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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대담]문순홍박사의 생태여성주의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2.

 

생명을 말한다(3회)


문순홍박사의 생태여성주의


 

 

 


● 여성적 특성이 차별의 요인이라면 그 특성을 생물적 결정으로 봅니까, 사회적 요인으로 봅니까?


양면이 다 있습니다. 여성에게 생리·해부학적으로 여성적 특성이 부여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여성다움’에 대한 역사·사회적으로 강요된 부분이 있습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부단히 여성적 특성만을 장려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거든요.

 

초기 생태여성주의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고, 파괴되는 자연의 아픔을 여성이 공감하고 이를 치유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1991년에 발생한 대구의 페놀방류 때도 태아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여성들이 더 격렬하게 나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여성과 자연을 생물학적인 속성으로 연결짓는 논의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환경치유자로 서의 구실이 여성들에게 삼중의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같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아무리 여성의 권리와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더라도, 경제활동여성들의 경우 여전히 가사노동의 상당부분이 여성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서구 여성들에게 물어봐도 가사노동을 부분적으로는 남편과 분담하지 만 이른바 ‘살림’경영은 여전히 아내 몫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여성은 자기 일을 가져도 ‘살림’의 부담을 하나 더 지게 되지요. 이를 이중부담의 문제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이 환경치유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에게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기대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었지만, 여성에겐 또 하나의 부담이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 한국사례로,1992∼93년 제3세계의 열대림 파괴문제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나무 젓가락과 1회용 기저귀(육아용) 안쓰기 운동을 벌이는데 직장여성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불편한 거죠. 그러면서 왜 이것이 여성만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의문은 여성=자연이라는 등식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문화 사회적으로 주입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억압과 생태계의 위기를 다같이 가부장적 남성문화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주의적 대안은 있습니까?


지금까지 서구근대가 무시했던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세계를 생태적 시각으로 다시 보는 겁니다. 우리사회에 여성적 특성인 부드러움, 곡선, 평화, 헌신,  다양성, 관계성을 불어넣는 겁니다.


● 아까 여성의 특성이 가사노동, 즉 살림에서 잘 발현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친화적인 여성의 살림살이(죽임의 반대)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벌일 일이지,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나눠갖기 위해 투쟁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에게 여성적 특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 합리성 등이 여성에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남성적 특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18,19세기 까지는 이성적 분별력, 합리적 사고가 여성에게는 아예 없는 것으로 단정했지요. 이렇게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묶어 종속 시켜 왔습니다. 지금 지구적 위기는 여기서 비롯됩니다. 이 구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에도 그대로 온존해 있습니다.

 

대안은 무엇이냐, 비지불성 가사노동에 남성이 들어오고 그 대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곳에 여성의 특성을 도입하는 겁니다. 사회구조에 감성지수를 높이는 거지요. 이런 구조가 생태계의 원래 모습입니다. 인간개체가 좌뇌(이성)와 우뇌(감성)의 균형을 이루고 있듯이 사회구조가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야 통찰력이 생기고 위기대처 능력이 생깁니다.


● 그동안 사회 참여에 성공한 여성들이 여성적 장점을 사회화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남북대화에 여성을 대표로 보낸다거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를 여성으로 하면 과연 평화가 올까요?


배려 차원에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결정권이 있는 자리, 그리고 일정한 비율이 중요합니다. 여성주의적 신념이 없는 여성 한 두명이 참여하는 것으로는 그들이 경쟁에 이기기 위해 남성화 돼버리거나 홍일점의 특혜에 안주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에코페미니즘이 문화구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에 대한 반성입니다. 여성이 여성에게 표를 주지 않고 정치자금을 만들지 못해 여성정치인이 발붙이기 어려운 남성 구조 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 의료기술이 여성을 임신 출산의 불안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준 점을 인정한다면 생명공학은 여성에게 복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는 생명은 생(生)인 반면 생명공학은 조(造)이기 때문에 생명공학은 반생명적입니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시장에 의한 인간생식능력의 대체이고, 특히 여성의 생식능력의 상품화이기도 하지요.


● 중세기 마녀로 지목된 여자들이 사실은 피임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국가의 다산정책이 이들을 마녀로 지목했다는 학설이 있더군요. 이런 것으로 봐도 임신, 출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돌려주는 생명공학이 여성해방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생태여성주의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불임부부에게 희소식이라는 생명복제에서 간과되는 것이 있는데 체세포 복제도 누군가 난자를 제공해 야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반다나 시바(에코페미니즘 학자)는 난자(성)의 상품화 가능성을 말합니다. 시술과정도 여성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치욕적일 뿐더러 탄생한 아이도 기형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전은 의료분야가 아니라 유전자 변형을 통한 식량혁명인 것 같습니다.


인구 증가와 식량위기, 그게 사실은 맬서스 테제입니다. 1968년에 맬서스적 위기론이 제창됐는데 그때 어떤 학자는 제3세계에 식량원조를 중단해야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식량무상원조를 유상으로 바꾼 것이 아마 1970년대 초일 것입니다. 이 신맬서스이론에 대항해 나온 것이 신마르크스 이론인데 절대량보다 분배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월드워치 보고서 같은 것을 보면 후자의 주장이 옳았습니다.


● 개발과 성장의 중단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제1세계가 제3세계에 근대화 교리를 팔면서 “너희들도 우리처럼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달콤한 말을 했지만 지금 제3세계가 그렇게 됐습니까? 안됐지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1세계는 제3세계를 식민화했는데 제3세계는 식민지가 없잖아요. 생태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인류가 제1세계처럼 살려면 지구가 두개는 더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식민지로, 하나는 쓰레기 폐기장으로 필요하니까.


● 생태여성주의적 최종 대안, 그리고 그 모델은 있습니까?


반다나 시바는 생태민주주의(Bio-Democracy)를 제시했습니다. 지역단위 생명자치 모델이지요. 지금 제3세계의 굶주림은 서방세계의 패권다툼이 빚은 피해이기도 하지만 농업구조상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자급농들이 농작물 대신 커피나 맥주 원료의 대량생산농으로 바뀌면서 절대빈곤으로 떨어졌습니다. 교묘한 착취지요. 생태계는 소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순환하지요.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자급농은 생태계의 순환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생태(여성)주의적 세계관과 사회구조만이 자연의 회복능력을 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jskim@k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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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홍(1957-2005)

놀라운 열정으로 한국 정치생태학의 기초를 닦고 생태여성론의 틀을 세운 뛰어난 학자이자 좀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회운동가였다.

성균관대학교와 독일 루드비히-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호주 멜번 대학 박사후 과정을 밟으며 존 드라이젝 등 생태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다.

여성환경연대, 생명민회 등 사회운동에 관여했고, 생태사회연구소 소장, 환경사회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2005년 1월 28일 작고할 때까지 대화문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녹색국가와 녹색정치에 대한 연구를 이끌었다.

저서로는 <<생태위기와 녹색의 대안>> 등이 있으며,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의 철학>>, 울리히 벡의 <<정치의 재발견>>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