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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2004-04-22 12:05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182475

 

 

구한말 사회주의 사상 주류는 아나키즘
이호룡의 <한국의 아나키즘>
    김대홍(bugulbugu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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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yes24
한국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좌우의 대립과 이로 인한 이분법적 논리의 폐해가 반드시 등장한다. 일제침탈 시기 독립운동과 해방전후 시기 건국 과정에서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세력간의 다툼만이 다뤄져왔다. 그런데 과연 이들 양 세력이 전부였을까. 이들 외에 또 다른 독자적인 제3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호룡의 <한국의 아나키즘(지식산업사 刊)>은 소련의 볼세비즘을 모델로 한 공산주의가 한국에 들어오기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사회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920년대 초반까지 아나키즘이 사상의 주류였음을 밝혀낸 책이다. 아나키즘은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운동을 비판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며, 소련 건설 이전부터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했던 사상.

저자는 1919년 3.1운동 당시 사회주의를 알리는 적기(赤旗) 사건과 서울 남대문 시위에서의 붉은혁명기 사건, 1920년 북한지역에서 '민권의 평등과 정부가 없음을 원한다'는 장도원의 운동, 1920년 영화 상영 중 변사 정한설의 아나키즘 선동 사건 등 1920년 무렵 이미 아나키즘 운동이 상당히 활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의 이념 또한 삼민주의와 국수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이었을 정도로 아나키즘은 당시 한국과 중국, 일본을 풍미한 사상이었다고 덧붙인다. 상해의 임시정부에도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함께 아나키즘이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나키즘이 동양 삼국에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는 다윈의 생존경쟁론에 대한 한계에서 찾는다. 당시 서양의 신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지식인들은 다윈의 생존경쟁론을 사회, 정치적으로 적용해 생존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유럽과 미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데, 이들 국가들간의 경쟁이 결국 제국주의로 귀결되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생존경쟁론에 대한 대안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 '생물계에는 생존경쟁뿐만 아니라 사회연대가 보다 큰 진화의 요인'이라고 밝힌 '사회부조론'은 큰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크로포트킨의 '사회부조론'을 받아들인 국내 아나키스트들은 개미사회가 정부 없이도 훌륭하게 무정부주의적 조직체로 운영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고 저자는 밝혔다.

흔히 좌파로 분류되는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 세력 이상으로 공산주의 비판에 앞장섰다. 모든 권력을 비판했던 그들은 소련을 파시스트국가보다 더한 독재국가라고 비판했으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겨누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와는 맞지 않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인정한 것도 자본의 정체만을 밝힌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믿었다. 즉, 더 나아가 자본과 권력의 관계, 정치와 착취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독재 인정이라는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무산계급의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또 다른 독재라고 혹평했으며, 자본주의는 저절로 망한다는 사적유물론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일제침탈기의 신간회나 해방 이후의 좌우합작 운동 등에 대해서도 또 다른 권력을 만들기 위한 행위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나키즘이 전통 사상과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신채호나 이회영, 유림 등은 전통사상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바이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며, 나 자신이 남에게 지배받고 싶지 않으면 나도 남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회영의 유교적 소양과 아나키즘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는 것. 신채호 또한 '공자가 어떠하다, 예수가 어떠하다, 나폴레옹이 어떠하다, 워싱턴이 어떠하다 하며, 내 나라의 성현영웅을 하나도 모르는 놈은…'이라며 사상에서의 주체성을 강조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중국의 제1세대 아나키스트 세력인 도쿄그룹도 허행(許行)이나 불교 등 중국 전통사상에 입각해서 아나키즘을 주장했으며, 아나키스트 고순흠 또한 유교와 노장사상을 기반으로 아나키즘을 수용했다는 말을 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저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자료 부족으로 인해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고, 해방 이후 아나키즘 운동에 대해서도 내용이 불충분하다.

저자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기치를 올렸던 아나키즘이 지나친 관념성과 조직 활동에 무관심했던 점,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민족주의 세력에 흡수되면서 결국 제3세력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다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과거 아나키스트들이 외쳤던 주장들을 통해 앞으로 근현대 사상사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보완할 수 있으며 사상사를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저술에 의미를 두었다.

"아나키즘 수용과정이 사회진화론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이 점은 1910년대 한국 사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제3의 사상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통일 이후 우리 민족을 이끌어갈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호룡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졸업, 계명대 대학원 역사학과 졸업(석사),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박사).
주요논문 - '해방 직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운동노선' '일제하 재일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조직과 활동' '한국인의 아나키즘 수용과 전개' '한국인의 아나키즘 수용과 전개(박사학위논문)' '재중국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혁명근거지 건설을 위한 활동을 중심으로' 등.

2001년 11월 20일 발행

  2004-04-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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