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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이야기/괴산 관광

괴산 인삼캐기(오마이뉴스 060920)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2.

 

http://life.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61395&ar_seq=

 

'땀 뚝뚝, 힘 팍팍!' 6년 근 인삼을 캐다
[현장] '이 맛에 농사짓지'...농사꾼 친구의 인삼밭에 가다
    임윤수(zzzohmy) 기자   
▲ 6년 근 인삼을 캐든 친구(김덕한)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 임윤수
끝 무렵 여름이 심통을 부리는지 안개가 자욱합니다. 살갗에 와 닿는 느낌에 가을안개가 분명합니다. 성큼 다가와 있는 가을을 실감하며 산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예전 같으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지만 뻥 뚫린 터널 때문에 찾아가는 길이 훨씬 수월합니다. 괴산고등학교에서 치재마을과 덕평을 거쳐 괴산댐 상류에 있는 친구네 인삼밭엘 도착했습니다.

저만치 비탈진 밭에서 트랙터의 엔진소리가 들려오고, 뿌연 안개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드러납니다. 자욱한 안개 덕분에 햇살이 비추지 않고, 기온마저 적당하니 가을걷이를 하기에 딱 좋은 그런 아침입니다.

▲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인삼밭이 안개로 뿌옇습니다.
ⓒ 임윤수
인삼 농사를 짓는 친구가 6년 동안 키워온 인삼을 수확하는 현장입니다. 인삼을 덮고 있던 지붕과 그 지붕을 괴고 있던 말뚝은 이미 제거된 상태였고, 인삼 싹 들도 깡똥하게 잘려져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두둑마다 사람이 올라앉아 쇠스랑같이 생긴 길쭉한 호미로 한 뿌리 한 뿌리를 캐냈겠지만 요즘은 인삼 캐기도 기계화 되어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성글게 짠 문발처럼 생긴 것이 뒤쪽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트랙터가 인삼밭으로 들어섭니다. 엔진소리가 조금 높아지더니 밭고랑을 따라 바퀴가 굴러갑니다. 트랙터가 앞으로 나가면서 밭둑에는 허연 인삼들이 즐비하게 늘어섭니다.

요술방망이에서 뭔가가 떨어지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거무튀튀한 흙 속에서 기기묘묘한 형태를 한 인삼들이 좌르르 쏟아집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고 힘이 납니다. 트랙터가 흙 속에 있던 인삼을 그렇게 일궈내면 일꾼들은 그때서야 밭둑으로 들어서 인삼들을 주워 냅니다.

▲ 인삼을 캐기 위해 지붕과 말뚝이 제거 되었고, 싹들조차 깡똥하게 잘려있었습니다.
ⓒ 임윤수
며칠 전 비가 왔고, 땅이 질어서 그런지 인삼엔 진흙들이 더덕더덕 묻어있습니다. 일꾼들은 능수능란하지만 찬찬한 손놀림으로 인삼들을 골라냅니다. 진득한 흙들을 털어내고, 길쭉하게 매달려 있는 싹들을 손질하며 준비된 포대에 주워 담습니다. 인삼이 잘돼서 그런지 얼마가지 않아 한 포대가 가득 채워집니다.

일꾼들도 신명이 났습니다. 비록 품삯을 받고 하는 남의 일이지만 거둬들이는 인삼이 워낙 좋으니 덩달아 좋은가 봅니다. 이웃사촌으로 어울려 사는 이웃들, 품성 좋은 농부들의 마음이 웃음소리로 드러납니다.

대개의 농산물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이는 일 년 작이지만 인삼은 재배기간이 4년에서 6년쯤 되는 다년 작물입니다. 일 년 작물인 쌀도 거두기까지는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간다고 하는데, 6년 근 인삼이라면 무려 아이 하나쯤은 키우는 세월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길과 관심을 준 결실임에 분명합니다.

▲ 트랙터가 밭둑을 타고 지나가니 흙속에 있던 인삼들이 허였게 올라왔습니다.
ⓒ 임윤수

▲ 인삼이 아주 잘되었습니다. 대부분 그 굵기가 휴대폰 너비만큼 되었습니다.
ⓒ 임윤수

▲ 흙 위로 올라온 인삼을 일꾼들이 정성스레 손질해 포대에 담습니다.
ⓒ 임윤수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가뭄이 들면 가뭄이 드는 대로 마음을 졸여야하는 게 농사입니다. 장마철이면 떠내려갈까 걱정되고, 바람이 불면 지붕이라도 날아갈까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인삼농사입니다. 다른 농사라면 한가롭게 보낼 수 있는 한겨울에도 눈 쌓이는 것을 걱정해야 하고, 산불 나는 걸 염려해야하는 게 인삼농사입니다.

봄이 되면 일일이 돋아 오르는 싹에 눈길을 줘야하고, 여름이면 무시로 드나들며 제초나 방충작업을 해줘야만 합니다. 어떤 때는 애지중지, 어떤 때는 안절부절 못하며 6년 동안 쏟아 붓은 땀과 정성이 흙에서 잘 생긴 인삼이 되어 밭둑으로 쏟아지는 순간입니다.

트랙터 운전하랴, 일꾼들 뒷바라지하랴 바쁠 수밖에 없는 밭주인은 종종걸음을 치느라 땀을 뚝뚝 흘리고 있지만 발걸음은 가벼워 보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토박이 농사꾼, 고향을 떠난 적 없이 농사를 지으며 4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친구(김덕한, 47)도 야물게 드러나는 결실에 흐뭇한가 봅니다.

▲ 예전에 삼을 캘 때 사용하던 도구지만 기계화된 요즘도 쓰이고 있나봅니다.
ⓒ 임윤수
잘 된 인삼농사는 밭주인뿐 아니라 나머지 가족들의 얼굴에도 인삼씨 만큼이나 환한 웃음으로 피어납니다. 여간해서 사진 찍기를 허락하지 않던 친구(덕한) 아버님도 기꺼이 사진 촬영에 응해주시더니, "우리 에미도 좀 찍어줘" 하시며 며느리까지 챙기십니다.

겨우 사방을 분간할 수 있는 이른 여섯시부터 시작된 인삼 캐기는 오전 9시쯤에 참을 먹는 것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참으로 나온 떡만두국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는 다시 일들을 시작합니다. 땅속에서 한 농부의 땀과 정성으로 똬리 틀고 있던 6년 근 인삼들이 한 골 한 골 거둬져 나올 때마다 밭두렁과 밭고랑에는 인삼 가득한 포대들이 늘어납니다.

아가들 장딴지만큼 굵은 인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처럼 묻은 흙 쓱쓱 문질러 내고,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욕심이듭니다. 웬만하면 깨물어 먹으라고 좋은 것으로 하나 건넬 법한 친구가 반응이 없습니다.

▲ 인삼이 가득한 컨테이너가 차곡차곡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밭에는 일꾼들 외에 3명의 낯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인삼공사와 인삼조합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혹 캐낸 인삼이 부정하게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견된 감독관(?)들이었습니다. 인삼은 땅에서 캐지는 순간 그 소유권이 이미 밭주인을 떠나 조합이나 인삼공사로 귀속되는가 봅니다.

소유권이야 어떻게 되던 인삼의 많고 적음, 좋고 나쁨에 따라 가격이 책정됨으로 6년 농사를 결산하게 되는가 봅니다. 꽤나 많은 고랑을 일궜습니다. 캐낸 인삼이 차곡차곡 채워진 컨테이너가 하나둘 늘어갑니다. 늘어가는 컨테이너 숫자만큼 농사꾼인 친구의 마음뿐 아니라 주머니도 두둑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첩첩산골에 있는 인삼밭은 아직도 뿌연 안개가 자욱합니다. 6년 농사를 거두느라 바쁘기만 한 친구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뚝뚝 흘렀지만 발걸음에선 팍팍 힘이 솟는 듯했습니다.

▲ 서로 돕고, 의지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부부와 부모님 내외분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 임윤수
사진을 찍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일꾼들에게는 어정거리는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있다가는 눈치를 볼 것 같아 친구 부모님들께 가겠노라 인사를 드리니 "놀다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잡으십니다. 인삼밭을 떠나며 친구에게 "기분 어떠냐?" 하고 물으니, "이 맛에 농사짓지 뭐" 합니다.

'부르릉' 거리는 트랙터의 엔진소리와 일꾼들이 두런거리는 이야기들이 혼성곡처럼 뒤섞여 들려옵니다. 농사꾼인 친구가 농사짓는 맛을 느끼게 하는 오늘 같은 수확이 인삼밭 뿐 아니라 다른 논, 다른 밭에서도 종종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뿐 아니라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모든 농부들에게도….
인삼캐기는 9월 20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서 있었습니다.
  2006-09-20 21:01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