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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다석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 연구(윤동주)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5.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다석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 연구

- 윤 동 주 - 


 
제 1 장. 서론

                                                      

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지금 내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연구 논문은 다석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이다. 류영모는 체험하고 연구한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가 이해한 하나님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없이 계신 하나님』이다.

『없이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님의 실재를 말한다. 우리들의 “있음”에 너무 치우쳐 하나님을 우리의 의식과 사상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많았다. 그러나 류영모는 “없음” 속에 “계신” 하나님을 찾으려 했고,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며, 그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하나님을 『없이 계신 하나님』으로 정의 내릴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상황을 직접 체험한 체험과, 자신이 공부하고 연구했던 많은 동양 경전들과 성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체험과 경전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정통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진 안았지만 상당히 신학적인 주제를 나름대로 풀고 있으며, 정통신학에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많은 부분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류영모의 『없이 계신 하나님』을 주제로 잡고 신학적인 접근을 하고자 한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한국에는 다종교의 문화와 사상이 성장 발전되어 왔다. 그 속에서 기독교는 100여년 전에 이 땅에 건너와서 우리나라 한국민의 심성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세계에서 유래 없는 성장을 했다. 그러나 지금 그 성장의 결과는 무엇인가? 기독교 교회의 성장이 성숙한 기독교인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성장한 기독교 교회가 사회의 변화에 참여하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했는가?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한국의 신학은 어떠한가? 각 시대마다 위대한 서구 신학과 교회가 수행한 책임적 응답과, 매 시대를 위한 복음의 신학적 해석이 있었듯이 한국의 신학은 불가능한가? 또한 한국의 기독교는 그 동안 한국의 다종교 문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세계의 흐름에 나타나는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 기독교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

이와 같은 신앙과 신학의 고민과 문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국에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4의 큰 비율을 차지한다고 기독교인들은 자부하고 자랑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적인 성장은 분명 한국 교회와 사회 속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성장이 현대의 인터넷 세계와 물질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며 전도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틸리히는 “신학은 두개의 극, 즉 그것의 기초가 되는 영원한 진리와 이 영원한 진리가 받아 들여져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신학적 체계는 이 두 가지 요구를 완벽히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신학은 진리 요소를 희생시키던가, 아니면 그 상황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던가”라고 하면서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의 체계적인 해석이다”라고 말하며 진리와 상황 사이에 체계적인 신학적 해석을 내리고 있다.

신학이란 틸리히의 말처럼 그 시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며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해석하여 알아내고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본다. 이러한 신학적 기초 위에서 우리는 교회에서 선포와 교육 그리고 선교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교회 교육적 측면에서 윤응진은 그의 책 “비판적 기독교 교육”을 통해 기독교 교육은 그 동안 기독교의 종교체제를 유지, 확장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보았으며, 신앙의 ‘탈 미국화’를 통해 미국의 종교적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성서적 신앙을 수용하여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을 우리는 한국의 독특한 민중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기독교인은 민중신학 하면 단지 1970년대 군부정치 시대의 저항신학으로만 생각하고 그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는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진정 그러한가? 1970년대 안병무와 많은 민중 신학자들과 민중교회의 노력이 지금은 어찌되었는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민중 신학의 사상은 아직 우리 곁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상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런 민중신학의 뿌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석 류영모는 민중을 씨이라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농부에 비유해 농부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글 “씨의 소리 듣잡고뎌”라는 글 속에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류영모는 자신의 삶을 농부의 삶과 같이 살았다. 그는 일일일식(一日一食)과 일언(一言)과 일좌(一座)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런 삶을 YMCA 연경반에서 가르치고 실천하였다. 그의 사상과 실천에 감동 받아 그의 삶을 따라 살아갔던 제자 함석헌을 통해 류영모의 씨 사상은 꽃이 피었다.

류영모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던 시대의 인물로 기독교를 그만의 동양적 특히 유(儒)・불(佛)・도(道)의 종교적 이해 가운데서 받아들였고, 당시에 세계와 한국에서의 현실 상황을 자신의 사상에 적용하여 기독교적으로도 풀었던 사람이다. 현재 다종교문화와 종교다원주의의 시대에 우리에게 류영모의 사상은 진정 다원적이다. 그에게 종교는 오직 하나님 중심의 종교였다. 현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 중심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류영모는 동양종교들과 기독교의 대화문제를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해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했다.

또한 우리가 위에서 문제로 제시한 많은 것들에 류영모는 자신만의 언어와 사상으로 답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사회와 사상의 굶주림에 서구의 신학은 배불려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신학 하는 신학도로서 한국의 새로운 신학의 정립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다석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를 연구해 보고자한다.


2. 연구범위와 전개방법


위의 연구목적에서 다석 류영모의 사상을 연구하고자 하는 나의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보니 류영모가 남기신 글들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에 산처럼 넘어야할 문제는 류영모가 써놓은 글을 읽기란 한국 어린아이가 옛날에나 쓰였던 라틴어를 읽는 것과 같다. 그렇다 보니 류영모의 글을 바로 접하여 공부한다면 소경이 코끼리 만지기 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류영모의 제자들이 그의 글을 해석 정리하여 최근에 많은 류영모의 글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1차 자료를 통한 연구는 아닐지라도 2차 자료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글들을 활용하여 연구하였다. 그리고 류영모의 사상이 동양종교(유(儒)・불(佛)・도(道)) 사상과 많은 관련이 되어 있어 각 종교의 경전과 관련된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그 자료들은 개론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정도이다. 또한 기독교 신학의 논문인한 기독교 신학이 없으면 단지 종교학에서 나오는 논문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 정통신학 학자들의 이론을 류영모의 사상과 대조시켜 살펴보았다.

연구의 범위는 다양한 신학적 범위가 있지만 신론(神論), 즉 하나님 이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류영모의 글과 사상적 범위 역시 하나님 이해 부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구의 전개 방법은 첫째, 다석 류영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그리고 그의 글과 사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생애를 안다면 그의 사상적 배경과 그의 글을 읽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류영모의 생애부분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다섯단계로 나눈 것은 그의 사상적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나 자신이 임의적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둘째,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를 연구함에 있어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유(儒)・불(佛)・도(道)의 종교적 사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종교 사상들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각 종교의 개론적인 사상과 류영모의 종교적 사상을 대비시킬 것이다.

셋째, 정통신학자들이 이해한 하나님에 대한 연구결과와 류영모가 이해한 기독교적 하나님 이해를 대조하여 살펴볼 것이며, 여기에 류영모가 이해한 『없이 계신 하나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류영모가 이해한 하나님 이해를 가지고 기독교 신학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나의 고민으로 결론을 내릴것이다.

내 논문에서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란 이름의 문제이다. 류영모는 ‘하나님’을 ‘하나님’, ‘하느님’, ‘한님’, ‘한아님’, ‘한나님’, ‘한웋님’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렇게 다양하게 하나님에 대한 표기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사용할 것인가가 나의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하나님’으로 통일해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인용문 중간 중간에 ‘한아님’이나 ‘아님’이란 표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용문으로서 그대로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제 2 장. 다석 류영모의 생애

                                                                                                                                                                           

스스로 비주류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은 평생을 자신이 세워 놓은 사상과 뜻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앙과 사상은 그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한다면 아마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의 살아온 그림자는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로 대별된다.


1. 류영모의 어린 시절


류영모는 1890년 3월 13일 서울 남대문 수각교(水閣橋) 근처에서 아버지 류명근(柳明根)과 어머니 김완전(金完全)사이에서 태어났다. 류영모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나는 참나(眞我)가 아닙니다. 얼(靈)이 나입니다. 몸의 나는 흙덩어리요 재(灰) 한줌입니다. 그러나 얼 사람은 한없이 강하고 한없이 큽니다. 놓아두면 우주에 꽉 차고 움켜잡으면 가슴 세치(三寸)에 들어서는 이것이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류영모는 자신의 출생까지도 신앙적인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류영모는 태어나면서부터 기괴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그의 형제가 10명 이었으나 모두 죽고 형제는 영모와 영묵 단 둘 뿐이라는 데서 알 수 있다. 류영모는 “내 형제는 한 10여명 있었는데 둘 남고 다 죽었어요.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복된지 지금 살아 있는 이 내가 복된지 누가 알겠어요.”라며 죽은 형제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류영모는 아버지 류명근으로부터 5살 때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웠다. 그는 천자문을 거꾸로 외울 만큼 천재적인 암기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6살 때 서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통감(痛鑑)을 배웠다. 그러나 서당에서의 매맞는 일이 싫어서 서당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10살 때인 1900년 관립 수하동(水下洞) 소학교에 다녔다. 이곳에서 그는 서당에서 배우지 못했던 산수를 배웠고 산수(算數)에 큰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그는 수(數)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자주 말했으며, 수(數)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 표현이 28세 되던 1918년 1월 13일부터 자신의 산 날수를 셈하기 시작했으며, 총 33,200일을 살았다.

12살 때 소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서당에 다니게 되었다. 소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에 박영호는 선생이 12살의 나이에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는 소학교에 대한 항일(抗日)의식의 표현이라고 평한다. 서당에서 류영모는 김인수라는 서당 선생으로부터 맹자(孟子)를 3년동안 공부했다. 이때가 처음 종교의 경전을 대한 때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맹자(孟子)를 경전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학문으로 배운 것이다. 그렇지만 후에는 유교의 경전으로 맹자를 대하게 되었으며, 또한 어린 시절 배웠던 맹자(孟子)에서 발췌한 맹자초(孟子抄)를 YMCA에서 가르쳤다. 그의 맹자에 대한 영향은 『다석일지』에 적어 놓고 있다.

류영모는 어린 시절 천자문으로 시작해서 맹자에 이르기까지 유교적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되었다. 이런 유교의 영향은 후에 자신의 사상을 펼칠 때 선행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2. 기독교 신앙과 신학문을 받아들인 청년시절


류영모는 15살 때 서당을 그만두고 경성학당(관립한성일어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동생 영묵과 YMCA에 드나들게 되었다. 이곳에서 신학문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기독교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YMCA에서 류영모는 당시 총무로 있던 삼성(三醒) 김정식(金貞植)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인도로 예수를 믿어 연동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류영모는 “15살 나는 봄에 그때 연동교회와 기독청년회에서 일 보시던 김정식 선생의 권유에 따라 죽은 아우 영묵과 함께 놀기 삼아 간 것이 시작이었어요”라고 당시의 상황을 말하였다.

1907년 류영모는 경신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신학문의 관심이 계속 되었다. 경신학교에서 류영모는 과학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수를 좋아했던 영향이 큰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 오산학교에 과학 선생으로 초빙된 것과, 동경물리학교에 유학 가는 계기도 여기에 있다.

연동교회에 나가던 류영모는 1908년 연동교회 내에서 양반과 천민간의 분열과 다툼이 계속되는 가운데 예수의 가르침만 알뿐 실천이 없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실망하고 1910년 정주 오산학교에 교사로 부임할 때 교회를 떠났다.

1910년 10월 오산학교에 부임한 류영모는 물리, 화학, 천문, 수학 등을 가르쳤으며, 먼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기도와 성경을 가르쳤다. 이런 영향으로 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성경공부와 예배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오산학교 교장이던 남강 이승훈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남강은 산정현(山亭峴) 교회의 한석진 목사의 『십자가의 고난』이란 설교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오산학교도 공식적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꾸려갔다.


3. 믿음의 전기(轉機): 정통신앙을 떠나 비정통 신앙으로


오산학교에서 류영모는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으며, 정통신앙을 떠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톨스토이를 만나게 된 것은 같은 오산학교 선생이었던 이광수가 일본 유학당시 톨스토이 전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톨스토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기성교회를 비판하여 그리스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하였는데 톨스토이의 비판은 단지 외적인 교회의 제도뿐 아닌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해서 교회가 독단적으로 신조만을 강조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영향을 받은 류영모는 22살에 비정통신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류영모는 “나도 15살 입교하고 22살까지 십자가 부르짖는 십자가 신앙이었어요. 톨스토이나 나는 비정통이에요”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교회신앙을 떠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동생 영묵의 죽음이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21세때 19세의 동생이 죽었어요. 동생이 죽었을 때 딱 낙심을 했어요. 그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 완성된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중략)…어째든 이 세상은 상대계니까 일이 자꾸 되어 가는 것이에요. 언제 일이 끝나나 하는 것은 안돼요.”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생의 죽음을 통해서 류영모는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로 끝났다는 것을 부정했고, 성경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류영모는 노자와 불경 등을 읽기 시작했다. 동생의 죽음은 신앙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즉 불경이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속에도 진리가 있으므로 구약성경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종교 다원주의적인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류영모는 22살 일본 동경물리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오산학교를 그만두었다. 일본에서도 그의 신앙적 아버지인 김정식을 동경 YMCA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류영모는 우찌무라간조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류영모는 톨스토이의 영향으로 인해서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던 우찌무라간조와는 더 이상 관계를 갖지 않았다. 우찌무라간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內村이라는 이는 일본 종교사상가로 외국선교사에 반대하여 사도신경의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 본래의 전통을 세웠어요. 나나 톨스토이는 비 정통이에요.”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유학 생황도 접고 귀국하여 세상의 출세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이 되기 위해 금욕주의적 생활을 하게 된다.


4. 류영모의 ‘38년만에 믿음에 들어감’의 신앙체험


류영모는 동생 영묵의 죽음을 계기로 정통신앙에서 비정통신앙으로 옮겼으며, 호암 문일평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비정통의 신앙에서 더욱 진보된 신앙으로 변화되었다. 죽음에 대한 간접적 경험이 그의 걸어오던 신앙의 길을 바꾸어 놓아다. 그는 1939년 문일평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나서 “성서조선”에 그의 글을 올리는 3년 동안의 시기가 그의 마음 돌림의 시기이며 새로운 신앙적 체험과 확신을 얻게 되는 시기가 되었다. 성서 조선에 “문일평 형이 먼저 가시는데”, “결정함이 있으리”, “38년만에 믿음에 들어감”,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그의 신앙적 체험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글 “38년만에 믿음에 들어감”이란 글 속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 주여 오늘날도 그런자 하나이 있습니다. 주께서 저를 38년전 1905년 봄에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래(爾來) 병든 믿음으로 온것이 아닙니까 저는 아버지집에를 혼자 힘으로 드러가려고 하는 가운데 많은 세월을 거저 보낸것 같습니다.”

그리고 1942년 1월4일을 가지신의 중생일로 말하면서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금년 1월4일 (제18925일)새벽에 안해가 치통(齒痛)으로 고(苦)로와 하는 자리 옆에서 빌었읍니다. 낫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기도중에 전허공계(全虛空界)가 마무중(魔霧中)인것을 알고, 저 마무(魔霧)를 페치는 데는 성신 없이는 불가능인 것을 믿었읍니다. 게으름과 족한 줄 모름에서 몸은 사람의 짐이 되고 육(肉)이 병(病)의 보금자리가 된 것을 보옵고 게으름을 제치고 모든 미련(未練)을 떼고, 앞만(뒤는 죽은 것이다)향해 내처서 가야 살 것을 보았습니다. 죽을 것을 지키고 있다가는 죽음에 끊칠 것이오, 뒤 켠 죽을 것을 거두어서 앞의 삶에 양식(糧食)으로 이바지를 하므로만 몸이면 성한 몸, 새 생명을 여는 몸이 될 것을 보았습니다. 제칠 것은 제치고, 떼칠 것은 떼치고, 내칠 대로 내처 가는 이기는 목숨 앞에는 병도 감히 침범(侵犯)치 못할 것이오, 침범된 것도 퇴각격멸(退却擊滅) 할 것으로 믿어 졌습니다.” 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류영모는 요한복음 5장 1-10절에 나타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가 예수를 만나 병 고침을 받는 이야기처럼 류영모는 예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말로 이야기하면 파사일진(破私一進)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의 파사일진의 기쁨에 대한 글을 올렸다.


             믿음에 드러간이의 노래

             나는 실음 없고나,

             인제붙언 실음 없다.

             님이 나를 차지(占領)하사,

             님이 나를 맡으(保管)셨네.

             님이 나를 갖이(所有)셨네.

             몸도 낯도 다 버리네,

             내거라곤 다 버렸다.

             ⌈죽기전에 뭘 할가?⌋도,

             ⌈남의 말은 어찔가?⌋도,

             다 없어진 셈이다.

             새로 삶의 낯으로는

             이 우주(宇宙)가 나타나고,

             모든 행동(行動), 선(線)을 그니,

             만유물질(萬有物質)-느러섯다.

             온세상을 뒤저 봐도, 거죽에는 나 없으니.

             위이무(位而無)인 탈사아(脫私我)되어

             반작! 빛. 요한 1장4절

             님을 대한 낯으로요, 말슴 體(本)한 빛이로다.

             님 뵈옵잔 낯이오, 말씀 읽을 몸이라.

             사랑하실 낯이오, 뜻을 받들 몸이라. 아멘


위의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류영모는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쳤다. 류영모의 기쁨은 나의 생명의 참 임자 되시고 뿌리 되시는 아버지(하나님)를 찾고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고 보니 언니(예수)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가장 으뜸 가는 효자인 예수를 거울(스승)삼아 살고자 하였다. 류영모는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글 속에서 “노자신(老子身)도 아니고 석가심(釋迦心)도 아니고 공자가(孔子家)도 아니고 인자(人子)예수라”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류영모의 체험은 틸리히가 이야기하는 “적극적 측면”의 신비의 계시체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신비체험의 “적극적 측면”은 “존재자체”(Being-itself)를 “존재의 힘”으로서 모든 힘과 창조성의 원천으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근거”와 “힘”, “능력”(power)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서는 신비자는 객관적 대상으로서 인간의 종교적 탐구를 기다리는 수동적 실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능동적이며 “궁극적 관심”을 인간으로 하여금 갖게 하는 주체적 신비이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의 탐구대상이 되는 존재자들(beings)의 본질 현현을 계시하고 말할 수 있다.


5. 금욕적 생활의 실천기


류영모는 일본에서 돌아와 다시 1921년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 시절 류영모는 성경과 톨스토이 그리고 노자와 도덕경, 우찌무라간조까지 여러 사상을 거침없이 가르쳤다. 이때도 역시 편안한 방석보다는 널빤지를 사용하여 꿇어앉아 모든 일을 처리했고, 추운 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였다.

그 이후 류영모는 1928년 서울 YMCA 간사 창주(創柱)) 현동완(玄東完)의 요청으로 연경반(硏經班)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노자(老子), 장자(壯子), 맹자(孟子) 등 옛 성현들의 말씀과 톨스토이, 간디 등의 사상을 소개하고 가르쳤다. 이런 가르침에 있어서 꼭 자신만의 독특한 자세로 꿇어앉아(一座) 그만의 독특한 우리말로 풀어서 가르치는 것(일언, 一言)을 잊지 않았다.

또한 류영모는 농사 짓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산 비봉 아래에 자리를 잡고 여러 과실수와 짐승들을 길렀다. 류영모는 “사람이 땅의 농사를 힘써 짓는 것은 결국 맘의 농사를 짓기 위함인데 맘의 농사란 진리를 깨달아 참(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금욕적 실천을 위해서 단식과 단색을 시작한 것이 1941년 2월 17일 이다. 류영모는 이때부터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삶을 살았고, 부인과는 오누이 지간으로 살기 위한 해혼(解昏)선언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자신의 농사에 대한 철학적 성향과 간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금욕적 생활을 계속하면서 류영모는 하루를 한 삶으로 생각하여 저녁에 잠드는 것을 죽는 것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생의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여겨 열심히 살았다. 이런 삶을 살다가 김교신의 죽음 앞에서 김교신과의 나이차이(11살)만큼만 더 살 것이라 추측하여 사망 예정일(1956년 4월 26일)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날은 지나갔다. 그것을 류영모는 “1956년 4월 26일은 내가 죽기를 원한 날인데 오늘이 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내 장례를 내가 치루고 소상(小祥)을 내가 치루는 날입니다. 내 대상(大祥)을 내가 치루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는 한아님을 믿고 한아님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은 단순해집니다 한아를 알고 살면 다른 것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한아(天) 아흡(知)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죽음을 미리 안다는 것이 아닌 죽음을 맞는 자세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류영모는 노령의 나이에 두 번이나 톨스토이가 집을 떠나 객사한 것처럼 집을 나갔지만 두 번다 집으로 업혀 들어왔다. 톨스토이처럼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신을 가슴에 묻고 결국 1981년 2월 3일 91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류영모의 금욕적 실천에 대해서 그의 제자 김흥호는 다음과 이야기하고 있다. 일일일식에 대해서는 “류 선생은 일식이 성만찬이요 일식이야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짜 제사요 산 예배라고 한다. 그는 성만찬으로만 살았다는 성녀 젬마를 좋아하여 젬마 전지를 사서 우리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흥호는 류영모의 금욕적 사상을 기독교적 사상과 접목하여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그는 십자가를 일식(一食)으로, 부활을 일언(一言)으로, 승천을 일좌(一座)로, 재림을 일인(一仁)으로 생각했다.”

 

제3장. 류영모의 유(儒)・불(佛)・도(道) 관점에서 본 하나님 이해

                                                                                                                                                                         

류영모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 사상이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은 기독교만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인류가 입을 열어 말할 때부터 있었던 첫 말이다. 이것은 나와 우주의 근원이 되는 절대자에 대한 호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의 아버지 부처와 노자, 공자의 아버지 역시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들(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고 그에 대해서 말했던 사람들이다 라고 류영모는 말한다.


1. 유교적 기반 위에 세운 하나님 이해


1) 유교의 천(天)으로 이해한 하나님

유교에서는 신을 공공연히 인정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보아 유대 전통이나 기독교 복음과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주요한 활동자 이며 기독교 신학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반면에 유교의 경전과 그 주해서에서는 가끔 언급되기만 할 뿐이다.

유교의 경전에서 신 개념을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용어로 천(天)과 상제(上帝)라는 말이다.

처음 중국에서 천 사상이 일어나게 된 것은 요순(堯舜)시대로 유목 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전환 속에서 주위의 자연현상에 관하여 예민한 관찰을 하게 되어 명산(名山), 대천(大川), 풍우(風雨), 뢰전(雷電) 등 자연 현상 및 자연물들을 신(神)으로 보고 최고의 신(神)을 천(天)이라고 믿게 된 듯하다. 그들이 인식한 천은 끝없이 푸르고 푸른 창공이었으나 그 창공의 배후에는 우주 만상을 지배하는 천제(天帝)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후 하은주(夏殷周) 시대를 거치면서 주(周)나라 때에 나온 주역(周易) 속에 역(易)의 건위천괘(乾爲天卦)는 64괘 가운데 제일 첫머리에 있어 가장 으뜸 되는 괘라고 한다. 전(傳)에 “건(乾)은 천(天)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천(天)은 천(天)의 형체를 말하고 건(乾)은 천(天)의 성정(性情)을 말한다. 건(乾)은 건(健)이라는 뜻으로서 건전하고 쉼없는 상태를 말한다. 천(天)은 도(道)이다. 도(道)는 천차불위(天且不違)라는 뜻을 말한 것이고 나눠 말하면 형체를 천(天), 주재를 제(帝), 공용을 귀신(鬼神), 묘용을 신(神), 성정을 건(健)이라 한다. 건(乾)은 만물의 시초이므로 천(天)이 되고 양(陽)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임금이 된다.”

이렇듯 공자(孔子) 이전의 시대에 쓰여진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 속에서 유교에서 신 개념을 지칭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용어인 천(天)과 상제(上帝)의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서경 속에서는 만물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인격적인 최고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사용되는 ‘상제’란 말이 30번 이상 나오며, ‘천(天)’이란 단어는 270번 가량 나온다.

여기서 ‘천(天)’에 대한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 될 수 있다. 첫째는 자연적 하늘과 땅으로 표현되는 의미에서 하늘로 이해되기도 하며, 둘째는 영적이고 신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천신(天神)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상제’란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공자(孔子) 이전의 시대에서는 천을 상제와 같이 사용하면서 서로의 의미를 상호 보충하는 관계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서는 나이 쉰을 천과 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기라고 했다. 여기에 “천명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천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간 본성의 작용이고, 둘은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이며 셋은 천의 지배 아래 있는 궁달(窮達), 운명이라는 것인데, 공자는 하나를 인(仁)으로 설명하고 둘을 선왕의 예악의 가르침으로 천하를 평화롭게 하려는 것으로 수행하고, 셋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는 말처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도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심경에 도달하였다고 이해한다.” 이상의 천(天)에 대한 사상을 살펴보면서 천(天) 사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것은 천(天)이란 하늘이 인격적인 신의 개념에서 비인격적인 신의 개념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천(天)은 유대 민족의 여호와의 신처럼 만물을 창조하는 신은 아니었지만, 만물을 낳고 보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인격적인 신이었다. 그런데 후에 시대가 흐름에 따라 천(天)의 신적인 활동 기회가 적어지고 활발하게 되지 않게 됨과 동시에, 인격적인 요소가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 경향은 공자(孔子)가 나타난 기원전 6~5세기 사이의 시대에 명확한 형태로 나타난다. <논어> ⌈양화편(陽貨篇)⌋에 보면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사시(四時)가 운행되며 만물이 생겨난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라는 말이 보인다. 천(天)은 사람처럼 말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사시(四時)가 순환하고 만물이 생육(生育)한다. 그 속에 바로 천(天)이 있다는 말이다.

맹자에게 있어서도 범신론(汎神論)적 세계관 위에 서서 하늘(天)을 비인격화함과 동시에 만물 속에 내재하게 되고 인간 속에도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유교의 이러한 천(天)으로서의 신 개념이 류영모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읽고 배움을 가졌던 것이 위와 같은 유교의 경전들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들 속에서 얻은 그의 지혜가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와 맞물려 그의 글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류영모는 하늘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은 글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하늘을 가질 때 자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이 나이기 때문이다. 한아님이 참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을 가지기를 싫어한다. 세상에는 하늘이 소용이 없다. 팔 수 있으면 팔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아들인 그이(君子)는 하늘을 자강(自强)하는데 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류영모는 하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그이(君子)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석가, 공자, 노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류의 근원을 하늘에 두고 있음을 류영모는 말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곧이 곧장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온 탓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모든 초목이 태양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나 태양이 그리워서 태양을 머리에 이고 태양을 찾아 하늘 높이 곧이 곧장 뻗어가며 높이높이 서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한아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언제나 하늘로 머리를 두고 언제나 하늘을 사모하며 곧이 곧장 일어서서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또한 류영모는 유교의 변천에 대하여 “유학(儒學)하는 사람도 분명한 점은 늘 하느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증자(曾子)시대까지만 하여도 천(天)이라는 말로 하느님을 찾았다. 하늘에 존재를 말하는 것은 이치(理致)・천리(天理)・진리(眞理)를 찾는 것이라는 유리론(唯理論)으로 이치시대가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유교에서도 하느님을 찾은 삶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이 썼던 책들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것과 세상의 살아가는 인간에게 교훈 하고자 했던 것들이 기독교의 성서와 같은 위치에 있음을 류영모는 인정하고 유교의 경전과 성서 그 외의 노자와 장자 역시 항상 그의 삶 속에 같이했던 책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성서를 묵상하였고 매일같이 성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었다.



2) 성(性)으로 이해한 하나님

유교의 여러 경전 가운데 『중용(中庸)』은 으뜸가는 형이상학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중용』가운데 구경(究竟)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와 ‘성자천지도야(誠者天之道也)’,‘성지자인지도야(誠之者人之道也)’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하나님의 얼(프뉴마)이시니’(요4:24)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얼을 좇는다는 뜻의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와 참에 나아간다는 뜻의 ‘성지자인지도야(誠之者天之道也)’를 합치면 예수가 말한 얼과 참으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이다.

중용의 천명지위성에서 성(性)을 어로 말하듯이 맹자(孟子)가 이야기한 성(性), 즉 “인간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늘이 천성(天性)이고 인간의 성(性)은 하늘 그 자체이며, 선(善)일 수밖에 없다”는 성선설에 입각한 맹자의 성을 얼로 이해하고 있다. 류영모는 성(性)을 다른 말로 하면 바탈이라고 하였다. 그의 글 “바탈”에서 성(性)을 바탈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탈

     性通功完

     바탈을 트고 마틈을 마츰이. 이다.


성통공완은 “삼일신고” 진리훈에 나오는 말이다. 바탈을 꿰뚫고 자기 사명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바탈을 본다는 것은 진리를 깨달아 자기를 알고, 맡음을 완성한다는 것은 생명을 얻어 자기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제자를 얻어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진리를 깨달은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인이다.

류영모는 바탈은 얼로서 같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성(性)을 바탈, 얼로 사용하고 이해한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얼은 바로 하나님의 얼로서 이해한다. ‘얼’로서 이해한 하나님은 곧, 영(靈)으로서 이해하였다. 그리고 류영모는 하나님의 얼 을 생명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생명을 주는 영과 같은 의미의 얼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대해서 몰트만은 다시 태어남 속에 있는 하나님 경험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다면, 성령은 하나님 자녀들의 어미니 이며, 따라서 이 어머니는 ‘여자 성령’(Geistin)이라 불리워 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성령의 여성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류영모는 얼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숨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류영모는 ‘숨과 얼 말과 글’이란 자신의 글에서 숨과 얼의 관계를 잘 사용하고 있다.


       숨과 얼 말과 글

     숨은 그립고 얼은 울린다.

     글로 숨을 다 못 밝히겠고

     말로 얼을 못 다 밝힌다.

     맑으르 숨과 얼은

     제 긔림이오, 절로 울림이어라.


생명의 숨과 진리의 얼, 생명의 말과 진리의 글. 생명의 말숨과 진리의 얼. 숨은, 생명의 숨은 그립다. 사람은 살고 싶어한다. 영원한 생명을 그리워한다. 진리의 얼은, 진리의 성령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울리고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한다. 글로 숨은 못 밝힌다. 숨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 숨어 계시는 실재이기 때문에 그림이나 그림으로 대상화・객관화・현상화할 수가 없다. <후략>

또한 류영모는 “성령의 원말이 숨(氣)이라 한다. 영국에서 함경도에 처음 선교사로 왔던 패녹이란 분은 “성령”을 “숨님”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류영모 역시 숨, 혹은 숨님 이란 표현으로 영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다. “우릴내샤 예 이제 살게하는 숨님요, 한뜻 다다름에 닐닌 돌려 푸러피인 숨숴”, “우리를 이 세상에 내셔서 여기서 이제 살게해 주시는 성신이신 숨님이여, 숨을 돌리고 고단을 풀고 꽃피를 피여내셔 목숨쉬는 숨님”.

생명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와 숨의 차원에서 알아본 얼(靈)로서의 하나님은 어디나 언제나 제한 받지 않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활동하신다. 미하엘 벨커는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정의, 자비하심, 하느님의 영광과 충만의 완전한 증거를 위한 하느님의 영의 활동은 다원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님의 영은 한계가 없으시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어 안을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는 숨으로서 다가오며 활동하심을 알 수 있다.


3) 부자유친의 관계로 이해한 예수와 하나님

류영모의 유교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 이해의 극치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와의 관계를 효(孝)의 개념인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관계로 이해한 것이다.

유교의 효(孝) 사상은 다른 세계적인 가르침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공자는 그의 언행록인 논어(論語)에서 경전의 근본정신이 인(仁)에 있음을 말하였고, 또한 인의 근본이 효(孝)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효경을 풀었다. 인(仁)의 근본에 효(孝)를 두고 있음은 논어 “학이편(學而編)”에 나타난다. “군자는 근본이 되는 일에 힘써야하며, 모든 일에 근본이 서야만 도가 생겨난다. 효성과 우애는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인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말하고 있다.

류영모는 효에 대한 그의 사상을 종교적인 부분으로 옮겨 예수 이해를 효자로서, 부자유친적 예수 이해로 발전시켰다. 류영모의 제자 김흥호는 이렇게 말한다. “유교의 핵심은 효(孝) 사상이고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유교의 전부이다.” 그는 기독교를 부자유친의 완성태라고 본다. 예수를 효자의 극치로 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서 신앙의 본질을 찾는다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예수를 부자유친의 완성태인 효자로 보았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받들고 살아간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였다는 대목을 효의 극치라고 보았다.

 

십자가(十字架)

가로 가던 누리는 가로대에 못박히고,

바로솟아 나갈 얼만 머리위로 솎우치니

영원(永遠)을 허(虛)전타 마라 길히길히 삶이다.


인자를 가로(橫) 보면

생전(生前), 제 욕심(慾心)만을 채움을 복(福)으로 아는 구인생관(舊人生觀)으로 보면, 미천(微賤)한 데서 나서, 삼십평생(三十平生)에 출세(出世)한 것이 없고 최종(最終) 삼년간, 범인지목(犯人指目)을 받다가, 포사(暴死)를 당한 것이 예수의 인간 생이었다. 누가 도라다나 보랴.


인자(人子)를 세로(縱) 보면

속안(俗眼)에는 보이지도 않고, 본 사람의 말도 믿지도 않겠지마는, 목수(木手) 요셉의 아들 예수가 설흔살에, 한울문(天國門) 세울 일을 맡았다면, 삼년(三年)동안 세상을 책망(責望)하는 채찍으로 묵은 누리를 다 헐어 냈다면, 묵은 누리의 돌 받침이 (안식일(安息日)을 중심으로 한 고식생활(姑息生活)뢰된 세계니, 무망(無望)의 인생은 고역(苦役)이라, 안식(安息)을 최대이상(最大理想)으로 할밖에 새로 세운 나무기둥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극복사명(克復使命)으로 된 세계니, 신망(信望)의 인생은 성역(聖役)이라. 영원진작(永遠振作)을 최상(最上) 이상(理想)으로 한다.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류영모는 예수를 가로로 보면 아무 의미없이 죽어간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세로로 보면 하나님의 뜻을 실현코자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예수의 수직적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류영모는 예수를 자신을 책선 하는 분으로 자신의 의중지인(意中之人)으로 말하고 있다. “내게 선생이라고는 예수 한 분밖에 없다. 예수를 선생으로 아는 것과 믿는다는 것과는 다르다.”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신앙한 것이 아니다. “예수하고 우리하고 차원이 다른 게 아니다.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예수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라고 하였다고 예수가 우리보다 월등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잘 섬겼던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류영모의 말로 하면 부자유친을 잘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이(君子)인 것이다. 예수와 다른 성인들을 그이 즉 군자(君子)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유교의 군자상의 영향일 것이다.

“군자(君子)를 나는 ‘그이’라고 한다. 군자는 임금의 아들이나 하늘의 아들이다. 그이라는 그는 저 그리운 하늘을 뜻한다. 하늘을 그리며 그 하늘을 이어받은 이가 그이다.”

“사람은 하늘을 가질 때 자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이 나이기 때문이다. 한아님이 참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을 가지기를 싫어한다. 세상에는 하늘이 소용이 없다. 팔 수 있으면 팔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아들인 그이(君子)는 하늘을 자강(自强)하는데 쓴다.”

이와 같이 류영모는 그이(君子)를 하늘 즉 하나님과 관계된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을 번영케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류영모는 그의 시(詩)속에서 예수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고 있다.


              人子 예수

말슴(道)으로 몸일우고 뜻을 받어 맘하시니

한울밖엔 집이 없고 거름거린 참과 옳음

뵈오니 한나신아들 예수신가 하노라


         한나신아들(獨生子)

빋만가려던 世上은 못난아들들의 짓이오

솟아날 門이 열리며 한나신아들 오시니

시원타, 죽어산길에 그사랑을 피셨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몸과 맘을 다해 실천하고 사는 사람을 독생자라 하였다. 그 독생자는 예수 한 분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류영모는 석가와 공자와 노자 같은 인물들 역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았던 독생자로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 뜻을 가장 올곧게 실천한 사람이 바로 예수인 것이다. 그런 예수를 참 스승으로 모시고 책선(責善)의 의중지인(意中之人)으로 살았던 사람이 바로 류영모 이다.


2. 불교의 공(空; 븬탕)으로 이해한 하나님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에서는 토착화된 불교로서 우리 민족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고려시대에는 숭불정책을 실행해 오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정책으로 이어지면서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신비적인 종교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전과 같이 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어 대중들이 경전을 통해서 불교의 사상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류영모가 불교의 경전을 접하게 된 것은 동생 영묵의 죽음으로 신앙의 전기를 맞았을 때이다. 이때는 불교뿐만이 아닌 도교의 경전과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류영모는 “나는 20살 전후에 불경 노자를 읽었다. 그래서 무(無), 공(空)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류영모는 불교의 경전 중 반야심경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반야심경을 자세히 알면 불교 일반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생명을 생각하는 이, 정신을 생각하는 이는 이 반야심경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 이쯤 갔다는 것은 큰 재물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 대해서 류영모는 “不二면 卽無이다. 상대가 없으면 절대이다. 절대는 무이다. 상대적 유, 상대적 무도 아닌 것이 不二이다. 不二는 無二라 해도 좋다. 不二면 無二이다. 우리가 참으로 不二卽無하면 상대세계에서의 종노릇을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에서 멸(滅)이란 부정의 사상은 류영모에게 있어서 주요한 사상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영향을 준 사상이다. 멸(滅)의 사상은 여섯 군데(빛, 소리, 냄새, 맛, 맨치, 올)가 여섯 뿌리(눈, 귀, 코, 혀, 몸, 뜻)와 만나 여섯 알(봐(視), 듣(聽), 맡(嗅), 먹(食), 맨지(接), 봄(見))이 생기는 18계(界)의 일은 몽땅 거짓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공(空)과 무(無)의 사상을 좋아했다. 빈탕 혹은 허공의 공(空)과 무(無)는 절대 이다. 이 절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바로 븬탕, 허공은 절대 세계 즉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1) 불교 공(空)으로서의 하나님

불교의 기본 사상은 공(空) 사상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반야심경이고 그 다음이 금강경일 것이다. 반야심경의 원본은 산스크리트본이고 한역본(漢譯本)으로는 7종이 있다. 그 중에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번역한 반야심경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내용은 공(空)사상을 설한 것으로서 대부분의 대승불교 종파에서는 현장삼장의 번역본을 읽고 있다.

공(空, sunya)이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인 ‘sui'(팽창하다)로부터 유래한다. 그런데 이 팽창이라는 표상은 동시에 공허라는 표상과 결합된다. 즉 “밖으로부터는 팽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내부는 비어있기”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두 표상의 관계가 언제나 인간의 구제의 과정 내지 해탈의 과정과 결합되어서 사용되었다.

부정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긍정을 의미하는 공, 그것은 부정과 긍정의 대립을 넘어선 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공이라는 말은 본래는 공무(空無)를 의미하지만, 부정과 긍정을 넘어선 공은 유(有)와 무(無), 공(空)과 불공(不空)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공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적절하지 못하다. 그래서 “중송”에서는 공을 가명(假名)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레너드 스위들러는 공(空)을 궁극적 실재의 핵심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궁극적 실재는 근본적으로 모든 실재의 관계적이고 과정적인 구조와 같은 그 무엇(something)으로 생각되었다. 공은 팽창이란 의미를 갖는다는 한스 반덴펠스의 말과 같이 언제나 끊임없이 유전하며, “생성”한다는 뜻인 불교의 “프라티탸 삼우트파다”, 즉 연기(緣起)의 가르침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공(空) 사상은 틸리히의 실존이해와도 유사하다. 틸리히는 “실존한다는 것은 절대무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밖으로 나와 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실존은 존재와 비존재가 연합되어 있는 유한성(finitude)을 의미한다. 또한 실존한다는 것은 상대무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밖으로 나와 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실존은 현실적 존재와 그것에 대한 저항이 연합되어 있는 현실성(Actuality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의미의 ‘무’의 의미를 생각하든지 간에 실존한다는 것은 비존재(non-being)로부터 나와서 서는 것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2) 류영모의 ‘븬탕’(虛空; 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븬탕한대’다. 허공(虛空)을 내가 순 우리말로 말해 본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불교의 공(空) 사상으로 “밖으로부터는 팽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내부는 비어있기”때문이란 공의 의미와 틸리히의 실존론에서 “실존한다는 것은 절대무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밖으로 나와 선다는 뜻이다.”란 의미가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류영모는 “우리의 생명이 피어 한없이 넓어지면 빔(空; 절대)에 다다를 것이다. 곧 영생하는 것이다. ‘빔’은 맨 처음 생명의 근원이요, 일체의 근원이다. 한아님이다. 나도 인격적인 한아님을 생각한다. 한아님은 인격적이지만 우리 같은 인격은 아니다. 인격적이란 맨 처음 일체란 뜻이다. 있없(有無)을 초월하였다. 한아님을 찾는데 물질에 만족하면 안 된다. 있는 것에 만족 못하니 없는 한아님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한아님은 없이 계신 이다.”

류영모는 븬탕(虛空; 빔)을 시작과 근원으로 보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즉 있없(有無)를 초월한 븬탕으로 이해하였다.


“븬탕(空) 한(與) 맞혀(亭) 노리(富)( 끝은 모름)

날 수 없는 붙닫힌 몸둥이 매달린 나 얼이 묻언 꿈틀더니.

맑혀 알 만큼 맞난 내, 날라 나, 비롯, 븬탕 계에 한 졔를 보알다

븬탕  한나 뵈 옿로 올나 내 깃븐.

빈탕 한대 더불어 맞춰서 놀아난다. 하나님과 한대 더불어 맞춰서 해탈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더니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있더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큰 닭품에 안긴 달걀이 빈탕 한대다. <중략> 날 수 없어 땅에 얽매여 부닥친 몸뚱이가 미적(美的) 실존(實存)이다. 그러나 고치가 높이 나무에 매달려 그 속에서 얼이 무단히 꿈틀거리듯이 사람은 윤리적(倫理的) 실존(實存)이 되어, 생각하는 사람, 바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린 사람이 된다. <중략> 태초의 빈탕 우주도 있기 전에 허공 그곳에 우주가 생겨나서 한대가 되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졔를 보고 알게 되었다. 영원 무한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중략> 내 마음은 빈탕과 같이 커지고 나는 한대에 우뚝 서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뵙게 되고, 위로 올라가 하나님과 같이 날아다니며 즐겁게 놀게 되었다. 이것이 내 기쁨이요, 이것이 내 기분(分數)이요, 이것이 내 본질이다.<이하 생략>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류영모의 븬탕은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면서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류영모는 ‘븬탕’을 태공(太空)의 맘으로도 말하고 있다. “불경이니 성경이니 하는 것은 맘을 죽이는거다. 살아 있어도 죽은거다. 내(自我)가 한번 죽어야 맘이 텅 빈다. 한번 죽은 맘이 븬탕(太空)의 맘이다. 빈 맘에 한아님나라 열반나라를 그득 채우면 더 부족이 없다”

류영모는 태허송(太虛頌)이란 시조로 태허(太虛) 즉 태공(太空)을 노래한 글이 있다.


             太虛頌

     外包內容委之物 외포내용위지물

     無頭無尾太虛圓 무두무미태허원

     腦趾具足人存心 뇌지구족인존심

     中正立地瞻星天 중정입지첨성천


텅 빈 하늘은 모든 만물을 안으로 싸주고 자유롭게 노닐게 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텅 빈 하늘이다. 사람도 번뇌가 그치고 진리를 깨달으면 텅 빈 마음이 될 것이요, 그 때에는 입장을 얻고 마음을 바로잡고 별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류영모는 우주의 근원으로서의 허공(虛空; 빔)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 시조 “空前” 속에서 공과 태일존(太一存) 즉 태공(太空) 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空前

空前空後今閃生 공전공후금섬생

死生不關我自在 사생불관아자재

唯心唯物史斷論 유심유물사단론

物心不二太一存 물심불이태일존


이 우주의 많은 별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생기기 전도 무한대의 허공이고, 이 우주가 끝난 후에도 무한대의 허공일 것인데, 그 사이에 반짝 하고 빛난 것이 천체요 만물일 것이다

이 우주는 물질에서 나온 것인가. 정신에서 나온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역사가 판단할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에 관계없이 나는 자유자재로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물심(物心)을 초월해서 무엇인가 큰 하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내가 있다는 것,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류영모는 “아주 빈 것(絶大空)을 사모한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라야 참이 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허공이다. 이것이 참이다. 이것이 한아님이다. 허공 없이 진실이고 실존이고 어디 있는가....”하며 절대공으로서의 허공을 상당히 성스러운 것으로 그래서 무서우며 참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허공을 우주까지도 포함하는 큰 것으로 그러면서도 질(質)과 질 사이, 분자와 분자 사이, 전자와 전자 사이의 모든 것의 간격을 허공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불교의 공(空)사상에서 거론했듯이 틸리히의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의 실존이해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틸리히에 의하면 “실존”이란 “본질”로부터의 타락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본질” 가능성의 현실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의 실존이 곧 ‘공’(空)이며 ‘허공’(虛空)이고 ‘븬탕’이다.


3. 도교의 도(道)로서 이해한 하나님


류영모가 도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도덕경을 접하고 읽게 된것은 불경을 읽기 시작한 시기와 같다. 그렇지만 그가 도덕경을 한글로 옮긴 것은 그의 나이 69세 되던 1959년이다. 그는 노자(老子)를 늙은이라고 하여 매 장마다 늙은이 몇 장으로 표기하였으며, 그것을 YMCA 연경반에서 강의하였다.

 

1) 도덕경의 도(道)로서의 하나님

노자 도덕경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도(道)에 대한 것이다. 이 도는 물리적인 의미의 ‘차도’니 ‘인도’니 하는 길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도(道)는 “우주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하는 무엇,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본 원리,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우주의 기본 원칙 같은 것, 그런 의미로서의 ‘The Way’, 그런 의미로서의 ‘궁극 실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도(道)는 길인데, 유한(有限)의 세계에서 도(道), 길은 가는 것이요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 유(有)와 대칭 되는 무(無)의 세계에서도 또한 길이란 모든 것을 푸는 열쇠이다. 또한 도(道)는 참으로 하늘아래 어미(母)로다. 길은 참이요, 말씀이요, 하나님이다. 그리고 도덕경의 절대적인 도(道)는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비인격적인 힘으로, 모성성이 강한 실재이다. 그것을 가장 잘 알기 쉬운 것은 도덕경의 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에 나타나 있다. 도(道)에 대한 정의와 도의 모성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도덕경 1장만을 잘 이해한다면 도(道)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자에서는 부정적 표현의 궁극 실재로서의 도의 표현과 여성적 측면에서 표현된 도 그리고 무위자연으로서 길을 말하고 있다. 도덕경 14장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에 나타난 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도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고 한다. 이런 면을 두고 각각 ‘아리송함(夷)’, ‘아득함(希)’, ‘여림(微)’이라 불러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14장 두 번째 문단에서 “其上不皦,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그 위라서 더 밝은 것도 아니고, 그 아래라서 더 어두운 것도 아닙니다. 끝없이 이어지니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노자의 도에 대한 표현은 ‘무엇이다’라는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무엇일 수 없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더 많다. 이러한 예는 힌두교에서 궁극 실재인 부라만(Brahman)을 두고 이야기할 때 쓰는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없다(neti-neti)’는 표현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신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궁극 실재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부정의 길(via negativa)’이라 한다.

두 번째, 어머니로서 도를 이해한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이해를 여성성에 강조를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경 1장에 이어 52장(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에는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어머니인 도를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상당히 부성적, 남성적 이미지의 신성을 가지고 있다면 도덕경 속에는 모성적, 여성적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서 “어머니는 세상의 근원이다. 바로 허공인 것이다. 그 허공은 하느님이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로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로 안 것처럼 노자는 상대적 존재의 비롯이 되고 마침이 되는 허공이 어머니임을 알았다.”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도인 어머니를 알면 그 어머니에게서 난 자식을 알 수 있듯이 도를 알면 도에서 나온 현상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식을 알게 되었다고 거기에 몰입해서 어머니를 잊어버려서는 안되며, 현상계를 알았다고 그 근원이 되는 도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위(無爲)로서의 길을 알아보고자 한다.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non-action)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 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무위는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natural) 너무 자발적(spontaneous)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 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37장(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에 나타난 무위는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런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기 ‘때문에’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풀이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궁극 실재인 도(道)에 대한 특징들을 간단하게 아래와 같이 알아보고자 한다.

① 도(道)는 오관(五官)으로는 포착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름지을 수 없는 실재(實在)이다. 그러나 이름짓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비실재(非實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② 도라는 실재는 만물의 근원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도덕경 25장(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료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과 같이 도는 발생적으로나 우주의 구조상으로나 만물의 근원이다.

③ 도는 제일 원인이며, 자기 존재로서, 그 밖의 어떤 것일 수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도는 만물의 어떤 것과도 같을 수가 없으나 역으로 만물은 도를 떠나서는 존재 할 수가 없다. 40장(…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에 나타나는 유적존재(有的存在)를 성립시키는 무(無)이다.

④ 도의 성격을 작용성(作用性)의 측면에서 보면 도의 작용은 그 자체는 '무위‘(無爲)임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모든 작용을 성립케 하는 변화 작용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 바로 그것이다.


2) 류영모의 도(道)로서의 하나님

도(道)는 우주의 근원, 존재, 하나님이다. 류영모는 길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길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실체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실재이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 길이라고 했다. 류영모는 도덕경을 번역하는 작업 도중에 “이름”이란 글을 남겼다. 이 글 속에서 우리는 류영모의 진정한 길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   름

     하늘 계신 아계 이름만 거룩 길 참 말슴

     그 밖에 이름이나 거려 보임 갖고는 못얻

     이름  우리 계 가닿 니름밖에 없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도달하는 것만이 거룩한 길이요, 참된 말씀이다. 길을 가고 말을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께 가는 유일한 길이다. 도덕과 철학, 이것이 종교의 핵심이다. 그밖에 이름을 불러 본다든지 그려놓고 절을 한다든지 하는 것 가지고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다. 이름이 아니고 가온찍이 깨달음과 그림이 아니고 아버지 계신 데까지 가서 도착(到着) 이룸 밖에는 구원의 이름 곧 성취는 없다. 내재(內在)의 각(覺)과 초월의 행(行). 내재의 각이 진리요, 초월의 행이 생명이다. 이 두 가지가 참 말씀이요, 거룩한 길이다. 이름은 말씀과 길이 도달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류영모는 “도(道)는 세상을 초월한 진리를 말한다. 도는 아무 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이 언제나 주인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정말 진리를 찾으려면 생명을 내걸고 실천해보아야 한다. 도는 참 나다.”라고 말하고 있다.

류영모는 예수의 생애를 통해서 예수가 걸어간 길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예수가 본 ‘길’(道), ‘참’(眞理), ‘삶’(生命)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을 ‘길’이라고 보고, 그 길을 환하게 걸어감이 ‘참’이라고 보고 아버지와 아들이 환 빛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삶’이라고 본 것 같다.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간다. 이보다 환한 길은 없다. 이 길을 틀리지 말고 곧장 똑바로 가는 것이 ‘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삶’이다. 철도에 비기면 철도가 ‘길’이요, 기차가 ‘진리’요, 도착이 ‘생명’이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조금도 어려운 것이 없다.” 우리가 예수의 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를 의중지인(意中之人)으로 마음에 받아 그의 길을 걷는 것이다. 류영모가 예수를 자신의 의중지인으로 고백하며 살았던 것처럼.

또한 류영모의 제자 박영호는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생명인 정신의 줄(絲) 곧 얼(靈)줄이 늘 늘어져 있다. 이 우주에는 도(道)라 해도 좋고, 법(法)이라 해도 좋은 얼 줄이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 얼 줄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이 한 얼 줄을 잡고 좇아 살아야 한다.”라는 류영모의 어록을 인용해서 노자의 도덕경의 도(道)를 예수의 얼(프뉴마), 석가의 법(法), 중용의 성과 같은 참나(眞我)를 뜻한다고 보았다.

얼에 대한 이해는 앞부분 유교의 성(性)으로서 이해한 하나님 이해 부분에서 얼과 영에 대한 부분으로 언급한바 있다. 영을 생명과 관계하여 그의 생명사상을 볼 수도 있었다. 류영모의 제자 김흥호는 류영모의 인생 속에서 류영모의 생명 체험에서 나온 말들을 세 단계로 나누어 계소리와 가온소리와 제소리라고 말한다. 류영모의 계소리는 그의 우주관이며, 가온소리는 그의 세계관이고, 제소리는 그의 인생관이라고 보았다. 김흥호는 류영모의 계소리에 해당하는 다음의 글 “사람은 하늘과 땅이 합쳐진 생명이 인(仁)이며, 진리와 도(道)가 통하여 생명이 된다”고 보았다.

 

제4장. 정통적 기독교 신관과 류영모의 하나님 이해

                                                                                                                                                                   

1. 말씀이며 로고스이신 하나님


1) 정통 신앙에서의 하나님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 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요 1장 1-4절)

정통적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적 문제가 되는 것은 말씀이 상징인가 실재인가이다. 말씀이 상징이라 함은 말씀의 개념의 유비(아날로기아)를 철학적 인간학적 개념, 로고스(Logos, Reason)의 개념에서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말씀을 실재로 보려고 하는 것은 말씀의 유비를 계시,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희랍어 로고스(λοϒοσ)는 ‘말을 모은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로고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말(word)로서의 로고스와 이성(reason)으로서의 로고스이다. 말은 단지 말(speech)이 아닌 합리적인 말이며, 이성은 합리적인 사상의 내용 그것을 표현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희랍사상의 로고스 개념 속에는 창조적인 말의 능력으로서의 ‘말씀’의 사상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로고스 개념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과 구별된다.

구약에 있어서의 ‘말씀’은 로고스와 레에마(ρημ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רבד)의 번역으로 ‘말하다’라는 어근 רבד에서 나온 것으로 그 뜻은 원칙적으로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말’, 즉 어떤 사람의, 특히 왕의 명령, 연설 요청, 약속 등을 의미한다.

신약에 있어서의 ‘말씀’은 희랍어 λοϒοσ와 ρημα의 번역으로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위의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다만 예수의 말씀과 교훈뿐만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을 합한 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이다.

말씀이란 단어의 히브리적 희랍적 어원으로서의 이해와 신・구약의 말씀에 대한 이해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전달의 도구로서의 말씀이 아닌 계시의 한 형태이고 그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개념을 20세기의 최고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말씀의 신학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와 본질에 관하여 말하기 전에 교회의 선포에 관하여 말한다. 선포는 교회가 그 안에서 교회로 되는 사건(事件)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된 말씀”이고 그것은 “기록된 말씀”이며, “계시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우리가 교회의 선포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바르트에 있어서 ‘말씀’은 계시의 근본적 형식, 즉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의 형식이다. 인간의 말이 매개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신적 이성으로서 인간의 이성과 인격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이성, 인격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상관관계에 있는 인간의 응답과 복종을 믿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은(이것이 신앙이다) 그 만남과 경험(신앙의 경험)이 철학적인 판단으로 보아 얼마나 깊든 간에 본질적으로 이러한 만남의 영역(신앙의 영역)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한다.

바르트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삼중적 형태로 우리와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상 첫째로 “말”이고, 둘째로 “행위”이고, 셋째로 “신비”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삼중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지적해 준다. 이처럼 독특하게 삼중성 안에 있는 통일성과, 통일성 안에 있는 삼중성은 “그 자체상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에 관한 … 교설에 비길 수 있는 유일한 유비(類比)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다만 선포된 말씀의 형태로만 말이 된다든지, 다만 기록된 말씀의 형태로만 행위라든지 그리고 계시된 말씀으로서 신비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형태로 있든지 말이요, 행위요, 신비이다.

이와 같이 바르트에게 있어서 ‘말’, ‘행동’, ‘신비’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의 세 가지 형태, ‘선교된 말씀’, ‘기록된 말씀’, ‘계시 자체로서의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말씀의 형태는 다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응한다.

 

2) 류영모의 말씀에 대하여

류영모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우리 생명은 목숨인데 목숨은 말씀하고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공자(孔子)를 논어와 바꾸어 놓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생각이 끊이지 않고 말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누에가 실을 뽑는 것이다. 그리하여 목숨이 말씀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중략> 이 세상은 거저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의 집을 지으러 왔다. 실 뽑으러 왔다. 생각하러 왔다. 기도하러 왔다. 일하러 왔다. 말씀의 집을 지어야 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한아님을 믿으니 나를 믿어라. 내가 가서 있을 집을 지어 놓겠다’ 가서 지어놓는 것이 아니라 벌써 여기서 지어 놓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류영모에게 있어서 말씀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 집은 자기의 목숨과 바꾸는 집이다. 이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생관이다. 그의 인생은 말씀을 얻기 위해, 다시 말해 말씀의 집을 짓기 위해 일식(一食), 일언(一言), 일좌(一座), 일인(一仁)의 삶을 살았다. 말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꾸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다음의 류영모의 글을 통해 보면 우리는 말씀 위에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말씀에서 말슴을

말아 말 므러 보자 나 타고 갈 말 네게 맷스니

내 프러내 내가 타고 나갈 말을 네게 탈다

고르로 된 말슴이기 가려보믄 되리라

하나님께 가는 길은 말을 타고 가는 수밖에 길이 없다. 말아 하나님의 말씀아 말 물어 보자. 어느 말씀이 내가 생각하고 불태우고 나를 태울 말씀인지 찾아보고 물어 보아야 한다. … 내가 타고 갈 말은 한 말씀뿐이다. 그 한 말씀에게 내 운명이 매여있다. 내가 부활하느냐 멸망하느냐는 말씀 한마디에 달려있다. 그 한마디를 내 풀어내야 한다. 물음 불음 풀음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한 말씀을 풀어내야 한다. 내가 타고 나갈 말씀은 너 자신이 풀어 내여, 탈다, 타고 달려야 한다.<후략>

류영모는 말씀(言)을 말(馬)에 비유하여 말씀을 타고 가야 한다고 한다. 그 말씀은 많지만 나에게 빛이 되고 나를 영원의 길로 인도할 말씀은 한(一)말씀만 있어도 된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절에서 거듭나고, 웨슬레는 로마서 1장 17절에서 가슴이 뜨거움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말씀에서 말슴, 말씀 위에 서다라는 말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류영모는 말씀을 들었으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도 누어 자려고만 하고 자지 않으면 서로 기어올라가 놀려고만 하니 이래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짐승만도 못하다 하며 말씀을 듣고 일어섬과 위로 올라감을 강조하고 있다.

류영모의 말씀의 개념 역시 위에서 내려오는 말씀이고 그 말씀을 말로 타고 올라가야 하며, 말씀에서 말슴으로의 삶을 살기 위에서는 목숨을 바꾸는 나만의 노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류영모는 말씀을 이웃에게 알리는 것이 이웃사랑이라고 했다. 앞에서 개인적인 말씀 들음과 듣고 일어섬과 올라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듣고 올라간 말씀을 이웃에 전하는 것을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바르트의 ‘선교된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큰 성신(한아님)이 계셔서 깊은 생각을 내 속에 들게 해주신다. 말씀은 사람에게 한다. 사람과 상관하지 않으면 말씀이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사는 까닭에 말씀이 나오게 된다. 생각이 말씀으로 나온다. 정말 믿으면 말씀이 나온다. 말은 마루 꼭대기에 있는 말이다. 우리는 그 말을 받아서 씀으로 한아님을 안다. 그래서 말씀이다. 말은 한아님으로부터 받아서 써야 한다. 한아님과 교통이 끊어지면 생각이 결딴이 나서 그릇된 말을 생각하게 된다. 정신세계에서 한아님과 연락이 끊어지면 이승의 짐승이 된다. 질퍽질퍽 지저분하게 사는 짐승이다.”

류영모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극치는 그가 “38년만에 믿음에 들어감”이란 글을 “성서조선”에 내면서 자신의 신앙체험과 말씀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主)와 나

주는 누구시뇨? 말씀이시다.

나는 무엇일까? 믿음이다.

주는 한울에 가셨다 하나 말씀은 예 계시다.

나는 죽겠으나 믿음은 살겠다.


이와 같은 류영모의 고백은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말씀에의 응답과 복종을 믿음이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류영모에게 있어서 말씀은 정통 기독교의 말씀과 다를 수 없다.

 

2. 주(主)님으로 인식한 하나님


1) 정통신앙 안에서 인식한 하나님

기독교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자(創造者)로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 살아가는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성서 속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며 노래한 대표적인 사람은 다윗이다.

시편 8편 상반절에 보면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새번역성경)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누구에게나, 아니 인류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主)님으로 계시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주님의 개념이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救世主)로 그래서 우리 생명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일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있다.

신학에 있어서 인식 주체인 인간과 인식 대상인 하나님은 서로 관계되어 있다. 이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자(創造者) 요 인간은 그의 피조물(被造物)이며, 하나님은 인간의 주(主)요 인간은 그의 자녀이다. 이 관계를 가리켜 우리는 신앙(信仰)의 관계라고 말 할 수 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창조자이시지만 하나님은 이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이 세계 위에, 이 세계의 미래에 계신 분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성에서 하나님을 바라본 학자들은 많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관계성 속에서 상반된 의견을 보여주고 있는 두 학자,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의 신학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폴 틸리히에게 있어서 가장 포괄적인 형식적 신에 관한 정의는 “신이란 인간의 유한성에 내포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틸리히의 신관은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이 되어 인간이 궁극적 관심에 의해 붙잡힌바된 상태가 되면 그는 종교상태에 있다고 보는 기능주의적 현상학적 발상법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발상법을 가지고 틸리히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① 하나님은 여러 가지 다른 존재자들 가운데의 한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이다. 모든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한 거기에 관계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 자체”, “있음 자체”가 곧 하나님이다.

② 하나님은 “존재의 가장 깊은 근거”이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다.

③ 하나님은 “존재의 힘”이다. 모든 존재자는 실존(實存)한다. 여기 실존한다는 것 안에는 존재와 비 존재가 동시에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 존재의 근거로서 비 존재의 위협을 이기고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④ 하나님은 인간의 “궁극적 실재” 즉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문제되는 것에 대한 이름이다. 인간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을 궁극적 답변으로서 찾고 있다.

⑤ 하나님은 삶과 세계의 “깊이” 즉 “심연”이다.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 모든 인간의 인격성과 인격적 관계의 존재론적 지반으로서의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의 심령을 통하여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존재 능력에 참여함으로써만 기도가 가능하듯 성령은 기도하는 자와 함께 이미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들으시며 기도에 응답한다고 한다.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의 구체적 상황에서 구원의 힘으로 응답되는 구체적 절대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틸리히는 주(主)로서의 하느님은 “거룩한 힘이신 하느님에 대한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표현”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의 주님이란 표현은 “거룩한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한 인간 관계의 기본적인 표현”인 “아버지”와 동일시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왜곡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틸리히의 하나님 이해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과의 “상호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님에게 참여되어 있다.

반면 바르트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자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관계하고 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과 구별되신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적 타자 즉 유일무이한 절대성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다른 대상으로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상이 되어 주신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안에서만 하나님은 우리의 대상이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는 무한하게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오직 그 차이를 극복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상의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적 대상이신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을 틸리히와 바르트의 신학으로 알 수 있다.


2) 류영모의 주님이신 하나님

류영모에게 있어서 ‘하나님’사상의 중심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탐진치(貪瞋痴)를 쫓아 살아가는 수성(獸性)의 모습, 즉 몸으로 태어난 제나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우리에게 빔(空)으로 찾아오시는 성령으로 난 사람(얼나)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가 동일해 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동일시된 나는, 이제 나가 주인이 아닌 참나(眞我)인 ‘하나님’이 주인이 되신다. “님(主)되는 나가 참나(眞我)인 하나님이다. 그 님(主)되는 나가 우리 속에 있다. 각자의 내 속에 있다. 이 님(主)의 나가 과거, 현재, 미래 속을 제 주장을 하면서 나가는 것이다. 이 님(主)의 나를 예수도 찾았고 석가도 찾았다. 우리가 예수와 석가를 배우고자 하는 것은 예수 석가처럼 님(主)의 나를 주일무적(主一無適)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 님이 내 속에 있어서 나를 주장한다. 그 님을 예수와 석가는 찾았고 따랐다. 그 님 한 분 외에는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 절대자는 창조만물의 로고스, 아들을 낳아 상대세계를 열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확실히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나를 낳아야 확실히 아버지를 인식한다.

또한 류영모는 생명의 얼로서 기독교의 구세주인 예수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예수의 생명과 신(神)의 생명은 얼의 생명으로는 한 생명이다. 예수의 얼을 씨라고 하면 한아님의 얼은 나무다. … 예수의 얼만 씨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얼도 씨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종교다 다시 말하면 얼로는 예수도 나도 다 한아님의 씨다.”

얼로서는 하나님과 같은 얼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이해하지 않았던 류영모를 알 수 있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하느님의 아들인 사람은 육체에 있어서 약하고, 영에 의해 자유”이기 때문에 “사람은 육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영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인의 생명은 영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은 만인의 생명이고 행복”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영향 하에서 류영모는 예수를 ‘없이 계심 믿은이’로 자신의 예수관을 소개한다.


        우리 아는 예수

        예수는 믿은 이

        아빠 아들 얼 김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높낮 잘못(善惡) 살죽(生死) 가온대로

        솟아 오를 길 있음 믿은 이

        예수는 믿은이 말씀을 믿은 이

        한 뜻 계신 믿은 이

        없이 계심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이와같이 류영모는 예수를 자신의 ‘의중지인’(意中之人)으로 자신의 ‘덕사’(德師)로서 자신의 친구이자 스승으로 생각하였을 뿐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그 앞에 절을 할 분은 참되신 한아님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와 우리의 성정이 같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하고 우리하고 차원이 다른 게 아니다.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예수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였다고 예수가 우리보다 월등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류영모는 예수만이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한마디 하고있다. “기독교 믿는 자는 예수만이 그리스도라 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인 한아님으로부터 오는 성신(聖神)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정통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으로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류영모에 대해서 정양모는 “다석은 정통 기독교인들의 순진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한 기독론을 뛰어 넘었다. 철저한 해석학적 반성으로 말이다. 석가가 바라문교를 뛰어 넘어 성불하고 예수가 유대교를 뛰어넘어 길이요 참이요 삶이 되셨듯이 다석도 정통신앙을 초월함으로써 동방의 성인이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인이 되는 ‘하나님’을 찾는데는 인간의 궁극적인 복종만이 있어야 한다. 예수의 하느님에 대한 십자가의 복종이 있었듯이 말이다.


3. 없이 계신 하나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독특한 하나님 이해는 『없이 계신 하나님』이다. 그는 그의 어록에서 없이 계신 아버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없이 계신 아(잏) <1959. 6. 18. 木 25299>

        있이 없을 없앨 수는 도모지들 없을거니,

        부스러진 것으로서 왼통을랑 없앨 수 없.

        이저게 없람은 아니랄 수 없어라.

(해설)

없이 계신 아버지가 진짜 존재다. ‘있’이 ‘없’을 없이할 수는 없다. 없을 없이해 보아야 영원히 없이지, ‘없’이 없어졌다고 해서 ‘있’이 될 수는 없다. 부스러진 것들이 전체를 없이할 수도 없다. 아무리 없이해도 전체는 전체고, 허공은 허공이지 허공이 없어질 수는 없다. 이것 저것이 모두 ‘없’이라는 허공 속에 포용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없이 계신 아(잏) <1959. 6. 19. 金 25300>

        하나 알아 있다 간데, 일 알아 이다.

        났다 들믄 새삼 없나 없   이.

        있 없이 없이 계신 아 참 찾 도라듬

(해설) 하나님은 없이 계신 아버지다. 영(靈)으로 계시는 아버지, 숨어 계시는 아버지, 형이상(形而上)에 계시는 아버지다. 하나님을 알아야, 이 세상에 한참 있다가 하나님께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일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할 일이란 한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것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에 났다가 저 세상에 들어가면 새삼 아무 것도 없나. 그런 것이 아니다.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지만, 없나인 무아(無我), 영아(靈我)가 되는 것이다. 없나가 돼야, 없한아 하나님을 알게 된다. 없나가 하나님 마음 가운데 있는 참아들이다. 있다가 없어질 나인 ‘있 없이 없이 계신 없 있’ 없어질 수 없는 내가 되어 아버지의 참길을 찾아 돌아드는 가온아들이요 한아이다.

류영모는 “하나님은 본디 이름이 없다. 하나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나님에게 이름을 붙이면 이미 신이 아니요 우상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없이 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없이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서강대의 정양모 교수는 그의 소논문 “다석 류영모 선생의 신앙”에서 류영모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아우르며 “초월해서 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속에 자기의 뿌리 밑 둥을 자기고 파고 들어간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자기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내 깊은 속보다 더 깊이 계신다”(Deus intimior intimo meo)라고 한 어거스틴의 표현과 대비시키고 있다.

‘다석어록’ 전반에 수록된 『없이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계시냐고 물으면 나는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산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절대를 그린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없다 즉 없음은 부재(Abwesen heit, 虛)의 의미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의미이다. 있음에 대비해서 개체 부정의 상태를 지칭하고 있다. 구체적인 특정한 때-사이와 빔-사이에 특정한 어떤 것이 없는 상태를 확인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없음은 철두철미 있음의 관점에 비친 순전한 상대적 없음이다. 서양에서는 없음을 독자적인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 대한 부정의 형태로서 사용되고 있다. 즉 ist nicht (Nicht-sein), Ab-wesen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위의 상대적 없음이 아닌 절대적 없음 근원적으로 보자면 ‘가이-없음’이다. ‘가이-없음’은 ‘가를-없앰’에 터하고, 이 ‘가를-없앰’은 다시금 ‘없앰’ 그 자체에 바탕 한다. 그럼 ‘가이-없앰’은 무엇이고 ‘없앰’은 무엇인가? 먼저 ‘가이’의 ‘가’는 끝, 테두리, 한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없앰’은 ‘가’의 단순한 없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적극적인 절대 부정의 작용을 일컫는다. 모든 ‘것’을 없애는 부정 그 자체이다. 이것은 마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잡아먹어 무화(無化) 시켜버리는 ‘블랙홀’에 비유될 수 있다.

없앰 그 자체는 공간 안에 있는 가 있는 모든 사물들의 가를 없앨 뿐 아니라, 이 공간의 가까지 없애 무한한 공간, 가이-없는 공간, 텅 빔 그 자체, 빈탕한데, 끝이 없는 일자, 온통 하나(한, 한나)를 이룬다. 이것은 시간 안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의 끝을 없앨 뿐 아니라 시간 자체의 가까지도 없애 가이-없는 무시무종의 시간, 끊없이 이어지는 늘-그러함을 만든다. 가이-없는 공간, 가이-없는 시간 이 둘은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그것을 하나며 전체로 묶어서 이름한 것이 ‘한늘’, ‘하늘’, ‘한’, ‘하나’, ‘한나’(大我)이다. 우리의 ‘하늘’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일상적으로 통칭하고 있는 근본 낱말인 것이다.

류영모는 “서양 사람은 없(無)을 몰라요. 있(有)만 가지고 제법 효과를 보지만 원대한 것을 모르고 그래보았자 갑갑하기만 하지요. 서양 문명은 벽돌담 안에서 한일이에요. 없는 것은 가장 있는 것, ⌈無極而太極 太極而無極⌋의 오묘는 여기 있어요. 시작과 끝점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허공(虛空)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요. 아버지 맘이 허공이에요. 참(眞)은 없(無)에 가야 있습니다. 허공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허공관감자만족(虛空觀感自滿足)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기상은 근대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이성중심주의적인 추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인간적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감행한 신적인 것의 퇴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본다. 즉 인간의 이성이 신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칠흑 같은 이 어둠 속에서 구원해줄 신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 인간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스러움”의 영역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충고한다. 신은 오직 성스러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런 “성스러움”이 류영모에게 있어서는 바로 “없이 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영모에게 하나님은 ‘없음’의 하나님인데 그런 하나님에게 사람은 이름을 붙이려 한다고 한다. “신(神)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것인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좀 이상하다. 하나님의 이름은 없다. 모세가 백성에게 어떠한 신(神)이라 말하리까 라고 하자 “나는 나다”라고 하였다. ‘엘리’니 ‘여호와’니 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것이 신(神)이다.…(중략)… 신(神)이라는 것은 어디 있으면 신이 아니다. 언제부터 있었다고 하면 신이 아니다. 언제부터 어디서 어떻게 생겨 무슨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은 신이 아니다. 상대세계에서 하나라면 신(神)을 말하는 것이다. 절대(絶對)의 하나는 신(神)이다. 그래서 유신론(有神論)이라고 떠드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하나님은 없이 계신 이다. 없으면서도 계신다. 사람이란 있으면서 없다. 있긴 있는데 업신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슬퍼서 어떻게 우리 아버지처럼 없이 있어볼까 하는 게 우리의 노력이다.”

“한아님이 없다면 어때? 한아님은 없이 계신다. 그래서 한아님은 언제나 시원하다. 한아님은 몸이 아니다. 영(靈)이다. 영은 없이 계신<무극(無極)이 태극(太極)>분이다. 절대 큰 것은 우리는 못 본다. 아주 더 할 수 없이 온전한 것 큰 것을 무(無)라고 한다. 나는 없는 것을 믿는다. 없는 것은 모르니까 믿는다. 있는 것은 아니까 안 믿는다.”

이렇게 『없이 계신 하나님』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빔(空)의 하나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찾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찾는 것이며, 이것은 물체로 육체적 자신을 이룬 존재를 찾는 것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며 영생인 절대적 빔(空)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빔(空)이요, 허공이다. 빔(空, Offenheit)은 가이-없는 텅 빔과 가이-없는 늘-그러함을,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함께 고려해 넣은 온통 하나, 절대공 또는 단일 허공의 상태를 말한다.

이 허공은 우주를 안고 있는 허공으로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은 나와 관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빔(空)은 석가에게 있어서 니르바나로 허공과 같은 뜻이다. 니르바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니르바나이다. 니르바나를 음역하면 열반(涅槃)이고 의역하면 적멸(寂滅)이 된다. 니르(Nir)는 없다는 뜻이고, 바나(vana)는 소리라는 뜻으로 ‘한님’은 말씀이 없으신 무음(無音), 무언(無言)이 되신다.

빔, 허공(空)이 노자에게 있어서 무(無)가 되는 것이다. 노자는 무(無)를 위해서 유(有)가 있음을 세 가지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수레와 그릇과 집이다. 이것들이 이롭게 쓰일 수 있음은 그것들이 미련한 빈자리(空間)인 무(無)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대도범혜(大道汎兮)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을 류영모는 노자가 바라본 신관(神觀)으로 보고 있다. “한얼은 가없이 크도다”(大道汎兮)는 ‘하나님’의 얼은 가없이 커서 안 계시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장자 역시 무(無)를 밖으로 찾아가 다다르는 지극한 곳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안으로 찾아가 만나는 것은 얼(道)로 말하였다.

공자에게 있어서는 도(道)란 표현으로 나타난다. 도(道)는 이 우주의 존재 근원이란 말이다. 곧 ‘하나님’이다. 이렇듯 공자는 삶 가운데서 중요한 고비에 꼭 찾는 분이 ‘하나님’이었다. 공자는 ‘하나님’을 예수처럼 살아있는 아버지로 대하였다. 예로 그의 제자 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통곡하기를 “이럴 수가 하느님께서 나를 죽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죽인 것이다”(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天喪予)라고 하였다.또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朝聞道夕死可矣)”태도로 살았다.공자 역시 석가의 말처럼 ‘하나님’은 말씀 안 한다(天不言)고 하였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절대적인 빔(空)이다. 이 세상에는 상대적인 빔(空)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왔다가 살아지는 이슬과도 같은 것이나 절대적인 빔(空)은 ‘하나님’이다.

류영모는 아주 빈 절대공(絶對空)을 사모한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야말로 참이 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허공이다. 이 허공이 참이다. 이것이 하나님이다. 허공 없이 진실이고 실존이고 어디 있는가. 우주가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허공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빈탕 한데’ 허공이다. 백 간 짜리 집이라도 고루고루 쓸 줄 알아야 한다. 우주 또는 그 이상의 것도 내 것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허공인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류영모는 븬탕(虛空; 빔)으로서, 도(道)로서, (無)로서 우리에게는 없이 계신 분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이-없음”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제 5 장.  결 론

                                                                                                                                                                           

1. 류영모의 눈으로 본 기독교 신학 반성

현재까지 신학은 하나님의 “가”를 외면한 가운데 인위적인 신학적 이성의 틀 속에 하나님을 모셔놓고 그 하나님을 다 아는 체 하며 하나님을 말해 왔다고 본다.

 

(표 1) 바울과 어거스틴 이후의 신학적 과제

바   울

 

 

어거스틴

 

 

 

* 인간구원

* 개종의 신학

* 명제의 신학

* 말씀의 신학

* 배타주의

토 마 스

 교회 중심(가톨릭신학)

루   터

 

 

슐라이

에르마허

   그리스도 중심

바 르 트

   (개신교 신학)

틸 리 히

 

 

환경 구원, 대화의 신학

문제의 신학, 삶의 신학

다원주의

현   대

    신 중심(종교신학)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이전에 배타적이고 교회 중심적 사상의 흐름이 주류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교회를 벗어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두어 놓고 교회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게 인간의 이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인간의 이성이 현대에 들어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성 상실과 환경의 파괴, 특히 동양의 신비적인 종교와 사상들이 서양에 들어가면서 이성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던 사람들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기독교가 처음에 동양에 들어오면서 가졌던 그런 변화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경험적이며, 기계적인 사고구조의 생활 속에서, 다시 말해 유(有)의, ‘있음’의 차원에서 신비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그렇지만 경험되어 질 수 있는 무(無)의, ‘없음’의 차원을 맛보면서 그 맛에 감탄하는 격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는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구원, 대화의 신학, 문제의 신학, 삶의 신학, 다원주의 등의 신학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좁아져 있던 눈을 크게 뜨고 “가”를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런 시도를 현대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우리와는 다른 초월적인 신적 실재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실제로 살펴보고, 이런 관점에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라는 현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현대의 종교다원주의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힉은 영원한 일자 개념을 사용하여 신적 실재에 대한 세계 대종교의 공통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신성한 실재, 영원한 일자는 무한하여 인간의 사고, 언어, 체험의 영역을 넘어서면서도, 유한한 우리 인간 본성에 가능한 제한된 방법으로 반응하고 그 앞에 드러나며 개념화되고 조우하는 등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대종교 전통의 공통 근거로 본다”.여기서 영원한 일자의 이해는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axial period)’ 대략 800-200 B.C 시기에 영원한 일자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을 통해 특유의 인간 개성이 나타났으며, 인간이 갖는 신성(divine)에 대한 느낌은 거의 무한히 확대되고 발전해 왔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른 형태의 문화를 가지고 나타나게 되었다고 힉은 주장한다. 그리고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인식하게 되면 인간 개인의 감정과 도덕적 인식 등과 같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양태에 따라 영원한 일자를 인식할 수 있고, 인식의 양태를 통제하는 것은 영원한 일자로 생각하고 있다.

위와 같은 신학의 변화 속에서 류영모는 “가이-없음”의 하나님, 『없이 계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동양의 종교와 기독교의 하나님을 아우르는 『없이 계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현대적 용어로 사용하면 하나님 중심주의일 것이다.

류영모는 “내가 성경만 먹고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유교 경전도 불교의 경전도 먹는다. 살림이 구차하니까 제대로 먹지 못해서 여기저기에서 빌어먹고 있다. 그래서 희랍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내 맷감량(飽和量)으로는 소화가 안되는 것도 아니어서 내 건강이 상한 적은 거의 없다. 여러분이 내 말을 감당할는지는 모르나 참고삼아 말하는데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보나 희랍의 철학을 보나 내가 하는 말이 거기에 벗어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한아님이 하여 주실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현대의 신학적 흐름을 이해하듯 류영모는 자신의 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말하고 있다. 다원주의적 종교이해와 하나님 중심의 사상은 다원주의 신학이 나오기 전에 류영모가 이 땅에서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주의적 신학과 신앙 속에서 류영모의 사상은 단지 혼합주의적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렇지만 류영모는 그의 글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행동 속에서도 상대의 신앙에 자신의 사상이 지나쳐서 다칠까봐 염려하며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 류영모는 김교신과의 만남에서 김교신의 정통신앙적 무교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에게 그이 정통신앙이 자신의 사상으로 다칠까봐 김교신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상을 살펴서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류영모의 사상은 역시 그의 “없이 계신”, “가이-없음”의 하나님 사상이 기초가 되었다.

류영모는 하나님 중심 사상의 기초 위에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은 사상이고 삶은 삶이라는 식으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속에 아마도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류영모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던 북악산 선인 이었다.


2. 류영모 사상의 교역현장에서의 반영

류영모는 기독교의 동양적 이해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동양 고전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성경에도 깊은 관심과 연구를 하였다. 그의 제자 김흥호는 류영모의 성경 책은 “줄을 긋고 점을 찍고 주를 붙이며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위편삼절(韋編三絶)할 정도였다”고 평한다.

이렇듯 성경에 대한 탐구의 노력은 어느 신학자 못지 않게 고민하며 공부했다. 그래서 그의 다석일지의 많은 부분에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써 놓은 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가 YMCA에서 가르칠 때에도 성경의 말씀을 들어 많은 말씀하셨다는 것을 그의 강의록이라 할 수 있는 다석어록(제소리)에 많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교역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교역 현장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그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강단에서 선포하며 그 선포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류영모는 실천가였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펼침에 있어서 일식(一食_, 일언(一言), 일좌(一座), 일인(一仁)의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즉, 하루에 한끼를 먹으며, 남녀의 관계를 끊었으며, 겸손하게 항상 무릎을 꿇어앉았으며, 언제나 걸어 다녔다는 것을 이와 같이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숨쉼이라고 하여 삶을 기도로 보았다.

기독교의 기도와 삶의 실천부분에 있어서 류영모의 생각과 실천은 본받을 만 하다. 우리의 삶에 겸손함과 기도의 호흡이 끊이지 않게 하는 노력이 매일 같이 필요한 시대이다.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았던 류영모의 삶은 교역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역자나 배우는 평신도나 모두가 본받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땅에 서서 하늘을 이고 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밥을 먹고 살아간다면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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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신학대학 졸업(93학번)  한신대학 대학원 신학과 수료
(E-mai ydjman@kebi.com  HomePage http://
ydjman.mytripo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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