라 부른다)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아나키스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혹은 「혁명가의 책무는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일이다」라는 사고를 거절하면서, 「지배기구의 실태를 폭로하고, 그 부당성을 밝혀내며, 해체하는」 한편, 거대한 「자율적 공간」을 획득하여 「참가형 운영」을 실현코자하는 사상이다, 라고 한다(Graeber & Grubacic).

 

이상과 같은 혁명과 전술에 관한 주장으로부터는, 마치 아나키즘이 19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만 해석되어온 사상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고 만다. 만일 그러하다면 예컨대 혁명론에 관해서 말하자면, 「혁명가들」이 사회주의권 붕괴에 의해 새로운 인식을 얻었기 때문에, 19세기부터의 모습을 그대로 보유해온 아나키즘에 주목하게 되었다, 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해석에는 유보가 필요하다. 왜냐면 일찍이 우드콕은, 요약컨대 거의 다음과 같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제안하는 미래사회는 혁명의 날이 도래하기까지 무기한 연장된다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다양한 개량을 경멸하는 한편, 미래사회에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고 한다(Woodcock, p.406; 일역, Ⅱ, 318-319쪽).

 

단 19세기이래 아나키즘이나 아나르코 상디칼리즘에는 현실 사회에 있어서의 실천 속에 이미 미래사회의 맹아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것의 하나로서, 구스타프 란다우어(Gustav Landauer, 1870-1919)의 혁명관을 들 수 있다. 왜냐면 그는 현실 사회에서 실천으로서 「혁명」을 정의하기 때문이다.26) 또 엠마 골드먼(Emma Goldman, 1869-1940)도 이렇게 쓴 바 있다. 「아나키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정하는 것과 달리, 탁월한 착상에 의해 산출되는, 미래를 논한 사상 따위가 아니다. 아나키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잉태되는, 생생한 힘이며 늘 창조되는 새로운 상황인 것이다.」라고 한다.27) 나아가 1970년대에는 C. 워드(Colin Ward)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정치적 변혁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적 자결의 영위다」.28) 결국 골드먼이나 워드는 「묵시록적 순간」 이후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사회의 실천에서 「아나키즘」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우드콕이 지적하는 점도 또한 19세기 이래의 아나키즘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렇다면 그레이버 그룹이 강조하는 아나키즘의 성격은 아나키즘이라 불리는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그들이 매력적이라 포착하는 다양한 요소를 독자적으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또 그레이버 그룹은 사람들이 이미 필요로 하는 것을 실행하고, 「지금 여기에서」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 또한 아나키스트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Grubacic; Graber & Grubacic). 우드콕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19세기 이래의 아나키즘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단 필자는 그러한 해석은 일면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레이버 그룹이 스스로 상정하는 「아나키즘」과 구래의 아나키즘 해석의 차이를 명확히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검토할 수 없다.

 

하여 다음으로는 다른 아나키즘과의 관계, 특히 그레이버 그룹이 자신과 다르다고 간주하고 선을 그으려고 하는 아나키즘과의 관계에 대해 보도록 하자. 우선 공업문명, 나아가서는 농업의 완전폐지까지 호소하는 「원시주의자 primitivist」의 경우, 그들이 힘을 잃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그레이버 그룹의 인식이다. 오히려 보다 강조되는 것은, 1960년대 혹은 70년대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와 「신아나키스트」의 차이다. 그레이버 그룹에 따르면 미국의 전통적인 아나키스트와 아나르코 상디칼리스트의 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Industiral Workers of the World),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北東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연합(North East Federation of Anarchist Communists)의 멤버는 제2차세계대전 이래 나타난, 반전운동, 여성운동, 상황주의, 흑인운동 등의 다양한 사회운동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전전의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의 「당파주의자 sectarian」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Grubacic; Graeber & Grabacic). 이에 반해 젊은 세대는 원주민이나 페미니스트의 사상, 에콜로지 및 문화/비평 이론 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게다가 「반당파주의 anti-sectarianism」이나 「개방성 open-endedness」 같은 「아나키스트의 원리」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굳이 아나키스트라 자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있다, 라고 한다(pp.62, 72; Graeber & Grubacic). 결국 「신아나키스트」가 그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른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당파주의」적인 발상이 약하다는 얘기가 된다. 단 「당파주의」의 정의는 불명확하고, 결국 그것은 그레이버 그룹이 굳이 아나키스트라 자처하는 것은 왜인가, 라는 문제를 애매하게 해버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쪽이던 간에, 그레이버 그룹이 그려내는 아나키즘의 혁명론이나 자본주의사회의 「개량」에 관한 주장, 지배기구로부터 「자율적 영역」을 획득하여 「참가형 운영」을 실현한다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산업사회의 변화와 에콜로지의 등장, 그리고 사회주의권 붕괴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사회운동과 자유로이 교류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파주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자세가 나타난 것도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자기형성 프로세스는 독자적인 것이고, 따라서 오래 전부터 아나키즘에 나타난 주장의 일부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따위의 말은 쓸 수 없다는 식으로, 지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 반당파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사회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자세에도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신아나키스트」라 규정되는 래디컬한 반 세계화 운동은 「이데올로기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레이버는 이렇게 반론한다. 미국에서 그들이 참가하고 있는 반 세계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재창조하기 위한 운동」이며, 「새로운 조직 형태」를 창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 새로운 조직형태야말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PGA 같은 반 세계화 운동은 국가, 정당, 기업 같은 톱다운 구조 대신 「수평적 네트워크」를 창조했다. 그 원칙은 탈집권이며 위계를 배제한 위에서의 「콘센서스의 민주주의」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최종적으로는 「일상생활 전체의 재창조」를 지향한 것이다(p.70).

 

여기서 그레이버가 「새로운 조직 형태」의 특징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스폭스카운실 spokescounsil」, 「친화 그룹 affinity group」(클라인, 67쪽; Klein, 2003, pp.17-18) 같은 조직이며, 「affiliationtool, breakout, fishbowl, bolcking concern, vibe-watcher」 같은 의지결정 프로세스에서의 다양한 工夫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이들은 과거 10년 이상에 걸쳐 미국의 활동가가 「직접 민주정이 기능하는 조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도입된 것이며(pp.70-71), 그 특징은 다수결이 아니라 「콘센서스」를 발견하는 프로세스를 실현하는 점에 있다.

 

또 그레이버 그룹은 이런 콘센서스 형성 프로세스의 수법이 멕시코의 치아파스주의 원주민 코뮤니티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실천된 방식으로부터, 혹은 70년대부터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수법으로부터 채용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레이버 그룹은 페미니스트들의 수법도, 그 기원이 퀘이커 교도, 그리고 나아가 북미 원주민에까지 더듬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Graeber & Grubacic).

 

단 친화 그룹에 관해서는 아나키스트가 북친의 견해에 의거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전의 스페인에서 아나키스트가 주로 프로파간다를 행하기 위해 형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29) 북친에 따르면 아나키스트는 그들이 이상으로 삼는 사회에 따른 형태로 조직을 형성하지만, 그때 스페인에서는 관료제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친밀함」 감각에 의해 상호 모이는 개인들에 의한 유기적 조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30) 이러한 친화 그룹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아직 정설이 없는 상황이다.

 

단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친화그룹은 4명에서 20명 정도로 구성되지만, 대규모 직접행동 전이나 그 기간 중에 친화 그룹간의 의견조정을 하는 합의체 「스폭스카운실」이 개최되는 경우, 각 친화 그룹에서 선출된 「스포크 spoke」가 스폭스카운실에서 일치점을 찾는 프로세스에 참가한다(p.71). 「스포크」란 차바퀴 스포크에서 따온 것이어서, 운동은 「허브와 스포크」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듯하다(클라인, 67쪽).

 

스폭스카운실에서 의견 조정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타인의 견해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이 각각 의견을 펼 장이 있다던가(brainstorming session), 거수에 의해 특정 제안에 관한 의사표시를 하지만 결의를 하지 않는 「투표」(nonbiding straw poll), 견해간에 차이가 큰 경우, 각각의 견해마다 각 두 명의 대표가 남녀 각 1명씩 선출된 후, 4명이 앉아서 이야기나누고, 그 이외의 멤버가 그들을 둘러싸 이야기 나누는 걸 지켜보고, 마지막으로 4명이 그룹 전체에 제안을 한다, 라는 절차 등이 있다(fishbowl).

 

이리하여 만들어진 「콘센서스」의 형성과정, 및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工夫는 「異論을 질식시키지 않고, 지도적 지위를 만들어내지 않으며,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가 압박받는 일이 없도록 하면서, 밑으로부터의 이니셔티브를 인정, 최대한 효과적 연대를 산출하는, 민주적 프로세스를 형성하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이들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인간의 가능성에 관한 감각」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느낄 것이며,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한순간이나마 그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특징은 「참가한 멤버의 견해를 완전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에 있다고 한다(p.72).

 

단 형성되는 「콘센서스」가 무엇이며, 「콘센서스」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나, 형성되어도 각 그룹이나 개인이 그것에 구속되는 것인가, 등의 점이 불분명하다. 또 N. 클라인은 스폭스카운실에서 「의견 일치」나 「조정」이 잘 되지 않은 결과, 「활동가 네트워크」가 지닌 「강점과 위험성」이 노정한 상징적인 순간을 보고하고 있는데(클라인, 71-72쪽), 이를 보면 역시 그레이버가 「콘센서스」나 스폭스카운실 등을 너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의문도 생긴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레이버는 「그들의 실천의 기반이 되는 반권위주의적인 원리」에야말로, 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p.72). 그렇다고 하면 「아나키스트」라면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이 운동이 누군가의 커다란 방침에 편승하기 전에, 혼돈스러운 허브와 스폭스의 네트워크 속에서,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라고 한다(클라인, 76쪽).

 

운동에 참가하지 않는 내가, 현장으로부터의 보고만을 근거로 그들을 비판할 수 잇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콘센서스」에 대한 북친의 비판31)에 대해 그레이버 그룹이 반론하지 않은 상태라, 지금 그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 또 그레이버 그룹은 그뒤 조직을 둘러싼 실천만이 아니라 이론을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Graeber & Grabcic), 그 결과 어느 쪽이든 정리된 제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이며, 실천의 문제점을 스스로 지적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루버칙은 2003년 세계사회 포럼에서 「아나키스트 인터내셔널」 설립 구상을 제시하고 있고, 반당파주의를 내거는 한편, 그런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지, 라는 실천상의 과제가 막아서고 있다고 생각된다. 더하여 굳이 아나키스트를 자인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사상의 경직화를 위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Grubacic), 그러한 비판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그래도 그들이 아나키스트임을 자인하는 것과 아나키즘에서 이상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지점으로부터 오늘날의 세계화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혹은 행동을 일으키는 점에는,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면 반 세계화 운동의 「래디컬파」의 「강력개량주의」파나 「개량주의」파의 문제점을 표면화시키는 데 있어서, 아나키스트의 래디컬한 반권위주의가 극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아나키스트측으로부터는 반 세계화 운동의 결집점이 되고 있는 세계사회 포럼이, 어떤 국민국가도 뛰어넘은 「권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비판이 제시되어 있다.32) 만일 실제로 그리 되면 세계 사회 포럼은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에서 발견되는 「권력 집중을 저지한다」(클라인, 22쪽)는 의도로부터도 크게 동떨어진 것이 될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의 감각」을 연마하면서 그와 같은 경향을 비판하며 반 세계화 운동 전체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또 금후 보다 민주주의적이며 반권위주의적인 사회상과 자본주의 사회의 개선책을 제시해갈 수 있다면, 아나키스트는 반 세계화 운동에 대해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체안을 다수 제기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다.


마치며


이상 보아온 대로, 그레이버 그룹이 규정하는 「아나키즘」이란 개념은 특히 최근 20-30년 동안의 다양한 정세 속에서 전통적인 아나키즘에 관한 파악방식이 재해석된 결과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개념규정이 비교적 광범한 사상과 운동, 그리고 그 담당자를, 「아나키즘」이라는 틀로 포착하는 자세로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그때 그 「아나키즘」의 중핵은 래디컬한 반권위주의다. 이 원리는 우선 현재의 다양한 운동에서 발견되는 것이지만, 상세하게 보면 미래사회상에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레이버 그룹의 주장에 따르면 거기에야말로 「새로운」 아나키즘의 특징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강조하는 「아나키즘」의 다양한 특징은 19세기이래 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제시되어온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컨대 일찍이는 이념만으로 끝난 네트워크형의 국제적 틀이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보급에 의해 현실적인 것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념에 현실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그레이버 그룹의 「아나키즘」은 확실히 「새롭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본고에서는 그와 같은 그레이버 그룹의 견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아나키즘의 다양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루버칙이 호소하는 「아나키스트 인터내셔널」 같은 단일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일까? 북친에 의한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즘」에 대한 비난을 보면, 그러한 계획은 도저히 무리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아나키즘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사회운동을 풍부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례를 들자면 하킴 베이(Hakim Bey)는 북친에 의해 비난받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즘」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베이에 의해 제창된 「일시적 자율 존 Temporary Autonomous Zone」은 「리클레임 더 스트리트 Reclaim the Street」라는 매력적인 운동에 힌트를 주고 있다.33) 상호 용납 못할 정도로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는 다른 사회운동에 영향을 받을 만한 에네르기를 유지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중에서도 특히 반당파주의를 내걺으로써 엄격한 강령에 구속되지 않는 그레이버 그룹 같은 사람들은 다양하고 혼돈스런 수많은 아이디어를, 실천 속에서 자유로이 채용해갈 수 있다. 거기에는 사상과 운동에 활력을 계속 부여해갈 잠재적인 가능성이 비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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