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유영모의 신앙
정 양모(다석학회 회장)
머리말
잘 알려진 일이거니와 다석 유영모는 1955년(16세) 기독교에 입신하여 서울 종로 5가 연동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1912년(23세)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톨스토이 를 익히고, 이어 동경에서 무교회주의 창시자인 우치무라의 강연을 청강한 때부터 제도교회를 멀리하고 홀로 신앙을 가꾸었다.
1941년(52세) 크게 깨친 바 있어, 2월17일부터 하루 저녁 식사 한끼만 먹고(一日一食), 이튿날 이른바 해혼(解婚)을 선언했다. 12월 5일 신앙시편<눅임의 깃븜>과 <믿븐날>을 엮어 (성서조선) 1942년 1월호에 실었다. 1942년(53세) 1월 4일 새벽, 치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내의 치유틀 간구하다가 문득 인생무상을 깊이 깨닫고 온전히 하느님께 헌신키로 결심했다. 선생은 열락의 상태에서 <주와 나> <말슴대로 믿음> <믿음에 드러간이의 노래> <허물은 죽은 살이다> 같은 회심 시편들을 <부르신지 38년 만에 믿음에 드러감>이란 큰 주제 아래 (성서조선) 1942년 2월호에 발표했다. 또한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큰 주제 아래 당신의 신심을 드러내는 단문과 시편 11편을 (성서조선) 1942년 3월호에 실었다.
여기서는 그 많은 신앙시편들 가운데서 <믿음에 드러간 이의 노래> 중 일부만 간추려 옮겨 적는다. 진실로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 귀의한 사람의 갸륵한 회심기이다.
"나는 실음 없고나 ,
인제붙언 실음 없다.
님이 나를 차지(占領)하사,
님이 나를 맡으(保管)셨네.
님이 나를 갖이(所有)셨네.
몸도 낯도 다 버리네,
내거라곤 다 버렸다.
<죽기전에 뭘 할까?>도
<남의 말은 어쩔까?>도
다 없어진 셈이다.
새로 삶의 몸으로는
저 말슴을 모셔 입고
새로 삶의 낯으로는
이 우주가 나타나고
님 뵈옵잔 낯이요,
말슴 읽을 몸이라.
사랑하실 낯이오,
뜻을 받들 몸이라. 아멘."
그런가 하면 <허물은 죽은 살이다>라는 시편 말미에선 다음과 같이 외쳤다.
"주여, 이 꺼풀 벗겨 줍소서
이 허물 떼여 줍소서,
저는 삶이 그립삽나이다.
몸을 잊자!
낯을 벗자!
맘을 비히자!
그리고
보내신이의 뜻을 품자!
主를 따러 ,
아버지의 말슴을 일우자!
말슴을 일움으로
살자! 아멘."
이 소고에선 1942년도의 중생체험(重生体驗)을 바탕으로 일생을 살다가신 다석의 신관 ·기독관 ·종교관을 <다석강의> (현암사 2006)와 <다석일지 공부> (전 7권, 솔 2001)에서 대충이나마 찾아보고자 한다.
1. 다석의 신관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서 하느님을 논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쓴다. 가치의 극대화로 하느님을 설하는 긍정의 방법과,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을 언표 할 수 없다는 부정의 방법이 있다. 서구 신학사에서는 긍정의 방법을 선호한 긍정신학이 성했다. 하느님은 전선하시다, 전지하시다, 전미하시다, 전능하시다, 영원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나 긍정신학이 식상할만하면 불쑥 불쑥 나타나 경종을 울린 신비가들은 하느님의 절대 초월성을 절감한 나머지 인간의 말로써 하느님을 논하지 않고 침묵하는 부정신학을 주창하곤 했다. 부정신학은 유불선의 태극-무극사상 ·공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로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도덕경 머리말은 한자문화권의 식자들이 즐겨 입에 담는 명언이다.
영국 중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오랜 연구 끝에 내린 다음의 결론은 의미심장하다(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이재회 옮김, <마음의 진보> , 교양인 2006, 490-491).
"신에 대한 모든 발언은 두 가지 요소를 가져야 한다는 그리스 정교의 입장은 수긍이 간다. 첫째, 그것은 역설적이어야 한다. 신은 깔끔하고 수미 일관한 사유 체계로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부정하는 방식으로 긍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 결국 말이나 생각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그저 한없는 외경심을 느끼면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
다석은 하느님을 거론할 때 긍정과 부정의 방법을 다 쓰신 분이라, 하느님을 일컬어 '없이계신 아바'라고 하였다(1959년 6월 16-19일 일지). 그러나 다석은 동방인 답게 부정의 방법을 더 선호했다. 다석은 1957년 1월 30일에 지은 5언율시(外無他)를 풀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석 강의> 452-453).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어야 참이 될 수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허공입니다. 이것이 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입니다. 허공은 참이고 하느님입니다. 허공 없이 실존이고 진실이 어디 있습니까? 우주가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합니까? 허공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주 사이에서 하나의 절대자(絶大子)가 '나'입니다. 허공밖에 없는 이 우주에서 내가 허공의 아들입니다. 곧, 절대자입니다. 절대자가 하강하였는데, '나'라는 것이 절대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는가? 안다면 어느 만큼 알며, 요망한 것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것이 가셔지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웋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올라갑니다. 달(達 )하는 것은 이 몸뚱이가 아니라 맘이 상달(上達)하는 것입니다. 호천부(號天父)하는 소리인 '말'이 상달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인 허공이 '나'를 차지할 것이고, 허공을 차지한 '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침은 분명히 옵니다. "
일찍이 요한복음의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두고 "나의 아버지께서는 만유보다 크시다"고 하셨다(요한 10,29). 하느님이 만유보다 크시다면, 하느님은 있음을 뛰어넘어 없음의 차원으로 옳겨갈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하느님은 절대공(絶大空)이요, 우리는 절대공의 조물이니 절대자(絶大子)라고 다석은 말한다.
다석이 긍정적 방법으로 하느님을 언표할 때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즐겨 썼고,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삼강오륜의 표현을 빌려 부자유친이라 하였다. "평생을 통해 아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낳아 주고, 그 생명인 '나'가 하느님 아버지를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 '나'입니다. 내가 없으면 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 <다석강의> 203쪽).
"지극한 효는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에게만 孝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저 한웋님에게 하는 효라야 만백성도 이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한웋님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효자인 것입니다. 한웋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예수처럼 한 이가 없습니다. "( <다석강의> 916쪽).
다석온 1955년 9월 26일자 일지에서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7언절구 두편을 읊었은데 김흥호는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옮겼다( <다석일지 공부> 1권 178-179쪽).
"思親
大命希音伏不審 대명희음복볼심
何思切於未見親 하사절어미견친
吾生當今尋常視 오생당금금상시
皇上直下消息身 황상직하소식신
아버지의 크신 명령은 들리지 않는 소리라 엎드려 살피지 못하였다. 그러나 보지 못한 아버지틀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얼마나 간절한가. 내가 사는 것은 순간순간 영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고 내 몸을 곧게 일으켜 세우고 나의 마음을 불사른다. "
"思事
面識相思何足想 면식상사하족상
欲知不得寤寐玆 욕지부득오매자
形而上下別居處 형이상하별거처
身以生死復命事 신이생사복명사
아버지의 얼굴을 알고 서로 그리워해도 그리움을 채울 수 없을 터인데,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자나깨나 그리워하고 있다. 아버지는 형이상에 계시고 나는 형이하에 있다. 몸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아버지의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 "
다석은 1977(88세) 6월 21일 가출했다가 23일 정릉 뒷산에서 발견되어 순경에게 업혀 온 다음부터 1981년(92세) 2월 3일 구기동 자택에서 종생 할 때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쩌다 제자들이 찾아가면 가끔 (아바디) 외마디만 외쳤다. 하느님 아버지를 그리워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임종 때도 (아바디) 를 찾았다고 둘째 손녀는 증언하면서, 어쩜 그렇게도 하느님을 찾는 정이 간절할까, 어린 마음에도 놀랬다고 한다.
2. 다석의 기독관
예수는 성령을 듬뿍 받아 하느님 아버지를 깊이깊이 깨닫고 지극정성으로 섬긴 맏아들 효자라는 것이요,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다석은 거듭해서 말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도 예수처럼 살면 예수 같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수보다도 더 위대한 그리스도가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다석강의) 에서 몇 단락을 적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길에 있습니다. 그 길에서 다만 좋은 것은 예수가 하느님의 맏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이 무척 그리워하는 분이 예수입니다. 하느님 앞에 우주인으로서 기도를 가장 힘있게 드린 이가 하느님의 맏아들 예수였는데, 그 뜻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맏아들로서(인류의) 영생과 행복을 위해 아버지에게 통곡을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동양에서도 맏아들이 위험한 큰일에 나선 것은 퍽 흥미 있는 일입니다."(276쪽)
"이 사람은 예수의 맡씀을 '누리의 빛'으로 알고,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우리의 정신이 나아가는 한 얼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가 더욱 하늘나라를 밝히고 따져 더 커지도륵 힘써야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는 종당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뜻의 영원한 '주일(主一)'을 다하여 그리스도틀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원 그대로 '주일(主一)'입니다. 하나(절대)가 모두의 '주(主)'가 되고, 더 가서는 없습니다. 전체인 절대보다 더 갈 것이 없습니다. "(310-311쪽)
"나는 '하나'와 어떤 관계인가 할 때, '하나'가 나를 아들 삼은 것을 느낍니다. '하나'가 날 내주고 길러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나'의 아들 노릇을 하는 거 같습니다. 예수도 이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곧 '하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것은 형제가 없어서 독생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아들임을 깨닫는 관계를 말한 것 같습니다. "(460쪽)
"이 사람에게는 의중지인물(意中之人物)이 있습니다. 의중지인(意中之人)이라고 하면 연인으로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중지인은 내 뜻 가운데의 사람이며, 내가 잘못하면 왜 그렇게 하느냐며 잘하라고 책망하는 벗을 말합니다. 이 사람을 보고는 책선(責善)할 일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행을 하도록 타이르는 책선이요 의중지인입니다. 최후까지 진실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택덕사(擇德師)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가 이 사람의 스승입니다. 예수를 선생으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선생이라고는 예수 한 분밖에 모시지 않습니다. 선지자를 내가 알아 모셔야 합니다. 사제온고지신도(師弟溫故知新道). 사제관계(師弟關係)가 이러해야 합니다. 부자관계와도 같지 않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묵은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자꾸 새로운 것을 연구하자는 것이 사제지간(師弟之間)입니다. 묵은 것에 익숙해져야 새로운 힘이 나옵니다. 녹음해둔 것을 듣기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 배우고 새롭게 나가는 새로운 길을 자꾸 찾아나가야 사제(師弟)의 관계가 되고 인도(仁道)가 새로 서게 됩니다. "(781쪽)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느님의 씨(요한1서3:9)를 타고나,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입니다. 독생자는 비할 수 없는 존신(尊信)을 가집니다. 내가 독생자, 로고스, 하느님의 씨라는 것을 알면, 그러니까 이것에 매달려 줄곧 위로 올라가면, 내가 하늘로 가는지 하늘이 나에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늘나라가 가까워집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됩니다. "(848쪽)
"지극한 효는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에게만 효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저 한웋님에게 하는 효라야 만백성도 이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한웋님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효자(孝予)인 것입니다. 한웋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예수처럼 한 이가 없습니다. 그의 효가 형우사해개(刑于四海盖)한 것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916쪽)
다석은 1956년 9월 19일자 일지에서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요한 14,9)라는 예수의 말씀을 빌려 다음과 같은 시편을 엮었다.
"아바지라 천만번 불러야 대답하신다더냐
한마디도 말슴이사 아니하시는 한웋님이시다.
날본인 아바보왔단 아멘 아멘이시매"
3. 다석의 종교관
다석은 동서고금의 현자들을 모두 존경했지만 그 가운데서 예수를 가장 경외했다. 그러나 그의 예수관을 보면 없이 계시는 하느님을 깊이깊이 깨닫고 맑게 맑게 드러낸 위대한 선각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예수가 결코 신격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를 빼어난 선각자로 보고 본받는 것은 옳지만, 그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과공은 비례라는 것이다. 그가 예수와 기타 현자들을, 나아가서 예수와 우리네 중생을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예나 이제나 정통 기독교인들은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열린 예수관 때문에 타종교와의 진솔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다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해석한 까닭에 이른바 종교다원주의의 길이 열렸다. 서구 종교학자들이 만들낸 religious pluralism을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라고 번역해 상용하지만, 따지고 보면 옳지 않은 번역어이다. 종교현상은 다양하지만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주의 주장이니만큼 종교일원주의라고 번역하는 게 옳겠다. 다석은 종교일원주의틀 자주 강조하곤 했다( <다석강의> 459-460.712.740-747쪽). 이제 <다석강의> 가운데서 선생의 종교관이 잘 드러나는 단락들을 적출해서 예시코자 한다.
"목구멍으로 숨쉴 즐 알면 하늘의 명령도 숨쉰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모르면 '그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곧 군자(君予)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군자'는 글자 그대로 새기면 임금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성경」 에도 독생자(獨生子)라는 말이 있는데, 하늘(하느님)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공자 역시 아들입니다. '군자'를 '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꾸 찾는 것이 '그이'입니다. 이 사람더러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이'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이 사람을 두고, 기왕에 생명을 타고 나온 이상 어떻게든 바로 살겠다고 하던 '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그이'가 있는데 두어 사람이라도 이 사람에게 '그이'라고 한다면 좋다는 말입니다. '그이는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리없습니다. 몇 사람만이라도 이 사람에게 '그이'라고 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그 말을 받겠습니다.
공자나 증자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부자(夫子)라는 명칭도 '제 아비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그이'를 나타냅니다. 교육받은 집안에서 댁내를 가리켜 부인(夫人)이라고 합니다. 지아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편의 소유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이'에게 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자나 공자나 증자나 '자(子 )는 다 '그이'라는 뜻이고, '그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도 '그이'입니다.
우리가 알긴 무엇을 압니까? 우리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유교를 이단시하고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예수를 비난하고 유교를 나쁘다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불교를 욕지거리하면서 무엇을 안다고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을 모르면 자기도 모릅니다. "(44-45쪽)
"유영모가 예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수 얘기틀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를 얘기한다고 해서 공자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이 사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간디나 톨스토이처럼 하느님 말씀의 국물을 먹고사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들과 비슷하게 하려는 것이 공자, 석가, 예수, 간디, 톨스토이를 추앙하는 것입니다. "(446 쪽)
"이 사람이 「성경」 만 먹고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유교의 경전도 먹고 불교의 경(經)들도 먹습니다. 살림이 구차하니 정식으로 먹지 못하고, 구걸하다시피 여기서도 얻어 먹고 저기서도 빌어먹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이 사람의 깜량(消化力)으로 소화시켜 왔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여 내 건강이 별로 상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지 안 될지는 여러분들의 건강에 달렸겠지만, 「성경」 을 보나 유교 경전을 보나 불교의 경을 보나 그리스의 지(智)를 보나 종국은 이 '몸성히', '맘뇌어', '뜻태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하느님이 하겠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고 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나 이 사람에게나 결코 헛된 일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606쪽)
"공자와 석가와 예수는 대장부(大丈夫)로 여사부(如斯夫)로 꾸준히 가신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인생을 따지면 유교가 따로 있고 불교나 그리스도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정신을 하나로 고동(鼓動)시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되고, 이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요전에 말씀드렸지만 지도 계급과 인민(人民) 사이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선생과 제자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도 학생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상의 끄트머리가 어디에서, 언제 완전하겠습니까?
미정고(未定稿)로 가르치는 선생이나 이것을 받아들이는 제자 사이에 모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반드시 모순이 있습니다. 이 미정고는 인류가 계속되는 날까지 계승하여야 할 사상(思想)입니다. 일반적으로 선생을 하늘과도 같이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대가(大家)나 대선생(大先生)이라고 해서 모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原稿)를 마치려면 마침내 하느님이 마칠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시작이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로 볼 때, 사람은 하느님의 빛의 끄트머리 또는 펜의 끄트머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까지 하느님의 펜촉 역할을 하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이 다음에 너희가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4:12), 이것은 알 수 없는 말 같으나, 예수가 해놓고 간 것이 미정고(未定稿)이니까, 이것을 계승하는 후대의 사람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하신 '하나'의 존재를 후대(後代)가 마침내 더 가깝게 보고 거기에 이르는 견지(見地)까지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804-805쪽) 다석의 제자 성천 류달영은 스승의 열린 종교관을 보여주는 생생한 일화를 남겼다( <동방의 성인 다석 유영모> , 무애, 1993,22-23쪽),
"1937년 정초(1월3일)에는 경인선 오류역(현 구로구 오류동 전철역) 근처 송두용(宋斗用) 집에서 겨울철 성서연구 모임을 가졌다. 다석은 북한산록 구기리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왔다. 다석은 그 모임에서 김교신의 간청에 의해서 성경 말씀을 하게 되었다. 말씀의 내용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해설이었다‥‥ 다석은 말하기를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씨를 사람의 마음속에 넣어 주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로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한1서 3:9)에 하나님의 씨라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사람은 제 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를 키워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삶의 궁극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석가는 모든 사람의 맘속에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였고 공자는 사람은 누구나 맘속에는 인성(仁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예수의 영성(靈性)이나 석가의 불성이나 공자의 인성이나 같은 진리라고 말하였다.
이제까지 그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무교회 신앙이라 자처하였지만 교회 신앙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최고의 구세주이고 석가나 공자는 예수보다 훨씬 아래 사람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다석이 예수 ·석가 ·공자 모두가 똑같다고 하자 좌중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김교신이 질문을 막았다. 김교신은 사람들에게 다석 선생님의 성경 풀이는 아주 높은 차원에서 보고 하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을 알아들을 만한 귀를 따로 가지고 듣지 않으면 그 참 뜻을 바로 이 자리에서 깨닫기는 어려우니 각자 마움에 간직하고 돌아가서 오랫동안 되새겨 보라고 타일렀다. 함석헌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미소만 짓고 있었고 송두용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김교신이 깊은 뜻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믿고 두고 생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석은 그의 말을 듣고 의아해 하는 여러 사람들의 동정을 보면서 혼자서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
맺는말
흔히 한 나라의 문화를거론할 때 그 나라에서 어떤 인물이 나왔는지 살펴본다. 예로 인도는 석가를, 중국은 공자를, 그리스는 소크라테스를 치켜세운다. 이탈리아는 단테를, 영국은 세익스피어를, 독일은 괴테를 자랑한다. 장차 우리겨레가 세계만방에 다석을 뽐낼 때가 오리라고 본다. 인생만사가 불완전하듯이 다석의 생애와 사상 역시 미정고임에는 틀림없지만 세상 어느 구석에서 그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살다 가신 분을 또 만날 수 있겠는가? 다석이야말로 제생각 ·제소리 ·제걸음의 삶을 산 독특한 현자이다. 지행병진의 삶을 산 위대한 성인이다. 그러나 다석에 대한 평은 엇갈리기 마련이다. 인류의 사성(四聖)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 아니던가? 많은 이가 다석을 칭송하는 데 반해서 고은 시인은 다석의 삶과 사상을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만인보> 8권, 창작과비평사, 1989,54-55쪽).
"유영모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다만 멋쟁이라면 모르거니와
어쨌다는 것인가
어쨌다는 것인가
일찍이 그 총기에
유 · 불 · 선 익 혀
서양 칸트 익혀
그 따위를 하나로 만들고
무릇 인민을 씨알 이라 부르고
그를 이어
제자 함석헌이
그 씨알을 펴나가는데
쉰 살 넘자 깨친 듯이
아내 김효정과
이혼하는데
이혼이라 하지 않고
해혼이라 부르고
하루에 한 끼 먹으며
오욕칠정을 감히 잿더미에 묻어버리니
따뜻한 아랫목 대신
잣나무 널빤지 위에서 자고 깨며
절로 이름 짓기를
온 우주의 수많은 밤이라 하여
거칠은 수염발에
두 눈 떠
수많은 저녁이라 하여
아흔살 살고 훌쩍 떠나서
정녕 그것이 사상이란 말인가
다석 철학이란 말인가
여기저기 도토리나무 솎아베는 나무꾼만 못함이여
무슨 큰 뜻이 있는 듯하나 그저 부질없음이여"
노벨 문학상 후보였다는 시인의 눈썰미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시인이 <다석일지 공부> 와 <다석강의>를 정독하고 다석의 됨됨을 곰곰이 되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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