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반생명적인 인명경시(人命輕視)와 환경파괴(環境破壞)등이 우리 사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유지 본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나를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류영모의 생명1)체험
류영모의 일생은 전도자로 말씀 사룸이 그의 생명이다. 류영모는 하느님께 뚫린 마음과 사람에게 깊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속알은 정직이요, 그의 말씀은 진실이다. 그는 '구삼(九三)'2)을 자기의 운명으로 생각했고 생명으로 알고 열심히 살았다. 선생은 67세에 세상을 떠나기로 생각하고 그가 아끼던 김교신이 죽은 다음해 4월25일 다음날을 자기의 죽는날로 정했다. 그 이후 선생은 더욱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다석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석일지 속에는 시조형식, 한시형식으로 3000수가 있고, 자신의 깊은 생각과 높은 뜻을 한글로 풀이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사뭇 독특하다.3)
류영모의 생명체험은 그의 독특한 언어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선생은 52세 되던 1월 4일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부르신지 38년만에 믿음에 드러감"이란 글을 내었다. 이것을 생명의 첫번 경험으로 계소리라고 했다. 그 후 14년간 '가온소리'가 계속되고 66세가 되는 때에 '제소리'가 시작되었다. '계소리'는 선생의 우주관이요, '가온소리'는 선생의 세계관이요, '제소리'는 선생의 인생관이다. '계소리'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가온소리'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제소리'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고 할 수 있다. 천명지위성은 무극이태극이고, 솔성지위도란 일음일양지위도이며 바로 이것이 수도지위교다. '태초부터 함께 계심'이 계소리요, '올끈이로 생각이오니'가 가온소리요, '온끝까지 말씀사름'이 제소리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도에 통하여 생명을 나타낼 수 있다. 한글로는 ㅁ, ㅂ, ㅍ. 이다. 땅에서 물이 올라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동화작용을 일으켜 풀이 된다. 사람은 하늘과 땅이 합쳐진 생명의 仁이다. 진리와 도가 통하여 생명이 된다.
류영모는 올끈이4)라고 해서 일일 일식을 시작했다. 일식(一食)과 명상(一坐)은 류영모 선생이 죽기까지 실천한 것이다. 인심을 줄이는 것이 일식이요 도심을 늘리는 것이 명상이다. 인심과 도심의 모순을 통일 하는 것이 유정유일 윤집궐중 즉 자중정(自中正)이다. 이것이 가온소리이다. 가온소리는 십자가의 도로서 매일 실천하는 계율(戒律)이다. 그러나 계율이라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해야 한다. 일식 일좌 역시 무위자연으로 해야 함을 선생은 말하고 있다. 이것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가온찌기 그저 제게로부터'5)이다
또한 선생님에 의하면 요한복음 17장 3절의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셨다. 하느님을 '계소리', 그리스도를 '가온소리', 계소리와 가온소리 후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 '제소리'다. 이렇듯 말씀이 생명이기에 말씀을 안먹을 수 없다. 먹는 문제는 절대지만 남녀문제는 상대요, 생각하는 것은 절대지만 가르치는 것은 상대다. 절대없이 상대 없고 상대 없이 절대 없다. 그래서 류선생님은 52세에 해혼(解婚)식을 하셨다.
선생님은 맹자의 사상(四象) "일음일양(一陰一陽), 춘하추동(春夏秋冬), 천지수화(天地水火),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성(性)이라 할 수 있는 인의예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바탈(性)은 감성(感性), 오성(悟性). 이성(理性), 영성(靈性)이다 이것을 현대적 언어로 하면 예술, 과학, 철학,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류영모 선생은 이것을 '환빛', '펴참', '얼뜻', '숨김'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은 이에따라 인(仁)의 삶을 '치키티피히'6)라고하셨다. 선생은 인간의 바탈을 꼬끼리7)로 비유하여 설명하시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숨김8)을 강조하셨는데 숨김(기체생명으로서 보는 생명)은 숨은 생명 김은 영원하여 영원한 생명도 되고, 숨은 은밀 김은 은밀히 숨어 계시는 없이계시는 님도 된다. 또한 숨김을 독수리9)에 비유하여 설명하시기도 한다. 독수리의 몸은 뼈에 바람이 들어가 허공과 하나되어 며칠이라도 떠 있을 수 있는 것을 선생은 빈탕10)과 하나가 되어서 노닐게 된다고 보았다.
2. 생명의 의미
류영모 선생은 생명을 無常生 非常命 生必無常이요, 命是非常이다. 라고 하셨다. 언제나 삶이 덧없어도 목숨 같이만 이라고 하셨다. 목숨은 지성불식(至誠不息)이다. 자면서도 숨을 쉬고 깨면서도 숨을 쉰다. 마찬가지로 말숨은 살아서도 말숨 쉬고 죽어서도 말숨 쉰다. 이 말숨은 생사를 초월하고 유·무의식도 또한 초월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살다 죽는 것은 멸망이지 생명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백년을 산다고 해도 3만6천일 숨은 9억번을 쉬고 끝이난다. 사람이 숨을 잘쉬는 것 호흡을 잘 하는 것이 생명이다. 이 호흡은 마치 문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으로 문은 잘 맞고 돌쩌귀는 잘 돌아야 한다. 여기서 잘 돌아야 하는 것을 중(中)이라 했고, 잘 맞는 것을 정(正)이라 했다. 이런 생명있는 사람은 나고 죽어가며 문화로 꽃피우고 있다.
류영모는 중정(中正)을 팽이에 비유한다. 중심을 잘 잡아 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쓰러져 무너지고 만다. 언제까지나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상처중(知常處中)하기 위해서는 채찍을 쳐서 돌려야 한다. 하느님의 채찍이 바로 도(道)라고 하며, 자신이 스스로 바로잡는 것은 수신(修身)이며, 자치(自治)이고, 자유(自由)이다.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지상처중(知常處中)이다. 지상처중은 주인이요 언제나 세상을 이기면 그곳이 천국이다. 생명은 자기를 알고 자기를 이기는 것이 인간생명이다. 또한 생명은 지혜와 사랑과 정직과 진실이다. 생명은 무비(無非)이다. 무는 하늘처럼 큰 것이요, 비는 땅처럼 강한 것이다. 무는 사랑이요, 비는 지혜이다. 정직은 의(義)요, 진실은 인(仁)이다. 여기서 진실은 생(生)이요, 정직은 사(死)이다.
류영모선생의 생명(生命)이란 한시가 있어 소개한다.
생명(生命) 天命是性命 천명은 내 속에 들어와 성명이 되고 이것은 하늘에서 와서 땅을 이기고 정신을 일깨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생명이다.11)
3. 생명의 내용
류영모 선생은 숨을 우선 목숨과 말숨으로 나눈다. 그러나 목숨과 말숨에는 얼숨12)이 더해진다. 목숨은 기(氣)가 통하고, 말숨은 이(理)가 통하고, 얼숨은 신(神)이 통한다. 인간의 목적은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인데 하루가 끝나면 잠자는 숨이요, 인생이 끝나면 d안식의 숨이며, 세상이 끝나면 믿음의 숨이다. 이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내가 바라는 숨은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숨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은 매일같이 냉수마찰과 심호흡을 하고 맨손체조와 몸 전체를 마찰한다. 이것을 통해서 선생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꽉 차있는 지강지대(至剛至大)의 기체가 되어야 언제나 쉬지 않고 생각의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하셨다. 즉 육체를 강하게 하는 목숨이 건강해야 생각의 숨인 이치의 숨이 말숨을 깨치게 할 것이다. 말숨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숨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고 생각해야 성(誠)에 도달 할 수 있다. 성에 도달하여 깨어나면 그 때부터 얼숨을 쉬게 된다. 얼숨을 도(道)라고 하고 신통(神通)이라고 하고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하고 일음일양이라고 한다. 류선생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일식, 일언, 일좌, 일인'이었다. 이것이 얼숨의 삶이었으며, 얼숨을 통해서 하루살이를 살았다. 어제도 아닌 내일도 아닌 오늘 하루를 살았다. 하루살이 인생은 죽음으로부터다 라고 하셨다. 인생이 진짜로 깨어나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은 '주구음', 주(主)님과 그리스도를 움켜잡는 일이다. 죽음의 과정을 숫자로 표현하였다. "10, 20, 30, 40, 50, 60, 70", "열려 슴을 설어 마라 쉬여 이여 쉬여 이루리라"라고 말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숨을 쉬고 천명의 숨을 쉬는 한말씀이 숨김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4. 생명의 보기
류영모 선생은 한글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4자만 쓰고있는 지금의 한글을 28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글은 변증법적 발전으로 된 글자로 'ㅁ ㅂ ㅍ' '물, 불, 풀', 'ㅅ ㅈ ㅊ' '삶, 잠, 참'에 지금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 ㅎ ㅎ'등을 다시 변증법적 구조에 맞추어 넣어야 한다고 한다.한글의 근본은 'ㅡ, ㅣ, •'로 'ㅡ'는 세상 'ㅣ'는 세상을 꿰뚫고 곧장 올라가는 정직 고디 신(神), '?'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평등과 독립과 박애의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우리의 자음(子音)을 하느님의 한나신 아들 독생자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보혈의 꽃피를 흘리는 구원의 메시지로 보았다.
기니 그리스도께서
모음(母音)으로는 우주의 어머니이신 한우님이 인류를 부르는 소리라 하였다.
ㅏ ㅑ 아해드아
이와같은 하느님 아버지 마음을 그린 모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자음과 모음을 아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계소리와 제소리로 합쳐진 한글은 그대로 바른 소리(正音)이요 가온소리(中音)이다. 중정(中正)이 생명의 핵심이요 한글은 생명의 글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또한 한글 속에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이 있다고 생각했다.13) 그래서 한민족의 사명은 한글을 세계화 하는 일이다. 한글 속에 숨어있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거룩한 빛을 찾아내어 인류를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사명이며, 우리 한글의 구조 속에 인류를 살릴 수 있는 빛과 힘이 있기에 우리의 한글은 산 글이요 영원한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말씀은 존재의 집이다. 한글은 존재의 집이요 진리의 빛이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을 살펴보았다. 선생의 큰 뜻을 우리가 헤아려 알기는 너무나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는 그의 생명에 대한 생각들은 너무나도 각인이 되어 그의 생각을 좇아갈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것이고 영원한 생명은 포괄적인 숨쉼이며, 숨쉼을 잘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생명사상을 우리의 한글과 연과지어 생각했던 선생의 사상은 너무나도 놀랍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난해한 그의 글들을 이해하기란 역시 버거웠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 가능한 글들로 나온 것이 천만 다행이기도 하다.
-----------------
1) 성서에서 생명(生命, vita)에 해당하는 개념은 히브리어 '하임( )'과 그리스어 '조에( )'이다. 구약의 하임은 다양하게 작용하는 생명력의 정수로서 신체적이고 기관적 생명을 뜻한다. 신약성서의 조에는 본래 동물과 인간, 그리고 식물등 유기체의 신체적 생동성을 뜻한다.심상태, {생명연구(물리적 환경과 생명에 대한 신학적 고찰)}, (생명문화총서2집), 생명문화연구소, 1994, p.19.
2) 구삼이란 {주역}, 건괘, 93의 종일건건(終日乾乾)이다.
3) ㅡ l ? ? l o 예?예?예, 예: 옛! 가 까 와 가 까 오 니!
4) 이끗 이끗이 이끗이 나는 영원한 생명인 이의 영원한 생명의 한끝이다.
5) 가온찌기 (講) 心線路 찌기 가온찌기는 진리의 자각이다.
6) '치키티피히'란 치고 키우고 티우고 피우고 문한해져서 빈탕한데를 체우는 것으로 즉 가르치는 것이다.
7) 코기리 사람이란 코끼리 보내실제
8) "숨ㅅ김을 받고 얼뜻을 맡고 은 사람아 제 바탈을 바로 타고 다면 환빛을 에서만 보며 펴참을 바람에서나 보고 잇스랴." "하늘은 너의 가멸! 한우님은 우리 아 지! 한늘을 희어 펴서 얼뜻을 채려 듦이 참 아닐랴. 참 챔으로 참을 볼 것 아니랴. 누리를 거짓이라 말나, 네가 참을 찾지 안는 것이 누리를 거짓되게 뿐이니라." 가슴에 숨김을 받고 사람은 배에 얼뜻을 맡고 가는 것이 사람이다. 숨김이라는 생명과 얼뜻이라는 사명을 가온찍이 합일한 것이 사람이다. 생명사명의 합일이 천명이다. 천명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자기의 본성, 지성,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바로 타고 머리로 깊이 생각하며 간다면 천명과 성이 하나가 될 수 있다. 태양과 씨알이 하나가 되듯 바탈이 터서 나무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생명의 잎과 바탈의 꽃과 얼뜻의 열매를 열리게 할 수 있다. 싹이 터서 가온찍이 나무가 된다면 환빛을 해에서만 받고 펴참을 바람에서만 받겠느냐. 환빛을 해에서 받고 꽃을 피우고 펴참을 바람에서 받고 잎을 무성하게 하겠느냐. 이하 줄임
9) 독수리는 무서운 눈빛으로 전체를 뚫고 감시하면서 땅을 기는 토끼나 거북이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독수리의 눈이다. 독수리의 발은 아무리 험한 기암괴석도 움켜잡으념 놓치지 않는다. 날개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다. 그리고 독수리의 몸은 뼈 속에 바람이 들어 허공과 하나가 되어 며칠이라도 떠 있으 수가 잇다. 몸은 성(性), 눈은 진(眞), 발은 선(善), 날개는 미(美)다. 진은 때어남이요, 선은 일어섬이고, 미는 날아감이다. 통일과 독립과 자유를 영체의 작용으로 본 것이다.
10) "빈탕(空) 한 (與) 맞혀(享) 노리(富)"
11) 김흥호, {다석일지공부4},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161.
12) 얼숨은 성령으로 말할 수 있다. 성령은 구약성서의 루하( )란 단어로 희랍어로는 프뉴마( ) 라틴어로(spiritus) 게르만어로(Geist)로 표현된다. 그러나 희랍어나 라틴어나 영어나 독일어가 말하는 영은 물질과 영이 대립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루하( )는 그 의미가 너무도 다양하지만 인간과 동물 속에 있는 생영의 숨과 생명의 힘을 뜻한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의 사건'으로 몰트만은 이해한다.
13) 께케 깨캐 깨오 캐오 께올케 올나갈이들 들을 말슴 김흥호, {다석일지공부2}, (김흥호전집 류영모 명상록풀이), 2001. pp.25-26.
한성 신학대학 졸업(93학번) 한신대학 대학원 신학과 수료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
'종교사상 이야기 > 류영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석 유영모를 다시 본다(중앙일보 2001년) (0) | 2006.12.15 |
---|---|
다석 류영모를 통해 본 생명으로서의 인간이해(장평수0 (0) | 2006.12.15 |
다석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 연구(윤동주) (0) | 2006.12.15 |
류영모의 영성(홍철화) (0) | 2006.12.15 |
늙은 류영모 선생님(김흥호) (0) | 2006.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