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2/4 PICIS 12차 격주토론회 발제문
아나키즘: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
피오나 테일러, 일레븐 그린스톤즈, 키어런 하워드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
“아나키(An-archy)”라는 표현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치자 없는”, “권위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형태의 권위-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또는 개인적인 영역에서의-를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아나키즘은 위계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위계는 권위를 구현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또한 하나의 정치이론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위가 없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며, 아나키스트인 우리들은 지배자가 없는 사회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존속 및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나키즘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똑같이 중요한 핵심원칙은 자유, 평등, 연대이다. 자유가 있어야만 개인들이 그들의 전면적인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평등 없이는 ‘자유’는 위선에 불과하다. 위계서열의 상층에 있는 소수에게만 자유(한편으로는 그 나머지 사람들이 고용주, 정부, 상품들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신화가 존재하기는 하지만)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연대는 같은 목표와 이해를 공유하는 타인들과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상호부조를 뜻한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와 전통적인 좌파 모두의 약속에 만족하지 못한다. 19세기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과 불의이며 자유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제이자 야만이라고 확신한다.”1)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대립항으로 스스로를 자유의지적 사회주의자라 칭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몽된 전위에 의한 노동계급의 해방보다는 자기해방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물질적으로(국가와 자본주의를 폐절함으로써) 지적으로(권위에 대한 복종적인 태도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민중이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자유로운 사회의 도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및 국가의 권력이 상당 정도, 그들에게 종속된 이들의 정신에 대한 권력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만약 정신적 지배가 실패하고 사람들이 반란과 저항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물리력으로 지탱된다.) 이러한 지배력이 존재하는 한 노동계급은 권위, 억압, 착취를 정상적 삶의 조건으로 묵인할 수에 없을 것이다. 지배자들의 교의와 입장에 복종하는 정신상태로는 자유를 얻거나 반역하여 싸우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전세계의 노동계급 대중이 자본주의와 정부를 명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지배의 체계는 물론 그보다는 더 복잡하다(결국, 우리가 바보는 아니라는 뜻이다). 계급정체성(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대부분의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중간계급이라고 여기고 있다), 도덕 및 신념체계, 물질적 욕구와 책임감, 고립감, 소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주요하게는 패배감 등이 무관심을 초래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혁명이 단일한 사건이 아닌 과정이라고 믿는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전세계의 의회와 자본주의를 하루아침에 불태워버릴 날을 꿈꾸지만, 우리의 하루하루의 조직화는 이보다 끈질긴 과정이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 활동은 교육, 비아나키스트적인 투쟁에 대한 연대, 자본주의와 정부의 진보에 맞선 투쟁, “낡은 외피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표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나키스트들에 있어 낡은 외피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은 많은 형태를 띤다. 몇몇에게는 이는 식량생산과 분배, 노동 교환, 주택(협동조합과 무단점거 네트워크), 자유의지적 교육, 육아, 오락, 급진적 문헌의 출판과 배포 등을 위한 협동조합의 건설을 의미한다. 다른 아나키스트들은 -원시림 보호, 도로건설과 핵폐기물 운반 반대, 난민과 원주민 투쟁 지원 등- 자본주의와 국가의 진보에 대한 직접행동 투쟁을 벌인다. 또 다른 이들은 여전히 작업장을 투쟁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노동자 연대, 직접행동, 그리고 궁극적으로 작업장 내 자주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전투적인 노동조합 또는 독립적인 파업행동과의 연대 또한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보편적인 활동이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수단과 목적은 똑같이 중요하며, 따라서 우리의 조직화방식은 우리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종종 비현실적이고 조직에 반대한다고 비난을 받곤 하지만,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오로지 권위주의적 조직이다. 아나키즘의 기본적 조직화 모델은 직접민주주의(공동체 성원의 일정 비율의 지지가 필요할 경우 1인 1표)나 만장일치에 기반하여 작동되는 자주관리적, 자율적 공동체(collective)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어떤 수단이 가장 적절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성격(규모,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지, 성원들 간의 관계)이다. 어느 방법이든 아나키스트 공동체들은 절대 조화롭지만은 않는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상호협력적 갈등은 개인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발전시키고 말한다는 측면에서 건강한 것이라고 보며,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공동체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필요할 경우, 아나키스트 공동체는 결정사항을 수행하거나 이를 우산조직(공동체들의 연맹)에 전달하기 위해 대의원을 선출 또는 임명한다. 대의원들은 항상 정해진 임기 동안 일하며 공동체에 의해 즉시 소환될 수 있다. 정책생산(이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과 그 정책의 조율과 행정(공동체의 몇 명에게 위임될 수 있는)에는 확실한 구분이 있다. 대의원들은 대표라기보다는 (회의에 파견되었을 때는) ‘대변자’이며 (특정 업무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행정관’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공동체는 필요에 따라 연합조직에 가입하여 지방, 지역, ‘전국’ 및 국제 차원의 회의에 대의원을 파견할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 의회는 이러한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부는 아나키-위임받은 대의원과 즉각적인 소환, 자유로운 동의와 아래로부터의 자유로운 연합이라는 체계에 기반하여 동등하게 협력하는 자유로운 결사와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로 대체된다.
아나키즘 약사2)
아나키즘은, 단순히 현존 체제 안에 있는 아나키즘적 경향을 발전시키고 키워 현 체제를 조금 덜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를 급진적으로 변혁시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순수한 아나키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나키즘적 성격과 참여가 제법 높은 몇 개가 있었다. 이 혁명들은 비록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아나키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이것은 사회이론으로서 아나키즘이 유효하며 대규모적으로 실천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으며 몇몇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어떤 면에서 아나키즘은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매우 오래된 인간의 열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더불어 아나키즘이 하나의 정치이론으로 대두한 것은 19세기 중반 유럽의 자본주의에 대한 응답이었다. 주의 깊게 볼 만한 아나키즘적 혁명과 영향을 끼친 투쟁은 아래와 같다.
● 1871년 파리꼬뮨은 아나키즘 사상과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쿠닌이 당시에 대해 말하기를,
“혁명적 사회주의[즉 아나키즘]는 파리꼬뮨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진 실천적 논증을 시도하였다.”3)
● 1884년, 미국․캐나다 조직노동조합연맹(Federation of Organised Trades and labor Un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Canada)이 1886년 5월 1일을 기한으로 일일 8시간 노동을 요구하였다. 시카고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 세력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노동조합들은 이 요구를 5월 1일 파업으로 실천하였다. 1886년 5월 3일, 경찰은 맥코믹 하베스터 기계 사(社)의 파업 군중에게 발포하여 최소한 한 명의 파업노동자를 살해하고 알려지지 않은 상당수를 부상시켰다. 아나키스트들은 다음날 폭력을 규탄하면서 헤이마켓광장에서 대중집회를 소집하였다. 이 집회가 끝날 무렵, 경찰이 와서 집회를 해산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순간 경찰 쪽에 폭탄이 던져졌으며,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경찰에 의해 몇 명이 사망하고 부상당했는지는 여전히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공포 정치가 시카고를 휩쓸었다. 강당, 노조 사무실, 인쇄소와 개인주택들이 침탈당했다. 8명의 아나키스트들이 살인 공조로 재판을 받았다. 이들이 폭탄을 계획하거나 심지어 던졌다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확인조차 없었다. 대신 배심원들에게는 “법이 재판을 받고 있다. 아나키즘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선고를 내려 사례로 만들고 이들을 목매달아 우리의 제도와 우리 사회를 구하자”라는 말이 남겨졌다. 3명에게는 징역이 선고되고 한 명은 사형 전 날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1887년 11월 11일 4명이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들은 ‘헤이마켓의 열사들’로 기억되고 있다. 헤이마켓 사건 이후 아나키스트들은 5월 1일을 기념해왔다(수정주의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들은 행진을 5월의 첫 일요일로 옮겨버렸다).
● 1917년 러시아혁명은 이 나라에서 아나키즘을 크게 성장시키고 아나키즘 사상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통속문화에서는 러시아혁명을 자유를 위한 보통사람들의 대중운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레닌이 러시아에 독재를 강제하게 된 계기로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혁명은 “역사는 승리하는 자들에 의해 쓰여진다”라는 격언의 좋은 예이다. 1917년에서 1921년 사이의 시기를 보는 자본주의와 레닌주의 역사는, 아나키스트 볼린느(Voline)가 “알려지지 않은 혁명”이라 부른 것-보통사람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촉발된 혁명-을 무시한다. 초기의 짜르 타도는 대중들의 직접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 혁명은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하여 이를 막기 전까지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다. 러시아 전역에서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직,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장위원회와 평의회(러시아어로 “소비에트”)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들 조직은 애초에 대의원을 소환할 수 있고 서로 연합된, 아나키즘적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1918년 초반이 되자 볼셰비키당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경쟁세력인 아나키스트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아나키스트들은 볼셰비키를 지지했었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국가건설 이데올로기를 소비에트에 대한 지지 뒤에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통제 운동을 절멸시키는 한편으로 볼셰비키들은 또한 가장 ‘목소리 높은’ 경쟁자들-아나키스트들-을 체계적으로 토대를 침식하고 체포하고 죽였으며, 이와 더불어 자신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독립적인 노동조합, 정당, 파업의 권리, 작업장과 토지에서의 자주관리 등 모든 것이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파괴되었다. 1921년 2월 크론슈타트에서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봉기 과정에서 약 10,000명의 선원들이 죽음을 당했고, 그해 말 모든 아나키스트 반대파가 죽거나 투옥되거나 추방당했다.
● 1930년대 스페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나키스트 운동이 진행되었다. 스페인 “내전”이 시작될 당시 150만 명의 노동자, 농민이 아나코생디칼리스트 노조 연맹인 전국노동자연맹(CNT)의 성원이었으며, 3만 명이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AI)에 속해 있었다. 1936년 7월 18일 파시스트 쿠데타와 맞닥뜨린 이 사회혁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유의지적 사회주의(아나키즘)의 가장 거대한 실험이었다. 최후의 대중적 생디칼리스트 노조인 전국노동자연맹은 여기서 파시스트 봉기를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토지와 공장 접수를 고무하였다. 전국노동자연맹의 200만을 비롯한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극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주관리를 실천하였고 노동조건과 생산고를 실제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 또한 아나키스트 운동이 레닌주의(소련의 지지를 받은 공산당)와 자본주의(서방의 지지를 받은 프랑코) 둘 다에 의해 파괴되었다. 불행하게도 아나키스트들은 혁명보다 반파시스트 연대를 구축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적으로부터 자신들과 혁명 둘 다 패배당했다. 당시 조건이 그들을 이러한 상황에 밀어넣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이를 피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 1968년 5월 대학생들이 파리에서 거의 모든 대학을 전투적으로 점거하였다. 그들의 요구는 상황주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으며, 파리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현실적이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죽은 시대가 아닌 삶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와 같은 구호로 가득찼다. 학생들의 점거와 시위는 노동자들에게도 금새 번졌고 5월 20일에는 총체적인 파업과 점거가 일어났고 600만 명의 사람들이 이에 동참했다. 투쟁 그 자체와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활동은 자주관리적인 대중회합에 의해 조직되고 행동위원회를 통해 조정되었다. 파리는 “민중의 정부”를 요구하는 포스터로 뒤덮였다. 불행히도 대다수는 여전히 스스로 통치하는 것보다 지배자들을 갈아엎는 그러한 맥락에서 사고했다. 6월 5일이 되자 대부분의 파업은 종결되었다. 6월 12일, 시위는 금지되었고, 급진적 그룹들은 불법화되었으며 그 성원들은 구속되었다. 국가 폭력과 노동조합의 배신이 확대되면서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는 동안 총파업과 점거는 산산이 무너져내렸다.
아나키즘과 국제연대
연대 혹은 ‘상호부조’는 아나키스트 투쟁의 핵심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 간의 연대와 아나키스트들의 다른 투쟁에 대한 연대는 아나키스트적 조직화의 일상 부분이다. 아나키스트 운동이 국제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아나키스트 운동은 주로 유럽과 북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와 러시아(그리고 여타 구 소비에트 국가들), 한국과 중국 등에 강력한 아나키스트 운동이 존재했지만, 이들 운동은 대부분 국가의 탄압으로 인해 일소되다시피 했다. 현재, 특히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리고 또한 한국을 포함해서) 아나키스트 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유럽과 북미, 라틴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공, 나이지리아, 일본, 필리핀, 홍콩, 타이완, 러시아, 터키, 이스라엘 등에서 역시 적극적인 자생적 아나키스트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몇몇 나라에서는 아나키스트 ‘운동’이 개인들간의 소규모 그룹으로서만 이루어져 있다. 최대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여전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그리고 북미에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국제적인 아나키스트 연맹은 존재하지 않으며, 몇몇 아나키스트들이 이러한 생각을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혁명적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준국제적인 연맹체가 셋 정도 존재하고 있다. 이 중 최대의 것은 아나코생디칼리스트적인 국제노동자협회(IWA)로서, 18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지지자들은 이보다 더 많은 수의 나라들에 분포되어 있다. 스페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노동자협회는 4년마다 국제총회를 열고 있으며, 상당히 엄격한 원칙과 규정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연맹체인 FAU가 있으며, 국제노동자협회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많은 나라들을 포괄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나키스트적인 연맹체는 아니지만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역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중점적으로 조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현재 약 15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많은 성원들이 자신들의 작업장에서 적극적으로 조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행동을 벌이는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 국제연대는 상대적으로 비공식적인 경향이 있다. 아나키스트 “인포샵”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있다. 이 네트워크는 현재 대체로 인터넷에 기반한 것이다. 유럽과 북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많은 도시들에서 인포샵은 아나키스트 조직화와 정보 배포에 있어 중요한 핵심 지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국제 네트워크는 매일매일의 연대 호소와 이에 대한 응답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가령 무단점거를 통해 개설된 인포샵이 철거되거나, 신나치나 정부의 탄압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것은 위력을 발휘한다. 이 네트워크는 또한 아나키즘 문헌의 국제적인 배포나 의견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아나키스트들 간에 가장 일상적인 국제적 의사소통 형식이 되었다. 일단 외견상으로 전세계에 걸쳐 아나키스트들을 연계시키는 메일링리스트와 토론그룹이 끝도 없이 존재한다. 아나키스트적 개인이나 그룹들이 운영하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웹사이트들과는 별개로 또한 수많은 아나키즘 아카이브와 온라인 뉴스 서비스가 아나키스트들의 투쟁과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다. 사용 언어 문제에 있어서 이것은 현재의 아나키즘 운동의 지리적 분포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웹사이트와 토론 그룹의 대부분은 여러 언어로 제공되고 있다.
아나키스트적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수많은 풀뿌리 조직화 네트워크들 또한 존재한다. 이들 대다수가 직접행동 활동가들, 그리고 보다 폭넓은 공동체 사이에서 전술 공유를 촉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예에는 급진적 생태주의 그룹(‘먼저 지구를!’ 같은)으로부터 동물해방 그룹(동물해방전선(ALF) 같은), 세계화 반대 시위대, 무단점거자들, 폭탄이 아닌 식량을(Food Not Bombs), 거리되찾기 운동(RTS), 비판적 다수(Critical Mass)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조직이 존재한다. 이런 네트워크들의 비공식적인 성격은 그룹의 자율성과 보안성(특히 직접행동 활동가들에 있어서 중요하다) 등을 제고시키고, 지역 차원의 사건과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이 운동이 부유한 나라들에 집중되어 있음으로 인해 유발되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의사소통 및 연대를 발전시키고자 하며, 타협없는 굳건함으로 이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해방이 모든 노동계급 대중의 해방과 굳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이 있는 곳의 문제에 팔려 있는 동안, 부유한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권력 반대 투쟁은 때때로 가난한 나라의 억압자들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연결되어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남반구의 노동, 환경 문제들을 유발하고 있는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에 반대하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가령 전세계 동지들과 연대하여, 여러 나라 대사관이나 영사관, 혹은 국영기업들 앞에서 항의 시위를 조직했던 멜버른의 일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다.
아나키즘 운동의 현단계 쟁점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4)에서 아나키즘 조직에 관여하고 있는 대다수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다. 아나키즘이 모든 이들의 자유와 모든 억압의 폐절을 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흔히 그렇듯이 아나키스트 운동은 (예를 들어) 동성애자 저항운동이나 인종주의 같은 쟁점들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있다. 이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이끌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 해방 운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원칙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논리와 방향성이 그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동학에 의해 대표되기 때문에 주류적, 주도적 문화에서 과소대표되어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아나키스트 운동 내에서도 과소대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자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하여 제기되는 문제로서 많은 아나키스트들을 좌절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비억압적인 동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원주민 투쟁이나 환경 및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지하는 비아나키스트적인 운동에 관여하고 있지만, 이 에너지는 결국 아나키스트 운동 외부에서 소진되어 버린다.
자율적인 행동의 특징은 원하는 그 누구라도 (다른 이들이 개인적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거리시위에서의 폭력 전술이나, 사유 재산의 파괴를 지지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주장이다. 평화주의자들은 폭탄을 움켜쥐고 난동피울 채비를 하고 있는 부랑아들로 인식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기꺼이 저항을 진압할 태세가 되어 있는 경찰로부터의 위험에 자신들을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경찰은 이미 그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스스로의 무장이야말로 이에 대한 정상적인 유일한 대응이라고 반박한다... 논쟁은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구적 자본에 대한 저항 운동의 부상은 또한 비아나키스트 그룹과의 공조라는 이슈를 부각시키고 있다. 논의했다시피, 역사적으로 아나키즘과 다른 (비(非)자유의지적) 사회주의 그룹 사이에는 많은 유감스러운 일들이 있었다. 이들 사회주의 그룹은 맑스-레닌주의, 볼셰비즘, 트로츠키주의 그리고 그 동류들로부터 발원하는 위계적 조직 구조를 갖고 있으며, 권력지향적이다. 그러나 우리를 이러한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소규모의 주변부 불한당 그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며, 현실로부터 단절시키고, 전세계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놓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넓은 (비아나키스트적) 공동체와 그 어떤 연계를 맺지 않고서는, 아나키스트들과 아나키스트 사상은 모호함과, 메아리도 없는 일탈 속에 남겨질 것이다. 아나키스트 운동의 전개, 발전과 함께, 나는 이러한 이슈들이 매 시기 젊은 무정부주의자 세대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나키스트와 반자본주의 시위
1994년 새해 첫날의 사파티스타 봉기에 힘입은 반자본주의 운동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활성화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반격을 의미한다. 6월 18일 서구 도시들에서 처음 일어난 후, 1999년 11월 30일 시애틀(N30), 2000년 4월 16일 워싱턴(A16), 9월 11일 멜버른(S11), 그리고 9월 26일 프라하(S26)까지 이어지는 이 반자본주의 시위는 아나키즘의 조직화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축제’라고 일컬어지는 반자본주의 시위의 아나키스트적 성격이 이전의 전통적인 시위들과의 차별점이다. 이 시위들은 ‘세계적인 행동의 날’로 명명되고, ‘우리의 저항을 자본만큼 초국적’으로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대규모 시위는 특정 도시-주로 초국적 자본가들의 회의 장소(WTO가 11월 30일 회의를 열었던 시애틀처럼)-에서 이루어지지만 세계 곳곳에서 연대 시위가 조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애틀 투쟁과 같은 시위는 자율적으로 조직하는 개인 및 단체들간의 광범위한 수평적인 네트워크 형성에 의존한다. 이것은 하나의 특정 방향성-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제외하고는-이 시위 현장에서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아나키스트, 노동조합, 환경 단체, 사회, 시민 단체들, 미술가와 거리 행위예술가을 포함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단체와 개인들이 전세계에서 자신들의 양식대로 시위를 전개한다. 수많은 활동가 그룹 사이의 의사소통은 탈중심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위의 준비 과정에 있어서 인터넷은 이 다양한 그룹들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며, 실제로 구조가 부재한 인터넷의 특성은 아나키즘의 조직화 방식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실제 세계’에서는 다양한 단체들 사이의 논의와 의사결정이 대표자 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나키스트와 자율적인 활동가들은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상의 실제적인 예를 제공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화 방식은 N30과 S11에서 성공적이었으며, WTO/세계경제포럼 회의를 봉쇄했던 직접행동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그룹과 개인들이 그들의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채택한 방식이기도 하다.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화 방식과 자율적인 참여 과정의 활용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응,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역동적인 시위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직접행동이라는 투쟁 전술에 매우 적합하다. 그렇다고 해서 N30 시위를 조직하는 아나키스트 그룹들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나키스트와 자율적인 운동 단체들 사이에서 완전한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특정 그룹과 개인들이 대표자 회의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그들의 의제에 따라 행동한 경우도 있었다. 블랙블록(Black Bloc)은 시애틀의 여러 기업 본부의 타격까지 포함하도록 투쟁 전술을 전환하면서 아나키스트 진영으로부터는 지지를 상실한 그룹 중 하나이다. 실제로 N30 투쟁 중, 몇몇 ‘비폭력’ 활동가들은 -그들의 비폭력 원칙에 반하여- 블랙블록이 여러 기업 목표물을 공격하자 이를 물리적으로 제지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급진적 아나키스트 그룹들은, 블랙블록이 시위 도중 많은 이들을 체포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전체 아나키스트 진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블랙블록은 S11에서 아나키스트 진영으로부터 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온건한 활동가들을 보호하고 지지하려는 그들 활동의 초점에도 불구하고, 몇몇 단체들로부터 폭력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쩌면 다른 투쟁들을 도외시한 채, 아나키스트 투쟁에 있어서 폭력과 비폭력에 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이들에게, 자율적인 조직화라는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신념에 비추어 봤을 때,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N30과 S11에 참여했던 ‘권위주의적 좌파'의 개량주의자와 노동조합들은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조직화 방식에 의존했으며, 이것은 뻔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은 시위에서 동원력을 과시했지만, WTO와 세계경제포럼을 봉쇄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했으며, 상상력과 날카로운 안목, 그리고 화려한 멋도 없이 획일적으로 행진했다. 이러한 지적은 이들의 반자본주의 시위 참여를 중단하도록 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좌파의 참여는 좋게 말해서는 즉자적이며 나쁘게 말하자면, 당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활성화되고 있는 대중 운동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의도로 비친다. 바로 이곳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의 동참에 있어서 좌파와 아나키스트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지도자, 억압, 그리고 위계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그가 직접 참여를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좌파는 오직 하나의 위계질서와 일군의 지도자들을 그들 정당의 것으로 교체하려고 하고 있다. 새 세기를 맞이하는 지금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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