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제62호 2002년 1-2월호
세계화와 테러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9월 11일의 끔찍한 장면이 크루즈 미사일, 레이저 유도폭탄 등을 갖춘 하이테크 전쟁으로, 또 위성중계로 전달되는 더 많은 죽음과 파괴의 모습으로 옮겨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지경에 도달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은 거의 없었으니 우리는 그런 일을 되풀이해서 겪고 또 겪고 할 것 같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즉각적인 보복은 오직 지역별 종족집단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증가시키고(아프가니스탄과 이스라엘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지역정부들을 파괴하고(이미 파키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서구인 일반과 특히 미국인들을 향한 노여움과 분개심을 키울 것이다(이미 인도네시아와 이슬람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쟁으로 갈갈이 찢기고 방어능력도 없는 나라에 폭격을 가함으로써 우리는 불에다 물이 아니라 기 름을 끼얹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무고한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려 할 것인가?
9월 11일 훨씬 전에 분노와 폭력은 증가하고 있었다. '분쟁해결과 종족문제를 위한 모임'에 따르면 적어도 전세계 43개 국가에서 종족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 두려운 현상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오직 스리랑카, 에리트레아, 부탄, 터키, 과테말라, 카시미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여타 지역에서 종족갈등이 있고, 그것이 때때로 테러행위와 전투로 발전하는 것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갈등은 보통 체첸과 보스니아처럼 서구 산업국가들 가까이에서 일어날 때, 혹은 르완다의 경우처럼 텔레비젼 화면에서 구경거리가 될 때 뉴스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광신주의, 근본주의, 종족갈등 등은 수십년 동안 증가되어왔고, 그것은 이슬람세계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경향을 알아채지 못하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을 제거하여 테러리즘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될 수 있다. 불행히도 현실은 훨씬더 복잡하며, 우리는 긴급히 증상들을 넘어 그 뒤에 있는 테러리즘의 원인들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보다 평화롭고 안정된 미래는 가능할 것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종족갈등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상에 살아있는 문화들의 다양성에 전지구적 소비문화가 끼치는 깊은 충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9월 11일의 비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폭력을 줄이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견해는 지난 35년간〈북〉과〈남〉의 여러 문화권에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티롤지방의 갈등이 극심하던 196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바스크의 분리주의자 단체 ETA가 활동하고 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스페인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은 영국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영국정부를 상대로 한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장기적 투쟁의 영향들을 보았다. 나는 또 4분의 1세기 동안 인도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네팔의 테러리스트 활동뿐만 아니라 인도와 부탄에서의 종족간의 긴장과 표면화한 갈등을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75년 이래로, 서부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라고 하는 라다크에서 다수인 불교도들과 소수인 무슬림 사이의 긴장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해온 것이다. 600년이 넘는 동안 이 두 집단은 기록된 갈등 없이 함께 살아왔다. 그들은 추수철에 서로 돕고 상대편의 종교행사에 참여했으며 통혼조차 했다. 그러나 서양식의 '개발'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10년이 채 안되어 불교도와 무슬림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상대편의 집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10년 전에는 무슬림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함께 웃던 온순한 할머니들조차도 나에게 "무슬림들을 죽여야 해요. 안 그러면 그 사람들이 우릴 몰살시킬 거예요"라고 말했다.
'희소성'의 조작과 경쟁
라다크에서 '개발'은 세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운송의 하부구조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투자가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하부구조는 경제적 . 정치적 생활을 다수의 마을로부터 단 하나인 도시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갑자기, 이전에 식량과 에너지, 의료, 여러 세대의 토착지식에서 태어난 기술을 공급하던 마을들이 사라질 위협에 처했다. 그들은 이제 정부 보조금을 받는 수입식품, 석유, 약품들이 있고 운좋은 소수를 위한 고급의류가 있는 도시와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세계화 경제에 의한 지역경제와 문화의 파괴는 또한 문화적 열등감을 만들어내었다.
25년 전 내가 처음으로 라다크에 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자연자원은 빈약하고 얻기 힘들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사실 현저하게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그곳의 농부들 대부분은 1년에 4개월만 일을 했고, 가난이나 실업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곳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체왕이라는 라다크 청년이 내게 한 시골마을을 구경시켜주었다. 내가 본 모든 집들이 특히 크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체왕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라다크 사람들의 자신감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어느정도 깊은 공동체의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75년 체왕이 다시 나에게 고향마을을 보여주었을 때, 그 지역은 '개발'의 과정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고, 생활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 안에 라다크 사람들은 텔레비젼, 서양영화, 광고와 계절따라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여행자들을 접하게 되었다. 정부 보조금이 들어간 식품들과 소비상품들 ― 마이클 잭슨 CD와 플라스틱 장난감에서 람보 비디오와 춘화에 이르기까지 ― 이 개발이 만들어준 새로운 도로를 따라 쏟아져 들어왔다. 라다크의 지역경제를 세계화 경제가 삼켜버렸고, 전통문화는 소비주의 단일문화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경쟁이 라다크 사람들을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보조금을 받은, 외부에서 들어온 '값싼' 상품이 지역경제를 파괴했고, 라다크 사람들은 새로운 금전경제 속에서 얼마 안되는 일자리를 위해 서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치권력을 위한 경쟁도 증가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라다크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경제 안에서 실질적인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했다. 이제 라다크 사람들은 8억 인구의 국가경제와 60억의 세계화 경제에 흡수되었다. 그들의 영향력과 권력은 거의 0으로 줄어들었다.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정치권력은 카시미르의 무슬림들이 지배하고 있는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제도와 관료체제에 의해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개발이 넉넉한 지역의 물자들을 희소한 세계화 단일경제의 물자들로 대치함으로써 경쟁적인 압력은 증가했다. 그렇게 하여 돌 대신 콘크리트와 철이, 모직 대신 수입된 면과 폴리에스텔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밀과 우유 대신 수입된 밀과 우유가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는 인위적인 결핍이었다. 몇백년 동안 지역의 물자로 잘 지내온 사람들이 이제 지구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맹렬한 경쟁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심리적 압력들
라다크와〈남〉의 다른 곳들에서 이런 경제적 압력은, 부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흥미롭고 매력적인 미국의 꿈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대중매체와 광고에 의해 강화된다.
위성 텔레비젼이 '베이워치' 같은 프로그램을 세계의 가장 궁벽한 곳에까지 가져다 보여주고 마을생활은 그것과 대조적으로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지루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의 문화를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라다크에서의 심리적 충격은 갑작스럽고 강렬했다. 자기네 마을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고 내게 말한 지 8년 후에 체왕은 여행자들에게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좀 도와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자긍심의 파괴가 바로 광고의 목표이다. 광고는 지역상품에 대한 수치심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상품을 선전한다. 베이징에 있는 한 미국 광고회사 임원은 오늘날 제3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두드려넣는 메시지가 "수입된 것은 좋은 것, 지역의 것은 쓰레기"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광고와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의해 비하되는 것은 지역의 생산품만이 아니다. 지역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 라다크와 세계 여러곳에서 1차원적인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상투형은 예외없이 서구의 도시 소비자 모델 ― 금발머리와 푸른 눈에 깨끗한 ― 에 기초하고 있다. 농부나 살색이 검은 사람은 자신이 원시적이며 뒤떨어졌고 열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타일랜드와 남아메리카에서 광고는 사람들에게 푸른 콘택트 렌즈를 써서 그들의 검은 눈을 '바로잡으라'고 권한다. "당신이 타고났으면 하고 바라는 눈빛을 가지세요." 똑같은 이유로〈남〉의 여자들은 피부와 머리카락의 색을 옅게 만들기 위해 위험한 화학약품을 사용한다. 아시아의 어떤 여자들은 그들의 눈이 '서구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수술을 받기까지 한다. 이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치심의 표현이다.
〈남〉에서 그들의 문화적 . 개인적 자긍심에 대한 이런 공격을 버티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마 전에 나는 케냐의 마사이랜드의 가장 깊은 오지에 갔었다. 그곳 사람들은 소비주의 단일문화의 압력에 맞서서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위엄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젊은 마사이 지도자가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하며 "헬레나는 우리보다도 더 원시적인 히말라야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경악했다. 노인은 "그럴 수는 없지. 우리보다 더 원시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어"라고 대답했다.
근본주의의 대두
과거에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불교도라거나 무슬림이라고 말하는 일은 드물었고, 대신 어느 집안 사람이라거나 어느 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이 가져온 경쟁의 심화와 함께 그것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마을에 분산되어 있던 정치권력은 관료체제에 집중되었고, 그것은 무슬림이 주도하는 카시미르주(州) ― 라다크는 그 일부이다 ― 가 통제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자기들끼리 혜택을 주고받고 나머지는 흔히 차별을 받는 경향이 있다. 라다크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대표나 정부의 일자리는 ― 공교육을 받은 라다크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인데 ― 불균형하게 무슬림들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때는 대체로 무시되어 왔던 종족과 종교의 차이는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고, 전례가 없을 정도로 원한과 반목을 일으키고 있다.
종교가 그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일 뿐인 젊은 라다크인들은 과장되게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고 그에 대한 헌신을 과시한다. 무슬림들은 아내와 딸들에게 머릿수건을 쓰도록 하기 시작했다. 수도에서 불교도들은 무슬림의 예배를 알리는 소리와 겨루기 위해서 자기들의 기도를 확성기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사회 전체가 ― 불교도와 무슬림들이 함께 ― 축하했던 종교의식들이 이제는 부와 힘을 뽐내는 기회가 되었다. 불과 몇년 되지 않아서 이 두 집단간의 긴장이 폭발하여 폭력으로 발전했다. 기억의 범위 내에는 집단간의 갈등이라곤 없었던 이곳에서.
내가 보기에, 자신의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젊은이들은 그들 종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들은 람보나 제임스 본드를 모범으로 삼고 열심히 따라한 사람들이고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공동체와 그들의 정신적 뿌리와 깊은 연결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순하고 관대하다.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라다크 사람들은 대개 서구식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개발' ― 보통 논란의 여지없이 좋은 것으로 생각되는 ― 의 이런 특징이 젊은이들을 도시로 끌어내어 티베트의 고원지대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와 기술 대신에 영원히 대다수가 도달할 수 없는 소비지향적 삶에 맞는 교육을 제공한다. 서구식 학교교육이 암암리에 약속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대중매체와 광고가 불러일으키는 불가능한 꿈에 버림받은 많은 젊은이들은 좌절감과 분노에 빠지고 만다.
북과 남, 똑같은 이야기
라다크에서처럼, 세계 전역에 걸친 분열과 폭력, 사회적 무질서의 발흥은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소비주의 단일문화 속으로 강제적으로 밀어넣음으로써 당연히 예견할 수 있는 결과이다.〈남〉에서는 서로 다른 종족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끌려와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문화적 토대로부터 단절되고 일자리와 생계를 위한 무자비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는만큼 그 문제는 더욱 극심하다. 그들이 처한 몹시 경쟁적이고 사기저하적인 상황에서 어떤 종류이든 차이는 점점더 중요해지고 서로 다른 종족이나 종교집단간의 갈등은 쉽게 폭력으로 비화할 수 있다.
〈남〉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파괴적 세력들에 의해〈북〉의 농촌사회와 지역경제도 역시 분열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생겨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민자들, 흑인들, 유태인 그리고 다른 소수인종들을 향한 적개심의 증가와 함께 미국의 농업중심지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1996년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있었던 테러공격은 뉴욕과 워싱턴의 공격과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전지구적 단일문화의 확산과 종족갈등 사이의 명백한 관련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표면 아래서 끓고 있던 '오래된 증오'를 탓하며 갈등의 책임을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것에서 찾는다. 확실히 종족갈등은 식민주의와 현대화 이전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나는 인도와 인근 지역에서의 25년간의 직접 체험으로 '개발'과 그것의 현대적 현신인 '세계화'가 기존의 긴장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실제로 갈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들이 인간적 규모의 구조들을 와해시키고, 상호관계의 결속과 상호의존을 파괴하며,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문화와 가치체계 대신에 광고와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인공적인 가치를 따르도록 압박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의 거부, 자기자신의 거부를 의미한다. 라다크의 경우 '오래된 증오'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고, 갑작스런 폭력의 출현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폭력의 중단
우리가 종족적, 종교적 폭력, 광신과 테러의 확산을 막고자 한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무조건적인 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을 되돌리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유무역' 조약들은 정부들에게 점점더 큰 규모의 하부구조에 투자하고, 작은 지역과 국가의 기업들의 희생 위에 다국적 기업들에게 지원금을 주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서구의 이미지에 따라 전지구적 단일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여러 면에서 재난으로 드러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문화에 가하는 폭력이다. 그 폭력이 결국 9월 11일에 일어난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세계의 수많은 다양한 사회경제체계를 균일화하는 것의 무거운 대가를 깨닫게 된다. 그 다양한 체계 중에는 그것들을 대체하려 했던 체계보다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훨씬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런 다양한 문화들은 지역의 조건에 반응하여 '바닥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으로 특정한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 간의 대화의 산물이었다. 문화는 항상 무역 같은 외부영향에 반응하고 그것을 흡수해왔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새로운 것이다. 오늘날 투기자본과 초국적 기업들은 삶의 모든 면 ― 사람들의 언어, 음악, 건물, 농업,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 '위에서 아래로'의 문화적 변화는 다양성을 거스르고 삶의 짜임새 자체에 반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세계에 강요되고 있는 서구의 모델은 복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전자장치의 신호만 보고 경제가 '건강'한지 아니면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외눈박이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추상적인 모델이 실현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자원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계산은 하는 일이 없다.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 '개발'과 '자유무역'이 그들도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처럼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은 잔인한 속임수와 다를 것이 없다. 서구인들은 정당한 그들 몫의 열배나 되는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소위 미국의 꿈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증가되는 가난과 몰락이 서구인 ― 특히 세계화 경제의 주요 지지자이고 수혜자인 미국인들에 대한 분개심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놀라울 것도 없다.
서구의 우리들이 당장 탈중심적이고, 덜 자원약탈적인 경제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똑같이 긴급하고 시행하기는 더 쉬운 일은 산업화가 덜 되고 석유의존도가 좀더 낮은〈남〉의 '개발'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남〉의 빈곤을 덜어주기 위한 '원조' 등의 선의의 제안들조차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곤은 테러리즘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빈곤의 제거는 확실히 가치있는 목표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원조'는 실제로 사람들을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화 경제에 더욱 단단히 얽어매면서 더 많은 실질적 빈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공동체들과 국가들이 자신의 필요를 위한 생산을 하고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능력을 파괴한다. 그것은 빈곤도 테러리즘도 막을 수 없다. 무역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것이나 세계화처럼 ― 혹자는 그것이 테러리즘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데 ― 대부분의 개발원조는 주로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 전역에 걸쳐 노동과 자원과 시장을 착취할 수 있게 해준다.
정책의 전환이 ― 전지구적 소비주의 단일문화를 만들어내려는 고비용의 노력을 버리고 보다 튼튼한 지역경제를 통하여 다양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 근본주의, 종족갈등, 테러리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라다크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와 경제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종족간의 긴장은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협회(ISEC)'와 그것의 전신인 '라다크 프로젝트'가 수년간 목표로 했던 것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현대 도시의 삶을 보다 완전하게 그려 보여줌으로써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환상을 깨려고 하였다. 서구사회의 범죄, 실업, 외로움과 소외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또한 공동체를 강화하고 좀더 건강한 농업을 회복하고 살아있는 세계와의 보다 깊은 연결을 추구하는 서구인들의 다양한 운동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라다크의 문화에 대한 존경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노력들이 라다크 사람들과 서구인들 간에 보다 긴밀한 연결을 초래했다. 우리는 라다크 사람들이 서구로 '현실경험 여행'을 하도록 지원했고, 라다크의 '농장 프로젝트'를 통해 서구인들에게 전통적인 마을생활을 경험하게 하였다. 서구인들이 농사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라다크인들이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개발을 지역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 탈중심화하는 것을 뜻한다. 라다크에서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생가능한 에너지 ― 태양, 풍력, 수력 ― 를 사용하는 단순한 기술의 도입이 물질적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역의 자립성을 희생할 필요를 줄여준다. 또 이제는 라다크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이 된 토착적인 '여성동맹' 결성을 통해 여성들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 에게 발언권을 주어 라다크의 정신적, 생태적 뿌리를 강화하였다.
미래를 되찾아서
이런 노력들은 문화적 자긍심과 개인적인 자존심을 회복하도록 하여 라다크의 미래는 라다크 사람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자각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변화는 '개발'의 심리적 충격에 가장 취약한 젊은 라다크인들 사이에조차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불교도들과 무슬림들 사이의 긴장은 가라앉았고, 종교적 근본주의는 물러갔다. 라다크에서 내전이나 '종족청소'의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고 미래는 평화로울 것 같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스마트 미사일과 유도탄 등은 오직 이미 배신당하고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더욱 절망과 광기를 키울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우리가 세계화 무역과 투기에 보조금을 주기보다 지역 및 국가경제를 지원하는 경제정책으로 바꾼다면 아마도 '다음의' 테러리즘의 물결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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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 ―《오래된 미래》의 저자. '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Ecology and Culture)'를 이끌고 있다. 이 글의 원문은《에콜로지스트》2001년 12월-2002년 1월호에 발표되었다.
녹색평론사 (053)742-0663, 0666 fax (053)741-6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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