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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인터뷰 /한겨레신문, 20000919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1.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와의 인터뷰


"공동체.자연 파괴.세계화 추종 그만"


한겨레신문(2000/09/19) , 홍용덕 기자


6개 국어를 말하는 언어학자에서 생태운동가로 변신한 이유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게 물었다.


그는 스웨덴계 영국인과 독일계 스웨덴인 부모 덕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와 자연을 사랑해왔지만 라다크가 나를 변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라다크에 대해 그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낭비나 오염이 없는, 건강하고 자족적이며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경쟁 대신 공존의 지혜로 살아온 공동체 사회였다고 했다. 그런데 개방과 함께 밀려든 산업화의 단일문화 체계 앞에서 조화로운 개인은 물론 공동체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그는 더 이상 언어학자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1974년 히말라야 오지인 라다크가 서구문명에 처음 개방된 이후의 상황을 '끔찍하다(terrible)'고 지적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요?


=개방 뒤 여행자들은 서구세계가 매우 부유하고 일도 적게 하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반면 이곳 사람들은 바깥 세계의 흐름을 모른 채 자신들은 빈곤하며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가졌죠. 지역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전통에 연결된 기성세대에게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특별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긍심의 상실, 열등감,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죠. 음식, 옷, 피부색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피부색에 불만을 느낀 젊은이들이 피부색을 밝게 하려고 위험한 크림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현상이었지요.


―라다크 개방과 서구식 개발이 부정적 결과를 빚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비문화의 실상에 대한 이해와 정보 부족이 자긍심을 잃게 했다고 할 수 있죠. 서구세계와 마찬가지로 관광사업을 포함해 파괴적이고 소비문화적 이미지가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급속도로 번지고 있습니다. 내 조국인 스웨덴에서도 여자아이들은 초록빛 눈동자와 금발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자신들이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심지어 지나친 다이어트를 시도하다 결국은 자신을 굶어죽게 만듭니다. 대자연의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요. 소비문화 이미지를 좇아 처음에는 자신을 굶어죽게 만들고, 나중에는 세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라다크만이 아닌 나머지 지역에서도 보편적 현상이라고 했는데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대규모 기구들이 세계 곳곳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화가 전 지구를 보다 가깝게 하나의 가족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지역경제를 파괴하는 것이죠. 소비자와 생산자, 지역경제와 국가경제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식주, 심지어 마시는 물도 (다국적 기업 같은) 거대한 체제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반면 소수의 집단은 더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스웨덴이나 라다크,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일은 또 각 지역 정부가 재정기반을 잃고 무력화되면서 외부 자본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이들 다국적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세금을 떼먹습니다. 결국 지역정부가 정치적 힘을 잃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의 죽음'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사람들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얻는 정보가 거대한 체제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입니다. 학교, 연구소, 대중매체는 커다란 이익집단에 의해 기금 지원을 받고, 그들은 이러한 지원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라다크 개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개발은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곳 주민들이 오랫동안 문화와 경제, 사회적인 것과 자연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왔듯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 예로,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초해 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사회의 장기적 필요에 부응하는 적정기술의 도입을 들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서구의 산업화된 개발모델은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자본주의도 같다고 지적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공동체와 지역경제, 자연과의 연관관계를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차이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단일 소비문화의 확대, 중앙집중화된 경제와 생산방식은 삶을 영위하는데 본질적인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발이라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제3의 길인가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자연과 협력함으로써 생존의 가능성을 찾고 다양성을 지키는 길을 찾는 것이 제3의 길이 아닐까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넘어서는 길이죠.


―라다크는 지금 개방이 주는 커다란 혼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오래된 전통에 기초한 미래 대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듯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세계경제가 라다크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시간에 제공된 비스켓을 손에 들고) 지금 먹는 이 비스켓은 미국 회사에서 만든 것이지요. 몇년 전만 해도 라다크에서는 자체적으로 비스켓을 만들었어요. 밀도 자신들이 공급할 수 있었죠. 맛도 훨씬 좋았고 건강식품이었죠. 그때 비스켓은 지역경제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일들(싼값의 밀가루가 외부에서 들어오고 미국 비스켓이 수입되는 것 등)이 자신들의 지역경제를 해쳤고, 또 문화와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물론 세계은행과 다국적기업, 선진국 등의 경제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나 이들에게는 아니었던 거죠. 그들은 더 이상 개발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라다크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시도된 일들은 무엇이 있나요?


=23년 전 이곳 레에서 에콜로지센터를 시작했습니다. 여름 한철 야채재배가 가능한 이곳에서 사계절 야채를 먹을 수 있도록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온실도 보급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현재 대략 2만개 설치했죠. 이러한 방식의 각종 기술 도입과 공동체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한 교육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특히 1차 생산자들인 농부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고 농업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현재 경제시스템은 정신적으로 농부들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70여개 마을에서 4,000여명의 여성이 참여하는 라다크 여성연맹도 농업의 중요성과 전통 씨앗 보전, 전통 수공업의 계승과 같이 문화적 전통과 지역경제를 회복하고 긍극적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환경 다양성 유지를 위해서 당신은 반개발(反開發)과 서구 중심에서 벗어난 탈중심, 탈세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탈중심적 발전은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자신들이 사는 가까운 곳에서 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효율성 보다는 열정의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지속불가능한 개발이 불러올 빈부격차 심화, 공동체 분열, 생태계 훼손을 막고 거대한 조직에 대한 의존을 더 이상 필요없게 해야한다는 의미죠. 거대 조직들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빠른 속도로 더 많은 힘을 소유해가고, 단일 소비문화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여기에 맞서는 우리의 노력이 국제적으로 힘을 모아야 할 이유입니다. 반개발과 탈세계화, 탈중심화는 전세계적으로는 아직 극소수이지만 이미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시애틀 세계무역기구의 뉴라운드 회의에 대한 전세계 시민단체들의 반대집회 움직임에 앞서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화는 여론이라고 썼지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운동에 대해 매우 불안해했고 정부에 대해 우리의 운동이 더 확산되지 못하게 막으라고 요구했죠. 놀라운 일은 도처에서 이처럼 언론매체가 세계화를 외치고 나섰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거기에 "아니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희망적인 얘기지요. 이것은 반세계화와 반경제집중화 운동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 시애틀 집회에 모인 전세계 수만여명의 시민단체들이 보여주었듯 반세계화와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대안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오늘날 세계체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과 인간의 본성, 미래에 대해 불만스럽게 느끼게 만듭니다. 이런 것이 사람을 나약하게 하지요. 하지만 '대안운동'에 참여하면서 힘을 얻게 되고 다시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대안운동이 계속 커가는 이유입니다. 대안운동은 자아를 다시 존중하는 방법이며, 공동체와 삶의 기쁨을 되찾는 방법이니까요. 이러한 자각은 라다크에서 그렇듯 전세계 다른 곳에서도 바로 지금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도 라다크/홍용덕 기자(ydhong@hani.co.kr)



<헬레나 호지는 누구인가?>


스웨덴과 영국 국적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54)는 서구식 근대화과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서로, 한국을 비롯해 32개 국어로 번역된 <오래된 미래> 저자다. 75년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북인도 라다크에 언어연구를 위해 왔다가 개방과 함께 산업화로 붕괴되는 라다크를 16년간 지켜보면서 '폴리티칼 에콜로지스트(실천적 생태주의자)'로 변신했다.


영국과 독일, 미국에 사무실을 둔 '에콜로지와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 책임자인 그는 반세계화와 탈중심화, 반개발을 위한 국제연대운동과 함께 라다크에서 '환경개발그룹'과 '여성연맹' 일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86년 환경분야의 노벨상에 버금가는 '바른 생활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후기>


히말라야의 혹독한 기후로 인해 델리에서 라다크로 넘어가는 두 갈래 길은 여름 석달만 통행을 할 수 있다. 인터뷰는 지난달 말, 창문 밖으로 눈 덮인 히말라야가 보이는 북인도의 라다크 레의 상카지역에 있는 그의 숙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한 해에 2~6개월씩 라다크에서 보낸다는 그는 한때는 인도 관리들한테 '스파이'라는 눈총도 받았다고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접경지역인 오지에 서구인들이 '라다크를 배우겠다'며 자신한테 몰려들면서 생긴 오해였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라다크와 인연을 맺은 지 26년째. 산업화만이 인류의 유일한 길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오지에서 `반세계화 운동'으로 나선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