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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아나키즘, 억압적 모더니티에 대한 도전 /하승우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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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억압적 모더니티에 대한 도전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I. 들어가는 말

 

아나키즘이라는 화두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서울, 대구, 부산에 분산되어 존재하던 아나키즘학회가 하나로 통합되고 신문지상에서도 간혹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1970년에 발표된 월프(Robert Paul Wolff)의 'In defense of anarchism'이라는 책이 뒤늦게 번역되고,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이라는 책이 출간되게 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승자의 기록만을 전해주는 역사 속에서 아나키즘은 잊혀져 왔다. 러시아 혁명 이후 잔인하게 숙청되고 크론슈타트에서 학살되었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자율적으로 전선으로 떠났던 전사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려거든 죽이라, 그러나 나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져간 朴烈과 金子文子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일이다.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사상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그 가치를 되찾는 것은. 승자의 기록만을 전달하는 역사가 아니라 그 역사를 함께 꾸려온 다양한 목소리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특히 소련의 붕괴 이후 대안의 부재 속에 체계 속으로 포섭될 것인가, 철저히 배제 당할 것인가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아나키즘은 또 다른 시사점을 제시해 줄 수 있다(유럽을 휩쓴 68년 5월혁명에서 아나키즘이 재등장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극단적인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불고 있는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새로운 대안보다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흐름은 아나키즘이 가진 다양하고 격정적인 특성과 달리 너무 편향되어 있다. 누가 뭐라던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흐름을 두손들고 환영할 생각은 없다. 지식인들의 냄비근성이 싫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나키즘이 상품화되어 내용없는 기표로 떠도는게 싫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나키즘을 부드럽게 다듬어서 분노와 정신을 빼버리고 이론만을 다루는 것이 싫어서일까?


어찌보면 이 글은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목적은 아나키즘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빼먹고 있는 아나키즘의 정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즘의 흑색깃발을 들고나섰던 것은 고상한 이데올로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은 권력의 폭압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저주로 가득찬 사상이다. 또한 스스로 자율적인 삶을 구성하려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찬 사상이다.


다른 목적은 아나키즘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이다. 同床異夢으로 죽은 자식의 불알을 만지는 것이 불쾌하지만 죽은 개 취급하는 것도 불만이기 때문이다. 단, 아나키즘은 고정화된 이데올로기나 도그마가 아니다. 단순히 아나키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아나키즘을 살리는 길이자 그 의미를 복원시키는 길이다. 그래서 아나키즘과 모더니티 비판을 연결시키고 근대적인 공간에 대한 반발로서 푸리에의 주거공동체가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 보려 한다.


물론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인간의 불만 섞인 목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져버리지 않는 것도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II. 권력에 대한 저주와 문화적 투쟁으로의 전환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이상을 갖고 있는 사상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그 사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존재한다”  - 샤를르 페귀(라공, 1992)

 

아나키즘의 역사는 권력에 대한 저주의 역사이자 패배의 역사이다. 패배의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혁명 후에도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 않았고 그 권력을 끊임없이 저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나키스트들은 ‘자유로운 공동체, 자주인’이라는 이상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권력이 요구하는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끊임없는 反혁명의 위협은 아나키스트들이 경쟁자(볼셰비키)와 손을 잡도록 만들었다(적어도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혁명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반혁명에는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의 피로 세워진 공화국에는 항상 그들의 경쟁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그 권력에 대한 극도의 저주로 합리적인 비판과 선전만이 아니라 테러, 실행에 의한 선전(propaganda by deed)까지 정당화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기는 힘든 법이다(만만한 사람들이 험한 일을 수행하고 교활한 사람들이 그 성과를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의 비극적인 단면이 아닌가?)


아나키즘은 한번의 혁명으로 완벽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나키즘이 추구한 사회는 잘못이 있으면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한 사회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부자유스러운 것은 언제라도 때려부술 수 있는 방법을 사회구조로서 내장하고 있는 사회이며, 특정권력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이다(玉川信明, 1991, 118-119).


또한 아나키즘은 한 개인이나 몇몇 집단의 자유로 사회적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나키즘이 요구한 것은 그 사회 속에 숨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였다. 바쿠닌은 ‘한 민족의 자유’와 ‘단 한 명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훼손도 ‘나의 권리와 인간성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이고, ‘지상의 한 인간이라도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자유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고 하였다(이종훈, 1996, 119). 개인의 자유 속에는 전체의 자유가 숨쉬고 있다. 아나키즘은 개인의 이름으로 체제에 도전하지만 그 개인의 이름 속에는 해방을 열망하는 전체가 숨쉬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아나키즘은 서구의 개인주의와 차별성을 가지고 그 때문에 근대적인 위계질서, 중앙집권화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분명히 현대의 상황은 19세기와 다르다. 푸코는 현대의 권력관계가 국가로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왕의 머리를 베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푸코, 1996). 즉 현대의 권력관계는 사회 속에 편재해 있고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을 낳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사회체제의 변화만으로는 일상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한다. 이렇게 변화되지 않는 일상은 르페브르의 말처럼 ‘혁명의 방호벽’으로 존재한다(르페브르, 1992).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국가-시민사회라는 이분법적 모델이 아니라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아나키즘이다.


하지만 여전히 김성국은 국가-시민사회라는 이분법적 모델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나키즘을 도입한다. 김성국은 ‘反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역할 정립’을 주장하고, 국가란 기껏해야 필요악이기 때문에 ‘적으면 적을수록 좋고’, 시민사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는 인간을 강제에 의하여 경쟁시키고, 위계서열화하는 반면, 시민사회란 의사소통적 정감에 의하여 자발적 협동과 자치적 연대로 인간을 이끌어 나가고자 하기 때문이다”(김성국, 2000). 그는 아나키즘의 反국가적 정서와 하버마스의 시민사회 개념에 의지하면서 신사회운동의 재급진화를 주장하지만 그 재급진화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김성국이 주장하는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관계의 역전 모델, 즉 “최소국가를 지향, 지역국가 혹은 지방국가의 개념”(김성국, 1996, 35)이고,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새로운 시민권력의 형성”(김성국, 1996, 40)이다.


하지만 지역국가, 지방국가라는 개념이 아나키즘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인가, 시민권력의 형성이 아나키즘과 일치하는가, 국가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시민적인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또한 국가-시민사회 도식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강화되어가는 자본의 힘을 비판해 낼 수 없다.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은 국가의 억압적 질서만이 아니라 자본의 착취에 대해서도 강하게 저항했다.


더 심각한 점은 김성국의 주장은 좋은 얘기를 반복할 뿐 실제로 한국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인 고민이 빠져 있다. 시민사회에 내재해 있는 순응적인 일상의 장치를,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와 연고주의를 김성국은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 솔직히 아나키즘 학회에 속한 교수들은 아나키즘이 중시한 교육에서 먼저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 교수들은 자신의 조교나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앞에서 얘기했듯이 단순히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위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현대사회의 미시적 권력장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사회에 편재되어 있는, 일상을 누르고 있는 권위의 힘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도식에서 벗어나 자발적 복종을 낳는 순응 메카니즘을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아나키즘의 전선은 국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순응을 낳는 일상에서 그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아나키즘은 근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혁명운동이 될 수 없다.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지속적인 패배의 역사를 벗어나기 위한 아나키즘의 방향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주입되는 합리화된 논리에 저항하는 문화적 투쟁이다. 이 문화적 투쟁은 모더니티 속에 잠재되어 있는, 기계화되고 제도화된 영역이 봉인해온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진행방식은 란다우어가 주장했듯이 계몽주의적 합리성이 초래한 과학주의적, 물질주의적인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질식한 인간성의 회복(김경일, 2001, 2)일 수도 있고, 크로포트킨이 주장했듯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사회혁명(Avrich, 1988, 66)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화적 투쟁으로서 새로운 아나키즘은 어떠한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III. 모더니티에 대한 도전

 

아나키를 두려워하고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더니티에 잠재되어 있는 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모더니티가 억눌러 왔던 자율에 대한 욕망을 분출시킨다. 아나키즘은 평등하고 자율적으로 조화된 사회를 주장한다. 즉 어느 누구에게 부나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나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를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순수하고 완전한 평등을 바랬기 때문에 아나키즘은 이상으로, 공상으로 치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가지고 출발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유토피아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아나키즘은 모더니티의 성과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 성과를 인간의 행복과 자유, 평등, 우애에 부여하려 한다. 즉 아나키즘은 근대적 기획 위에서 부정적 근대성을 비판한다. 김경복은 아나키즘의 속성이 부정적 근대성, 즉 타자를 물화의 길로 치닫게 하는 ‘기술적 근대성’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나키즘은 타자를 자기의 보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관점이나 행동에 대해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이성과 양식에 따라 자발과 평등의 호혜로운 원칙 위에서 사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믿는다. 근대성을 비판하는 개념으로서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前근대성은 바로 기술적 근대성이 갖는 도구성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반감의 구체적 실례들은 중세적 질서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다(김경복, 1999, 188~202). 그렇다면 아나키즘이 억압적 모더니티를 비판하기 위해 내세우는 기준들은 무엇일까?

 

1)본능과 상호부조의 부활


아나키즘은 근대적인 합리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이 비판한 것은 인간이 배제된 도식적인 역사발전법칙과 개인의 본능적인 자유에 대한 이성적인 거부였다. 아나키즘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운명을 구성하고, 그들의 삶은 추상적인 사회학적 공식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춰질 수 없다. 또한 인간은 혁명적 열정, 즉 자유를 향한 충동, 평등을 향한 열정, 반란을 위한 신성한 본능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바쿠닌의 사회주의는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달리 ‘순전히 본능적’이었다(Avrich, 1988, 6). “파괴의 충동은 창조적인 충동(the urge to destroy is a creative urge)”이고 해방된 충동은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것이다. 바쿠닌은 사회적인 구속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사회원리를 구성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새로운 사회원리가 가능한 것은 이기적인 욕망의 추구, 이기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긴 진화의 과정에서 발전되어온 상호부조라는 본능적인 인간연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은 인간을 ‘태생적인 본능과 교육의 산물’(크로포트킨, 1993, 244)로 본다.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상호부조의 본능은 근대국가체제 하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대안이 된다. 하지만 상호부조하는 본능이 존재한다고 갈등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이 대체로 협동적이지만 경쟁과 과시가 없어질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임무는 그런 감정들을 막고 조화와 상호연민을 향한 욕망을 권장하는 것이다(Avrich, 1988, 59). 바로 이런 점에서 교육이 중요해진다.

 

2)필요의 원리와 산업의 재편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공황은 과잉생산 때문이 아니라 강요된 빈곤으로 인한 과소소비와 비생산적인 일로 노동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상호부조의 논리에 기반하면 최소의 에너지 소비로 최대한의 행복과 즐거움, 종의 지속과 발전을 보증하는 습관과 성격을 발달시킬 수 있다(크로포트킨, 1993, 6~31). 그리고 사회적 부의 생산에서 개인의 역할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자원은 한 개인이 아니라 전체 인류에게 주어진 자산이고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에서 생산되는 부 역시 전체 인류의 공동유산이다(폴 애브리치a, 1989, 43). ‘능력에 따른 노동, 필요에 따른 분배’, 이것이 크로포트킨의 경제원리이다. 그는 생산력이 발전되면 부족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필요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는 생산력이다. 아나키즘에서 생산력의 발전은 상호부조의 논리에 기반한 산업재편을 요구한다. 크로포트킨은 근대의 산업체제가 강요하는 농업과 공업의 분리, 능률본위의 분업제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거부하고, 농업과 공업의 일체화, 산업의 분산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통합화 등을 주장한다. 노동자가 임금노예제에서 해방되고 유쾌한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때, 무기와 사치품의 생산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작업을 위해 폐지될 때, 모든 이의 필요는 충족될 것이다(Avrich, 1988, 64).


아나키즘은 근대의 과학기술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 유용성을 인정한다. 바쿠닌은 과학자와 기술전문가가 그들의 지식으로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과학에 대항한 반란이 아니라 과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삶의 반란’을 설파했다(Avrich, 1988, 15). 크로포트킨 역시 근대 과학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특히 크로포트킨은 최신기술을 도입하면 작은 생산단위로 전력을 분배할 수 있고 도시와 시골의 이점을 결합시킨 ‘전원도시(garden city)’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의 과학기술은 시골로 전력을 도입해서 생산력을 높이고 새로운 빠른 소통수단을 제공해 작은 공동체의 기술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Avrich, 1988, 64~72).

 

3) 자유주의적 개인관 비판


구승회는 ‘자유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아나키즘의 사회원리를 ‘다원주의’라고 부르려 한다(구승회, 1996, 179). 하지만 다원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에 기반해 있다. 다원주의는 제한된 자원과 전문화된 이익에 의한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관료의 선출과 민주적 절차를 내세운다. 그러나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아나키즘의 논리는 다원주의의 논리와 완전히 다르다.


아나키즘은 근대의 개인주의 사상을 거부한다.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어가는 개인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 즉 공동체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특성을 상실한다. 상호주의에 입각한 사회에서 시민은 단순한 유권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조직, 이익조직 혹은 그 외의 단체들을 결성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견해를 표출한다. 따라서 각 단체의 대표들은 의회 민주주의에서와 같은 대표가 아니라 대리인이다(김경일, 2001, 14).


또한 방영준은 자주인적 개인을 강조하는 아나키즘의 정의관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의 비판에서 자본주의의 모태인 고전적 자유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방영준, 1996, 64~65).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나키즘의 개인 속에는 이미 사회가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아나키즘 사회는 단순한 개인의 총합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구성원리로서의 평등은 모든 개인이 그 능력에 있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그 자신의 특수함을 가지는 존재를 의미한다. 개개인은 그 능력과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이고, 이 유일성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자신과 다른 특성에 대한 상호인정은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의 기초가 되고, 사회는 동일한 구성원들의 결사체가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행위하는 개인들로 구성된다(김경일, 2001, 15).

 

4)폭력의 인정


아나키즘은 민중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문제의 진리 여부를 사람의 수로 결정하는 의회주의를 반대한다. 아나키즘은 대표가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중시한다. 바쿠닌이 혁명의 도구로서 테러를 인정함으로써 아나키즘은 폭력과 무질서, 공포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무분별한 테러주의가 아니다.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고귀한 동기(noble motives)를 가진 테러는 임의적인 테러와 달리 저항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크로포트킨은 봉기가 ‘최소 인원의 희생과 상처’로 치러질 수 있는 온건한 것이 되기를 열렬히 희망했다(폴 애브리치a, 1989, 40).


분명히 크로포트킨은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이 운동의 참된 지지자를 탈도덕화하고 일반대중의 시각에서 아나키즘을 불신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Avrich, 1988, 68). 란다우어 역시 테러의 사용이 아나키즘을 폭동과 무법, 심지어 범법행위로 인식하게 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김경일, 2001, 18). 하지만 이런 비폭력주의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이 있었기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 비폭력을 주장하던 란다우어가 군대의 개머리판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 그 자신은 폭력 앞에 무참하게 학살되었다는 아이러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방어의 수단으로 폭력의 사용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폭력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이 폭력에는 추상적인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쳐온 폭력에 물러서지 말고 맞서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그리고 아나키즘의 폭력성에 대한 평가는 조금 왜곡된 면이 있다. 스페인 내전 때 발생한 파괴와 처형은 아나키스트 조직이 아니라 소규모 광신자 그룹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우드코크, 1994, 164~165).

 

5)평등하고 자율적인 교육


직접적으로 가해오는 압제의 힘과 맞서기 위해 폭력의 사용을 인정했지만 아나키즘이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교육이었다. 테러를 인정했던 바쿠닌조차도 “우리는 평등을 원한다. 그리고 평등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포괄적 교육을 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종훈, 1996, 135). 즉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나키즘에서 지식인이 갖는 역할은 바로 이 교육에서 중요해진다.


아나키즘의 교육원리는 표준화된 아이들을 양산하는 근대적 교육원리와 완전히 다르다. 박홍규는 아나키즘의 자유교육 원리를 4가지로 정리한다. ①자발성, 자주성, 주체성의 원리: 출석이 강제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은 더 많은 수업준비와 활동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은 여러 활동 중에서 기호와 능력에 맞는 학습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교사도 그것에 적극 참여한다. 또한 아이들은 학습성과의 평가에도 참여한다. ②개성과 개인차의 중시: 개인차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통일적․획일적인 기준으로 비교하거나 경쟁시키는 것은 금지된다. 따라서 자유학교에는 학년제, 학급제도 없다. 다른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배우고 모든 아이들은 나름의 학습계획을 갖는다. 따라서 자유교육학교는 대부분 작은 학교이다. ③교육과 생활의 통일: 교육은 책이 아니라 스스로의 활동이나 직접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요리, 농사, 사육, 여행, 인쇄, 토목, 견학 등이 수업의 주내용이다. 그런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사는 지역사회와 협조해야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보여주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배우게 한다. 이것은 지역에서 배우며 지역에 열린 학교이다. 자유학교에서는 놀이도 중시된다. 놀이를 통한 감정해방은 자기주장과 협력의 필요성 및 유용성을 스스로 익히게 한다. ④민주주의와 공동생활의 참가: 교사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 이름을 부르고 교사간의 상하관계도 없다. 부모도 함께 참여하고 부모나 주민을 위한 야간학교도 열린다(박홍규, 1996, 240~243).


이런 생각은 단순히 이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잘 알려진 대안학교 섬머힐도 아나키스트가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대안학교와 육아공동체운동에서 이런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IV. 공간의 정치와 차이를 양성하는 공동체

 

이상에서 논의했던 아나키즘의 대안적 모더니티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논의로 구체화되고 집약될 수 있다. 특히 아나키즘은 ‘공간성의 정치’라는 문제에 주목했다. 아나키즘의 공동체는 단순한 지역 공동체가 아니라 높은 정도의 인격적 친밀, 정서적 깊이, 도덕적 처신, 및 사회적 응집, 시간적 연속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관계를 포괄하는 용어이다(방영준, 1996, 65). 이 새로운 공동체는 중세의 정신(박애, 연민)과 근대의 성과(자유, 평등)를 결합시킨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도시를 중시한다.


아나키즘을 생태학적으로 복원시킨 북친은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자치도시주의(municipalism)와 경제의 자치도시화, 공동체간의 물질적 이익이 중첩되는 경제의 연방화를 요구한다. 이 자치도시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생태파괴의 힘, 국가에 대항해서 정교한 권력관계의 장을 형성한다. 이런 장이 없다면 자치도시주의는 학문적 무기력증(cretinism)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근대의 투쟁은 결코 공장이나 작업장으로 단순히 제한되지 않고 도시를 구성한다(Bookchin ?).


이런 크로포트킨과 북친의 견해를 수용해 구승회는 에코아나키즘이 ‘생활양식과 접목한 사회운동의 성격’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구승회는 중세 자유도시에서 비국가적인 중재와 조정의 예를 거론하면서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 의한 의사결정과 전체에 의한 강요가 국가의 간섭에 의한 강요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구승회, 1996, 197). 하지만 현재의 한국사회에도 이런 서구적인 주장이 적실성을 가질까? 가부장제와 연고주의, 지역주의의 문제는? 진정 아나키스트적인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차이를 거북해하고 무조건 억누르려하는 관습과 맞서 싸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를 양성하는 공동체 모형을 제시한 푸리에의 논의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푸리에는  공간과 삶, 공동체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진경은 노동자와 빈민의 주택문제를 그들의 삶과 생활의 문제로서 이해한 푸리에를 높게 평가한다. 이런 푸리에의 생각을 수용해 건설된 고댕의 파밀리스테르는 사적인 공간과 코뮨적인 공간이 병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파밀리스테르는 가족이나 사적인 공간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코뮨적인 관계와 접속될 수 있는 공간적 배치를 만들어낸 셈이다(이진경, 2000, 291).


하지만 이진경의 글에는 왜 푸리에가 그런 공동체를 건설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져 있다.


마르쿠제에 따르면, 푸리에는 노동에서 쾌락으로의 변형을 주장한 사상가이다. 푸리에는 ‘매력적인 노동(attractive labor)’라는 개념을 통해 리비도적 힘의 해방을 추구한다(Marcuse, 1966, 217). 푸리에는 단순히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 노동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공동체를 구상했다. 푸리에에게 정념은 3가지 목적, ①윤택(luxe), 즉 오감(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의 쾌락, ②집단 및 집단계열(우정, 야심, 애정, 부성애), ③정념이나 성격이나 천성의 메카니즘, 따라서 보편적 통일이라고 하는 3개 목적을 지향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①과 ②를 조화시키는 ③의 목적이다. ③은 3개의 정념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a)밀모정념(cabaliste), b)전환정념(papillonne), c)복합정념(composite)이다. 푸리에에 따르면, 차이를 조화시키는 이 3개의 정념 중 어느 하나도 방해되어서는 안된다.


먼저, 밀모정념은 열중하는 정신으로 계산, 심사숙고를 강조하면서 복합정념과 대조를 이룬다(이 두 정념은 대조를 이루면서 산업계의 諸집단을 자극한다). 밀모정념은 유사한 종류의 집단 사이에 불화 또한 경쟁적 대항관계를 형성한다. 푸리에에게 인접집단 사이의 부조화는 자연의 일반법칙이다. 협동사회적 조화는 조화와 함께 부조화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환정념은 주기적인 변화, 대조적인 상황, 상쾌한 사건 및 공상을 하게 하는 신기한 것에 대한 욕구이다. 협동사회에서 개인은 하루 사이에 7내지 8종류의 매력적 노동을 하며 다음 날에는 변화를 주어 전일의 집단과 다른 집단과 교체할 수 있다(이런 신속한 전환을 위해 각 건물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전환정념은 같은 노동을 몇 달, 몇 해고 쉬지 않고 계속할 때 오는 건강의 해침을 방지한다.


복합정념은 조화를 낳는다. 노동에 몰입하려면 밀모정념만으론 부족하다. 두 개의 대조물, 즉 밀모정념의 심사숙고에 의한 격정과 낭만적인 복합정념의 맹목적인 격정을 동시에 작동시켜야 한다. 푸리에는 인간의 영혼이 동질성과 대조성의 화합 속에 존재한다고 본다. 이런 동질성과 대조성을 화합시키려면 연속적이고 근접한 뉘앙스에 따라 산업집단의 단계를 설정하고 각 집단이 인접집단과 부조화하고 반대측의 중심에 대항집단을 형성시켜야 한다. 이처럼 푸리에의 정념은 수동적 부문에서 5개의 감각 정념, 능동적 부문에서 4개의 혼 정념, 중립적 부문에서 3개의 기제적 정념으로 구성된다(푸리에, 1993, 398~420). 푸리에의 공동체는 이 정념들이 그 차이를 최대한 활성화하도록 구상되었다.


쉽게 설명을 해보자. 푸리에는 요리와 어린이(어린이는 미래를 나타내는 희망이다)를 많이 거론한다.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념이다. 자신의 기호를 살리는 요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식사는 획일적으로 되고 정념을 상실한다. 반면 자신의 기호를 살리는 요리를 만든다면 정념은 부활하고 공동식사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이런 공동체는 어린이에게 획일적이고 맛없는 검은 빵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먹게 해주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식사를 통해 자신들의 차이를 키워 나간다. 공동체는 개별 가정이 마련하기 힘든 다양한 음식을 마련해 줌으로써 다양한 차이를 양성하게 된다.


푸리에에게 차이는 장애가 아니라 원동력이다. 만일 부, 성격, 기호, 그리고 천성의 커다란 차이가 없다면 정념계열을 편성할 수 없다. 만약 이런 일련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념을 협동화하기에 앞서 온갖 의미에서의 그것을 창출하고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푸리에, 1993, 338). 바로 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푸리에는 단순히 차이를 거북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차이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푸리에가 병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는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이진경은 이 집합공동체의 실패 원인을 두 가지 점에서 찾는다. 첫째, 코뮨적인 모델은 초기에 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한다. 이는 그날 그날을 사는 노동자나 빈민들에게 불가능한 요구였고 부르주아지는 이들을 포섭했다. 둘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이 성공적인 실험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했다. 결국 푸리에주의자들의 프로그램이나 고댕의 훌륭한 실험은 이 두 가지 강력한 세력의 틈새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차단 당하고 제약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 모델은 새로운 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채 고립되고 묻혀버리게 된다(이진경, 2000, 268~269).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떨까? 코뮨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는 비용은 기술발달과 함께 절감되고 있다. 아파트가 근대적인 주거공동체의 모형이자 집합주거단지의 성격을 띤 것이라면, 새로운 주거공동체의 모형을 통해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현대에 와서 공동체의 의미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곳곳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새롭게 재조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화폐운동도 그 하나의 흐름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천 5백여 개의 단체에서 지역통화를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 수도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임현주, 1999).


분명 한계는 있다. ‘한 공동체의 변화가 전체 사회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나키즘은 매우 당위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각 공동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 억압의 힘과 맞서기 위해서라면 연대를 형성한다. 과정에서 그 이상의 결합은 결과를 왜곡시키기 마련이다.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한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막을 수는 없다.”


V. 나오는 말

 

분명히 아나키즘은 아직도 살아있다. 자신의 신념과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단련을 요구하는 아나키즘은 현실적으로 패배(?)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자유의지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


요즘 들어서 네트(net)와 아나키즘을 연관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백욱인은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해커와 와레즈, 카피레프트를 주장하는 부류에 이르기까지 네트가 아나키즘과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고구마 뿌리처럼 얽힌 구근형 구조를 갖기 때문에 중심이 무의미하거나 힘을 쓸 수 없고, 줄기의 어느 부분에서나 힘이 뻗쳐 나갈 수 있고 그 영향은 신속하게 사방으로 번져간다는 점에서 아나키즘과 연관된다. 네트 사용자는 적극적 개입과 참여로 스스로 미디어의 내용과 형식을 창출하는 창조적 주체로 설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바로 이점이 개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이다(백욱인, 2000).


하지만 아나키즘은 철저한 ‘살붙이 공동체’이다. 인터넷 공동체는 가식적이고 허구적인 공동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바브룩․카메론, 1996)는 그럴싸한 유토피아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다. 인터넷 공동체는 문화적인 자유를 줄 수는 있지만 자기충족적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의 이상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교외의 한적하고 안전한 주택에서 자신들만의 격리를 즐기는 여피족들은 한번의 클릭으로 전세계 빈민아동을 위한 기금을 낼 수 있지만 정작 도심에 위치한 자신들의 이웃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가상현실이라는 추상개념에 의존하기보다는 과학기술의 중재적 영향력을 통해서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 배치가 이웃간의 대화를 조장하는 그런 공동체로 회귀할 필요성이 있다(슬로카, 1996, 215~216).


물론 참여를 위해 전자장치를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참여의 주된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직접 부대끼지 않고서는 정확한 사실을 판단할 수 없다. 인터넷 세상에서 정보는 풍부한 자료를 전달하지만 그 자료가 중립적이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대면민주주의(direct face-to-face democracy)에 기반해야 한다. 아나키즘은 거대한 사회가 아니라 나의 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공동체를 추구한다.


이런 생각은 매우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에 르페브르의 얘기로 대신 답하려 한다. “오늘날 유토피아를 연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일상생활의 정복과, 일상의 재창조와 미학에서 소외되고, 정치학을 통해 분쇄되어 추상 속으로 함몰한, 가능한 것과 실재하는 것에서 잘려나간 힘들을 회복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르페브르, 1999,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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