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7.12.22 15:25
조용하고 편안한 갈대밭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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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안산 갈대습지공원이다. 아쉬운 건 폐장시간이 4시반이라는 것. 점심 나절에 가서 서너 시간 걷다가 나와야 한다. 요즘은 석양이 일찌감치 지므로 노을빛 속에서 갈대밭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다만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면 확성기를 통해 서둘러 나가라고 재촉하는 공익근무요원의 다그침이 싫을 뿐. 어린 시절 새마을체조의 전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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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 갈대가 불쌍해 보이던 순천만의 갈대만 못할 것도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늘어서 있다. 맑간 저수지 물도 사이사이 보이고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반월천 역시 보기 힘든 유유자적함이 있다. 주욱 따라가면 시화호까지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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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번 가볼 요량이지만 시화호 초입에 줄지어선 반월공단의 공장과 굴뚝 연기가 맞을 것이다. 주말이면 텅빈 공단도로를 드문드문 몰려서 걸어다니는 외국인노동자도 볼 수 있을 테고. 한가하고 낭만적인 갈대풍경 사이로 쓸쓸한 이방인들까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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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호주엘 간 적이 있다. 어떤 관광지를 보아도 부러웠던 건 통나무로 만든 산책로다. 먼지가 일지 않고 걷기에 적당한 탄력과 듣기 좋은 삐거덕대는 소리들. 역시 유용함과 멋스러움을 잘 조화해 놓았다며 부러워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하나둘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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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관광지마다 요란스러운 입간판과 뽕짝소리가 없다. 장식도 별로 없고 흔한 벤치도 별로 없다. 장승 두서너 개와 이곳을 찾는 철새에 대한 안내표지뿐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조용한 가운데 갈대바람 소리. 놀라서 푸드득대며 하늘로 솟구치는 청둥오리, 그리고 운이 좋은 것이겠지만 고라니가 갈대숲 사이에서 뛰어나와 놀라운 속도로 사라진다.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의 기억은 그 장면을 길게 느린 동작으로 재생해내면서 오랜 동안 간직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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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리도 주변에 없다. 자판기 하나 없다. 그저 공원 내 전시관에 마련된 생수기에 물 한 컵이 전부다. 뜨근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들고 슬렁슬렁 걸어다니다 아무 데나 털썩 앉아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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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 주변 환경의 분위기와 사람은 비슷해진다. 사람이 여행지를 바꿔놓을 순 없다. 돈깨나 있는 자들의 작당이 있어야 바꿀 수 있다. 그나마 이곳은 그런 작당과는 상관 없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지고 있다. 아쉬운 폐장시간이지만, 이런 정도의 관리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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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좋은 정보를 주자면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접근근지라고 막아놓은 곳이 나타난다. 하지만 슬쩍 에돌아서, 오던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반월천을 건널 수 있는 둑으로 된 다리가 나타난다. 건너가도 갈대밭이지만 공식적인 코스보다는 철새나 꿩 등을 훨씬 많이 만날 수 있다. 아직까진 사람들에 놀라는 동물들이지만 언젠가 이곳이 오래도록 이렇게 남는다면 모두들 서로 신경쓰지 않고 편안해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시나 2시까진 와야 넉넉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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