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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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선생 영전에 눈물로 고합니다
리영희 (한양대 교수)
삼가 고 일속자(一粟子) 장일순(張壹淳) 선생의 영전에 바치나이다.
선생님은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군부독재와 싸워온 모든 동지․후학․후배들의 뜨거운 기도의 효험도 없이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야만적인 군부통치를 물리치고 이제 막 민주주의의 막이 열리려는 순간에 선생님은 그토록 갈구하신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슬픕니다. 원통합니다.
선생님이 처음 병상에 누우신 후 3년여 동안 저희들은 천주님의 가호와 저희들의 뜨거운 기도로 반드시 병고를 이기시고, 지난날과 다름없이 온화하고 웃음띤 모습으로 저희들 앞에 돌아와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통일에의 길로 내디디려는 때에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니 눈앞이 캄캄하여,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국가와 사회가 기꺼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고결하셨습니다. 병든 이 시대가 반기기에는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올곧은 삶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사악하고 추악한 것들은 목에 낀 가시처럼 선생님을 마다하고 박해하였습니다. 그럴수록 선생님이 계신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929번지는 인권과 양심과 자유와 민주주의의 대의에 몸바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하나의 작은 성지였습니다. 진정 그러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적막하여, 숨소리를 내기조차 두려웠던 지난 30여년 동안, 선생님은 원주의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싸우는 전선에서 비틀거리는 자에게 용기를 주시고, 싸움의 방법을 모색하는 자에게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회의를 고백하는 이에게는 신앙과 신념을 주셨고, 방향을 잃은 사람에겐 사상과 철학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공과 영예를 후배에게 돌리시는 민중적 선각자이시고 지도자셨습니다. 원주의 그 잡초가 무성한 집은 군부독재하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지친 동지들이 찾아가는 오아시스였고, 선생님은 언제나 상처받은 가슴을 쓰다듬는 위로의 손이셨습니다.
장일순 선생님. 선생님의 그 가르침과 사랑이 없었던들 이 나라의 민주화․반독재 투쟁은 70년 초에 선생님이 비장한 그 첫 횃불을 치켜들던 상태에서 멀리 전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971년 10월 천주교 원주교구가 고 지학순 주교를 선두로 박정희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항거하는 일대 운동을 전개했을 때, 멀리 떨어진 우리들에게는 무모한 짓으로만 비쳤습니다. 세상은 그 감동적인 궐기 뒤에 장일순 선생님이 계신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원주교구에서 선생님이 지도하신, 생명(자유)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대한 저항은 곧이어 73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이 나라의 모든 젊은 심장을 뛰게 하였고, 전국 천주교회와 종교계의 일대 항의운동으로 잠자던 노동자와 농민을 흔들어 깨웠으며, 마침내 전국민적 반독재 투쟁이 요원의 불로 번졌습니다.
그 어느 단계의 어느 싸움에서나 그 전열에 선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선생님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때까지, 그리고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선생님의 사랑하는 분신들이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장일순 선생님, 보고싶은 장일순 선생님.
선생님은 한 시대를 변혁한 그토록 큰 업적과 공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한알의 작은 좁쌀(一粟子)"을 자처하며 사셨습니다. 원주시 봉산동의 그 누옥에서 오로지 먹과 벼루와 화선지를 벗삼아 한낱 이름없는 선비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참으로 고결한 삶이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 선생님께서 6년전 창간의 궂은 일을 흔연히 도와주시며 그토록 기뻐하셨던 <한겨레신문>도 선생님의 깊고 높은 뜻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들 후학 모두가 선생님과 다름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학순 주교님과 천주님 나라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소서. 평생 동안 오로지 선생님을 보필해, 오랜 병구완에 지치고 또 이제 헤어짐의 눈물에 젖은 부인 이인숙 여사와 세 자제들과 그 가족을 하늘나라에서 굽어 살피소서.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던 후학 동생이 삼가 눈물로 고하나이다.
일속자 장일순 선생의 영령이시어, 영원한 평안을 누리소서.
1994년 5월 22일 리영희
한겨레신문 1994년 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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