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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서평] 다석일지(김홍근, 교수신문 010402)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5.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51

 

 

 

[깊이읽기]『다석일지공부』(김흥호 주해, 솔 刊)

2001-04-02 00:00:00
2001년 04월 02일 (월) 00:00:00 김홍근 / 덕성여대 강사·스페인문학 webmaster@kyosu.net

多夕 柳永模(1890~1981) 사상의 특징은 기독교에서 출발해 유불도 삼교를 회통한 후, 기독교를 동양적으로 체득했다는 점이다. 동양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는 당대의 석학인 최남선, 정인보, 문일평 등으로부터 외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15세에 기독교에 입교했으나, 22세 때부터 교회에 나가는 대신 홀로 성경을 철저히 연구했고, 마침내 52세 때 기독신앙의 골수를 득도했다. 65세에 자신의 깨달음인 ‘인생은 죽음으로부터’를 실천하기 위해 1년 뒤 1956년 4월 26일 죽는다는 사망 예정일을 선포하고 자신의 장례식을 거행한다. 이때부터 영성일기인 ‘다석일지’를 쓰기 시작한다. 69세에 ‘노자’와 ‘반야심경’ 등 중요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긴다.


유영모의 사상이 21세기 벽두에 한국 지성계로부터 주목받는 것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그의 사상이 안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성격이다(多元보다 一元多敎가 더 적절한 용어일 수 있다). 유영모는 성경을 연구해 속이 뚫려 완전히 납득될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요즘 말로 하면 철저한 해석학적 반성을 거친 것이다. 이렇게 ‘지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는 기존의 성경 해석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유대인들의 구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는 한국인으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동양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서삼경, 불경, 노·장자 등을 연구하고 그 이치를 신약 이해에 원용했다. 즉, 동양인에겐 동양고전이 곧 구약이라는 것이다. ‘어둠’, ‘空’, ‘無’, ‘虛’, ‘孝’ 등의 개념을 빌어 기독교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풀어내는 그의 성경해석은 매우 독창적이어서, 지금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의 에딘버러대학이나 미국의 예일대학 등에서도 다석사상을 활발히 연구하는 학위논문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기독교를 한국식으로 완전히 소화시킴으로써 토착화의 길을 연 점도 유영모가 남긴 가능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는 사상 처음으로 ‘한글로 독자적 철학을 시작한 인물’로 조명되고 있는 점이다. 유영모는 구경각을 이룬 후 기록하기 시작한 그의 ‘다석일지’에 한시 1천7백 수와 한글 시조 1천3백 수를 남겼다. 이중 특히 한글로 쓴 시조들은 그 뜻이 현묘해서 순수 한글로도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수 있고 또 그 뜻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경외감을 안겨준다. 훈민정음을 깊이 연구한 그는 평소 한글은 하늘이 내려준 계시를 담은 바른소리라고 하면서, 한글 단어 하나 하나가 그대로 철학개론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오늘’은 감탄사 ‘오!’와 ‘늘’이라는 말이 합친 글자로서 시간철학의 핵심을 절묘하게 담고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깊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면 새로운 한글을 만들거나 古語를 가져다 썼는데, 이 때문에 그의 한글 시조는 그 문법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좀체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일지를 현대어로 완전히 풀어낼 제자는 현재 두 사람만이 생존하고 있는데, 김흥호 감신대 교수와 박영호 성천문화재단 연구위원이 그들이다. 이 중 연장자인 김흥호는 다석이 남긴 시조들을 후학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해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전체를 풀이했다. 그것이 전 7권으로 솔출판사에서 간행된 ‘다석일지공부’이다.


셋째는 동약학의 특징인 지행합일을 통해 십자가의 길(道)을 온몸으로 구현한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유영모는 ‘一日一生’ 主義로 살았다. 하루에 일생을 압축한 것이다. 아침엔 일어나 말씀을 생각하고, 낮엔 땀흘리며 성실히 일하고, 저녁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밤엔 잠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一坐·一仁·一食·一言을 평생 一以貫之로 실천했다. 제자인 김흥호도 그 도를 이어받아 45년 간 꾸준히 실천하고 있으니, 스승의 일기에 대한 그의 해설이 그만큼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김흥호 교수의 글은 그 글이 그대로 그 사람임을 나는 믿습니다”고 평한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의 말처럼, ‘다석일지공부’에서 유영모의 영성일기를 풀이한 김흥호의 글도 대단히 육중한 인격의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또한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영모의 한시나 시조 못지 않게 김흥호의 풀이 또한 매우 압축, 정제된 글이라서 한글세대에겐 그 풀이에 대한 再풀이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 작업은 아무래도 다음 세대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고전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 수많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점이다. ‘다석일지’도 세월이 흘러갈수록 새로운 각주가 붙어 점점 더 두꺼워질 운명을 가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