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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반신수덕(다석)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5.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반신수덕(反身修德)

- 다석 류영모 -

 

 

반신수덕은 역경 건괘(蹇卦)에 나온다. "군자는 몸을 돌이켜 속알을 닦는다"(君子以 反身修德)고 하였다. 반신이란 자신을 반성한다는 뜻이다. 자신은 곧 자아이다. 자아를 뒤집는 것이 반신(反身)이다. 자아는 거짓 생명으로 참나(眞我)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수덕(修德)은 속알을 닦는다는 말이다. 속알은 속나 얼나를 말한다. 얼나를 기른다는 뜻으로 양성(養成)이라 한다. 얼나를 밝힌다는 것으로 명덕(明德)이라 한다.


반신수덕(反身修德)은 몸나를 부정하고 얼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몸나를 물리치고 얼나를 높이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사는 것은 얼이니 몸은 쓸데 없다"요한 6:63)는 말이 반신수덕(反身修德)이다. "몸뚱이는 멸망한다. 멸망해야 할 것이니까 멸망하는 것이다. 회개(悔改)란 쉽게 말하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몸이 죽더라도 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 회개다. 몸을 참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멸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반신수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반신수덕'하여 영생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드물다. 거의 모두가 종신실덕(從身失德)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종신실덕(從身失德)은 몸을 좇아가고 속알을 잃어버린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영성(靈性)을 버리고 수욕(獸慾)을 좇아간다. 참나(眞我)인 얼나가 있는 것을 모르고 거짓 나인 몸나를 참나로 아는 어둠의 착각을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수욕(獸慾)인 탐진치(貪瞋痴)를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반신(反身)이 아니라 종신(從身)이다. 공자가 70세가 되니 자기 마음을 좇아가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從心所慾不踰矩)는데 종심(從心)이란 종신(從身)과 같은 뜻이다.


자아의 수욕인 인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은 한 뿌리의 3가지와 같다. 탐욕 속에 진에와 치정이 들어있고, 진에 속에 탐욕과 치정이 들어있고, 치정 속에 탐욕과 진에가 들어 있다. 사람들이 노름(도박)을 즐긴다. 그것은 상대의 돈을 빼앗겠다는 탐욕이다. 노름은 타협된 도둑질이요 강도질이다. 상대와 돈따먹기를 겨루면 진(瞋)심이 발동한다. 또 승부의 집착 가운데 흥분하여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쾌감을 즐긴다. 도박이란 가난한 사람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족이 없는 부자들이 즐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리기의 여인이 백화점에서 도둑질하는 것을 즐기는 심리도 같다. 화강(和强)을 막론하고 남녀의 성범죄도 음욕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성행위를 함으로써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소유욕구를 채운다는 탐심도 작용하는 것이다. 색마(色魔)는 자기가 정복한 여인을 보면 내 목장의 가축을 보듯이 흐뭇함을 느낄 것이다. 여인들은 자기가 정복한 남성을 보고 너희는 내 손아귀에 놀아난 것들이라고 만족할 것이다. 사람들은 남녀의 성행위를 사랑의 극치라 예찬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마귀의 소리다. 성행위도 서로가 성욕의 만족을 추구할 때에는 진(瞋)에서 나오는 싸움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사람 산노스케(三之助)가 그의 저서 '사랑의 인식과 출발'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중병을 앓고서 바로 성교를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성교할 당시에는 성욕의 만족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를 죽이는 그 성행위가 어떻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성교를 한 남녀가 친해지는 것은 싸움을 한 사람끼리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 톨스토이가 그의 성욕론에서 말하였다. 성행위 가운데 상대방을 학대하는 새디즘saddism 병자가 있는 것도 성교가 사랑이 아니라 싸움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사랑이란 상대가 싫어하는 짓은 안 하는 것이다. 성교가 곧 사랑이란 새빨간 거짓말이다.


진(瞋)의 광란이 전쟁이다. 전쟁은 적국의 영토와 인민의 재산을 빼앗는 도둑질 가운데 가장 큰 도둑질이다. 이것은 더 없는 탐욕이다. 그런데 전쟁을 운동경기처럼 즐긴 나폴레옹은 격전을 치른 전장에서 아군 적군의 병사들이 전사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널려있는 것을 보고 쾌감을 즐겼다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도 진(瞋)의 발로다. 채근담에 이르기를 "투기하는 마음은 골육의 피붙이가 남보다 더 강하다"고 하였다. 사람이 지닌 수욕(獸慾)이 얼마나 독한 것인가를 웅변하여 준다. 수욕(獸慾)의 자아를 뒤엎어 없애지 않고는 영아(靈我)로 거듭나지 못한다. 반신수덕(反身修德)하는 것이 짐승에서 사람이 되고 하느님 아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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