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 (淨水寺)
정수사는 강화도내의 보문사나 전등사에 비해 규모는 작은 가람이지만 서민적인 풍모가 물씬 풍기는 고요한 사찰이다.
639년(신라 선덕여왕 8년) 회정선사(懷正禪師)가 창건하고 정수사(精修寺)라 이름지었다. 그후 1423년(조선 세종 5년) 중창을 하고 3년 뒤인 1426년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중영(重營)할 때에 법당 서쪽에 맑은 물이 솟아남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1848년(헌종 14년)에는 비구니 법진(法眞), 만흥(萬興)등이 중수(重修)를 하였고, 1883년(고종 20년)에 비구니 근훈(根訓)이 수선(修繕)을 하였다고 한다. 1957년 법당 보수공사 시 발견한 상량문에 의하면 초창이 1423년이고 그 후 다섯 번에 걸쳐 중창을 한 기록이 있다. 이로 총 6번에 걸친 중창으로 그 연대는 1423년(세종 5년) 제1중창, 1458년(세조 4년) 제2중창, 1552년(명종 7년) 제3중창, 1586년(선조 19년) 제4중창, 1667(현종 8년) 제5중창, 1689년(숙종 15년) 제6중창이다.
마니산 자락에 자리한 정수사는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편에 요사채가 자리하고, 좌측편에 물맛 좋은 약수가 있다. 약수 뒤편으로 삼성각이 위치한다.
정수사 법당의 건축을 살펴보면 정면만 장대석으로 3단의 석축을 쌓은 기단 위에 운두가 높은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면3칸에 측면3칸 건물의 전면에 1칸의 툇마루형식의 툇칸을 두어서 전면의 박공이 후면보다 더 길게 뻗어나와 지붕 측면이 비대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건축은 비슷한 시기의 건축인 개목사 원통전과 그 모습이 같다고 할 것이다. 창호의 특징은 전면으로 중앙문의 4짝이 꽃살문으로 꽃병에 색색이 연화와 모란이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꽂혀있는 모습인데,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내부는 2개의 고주(高柱)가 내부 뒷면으로 빠져있고, 고주사이에는 불벽을 두어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바닥은 남북으로 장귀틀을 보내어 장마루를 깔고, 천장은 중도리를 경계로하여 바깥기둥쪽으로 빗반자를 걸쳤는데, 그 내부 중앙부에는 우물반자로 만들었지만 종보의 하부가 드러나게 천장을 만들었다. 또다른 특징은 빗반자에는 ×자형으로 짜맞춘 반자틀을 노출시키고 그 위에 널을 길게 깐 것이 특징이다. 평주의 주두밑에 퇴보를 두어 퇴칸을 형성하게 하였는데, 퇴기둥위에 얹혀진 공포는 익공형식의 살미가 주두아래에서 뻗어나와 2출목의 살미를 이루어 퇴보와 도리를 받치게 되는 모습을 하고 내부의 살미는 운궁형으로 조각하여 퇴보를 받치고 있다. 외부로 출목된 첨차는 양단에 연봉과 꽃줄기를 투각(透刻)으로 조각하여 보기 힘든 매우 특수한 예를 보이고 있다. 또한 창방위의 공포사이에 화반 또한 같은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초기에 조성된 모습이 아니라 후기의 중창때에 퇴칸을 조성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초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은 배면의 공포로 외1출목의 전형적인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한 구조로 주두밑에 헛첨차를 놓고 익공형 살미와 보를 얹혀 놓았는데, 이들 부재 사이를 띄어 놓고 소로를 놓은 점이 익공형식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첨차는 고식(古式)에서 잘보이고 있는 쌍S자형(연속연화무늬)으로 만들었다. 여기서의 특징은 헛첨차가 고식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바깥쪽으로 길게 뻗어나와 처마를 길게 내기 위한 수법으로 보이며, 파련대공으로된 동자주는 연화와 당초문을 아름답게 투각(透刻)조각하였지만, 마루대공은 간단하게 하여 투각하지 않은 파련대공으로 만들었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을 주었고, 고주는 평주열과 다르게 후면 기둥열 쪽으로 후퇴하여 서있는데, 대들보 밑에서 보아지를 끼워 바로 받치고 있다. 귀솟음은 3㎝정도의 차이로 있었고, 안쏠림은 집 전체가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알 수가 없다.
이 건물은 부분적으로 시대를 달리하고 있는데, 배면의 공포와 대공 등은 초기의 주심포계에서 보이는 특징을 하지만 전면의 퇴칸의 공포는 후기의 주심포계와 익공계가 혼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퇴보의 보뺄목의 끝부분 장식을 귀면(鬼面)으로 조각한 점을 보면 후대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보수현황은 1957년 보수공사를 했고, 1988년에는 지붕을 보수하였으며, 1991년 마루공사와 단청공사를 하였다. 1996년에는 지붕과 공포 및 벽체등의 목부재를 교체하였고, 단청과 미장공사를 병행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해체보수를 하였다.
* 아래도면은 대웅보전의 도면(출처 : 문화재청)
정면도
평면도
앙시도
횡단면도
종단면도
정수사 가는길.
좌측이 대웅보전, 정면이 요사채.
정면 3칸, 측면 4칸, 단층 주심포계 맞배지붕/보물 제161호
편액
외부로 출목된 첨차는 양단에 연봉과 꽃줄기를 투각(透刻)으로 조각하여 보기 힘든 매우 특수한 예를
보이고 있다.
퇴기둥위에 얹혀진 공포는 익공형식의 살미가 주두아래에서 뻗어나와 2출목의 살미를 이루어 퇴보와
도리를 받치게 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보 뺄목을 귀면으로 장식.
내부의 살미는 운궁형으로 조각하여 퇴보를 받치고 있다.
퇴칸.
전면의 박공이 후면보다 더 길게 뻗어나와 지붕 측면이 비대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면.
배면의 공포.
외1출목의 전형적인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한 구조로 주두밑에 헛첨차를 놓고 익공형 살미와 보를 얹혀
놓았는데, 이들 부재 사이를 띄어 놓고 소로를 놓은 점이 익공형식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측면.
화반.
배면의 창호.
꽃살문. 꽃병에 색색이 연화와 모란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꽂혀있는 모습.
삼성각.
요사채.
차의 달인이었던 함허대사께서 경내에서 솟는 물로 차를 달여 마셨다 해서 알려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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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단청전의 사진이다.(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닫집.
빗반자 천장. ×자형으로 짜맞춘 반자틀을 노출시키고 그 위에 널을 길게 깔았다.
중앙문의 4짝이 꽃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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