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咸錫憲 풀어 옮김 -
竝序 予囚北庭 坐一土室 室廣八尺 深可四尋 單扉低小 白簡短窄 下而幽暗 當此夏日 諸氣萃然 雨 四集 浮動牀 時則爲水氣 塗泥半乾 蒸 歷瀾 時則爲土氣 乍晴暴熱 風道四塞 時則爲日氣 陰薪 助長炎虐 時則爲火氣 倉腐寄頓 陳陳逼人 時則爲米氣 竝肩雜遝 腥 垢 時則爲人氣 或 或死屍 或腐鼠 惡氣雜出 時則爲穢氣 疊是數氣 當之者鮮不爲 而予以孱弱 俯仰其間 於 二年矣 是殆有養然致爾 亦安知所養何哉 孟子曰 吾善養吾浩然之氣 彼氣有七 吾氣有一 以一敵七吾何患焉 況浩然者乃天地之正氣也 作正氣歌一首
병서 여수북정 좌일토실 실광팔척 심가사심 단비저소 백간단착 오하이유암 당차하일 제기췌연 우료사집 부동상궤 시즉위수기 도니반건 증구역란 시즉위토기 사청폭열 풍도사색 시즉위일기 첨음신찬 조장염학 시즉위화기 창부기돈 진진핍인 시즉위미기 병견잡답 성조오구 시즉위인기 혹청혼 혹사시 혹부서 오기잡출 시즉위예기 첩시수기 당지자선불위여 이여이잔약 부앙기간 어자이년의 시태유양연치이 역안지소양하재 맹자왈 오선양오호연지기 피기유칠 오기유일 이일적칠오하환언 황호연자내천지지정기야 작정기가일수
내가 북정(北庭)에 갇히우매 한 흙집 속에 앉아 있게 되었다. 그건 넓이가 여덟자, 깊이가 네 발쯤이나 되는데, 낮고 조그마한 문짝에 빛 들어오는 틈도 좁고 짧아 더럽고 어두컴컴한 곳이다. 이 여름날을 당하니 온갖 기운이 모여든다. 장마에 빗물이 사방 모여들어 침상 궤짝이 둥둥 떠다니게 될 때는 물 기운이요, 진흙이 반쯤 말라 찔쩍찔쩍 끓어오를 때는 흙 기운이요, 해만 나면 곧 지지는 듯 뜨거워 바람길이 사방 막힐 때는 햇기운이요, 처마 밑에 밥을 지어 불을 때니 가뜩이나 사나운 더위를 더욱더 돕는 불 기운이요, 쌓인 곡식이 썩어 냄새가 사람을 못견디게 하니 쌀 기운이요, 어깨를 서로 비비며 비좁은 데서 비린내 누린내 땀내 땟내를 서로 피우니 사람 기운, 오줌 똥이라, 시체라, 쥐 썩은 거라, 가지가지의 궂은 냄새가 썩어나니 더러운 기운, 이러한 여러 기운이 겹쳐오니 당하는 사람이 병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체질이 본래 약하고 못난 사람으로 그 사이에서 우러르며 굽으며 이 이태 동안을 왔으니 그 무엇을 기르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럼 그 기르는 것이 무엇일까? 맹자가 말하기를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했다. 저 기운이 일곱이면 내 기운은 하나다. 하나로써 일곱을 막아내니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하물며 그 호연이란 것은 바로 천지의 바른 기운 아닌가? '정기가'(正氣歌) 한 수를 짓는다.
天地有正氣 천지유정기: 하늘 땅에 바른 숨 있어 雜然賦流形 잡연부유형 : 온 가지 흐르는 꼴 지어냈으니 下則爲河嶽 하즉위하악 : 아래선 가람이며 뫼가 되었고, 上則爲日星 상즉위일성:위에선 해요 별이 됐으며 於人曰浩然 어인왈호연 : 사람에서 허허라 부르는 것이 沛乎塞蒼冥 패호색창명 : 누리에 또한 가득 들어찼더라. 皇路當淸夷 황로당청이 : 한길 맑고 번듯할 때는 含和吐明廷 함화토명정 : 화기를 머금어 맑은 뜰에 뱉고 時窮節乃見 시궁절내현 : 때 막히면 굳게 잡은 것 드러나 一一垂丹靑 일일수단청 : 하나하나 역사에 드리웠더라. 在齊太史簡 재제태사간 : 제에 있어서 태사의 글 在晋董狐筆 재진동호필 : 진에 있어서 동호의 붓 在秦張良椎 재진장양추 : 진에 있어서 장양의 뭉둥이 在漢蘇武節 재한소무절 : 한에 있어서 than의 지킴 爲嚴將軍頭 위엄장군두 : 엄장군의 머리가 됐고 爲혜侍中血 위혜시중혈 : 혜시중의 피가 됐으며 爲張수陽齒 위장수양치 : 수양 장순의 이가 됐고 爲顔常山舌 위안상산설 : 상산 안고경의 혀가 됐더라. 或爲遼東帽 혹위요동모 : 혹은 요동의 삿갓 되어 淸操여氷雪 청조여빙설 : 맑은 뜻 얼음 눈을 가다듬었고 或爲出師表 혹위출사표: 혹은 출사표 되어 鬼神泣壯烈 귀신읍장렬 : 그 장렬함, 귀신을 울렸으며 或爲渡江楫 혹위도강즙 : 혹은 강 건너는 뱃대 되어 慷慨呑胡갈 강개탄호갈 : 분한 한숨 오랑캐를 삼켰고 或爲擊賊笏 혹위격적홀 : 혹은 도둑 치는 홀 되어 逆揷頭破裂 역수두파열 : 안된 놈 대가리가 부서졌더라. 是氣所磅박 시기소방박 : 이 숨이 힘차 가득할 때 凜熱萬古存 늠열만고존 : 얼음인 듯 불인 듯 만고에 살았으니 當其貫日月 당기관일월 : 해도 달도 꿰뚫는 마당에 生死安足論 생사안족론 : 살고 죽음 어찌 말이 되느냐. 地維賴以立 지유뢰이립 : 땅 줄 이를 힘입어 섰고 天柱賴以尊 천주뢰이존 : 하늘 기둥 이를 힘입어 높았다. 三綱實係命 삼강실계명 : 삼강이 참으로 여기 목숨을 걸었고 道義爲之根 도의위지근 : 도의가 이로써 뿌리를 삼았더라. 嗟予구陽九 차여구양구 : 슬프다, 내가 어지러운 때 만나 隸也實不力 예야실불력 : 매인 듯 힘 못썼을까? 楚囚纓其冠 초수영기관 : 남쪽의 갇힌 사람 갓에 끈 매고 傳車送窮北 전거송궁북 : 수레에 실려 끝 북에 이르러 보니. 鼎확甘如飴 정확감여이 : 끓는 솥 달기 엿보다 더하건만 求之不可得 구지불가득 : 찾아도 얻을 길이 없구나. 陰房격鬼火 음방격귀화) : 어둔 방에 귀신불만 껌벅거리는데 春院비天黑 춘원비천흑 : 봄 동산 하늘 캄캄에 잠기었구나. 牛驥同一卓 우기동일탁 : 소와 기린 한 마구에 서고 鷄栖鳳凰食 계서봉황식: 닭 봉황에 깃들여 같이 먹다가 一朝蒙霧露 일조몽무로:하루 아침 안개 이슬 맞고 보면 分作溝中瘠 분작구중척 : 도랑 속의 뼈다귀 신세 돼버리니 如此再暑寒 여차재서한 : 이렇듯 두 번 더웠다 춥는 동안 百려自酸易 백려자피역 : 온가지 병 스스로 물러갔구나. 嗟哉沮여場 차재저여장 : 아아, 슬프다. 이 진탕 속이 爲我安樂國 위아안락국 : 나의 즐거운 나라 됐구나. 豈有他繆巧 기유타무교 : 어찌 무슨 잔재주 있어 陰陽不能賊 음양불능적 : 음양이 도둑질 못한 것일까. 顧此耿耿在 고차경경재 : 돌아보아 이 속에 깜박이는 빛 仰視浮雲白 앙시부운백 : 우러러 저기 떠도는 흰 구름 悠悠我心悲 유유아심비 : 끝없는 내 마음의 슬픔 蒼天曷有極 창천갈유극 : 푸른 하늘인들 다하랴만은 哲人日已遠 철인일이원 : 어진 이들 가신 날은 이미 멀어도 典刑在宿昔 전형재숙석 : 그 본 때는 아직 엊그제로다. 風첨展書讀 풍첨전서독 : 처마 밑에 책 펴 읽고 나니 古道照顔色 고도조안색 : 옛길 내 낯을 비쳐주노나.
正氣 : 올바른 정신. 賦 : 주어지는 것. 流形 : 우주 안의 여러 가지 형상, 곧 만물. 浩然 : 한없이 넓음. 허허바다라 할 때의 허허와 같은 뜻. 孟子가 자기는 浩然之氣를 기른다 한 데서 나왔다. 그는 이 氣가 한없이 크고 한없이 굳세어 참으로써 기르면 우주에 들어찬다고 했다. 蒼冥 : 끝없는 누리. 하도 멀어 파랗게(蒼) 어둑어둑하게(冥) 뵈기 때문. 皇路 : 皇세은 크다는 뜻. 세상을 다스려 가는 道. 淸夷 : 淸은 맑음. 夷는 반듯함. 세상이 태평한 때. 含和 : 속에 좋은, 바른 이상을 품음. 明廷 : 밝은 朝廷. 옳게 된 정부. 節 : 忠節, 貞節, 節操. 꼭 지켜야 하는 것. 見 : 音은 현. 나타남. 丹靑 : 아마 汗靑을 잘못 쓴 것. 丹靑은 물감, 그림. 汗靑은 옛날 종이 없던 시절 기록을 할 때는 대나무를 쪼개 불에 구워 기름을 뺀 다음에 그 위에 글을 썼다. 거기서 나와서 歷史라는 뜻. 太史簡 : 太史는 역사 기록하는 관리. 簡은 글. 대쪽에 썼기 때문에 竹 아래 썼다. 齊나라 崔抒가 임금을 죽이고 쿠데타를 했을 때 당시의 太史官이 겁내지 않고 '崔抒弑其君'이라 썼다. 崔抒가 노해서 그를 죽였다. 그 동생이 다시 '崔抒弑其君'이라 썼다. 또 그를 죽였다. 당시 한 늙은 선비가 있어 그 소식을 듣고 분해서 자기가 다시 쓰려 조정으로 들어가는 길에 太史官의 둘째 동생을 만났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묻는 말에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네 형들의 뒤를 이어 쓰려고 들어간다" 하니 그 동생 말이 "그렇지 않아도 제가 다시 쓰려 가던 참입니다" 했다. 董狐筆 : 董狐도 晋의 史官. 그때 趙盾이 국무총리였는데, 趙穿이란 자가 임금을 죽였을 때 董狐가 '趙盾弑其君'이라 썼다. 趙盾이 그것을 보고 穿이 했는데 왜 내가 했다고 썼느냐 책망하니 董狐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국무총리 자리에 있어 그런 일이 났는데 그 일을 조사도 아니하고 그 사람이 아직 국경 안에 있으니 그것이 당신이 한 일 아니냐 했다. 이런 것이 春秋筆法이라는 것. 張良椎 : 사실은 검도령의 椎라 해야 옳다. 椎는 뭉둥이. 秦始皇이 폭력으로 六國을 멸망시키고 天下를 얻었다. 망한 나라들 중에 韓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 대대로 재상으로 내려오는 집안에 張良이란 젊은 선비가 있었다. 나라 회복할 뜻을 품고 우리나라에 滄海力士 검도령(黎道令)이라는 사람이 의기가 높고 힘이 장사여서, 큰 뭉둥이를 잘 쓴단 말을 듣고 찾아가 청해서 승낙을 받고, 같이 博浪沙 모래밭에 굴을 파고 숨어서때마침 그리 지나가는 始皇을 쳐 죽일 계획을 꾸몄다. 과연 始皇의 행렬이 왔다. 검도령은 달려들어 그 수레를 내려갈겼다. 그러나 수레는 부서졌지만 시황은 그 안에 없었다. 본래 시황이 그런 위험을 짐작하고 어디 나갈 때마다 앞에 빈 수레를 세우고 자기는 뒤에 숨어 있곤 하는 것을 몰랐었다.張良은 도망가고 검도령만 잡혔다. 누가 시켰느냐 악형을 해도 종시 말하지 않고 대장부가 세상에 났다가 천하에 옳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한번 시원히 풀자는 것이지 어찌 누구의 시킴을 받겠느냐고 책망을 하다가 죽었다. 張良은 그후 黃石公이라는 스승을 만나 공부를 하고 마침내 漢高祖를 도와 秦을 멸하고 천하를 건졌다. 蘇武節 : 漢나라 때 젊은 청년으로 匈奴에 使臣으로 갔다가 항복하라 권하는데도 듣지 않고 시베리아로 유배 보냄을 입어 19년간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漢나라를 저버리지 않고 지켰다. 嚴將軍頭 : 三國時代의 유명한장군 嚴顔의 이야기. 싸우다 張飛한테 잡혔는데 항복하라 권하니 "나는 斷頭將軍(대가리 잘린 장군) 있단 말은 들었어도 降將軍 있단 말은 못들었다" 했다. 대가리는 잘려도 항복은 아니한다는 뜻. 侍中血 : 晋惠帝 때의 侍中벼슬 하던 紹의 이야기. 난리가 나서 적군에게 몰려 급해졌다. 적군이 칼을 들어 임금을 침에 紹가 몸을 내대어 그 칼을 받고 죽음으로 임금을 구했다. 난리가 평정되고 궁에 돌아옴에 임금 옷자락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신하들이 벗어 빨자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니다. 그것이 侍中의 피다. 어찌 그것을 빨겠느냐"했다. 張 陽齒 : 唐나라 安祿山 난리 때 雎陽고을 태수 張巡의 이야기. 싸움할 때 분을 못참아 이를 부득부득 갈아서 이가 다 부스러졌다. 싸우다가 군사가 적에게 패해서 잡혔다. 항복하라 권해도 꾸짖고 아니 들음에 祿山이 노해서 "네가 싸울 때 이를 너무 갈아 이가 없다는데 어디 보자" 하고 칼로 입을 도리고 보니 정말 이빨이 몇 개 아니됐다. 顔常山舌 :역시 安祿山 난 때의 常山 太守 顔 卿의 이야기. 이로운 성을 지키다 못해 무너져 잡혔다. 항복하라 권하니 노해 꾸짖다가 제 혀로 혀를 깨물고 저항했다. 遼東帽 : 魏 明帝 때의 선비 智寧의 이야기. 임금이 불러도 아니 나가고 遼東 땅에서 천한 농민들 사이에 묻혀 살며, 농민의 삿갓을 쓰고 손수 농사지어 먹고 살았다. 出師表 : 유명한 諸葛亮의 이야기. 천하 형편이 어지러워 南陽에서 농사하며 살려 했는데 劉備가 세 번씩이나 그의 초막을 찾아온 성의에 감격해 성공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나서서 天下를 건져보려 애를 썼다. 備가 죽고 그 아들이 이어섯으나 어질지 못했다. 그래도 낙심 않고 忠誠을 다하며 天下統一의 큰 일을 해보려 했다. 出師는 군사를 내자는 뜻. 表는 글. 두 번 했기 때문에 前出師表, 後出師表로 불린다. 그 글을 보면 간절히 나라 일을 생각하는 그 뜻이 구절마다 나타나 있어 보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예로부터 出師表를 읽고 울지 않는 놈은 사람이 아니라 했다. 渡江楫 : 晋 때 祖狄의 일. 中原에 난리난 것을 평정하려 나서 강을 건너는데, 뱃대를 두들기며 맹세를 했다는 데서 나온 말. 胡? : 오랑캐. 擊賊笏 : 唐 德宗 때 段秀實의 일. 朱 란 자가 反하려고 여러 사람을 위협함에 秀實이 분개해서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미친 도둑아. 네 놈을 베어 만조각을 내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하고, 쥐었던 笏을 들어 그 머리를 때려 피가 땅에 흘렀다. 秀實은 마침내 朱 의 무리에 잡혀 죽임을 입었다. 笏 : 옛날에 벼슬아치들이 손에 들고 있어 수첩 모양으로 쓰던 나무 조각. 磅 : 그득 들어참. 地維 : 옛 사람들은 땅이 네 귀에 붙들어맨 줄이 있어 떠나가지 않고 있다 믿었다. 維는 그 밧줄. 天柱 : 하늘은 버티는 기둥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三綱 : 근본이 되는 세가지 도덕. 君은 臣의 綱, 父는 子의 綱, 夫는 婦의 綱. 綱은 그물의 벼리. 陽九 : 어지러운 시대. 隸也 : 어디 붙어 있는, 종인 듯. 楚囚 : 楚는 옛날 중국 남쪽에 있던 나라. 그래서 남쪽이라는 뜻. 囚는 죄수, 포로. 傳車 : 파발 수레. 우편 차. 鼎 : 큰 솥. 옛날 사형을 할 때 큰 솥에 기름을 끓이고 그 속에 집어던져 죽였다. 陰房 : 음침한 감옥 방. 春院 : 院은 동산. 牛驥 : 소는 둔한 짐승, 驥는 천리마. 잘난 놈 못난 놈이 같이 있단 말. 天祥이 자기를 驥에 비하고 아무 생각 없이 죄짓다 잡혀온 雜犯들을 소로 비했다. 수양의 있고 없음을 말함. 鷄栖鳳凰 : 이것도 같은 뜻. 닭과 봉황이 함께 있다. 分作 : 分은 분수. 그런 신세가 된다는 뜻. 瘠 : 죽은 뼈다귀. 百 : 는 궂은 일. 가지가지 궂은 일. 酸易 : 두려워하여 물러감. 沮 場 : 물 많고 질척질척한 곳. 繆巧 : 교묘하게 꿰매는 재주. 陰陽 : 천지 음양의 기운으로 병이 낫는다. 典刑 : 刑은 型과 같다. 틀. 모범. 宿昔 : 엊그제. 古道 : 예로부터 변함 없이 있는 진리.
문천상(文天祥)은 송(宋)이 원(元)한테 망하는 시절에 났던 선비다. 망한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잡혀 포로가 되어 북경으로 끌려갔다. 원나라 세조(世祖)는 그 사람의 잘나고 의기 높은 것을 보고 아껴 쓸까 해서 항복하기를 권했으나 종내 듣지 않고 버티다가, 갇혀 있은 지 두 해 만에 시시(柴市)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이 노래는 옥 속에 갇혀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노래라기보다는 중국 수천 년 역사의 등뼈라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감동 아니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읽으면 한 인물의 위대함이 나타나는 것 아니라 전중국 민족의 정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중국이 무엇으로 중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문천상은 하나의 충의의 선비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그 자신의 말대로, 그는 몸이 반드시 장사였던 것도 아니요, 군인으로 훈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적은 군사를 가지고 용감히 싸웠고 혹독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안락국(安樂國)이라 하면서 나중에 태연히 죽어갔는데, 그 놀라운 힘이 어디서 났느냐 하면, 그 속에 품은 정신과 믿음에 있었다. 그는 스스로 '고차경경재 앙시부운백(顧此耿耿在 仰視浮雲白)이라 했다. 얼마나 좋은 자초상(自肖像)인가? 찾아봐도 아무 별것이 없고, 다만 있는 듯 없는 듯 깜빡거리는 빛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그 빛 하나가 속에 있을 때 사람은 아무 두려운 것도 걱정도 없다. 그 지경을 말해서 하늘에 뜬 흰 구름 같다고 했다. 희다 할 때 그 마음의 맑은 것을 말한 것이요, 떴다고 할 때 자유자재 아무 걸릴 것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진리를 지켜라,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놓아주리라"했다. 사람이 힘이 없는 것은 자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자유는 외물(外物)의 구속을 아니 받는 것보다 스스로 내 속에 있는 악념(惡念), 사심(邪心)에서 벗어날 때에 있다. 그러므로 노자가 승입자(勝入者)는 유력하고 자승자(自勝者)는 강(强)이라 했다. 남을 이기면 단순히 힘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를 이기면 그게 정말 강자다. 자승했기 때문에 하늘가에서 하늘가로 왕래하는 흰구름같이 자유로왔고, 그런 자유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든 유혹도 물리칠 수 있었고, 모든 위협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그는 서문에서 스스로 기르는 것이 있노라 했다. 그러고 보면 그것은 일조일석에 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맹자의 말을 끌어서 그가 말한 호연지기가 곧 자기의 평소 길러오는 바라 하는 것을 보면, 문천상 속에는 맹자가 또 있다. 그러나 이름은 맹자 하나 뿐이지만 어찌 맹자 하나만일까? 고금의 모든 산 혼들이 다 있다. 이 우주를 꿰뚫는 정신이 인류를 낳았고, 문명을 낳았고, 모든 종교가 성현을 낳았다. 세상이 늘 악한 듯하지만 그것을 구원하는 힘은 이 정신의 화신(化身)으로 난 인물들이 희생으로 바치는 힘 때문이다. 문천상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태연히 옛 글을 펴 읽고 고도(古道)가 제 얼굴을 비쳐줌을 느꼈다. 영원히 진리와 얼굴을 맞대인 것이다.
< 함석헌전집 제20권 '씨 의 옛글풀이' PP.270~277 > <씨알의소리사, 씨알의소리1972년2.3월호,통권제9호.'文天祥의 正氣歌' PP.71~78 > 자료제공; 한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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