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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지만 뻥 뚫린 터널 때문에 찾아가는 길이 훨씬 수월합니다. 괴산고등학교에서 치재마을과 덕평을 거쳐 괴산댐 상류에 있는 친구네 인삼밭엘 도착했습니다. 저만치 비탈진 밭에서 트랙터의 엔진소리가 들려오고, 뿌연 안개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드러납니다. 자욱한 안개 덕분에 햇살이 비추지 않고, 기온마저 적당하니 가을걷이를 하기에 딱 좋은 그런 아침입니다.
언뜻 보기에 성글게 짠 문발처럼 생긴 것이 뒤쪽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트랙터가 인삼밭으로 들어섭니다. 엔진소리가 조금 높아지더니 밭고랑을 따라 바퀴가 굴러갑니다. 트랙터가 앞으로 나가면서 밭둑에는 허연 인삼들이 즐비하게 늘어섭니다. 요술방망이에서 뭔가가 떨어지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거무튀튀한 흙 속에서 기기묘묘한 형태를 한 인삼들이 좌르르 쏟아집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고 힘이 납니다. 트랙터가 흙 속에 있던 인삼을 그렇게 일궈내면 일꾼들은 그때서야 밭둑으로 들어서 인삼들을 주워 냅니다.
일꾼들도 신명이 났습니다. 비록 품삯을 받고 하는 남의 일이지만 거둬들이는 인삼이 워낙 좋으니 덩달아 좋은가 봅니다. 이웃사촌으로 어울려 사는 이웃들, 품성 좋은 농부들의 마음이 웃음소리로 드러납니다. 대개의 농산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이는 일 년 작이지만 인삼은 재배기간이 4년에서 6년쯤 되는 다년 작물입니다. 일 년 작물인 쌀도 거두기까지는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간다고 하는데, 6년 근 인삼이라면 무려 아이 하나쯤은 키우는 세월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길과 관심을 준 결실임에 분명합니다.
봄이 되면 일일이 돋아 오르는 싹에 눈길을 줘야하고, 여름이면 무시로 드나들며 제초나 방충작업을 해줘야만 합니다. 어떤 때는 애지중지, 어떤 때는 안절부절 못하며 6년 동안 쏟아 붓은 땀과 정성이 흙에서 잘 생긴 인삼이 되어 밭둑으로 쏟아지는 순간입니다. 트랙터 운전하랴, 일꾼들 뒷바라지하랴 바쁠 수밖에 없는 밭주인은 종종걸음을 치느라 땀을 뚝뚝 흘리고 있지만 발걸음은 가벼워 보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토박이 농사꾼, 고향을 떠난 적 없이 농사를 지으며 4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친구(김덕한, 47)도 야물게 드러나는 결실에 흐뭇한가 봅니다.
겨우 사방을 분간할 수 있는 이른 여섯시부터 시작된 인삼 캐기는 오전 9시쯤에 참을 먹는 것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참으로 나온 떡만두국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는 다시 일들을 시작합니다. 땅속에서 한 농부의 땀과 정성으로 똬리 틀고 있던 6년 근 인삼들이 한 골 한 골 거둬져 나올 때마다 밭두렁과 밭고랑에는 인삼 가득한 포대들이 늘어납니다. 아가들 장딴지만큼 굵은 인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처럼 묻은 흙 쓱쓱 문질러 내고,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욕심이듭니다. 웬만하면 깨물어 먹으라고 좋은 것으로 하나 건넬 법한 친구가 반응이 없습니다.
소유권이야 어떻게 되던 인삼의 많고 적음, 좋고 나쁨에 따라 가격이 책정됨으로 6년 농사를 결산하게 되는가 봅니다. 꽤나 많은 고랑을 일궜습니다. 캐낸 인삼이 차곡차곡 채워진 컨테이너가 하나둘 늘어갑니다. 늘어가는 컨테이너 숫자만큼 농사꾼인 친구의 마음뿐 아니라 주머니도 두둑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첩첩산골에 있는 인삼밭은 아직도 뿌연 안개가 자욱합니다. 6년 농사를 거두느라 바쁘기만 한 친구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뚝뚝 흘렀지만 발걸음에선 팍팍 힘이 솟는 듯했습니다.
'부르릉' 거리는 트랙터의 엔진소리와 일꾼들이 두런거리는 이야기들이 혼성곡처럼 뒤섞여 들려옵니다. 농사꾼인 친구가 농사짓는 맛을 느끼게 하는 오늘 같은 수확이 인삼밭 뿐 아니라 다른 논, 다른 밭에서도 종종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뿐 아니라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모든 농부들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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