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며 사유의 부족을 꾸짖었던 시대의 스승 함석헌 선생의 탄생 1백돌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은 같은 날 1백11주기였다. 사상가로, 실천가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승과 제자를 돌아본다.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가 다석의 사상을 개괄·평가한다<엮은이>
21세기 우리는 ‘세계가 하나’가 된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지구촌 시대에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구의 파멸과 인류의 종말로 치닫고 있는 생태계 파괴의 문제이다. 생태학은 당연히 21세기의 ‘제일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다음은 64억 인구의 평화로운 더불어 삶이다. 첨단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20%의 인류만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나머지 80%는 생존을 위해 허덕이거나 죽음의 그늘 아래 방치되어 있다.
과연 21세기 인류를 옥죄고 있는 이 두 문제를 풀 해법은 있는가? 몇몇 세계적인 지성인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한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하이데거)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한스 큉) “나눔 없이 평화 없다.”(마더 데레사)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생활방식, 사유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는 경종이다. 우리는 탈근대, 탈이성, 탈서양, 탈인간중심을 외치며 대안적 사상을 찾아야 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외침에 귀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간과했던 영성적 차원의 회복 없이는 구원의 길을 찾기란 어렵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20세기 한국이 낳은 위대한 영성가 다석 류영모의 사상이 희망의 불꽃으로 피어오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빛의 형이상학’에 대안 류영모의 사상적 화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태양을 꺼라!”이다. 오직 태양의 빛 아래에 나타나고 있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성의 빛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만을 ‘현실’인 것으로 사유해온 서양사상을 ‘빛의 형이상학’이라고 간주하며 “태양 빛을 꺼라!”고 류영모는 외치고 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몰아낸 無·空·虛에 마음을 열고 그것과의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 동물이 아니다. 류영모는 인간을 사이에 던져져,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 ‘사이-존재(사이에-있음)’로 본다. 즉 하늘-땅-사이(天地間)에서, 사람-사이(人間)에서, 빔-사이(空間)에서, 때-사이(時間)에서 그 사이를 이으며 사이를 나누며 사르고 있는 ‘사이-존재’로 보았다.
이렇게 사이에 있는 ‘사람’은 그 사이를 사이로서 이루어주고 있는 가능조건, 즉 하늘-땅, 사람, 빔, 때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사이에 내던져져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있음’은 그러한 다양한 사이들을 ‘잇는’ ‘잇음(이음)’(=사이-이음)이고 다양한 사이로서 ‘있음’(=사이-임)이고 다른 사이에 있는 것들과 다양하게 사이를 나누는 나눔(=사이-나눔)이다.
류영모는 ‘사이에 있는’ 인간을 그 사이에 따라 네 가지 차원으로 구별하여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빔-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몸으로서의 ‘몸나’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사이를 오고가는 마음으로서의 ‘맘나’도 나의 전부가 아니다. 시간 속에 살며 때-사이를 잇고 있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제나’도 나의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늘과 땅 사이를 잇고 있는 ‘얼나’로서의 나가 참나다. 얼로서의 나가 우주의 얼인 ‘한얼’과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얼나’인 인간, 인류의 희망 류영모는 노장사상과 무속종교가 너무 몸나에만 관심을 보였다면, 불교는 너무 맘나에만 치중하였고, 유교는 너무 맘나의 공동체인 ‘家’에만 신경을 쏟았고,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역사관 속에서 제나의 구원에만 몰두하였다고 비판한다.
류영모는 이 모든 ‘나’의 차원들을 나름대로 다 살리면서 궁극적인 참나인 ‘얼나’로서의 삶에 정진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몸을 건강하게 보존하며 ‘몸성히’, 마음을 놓아보내며 ‘맘놓이’, 자신의 속알(바탈)속에 새겨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태우며 (= 바탈태우, 뜻태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주, 모든 빔, 모든 사이 속에 없이 계시며 모든 생성소멸과 변화를 주재하는 하느님의 성령인 한얼과 소통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살리고 섬기며, 자신을 나누며 비우는 우주적 ‘살림살이’를 사는 우주인이 될 것을 류영모는 우리에게 조용하게 이른다.
무한 경쟁 속에 무한 소유를 부추기며 무한 소비를 조장하면서 욕망을 고무풍선처럼 한없이 키우고 있는 현대인에게 하나뿐인 삶의 터전인 지구가 쓰레기통과 도살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 인간이 류영모의 가르침처럼 얼나로서 살림, 섬김, 비움, 나눔의 우주적 살림살이에 동참한다면 이 지구와 인류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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