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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협력형 통치와 비폭력(이문영)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9.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협력형 통치와 비폭력

              

                                    이 문 영

                              경기대 석좌교수, 함석헌 기념사업회 이사장


 들어가면서

 Ⅰ. 두 개의 어휘              Ⅲ. 성서에서 보는 비폭력

 Ⅱ. 함석헌의 경험             Ⅳ. 함석헌을 완성하는 길



들어가면서



  강남대학교의 전신인 중앙신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은바 있었던 고 함석헌 선생님을 마음에 새기며 「협력형 통치와 비폭력」을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협력형 통치와 비폭력 두 어휘의 정의를 말하고 두 개 개념과 함석헌이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설명한 후 두 개념을 함석헌 선생님이 즐겨 공부하셨던 고전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겠다. 끝으로 오늘에 함석헌을 잇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다.


  

 Ⅰ. 두개의 어휘


  협력형 통치:

  협력형 통치에 해당하는 영어는 cooperative governance이다. 협력형 통치는 권위형 통치, authoritative governance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통치자와 피치자와의 협력이 있는가 없는가가 두 통치를 구별하는 핵심 현상이다. 양자 사이에 가령 협력이 없다하더라도 피치자의 불만과 불평이 없다면 이를 굳이 권위형 통치로 분류하지 않아도 좋다.

  따라서 비록 왕제도 하의 통치에서도 왕의 덕치에 의하여 상하간의 협력이 가능하다. 이런 상태는 왕 밑에 백성이 있으면서 왕의 처사에 대하여 비난함이 없는 상태이다. 이 점을 맹자의 다음 글이 시사하고 있다.


  못 얻었다고 그의 상을 비난해도 안 되며,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 백성과 동락

  하지 않는 자도 안 된다(不得而非其上者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亦非也) 1)

   왕 밑에서 상하간의 협력이 안된 상태를 패도정치(覇道政治)라 일컫고 비록 왕 밑에 있더라도 상하간의 협력이 잘 되는 정치를 왕도정치(王道政治)라고 일컫는다.

  협력형통치의 꽃은 민주정치이다. 협력의 주체면에서 본 왕도정치와 민주정치의 차이는 협력의 주관자가 누구이냐의 차이이다. 왕도정치에서는 자의(恣意)에 의해서 쉽게 횡포하는 군주로 변질하기 마련인 일개인 왕이 백성과 협력하는 주관자이지만, 민주 정치에서의 주관자는 시민이다.

  왕도정치로서의 협력형 통치는 관료주의 조직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관료조직을 통치구도 속에 만들어 통치를 하지만, 민주정치로서의 협력형 통치는 민회(citizen assembly)를 만들어서 통치를 한다.2) 협력형 통치로서의 좀더 나은 제도는 왕도정치가 아니라 민주정치인 것이 자명하다. 후자는 시민의 자발적인 견제와 합의에 의해서 통치자의 자의와 횡포가 제어되기 때문이다. 한편 민회조직이 있는 민주주의 문화는 행정부내에 각 공무원들이 고유의 권한을 보유하는 제도인 관료조직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에 민회문화는 관료조직 문화를 내포하지만 관료조직 문화는 민회문화를 내포하지 않는다.3)

  관료조직 문화와 민회문화는 두 개의 큰 통치조직문화이다. 전자는 기원전 약 1100년경에 독재정부 은(殷)을 전복하고 주(周)나라를 약 800년 동안 관료조직으로 유지한 문화이다. 논어 맹자는 이 주나라의 제도의 붕괴를 아쉬워해 쓴 관료조직문화의 이론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민회문화는 기원전 약 1200년경에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유대백성이 에집트에서 탈출해 나라를 세운 경험에 근거한 문화이다. 민회문화는 에집트에서 탈출한 사실부터가 탈출한 새 조직이 노예이기를 멈추고자한 시민이 조직한 통치조직이기에 관료조직이 아니라 민회이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기독교 전통에서 선지자의 효시이며, 선지자의 뿌리에서 교회라는 민회조직이 생겼다. 민주국가에서 보는 노동조합 대학 국회 등은 세속사회에서 교회의 닮은 꼴로 만든 민회의 전형적 예이다.

   협력형 통치라는 어휘 중 통치에 관하여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대저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에 상이 하를 지나치게 누르는 독재정부(dictatorial government), 하가 상에게 지나치게 대드는 약체정부(weak government), 그리고 상하가 전술한 양혜왕 하에 나오는 글 같은 상호 협력하는 정치를 생각할 수 있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갖고 있는 정부는 독재정부와 같이 너무 강한 정부도 아니며, 그렇다고 약체정부와 같이 너무 약한 정부도 아니기에, 이를 강한 정부(strong government)라고 미국에서 행정학 교과서를 처음 쓴 Leonard D. White 가 말한바 있다.4) うぃて이 세 개 형의 상태 중 세 번째의 상태를 통치된 상태로 말한다. 민회문화가 관료조직 문화를 내포하기에 협력형 통치를 설명하는 문장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기독교 경전에서 이를 찾고 싶다. 다음과 같은 예수가 한 그의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을 협력형 통치를 전한 말로 생각한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5)

  비폭력 : 비폭력의 영어는 non-violence 이며 이 글에서 사용되는 비폭력은 다음 몇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첫째는 비폭력은 권위형 통치를 바로잡기 위한 통치자나 민이 취하는 조치의 첫 번째 조치에 해당하는 전략․방법이라는 점이다. 패도정치에서 왕이 통치를 하는 무기는 폭력이다. 왕이 폭력만이라도 안 쓰는 상태인 비폭력을 택한다면 선치의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한편 포악한 통치 밑에서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민의 전략․방법은 비폭력이어야 한다. 따라서 관이건 민이건 비폭력은 악을 바로 잡는 대안의 시작이다. 관료조직 문화인 동양문화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악을 바로잡는 대안이지만, 이 인의예지에 앞서는 덕목은 믿을 신(信)이다. 사람은 포악한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 문명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에서에게 신이 마련한 대안은 아무도 형을 죽이지 못하게 했던 비폭력이었다.6)

   2.비폭력은 비폭력을 잇는 몇 가지의  중요한 덕목의 발전이 비폭력을 완성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덕목이다. 폭력을 쓰지 않게 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열거하면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 등과 같다. 이들에게 해당하는 유교철학의 어휘는 비폭력에 해당하는 것이 신(信)이며, 개인윤리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智)와 예(禮)의 두 개 이며, 사회윤리에 해당하는 것이 인(仁)이며, 끝으로 자기희생에 해당하는 것이 의(義)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마음과 남에게 자기를 사양하는 마음이 개인윤리이다. 아무리 개인윤리가 있어도 불쌍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만 사회윤리를 갖추게 된다. 이 모든 덕목의 최고봉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의이다. 기독교에서 포악에 대한 대안의 발전을 본다면 요셉이 간신히 개인윤리 차원에서 만족할 만한 인물이었지만, 모세에 이르러서야 사회윤리를 갖춘 지도자가 등장했었다. 그리고 모세 이후 예수에 이르는 많은 선지자들이 자기희생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3.비폭력으로 상징되는 네 가지 덕목의 발전이 있을 때에만 권위형 통치가 끈이 난다. 이를 절묘하게 묘사한 소설이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이다. 전쟁이라는 포악함은 전쟁이 종료되었다고 곧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고통 중에 유의미한 인격형성을 한 세력들이 나라 안에 생겼을 때에만 나라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그 소설의 요지이다.

   소설에서 비폭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지 않고 모스크바까지  후퇴를 해 나폴레옹 군대로 하여금 자멸의 길을 걷게 한 러시아의 총사령관 쿠트조프이며, 개인윤리의 성징을 보여주는 이가 니콜라이 로스토프이다. 니콜라이는 장교출신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만이 개인의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리아 볼콘스키가 사회윤리를 상징한다. 남편 니콜라이의 개인윤리만의 강조를 보완해 그녀는 신심이 깊고 이웃에 대한 연민을 가진다. 주인공 피에르에서 자기희생의 덕목을 볼 수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혜택 받은 귀족신분이면서 인생에서 진리는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림으로서 오히려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Ⅱ. 함석헌의 경험


   함석헌이 산 해는 1901년에서 1989년까지의 88년간이다.7) 이 88년간의 함석헌의 경험이 무엇을 의미할까?

    

    1.함석헌 이전의 시대의 인류가 겪은 민주주의 경험에 영․미 양국이 겪은 민주주의 경험과 서구제국이 겪은 민주주의 경험의 두 가지가 있었다는 것을 함석헌은 이해했을 것이다. 두 계통의 민주화 경험에, 차이가 있다. 영․미의 경험은 평민의 참여에 의한 민주화이지만 서구제국의 경험은 엘리트 사상가에 의한 민주화이다. 전자는 민주혁명의 꾸준한 지속성을 보여왔지만, 후자는 민주화와 구세력간의 교체경험을 가졌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는 앙시앙 레짐, 독일의 경우에 히틀러의 등장이 있어왔다.

   함석헌은 전자의 경험에 맞게 민주화의 함수는 평민이라는 생각에서 그의 씨 사상을 발전했다. 한편 그는 뛰어난 고전연구가로서 서구제국의 엘리트 사상가의  면모를 지녔었다. 그의 악한 정권에 대한 저항과 끈질긴 고전 연구는 그가 그 시대 이전에 남긴 좋은 전통을 올바로 이해한데서 생긴 것이라고 보여진다.

   2.함석헌은 세 종류의 혹독한 권위형 통치의 경험을 했다. 이들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제국주의 , 북한에서의 공산독재, 그리고 남한에서의 쿠데타정권 등이다. 이 세 종류의 악이라는 폭풍이 그가 산 1세기 동안 한반도를 강습했었다. 이 세 가지의 악,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군사정권 밑에서 시달린 일반 백성의 참혹상은 모르긴 해도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들이 겪은 참혹함이 였다고 생각한다.

   3.바울의 말「죄 많은 곳에 하느님의 은혜가 많다」와 같이 함석헌은 그러나 많은 은혜를 신으로부터 받아, 이러한 악을 극복할 투쟁을 하되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비폭력투쟁을 실천했다.8) 영제국에 대항해 비폭력 투쟁을 한 간디에 심취해 간디에 관하여 빛나는 저작을 남긴 그는 비폭력 투쟁의 길을 갔기에 일제시, 공산치하 북한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모진 영오생활을 했다.

   그의 비폭력은 아무 일도 안 함이 아니라 「말함」으로 표출되었다. 7.80대 반체제 운동의 양식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성명서에 서명하고서 자기의 견해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이 「말함」의 압권을 76년 3월 1일에 그가 필두로 해 서명한 ‘3.1민주구국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성명서는 박정희를 향하여 유신헌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 성명서였는데, 이 성명서에는 11명밖에는 서명하지 못했다.9)이 당시 대통령 긴급조회 제9호가 발동 중이어서 유신정권을 비판만 해도 구속 대상이 되었었기 때문에, 서명서의 호응자를 더 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는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게 하겠다던 천사들의 고사를 연상케하는 상황이었다.

   4.지난 1세기 간에 겪은 비폭력투쟁을 통한 민주화는 영․미와 서구제국의 민주화에 이은 새로운 민주화 패러다임이었다. 공산주의는 쏠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됨으로 비롯됐다. 체코의 봄은 체코의 수도 거리를 군중이 메우되 무기를 든 것이 아니라 군중들의 가슴에 빨간 리본을 닮으로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군사정권통치는 성명서 종이로 무너졌다.


   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설명하는 틀로 적합한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10)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나무가 그것이다. 나무 중 늘 나뭇잎이 있는 나무말고 느티나무와 감나무, 은행나무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 이런 나무들은 봄에는 연두색 새싹이 움터 나뭇잎을 내지만 점차 이 잎의 크기가 커지기도 한다. 한참 나무가 성장하는 여름에는 녹색이라기보다는 검푸른 색이 되어 큰 나무의 오존 발생 세포들이 꽉 들어차게 되면 우리는 그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서 땀을 식히며 쉰다. 가을에는 나뭇잎의 색이 변하여 황금색을 내며 잎들을 다 주위에 떨어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를 기쁘게 거닐게도 만든다. 나는 때때로 가을에 감나무에 열매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내 집 감나무에 열린 감을 결코 따지 않고 그냥 둔다. 심지어 나는 동네사람들이 은행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리자 해도 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런데 신비감을 주는 아름다움에 덧붙여 나무는 가을에 이렇게 열매를 많이도 맺어서 다 남에게, 사람에게 주며 좋은 것은 이웃에게 나누어 줘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끝으로 겨울에는 잎 하나도 남기지 않고서 다 자신을 비워서 우리에게 현재 쥐고 있는 욕심이나, 육신 등을 다 버리라는 교훈을 준다. 나무는 이런 춘하추동의 삶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이들 나무 중 느티나무는 천 년을 산다고도 한다.

   선생님의 모습은 나무와 같다. 다음 네 개의 순서는 선생님의 사계절을 의미한다. 우선 선생님은 봄에 나무에서 움이 터 나오는 연두색 잎들같이 수줍어하시던 분이다. 선생님은 침묵하고 앉으실 때가 많았다. 보통 노인들 같이 말이 많아서 하던 말을 또 하거나, 말을 했다하면 자신의 과거자랑을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흡사 처녀와 같이 순수함을 많이 느꼈다. 한 번은 겸상을 해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몰두해서 잡수시기만 하시지 손님인 나에게 음식을 권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 비사교성을 큰 소박함으로 받아들였다. 이 수줍어 하심이 곧 그가 타인에게 부자연과 폭력을 가하기 싫어하시는 비폭력의 첫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술․담배를 않으시고 식사를 하루에 한 끼만 드셨다. 이는 자신의 몸에 폭력을 가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이 비폭력의 덕목은 선생님이 투쟁을 시작하시는 덕목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덕목들을 보탤 수 있다.

   처음으로 보태 볼 덕목은 개인윤리이다. 개인윤리는 비폭력이라는 근본에 보태어진 것이기에 그 이름을 개인윤리라고 하지 않고 비폭력이라 하여도 상관없다. 마치 여름에 무성해진 나뭇잎은 새봄에 나왔던 연두색 잎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분의 개인윤리 덕목의 내용은 늘 공부하시는 것과 대하는 사람을 존중하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윤리는 안 하는 것이 주를 이루는 비폭력과는 달리, 하는 것이 있는 덕목이다. 그 하나는 그가 늘 공부한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선생님의 경우 [3.1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한 11명 중 첫 번째로 서명하신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 3․1사건의 재판시 선생님은 그분의 잡지『씨의 소리』가 자신의 동일한 중요선을 지닌 잡지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제1장과 제1절은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미합중국 의회의사당 큰 로비에는 꽤 많은 수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이 무기를 든 그림과 대화하는 그림의 두 가지로 분류됨이 흥미롭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반체제운동 때에 제대로 된 재야 인사는 열 명만 있어도 족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말함이, 즉 펜이 폭력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창세기]에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 때 의인 10명이 있으면 그곳에 천벌을 내리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하신 개인윤리 덕목의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나는 선생님이 누구에게나 존대로 말씀하신 것을 이런 취지로 받아들인다. 선생님을 감시하고 따라 다니는 기관원에게도 선생님은 존댓말을 쓰셨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보태볼 덕목은 사회윤리이다. 사회 내에서 구조적으로 약자가 된 자를 돕는 윤리가 사회윤리이다. 그 분의 사회윤리 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백성․국민․인민을 씨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 분은 씨을 역사의 주체로 보셨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후 그를 꾸준하게 기념해 추모강연회를 여셨다. 그 분은 드디어 악한 정권이 암살시킨 뛰어난 사상가, 정치인 장준하를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게 도왔다. 그분은 늘 쿠데타 정부에 의해서 박해받는 정치인 김대중을 도왔다. 그분은 김대중 윤보선과 더불어 70년대의 재야단체 사령부인 국민연합(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3의장 중 수석의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비폭력이 더 갖추게 될 덕목은 자기희생이다. 겨울에 나무가 자기 몸에서 나뭇잎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떨어뜨리는 모습이 자기희생이다. 그가 큰 영화를 누릴 뻔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퀘이커 교단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되어진 일이다. 또한 동아일보가 어느 해인가 그분에게 인촌상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분이 차지한 영광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이 인촌상 상금을 그분은 자신이 쓰거나 자신의 단체인 『씨의 소리』에 주지 않고 그대로 다 오산고등학교에 보내셨다. 그 분은 비폭력 개인윤리로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데도 그것으로 ‘한자리’를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난을 겪으셨다. 그 분은 일본제국시대 때, 월남하기 전 공산정권 때, 자유당 독재 때, 그리고 남한 쿠데타 정권 때 으레 감방생활을 하셨다.


  

Ⅲ. 성서에서 보는 비폭력


  비폭력․개인윤리․사회윤리․자기희생 등 네 가지 덕목은 악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들이다. 이 네 가지 덕목들이 함께 있는 글을 성서에서 찾기로 한다. 악을 인간의 악과 부자의 악으로 나누어 생각할 때에 악을 극복하는 대안도 두 가지로 생각 할 수 가 있다.


   인간의 죄

   <로마서>11장까지는 인간의 죄를 논하며 12장이 그 제1절을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는 인간의 죄에 대한  대안을 적은 장이다. 12장에 21개 절이 나오는데 이 21개 절들을 다음에 네 개 덕목별로 분해해 본다. 본문은 자기희생 개인윤리 사회윤리 비폭력의 순서로 설명되어 있으나 다음의 분해에서 순서를 인격발전순위에 따라 바꿔 본다.


  (1)비폭력

   14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15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

   16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 체 하지 마십시오.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18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 “원수갚는 것을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20그러니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물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셈이 될 것입니다.

   21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십시오.


(2)개인윤리

    3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평가 하지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과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4사람의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고 그 지체의 기능도 각각 다릅니다.

   5이와 같이 우리도 수효는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6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은 각각 다릅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라면 자기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써야 하고

    7그것이 봉사하는 일이라면 봉사하는데 써야 하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가르치는데 써야 하고

   8격려하는 일이라면 격려하는데 써야 합니다. 희사하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하고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을 다해서 해야하며 자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3)사회윤리

    9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10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11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13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돌봐주고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십시오.


(4)자기희생

   1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2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 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부자의 죄

   야고보서 5장 1절에서 6절까지에 부자의 죄가 설명되고 7절부터 11절까지에서 부자의 죄의 극복책이 언급된다. 부자의 죄의 극복책은 부자를 향한 글이 아니라 부자 밑에서 시달림을 받는 빈자가 할 일을 적은 것이 흥미롭다. 따라서 7절부터  11절까지는 빈자의 건전한 운동 말하자면 노동운동의 방향을 적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자의 죄의 극복책도 네 개 덕목만이 보이는데, 야고보서의 경우에도 네 개 덕목이 인격발전순위를 따르지 않고 있다. 7-11절을 다음과 같이 분해해 본다.


 (1)비폭력

  9 형제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심판하실 분이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2)개인 윤리

  11 우리는 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 낸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욥기 끈기 있게 참아낸 이야기를 들었고 주님께서 지어 주신 결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민의 자비는 참으로 풍성합니다.


(3)사회윤리 

  7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가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땅이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 있게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4)자기희생

  10 형제 여러분, 고난을 참고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로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언자들을 생각하십시오.



  위 두 개의 표는 내가 몸이 아플 때, 내 몸이 죄 지을 유혹을 받을 때, 나의 무도

한 마음을 겁내할 때, 그리고 질곡의 내 몸을 벗고 싶을 때 외우는 성구(聖句)모음

이다.11) 예를 들어 내 몸이 아플 때 나는 비폭력 부분, 즉 <로마서> 12:14~21에

이어서 <야고보서> 5:9을 거듭해서 읽는다. 이렇게 반복해서 읽다보면 내가 아픈것

이 몸에 통증이나 열이 있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축

복하지 않고 미워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맡은 일을 처리할 때 나는 이른바

‘패싸움’에 익숙해 이겨야 좋고 지면 분해해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이경우 아무

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그러니까 싸우는 양측

이 다 좋게 여기는-일을 하도록 마음을 돌리지 않을진대는 나는 내 몸에 병이 생기

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이 가르침 때문이다. 만일에 우리 몸을 서로 남을 탓하는

맡기면《성서》는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도와줬던 사

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심하게 항의했을 때 갑자기 분한 생각이 나면서, 역시 갑자

1. 기 통증이 심한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앓았던-그러니까 심판을 받았던-경험이 있

다.

   개인윤리 부분의 성구에 관한 나의 경험은 내가 죄지을 생각을 할 때 나는 내 책 쓰는 일, 즉 나 개인에게 맞는 교수직에 몰두한 경험이다. 나는 노욕(老欲)이 들끓었던 정년퇴임 후에 《논어맹자와 행정학》과《인간․종교․국가―미국행정과 청교도 정신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95개조》를 출간했으니 이는 <야고보서>의 말과 같이 끝까지 견디어 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사회윤리 부분의 성구에서 얻는 교훈의 간추림은 <마태오>25장에 묘사된 ‘가장 작은 자 중 하나’를 그때그때 찾아서 작은 선행(善行)을 해보는 일이다. 내 연구실 여학생 조교가 학교의 계약직 청소부 아줌마에게 병원비로 5만원을 전한 것을 알고 나는 10만원을 보탰던 것이 그 한 예이다. 이 경우 조교의 5만원은 큰 돈이며, 나의 10만원은 작은 돈이지만, 조교의 말을 듣고서 내가 작은 선행을 했던 일은 다행한 일이다.

   자기희생 부분의 실천은 앞서 세 개의 덕목 실천 후에 생기는 최종적 최대의 실천대목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예수는 수난의 잔을 더 마신다고 표현하였다. 나는 이 부분의 성구를 대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이전의 약 10여년 간에 걸친 해직과 그중 5년간의 옥고이다. 해직과 옥고가 내 경우는 내 자신을 , 말하자면 산 재물로 바친 선지자의 행동이었기를 기억하면서 살고 싶다. 망각해서는 안 될 원점경험을 지적하는 글이 바로 <로마서>가 말하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Ⅳ. 함석헌을 완성하는 길


열 개의 제언:

   1989년에 작고한 함석헌은 그의 79년의 군사정권의 박정희의 붕괴는 목격했지만 97년의 김대중씨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경험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은 비폭력 투쟁을 함석헌과 더불어 실천한 대통령답게 남북공존이라는 한반도내에서의 협력형 통치를 처음으로 착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구정치문화의 통폐인 측근정치속에서 헤매다가 2000년 가을에서야 여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 여당으로 하여금 당내 민주화를 실천할 계기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당내 민주주의의  실천은 비폭력 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재야운동의 뿌리에서 나온 유의미한 행위로 나는 보며, 이에 우리의 정치를 바로잡는 방안으로 열 가지를 제언코자 한다.12) 앞서 나오는 여섯 개는 한마디로 나라의 보물을 키우는 방안이다. 여기에 보물이라 해도 일본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물인 거울, 구슬 그리고 칼이라기보다는 성서에서 보는 세 개의 보물인 맛나를 담는 그릇, 십계명을 새긴 석판,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를 지칭한다.13) 일본은 상대방을 죽이는 군사문화여서 통치자가 군중 앞에 칼을 들고 나오기 전에 구슬을 단장한 몸매를 거울 앞에서 보고 나오는 문화였다. 이에 반하여 에집트에서 종살이했던 유대백성들이 귀중하게 형성해냈던 보물은 서로가 나누어 먹는 경제생활, 윤리적인 문화생활, 그리고 그의 정당성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권력이었던 것이다. 경제 문화 정치면에서 두 개씩의 제언을 말하고자 한다. 이렇게 국내문제를 언급한 후, 남북문제를 두 개 그리고 평화에의 기여문제를 두 개 다루고자 한다.


   1. 개인경제나 기업경제가 수입에서 비용을 공제한 이익을 자본에 증가하는 경우에만 경제주체가 기뻐하게 되는 자본주의의 경제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수입이란 영업행위에서 생긴 매출액만을 말하는 것이며, (1)불투명한 뇌물이나 (2)비시장경제를 통하여 남에게 빌린 돈이나 (3)땅과 주식의 투기에서 얻은 현금 등 말하자면 영업활동 이외에 생긴 매출액을 말하지 않는다. 한편 이 도식에서 이익을 올리려면 비용을 줄여야 한다. IMF를 극복했다는 오늘, 투자에 연계되지 않게 국민 일반의 소비를 부추기며 심지어는 주식 구입을 종용하는 식으로 관이 민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저리의 은행융자가 영업이익을 올리는 기업에 융자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는 가계경제에 더 많이 융자되는 오늘의 관행을 나는 개탄한다. 근면하고 절약하는 국민만이 ‘외형위주’가 아닌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과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든다.

   2. 노동조합이 부당노동행위를 안하며, 단체협약을 지키며, 어용노조가 아니며, 노사협의만을 하는 제대로 된 노조로 역할 하도록 노사정 협의가 되어야 한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함만이 아니라 기업주 아닌자들과 나누어 먹기 위함인 것을 만나를 담은 그릇의 고사가 시사한다. 이는 건전한 노조는 위1의 조치인 건전한 기업활동의 부수적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접촉만 해도 국가 보위법으로 잡혀갔던 유신때와도 달라야 하지만 노조를 계급투쟁의 전선에 내몰지도 말아야 한다.

   3. 각급 학교의 교육은 교사와 교수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져야 한다. 따라서 상급학교의 진학과 취직은 학교교사와 교수의 주관적 판단에 입각한 추천에 의존해야 한다. 자유로운 보편적인 가치와 정신의 탐구를 저해하고 있는 오늘의 지나친 인터넷 교육과 상급학교 진학 위주의 교육이 철저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초등학교 교육은 영화「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늙은 교사들이 고색창연한 건물에서 단순한 머리를 좋게 하는 교육이 아닌 규칙과 상상력과 용기와 우정을 교육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라의 교육이 환상에 가까운 창의력의 개발을 도모하지 않을진대는 1번에서 말하는 영업활동에서 생기는 수입을 늘리게 할 수 가 없다.

   4. 정부는 종교를 정부와 국민의 선악을 판단하는 궁극적 보루로 생각해야 한다.

청와대에 종교인을 초청하되 후자가 대통령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후자의 곧은 말을 전자가 들으며, 이 말한 것이 공정한 언론에 의하여 보도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종교인이 초청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란 문자 그대로 큰 가르침이며 교육보다도 높은 자리인 스승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훈장을 굳이 종교인에게 주고자 하면 정부에게 곧은 소리를 한 종교인에 수여되어야 한다. 포상 받는 사람이 포상하는 사람보다 훌륭할 때에 포상하는 사람도 훌륭해진다.

   5. 국회의원의 공천권은 지역구 당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정당 당수에게 국회의원 공천권이 주어지는데서 생기는 폐단 안에는 공천을 얻기 위한 상납, 국회의원들 간의 몸싸움에 이르는 격돌행위, 그리고 여야 국회의원간의 자유스럽고 신선한 공동의 입법제안이 없게 되는 것 등을 포함한다.

   6. 대통령에 당선된자가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는 해당 대통령의 임기 중 보직변경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와대 수석이 장관으로 보직을 받는다든지,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는 일이 없어야한다. 중책을 맡은 당대표나 당의 중진이 쉽게 사회단체의 총재니 외국의 대사로 옮겨가도 안 된다. 이는 보직은 일하기 위함이지 보직자에게 속칭 부귀영화를 누리게 함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보직마다 고유의 권한이 부여됨으로 낮은 계층의 직책도 높은 계층의 직책자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유의 권위가 있게 되어야 한다. 한 예를 들겠다. 대학교수직을 독재시대에 세 번이나 십 년 간 해직 당했던 나는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맡고 싶은 딱 하나의 관직이 있다. 그것은 교육부 장관이나 차관이 아니라 대학정책을 담당하는 국장이다. 이 국장의 정책을 교육부의 장관과 차관도, 대통령도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국장직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 하도록 요청받기를 나는 바란다. 마치 독일의 외무장관이 십 여 년을 계속해서 하듯이 말이다. 5,6번이 고쳐지지 않으면 ‘비공식적 선’의 매관매직이  근절될 수 없고, 매관매직이 근절되지 않으면 1번에서 말한 영업외 수입을 근절할 수가 없게 된다.

   7. 남북한 공존정책이 유지됨으로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것도 남북공존 정책에 대한 중요한 이탈행위로 간주되며, 동시에 북한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의도와 행위도 심각한 이탈로 간주되어야 한다.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이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이를 두둔함도 안되며, 남북 간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이 북한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이를 끼고 있음도 안 된다.

   8. 위 7의 전제 하에 남북한 공동으로 참여해 기업활동을 함으로 품질이 높고 저렴한 상품을 국제시장에 판매함으로 남북이 공동의 이익을 얻어야 한다. 이는 인도적인 차원이 아닌 단순한 기부행위의 종식을 의미한다. 공동 기업활동은 식량, 의료, 교육 등 인도적 차원의 북한에 대한 원조까지도 점차로 대치하게 될 것이다.

   9. 구 정치세력이 전과를 뉘우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구세력과 민주화세력과의 화해가 이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민주세력에 대한 고문과 학대행위가 전시되는 전제하에 경부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단지를 만든 박정희 기념관도 세워질 수가 있을 것이다. 과징금의 납부가 끝나지 않은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는 것도 화해가 아니다.

   10. 지난날에 동아시아에서의 갈등과 분쟁의 발상지역이었던 한반도를 드디어는 ‘영세중립국’으로 만들 정도로 주변국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민주주의와 제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영세중립국가가 구라파를 벗어나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도 생겨났지만 아시아에서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생겨나기를 바란다.14)


   야당의 이회창씨가 위에 적은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징후가 안 보인다. 여당의 경우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후의 당내민주주의의 진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상존한다. 대통령 자신이나 당내에서도 대통령의 당수직 사퇴를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모습이 덜 보인다. 일단 여당에 의하여 탄액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또 다시 청와대에 머물게 한 새해 1월말의 개각은 대통령의 당수직 사퇴의 효과를 격감시키는 조치였다. 김대중씨 개인과 민주당이 사는 길은 민주주의를 하는 데만 있다. 김대중씨와 민주당 중 김대중씨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나와 옥고를 두 번 다섯 겨울을 함께 한 동지이다. 끝내 개인과 정당에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가 없다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기대해야 한다. 어차피 나라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머금고 자란다.

   비록 정치의 불신에 기인하기는 하나 국민은 먹고살기에 바쁘지 민주주의를 갈망하기에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도 아닌 열 가지나 되는 제안을 민주주의를 위하여 제안하다니! 이는 한낱 환상의 나열에 불과할 수 가 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환상을 쓰고 있다. 그러나 환상이 아니고서 어찌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나의 작은 경험도 환상이 곧 실재였음을 말하지 않았는가! 7.80년대의 인고(忍苦)후 비록 박정희 붕괴 후 18년만의 일이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위에 적은 환상이 왜 실제가 될 수 있는지 하나의「우김」을 이어가 보자. 따지고 보면 열 가지나 되는 할 일의 궁극적 담당자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씨 그 중에서도 젊은이이기 때문이다. 한편 열 가지의 일은 한낱 예시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할 일의 최소한을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더 큰일도 해야만 하는 시점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지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 위의 적은 방향으로의 개혁이 우리 사이에서 터져 나올 것만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새해 2002년은 외국인들 앞에 긴장해야하는 월드컵이 있고, 두 차례의 큰 선거가 있어 국민이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고, 새해에는 조상의 얼을 이어 능동적이며 활력 있는 도약을 기대할만하다. 기회가 있음으로서 사람은 스스로를 사람으로 만든다. 다음 세 가지의 기운(氣運)이 우리 국민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고, 이 기운이 국운으로 이어질 것을 나는 감지하고 있다.


   1. 첫째는 상층의 억압적인 귄위를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하는 유연성을 보기  때문이다. 정치계에서 볼 때에 김대중씨가 소속 정당의 당수 유진산씨의 중압을 물리치고 4대국보장론과 대중경제론을 내세워 박정희 쿠데타 정부에 항거해, 박정희 붕괴 후 비록 18년만이기는 하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이 이 탈권위주의의 한 예이다. 작년에 아시아 정치권에서 역시 처음 보는 현상으로 대통령이 당수직 사퇴를 한 것도 당내 국회의원들의 발랄한 이견과 저항 때문이었던 것도 좋은 예이다.

   2. 둘째는 이런 저항자들의 생각이 마치 신으로부터 내려나 온 듯 신선한 것을 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영화를 다소 관람하는 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끝없는 발상이 기발하여 대중예술면에서 주변국 젊은이들에게 특이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을 법도 하다는 것을 느낀다. 대만과 일본이 불황으로 허덕이는 만큼 오늘 우리가 허덕이지 않는 것도 한국기업의 창조성이 무디지 않음을 말해준다.

   3. 셋째로 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기득권자에게서 무엇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이득의 분배자인 윗사람에게 저항한 후 저항의 결과로 이득을 얻게 되면 저항을 멈추는 젊은이는 말하자면 세상의 잘못을 고쳐내는 혁명아가 아니라 단순한 반란아에 불과하다.


  이 세 가지 점을 나는 늘 좋은 행정현상의 특성으로 생각해, 세 가지 점이 행정의 방법, 수행하는 일, 그리고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왔다. 즉 행정방법은 유연해야 하며, 행정이 하는 일은 피치자의 살아숨쉬는 일상적인 삶에 직결해야 하며, 일하는 공무원 담당자는 행정계층에 메인다기보다는 일 고유의 원리에 메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행정은 정치, 그리고 정치는 해당 정치가 속해 있는 문화․문명의 부분현상이기에 하부조직 현상인 행정 현상의 분석을 통하여 문명의 모습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기득권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유연성, 건전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신선함, 그리고 자신의 이득에 연연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 특징은 유동식 교수가 말하는 한국인의 장점 세 가지인 과 삶과 멋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동식 교수는 우리 겨례가 가졌던 큰 스승이 불교에서는 원효, 유교에서는 율곡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함석헌이 있다고 말한다.15) 생각하건대 이 분들은 모두가 자신이 속했던 종교를 교조적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관과 관끼리 관과 민이 협동해서 살 것을 생각했고, 그 당시의 정권으로부터 혜택도 안 받고 홀로 계셨던 분들이었다. 이 점에서 함석헌의 경험이 바로 내 나라에서 생겨진 것을 나는 행복하게 생각한다. 왜 함석헌이 이런 경험을 할 수 가 있었는가? 나는 그 이유가 함석헌은 한국이 약 100년전에 받아들인 새 종교 기독교의 사상가인데, 함석헌에 앞서서 있었던 두 개 종교 불교와 유교의 두 분 사상가 원효와 율곡과 함석헌이 비슷한 데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릇 종교란 그 한문 글자  종교(宗敎)가 말하는 데로 큰 가르침이기에 불교 유교 기독교는 한국민을 가르쳐온 큰 가르침이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를, 유교는 조선조를 가르친 종교였고, 기독교는 오늘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기독교가 오늘을 가르치는 종교인 것은 그 가르침이 민회문화 즉 민주주의 문화에 영향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 세가지의 기운을 거듭 언급하는 말인데, 다음 세 가지의 특성이 원효, 율곡과 함석헌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1. 세 분 다 자신의 종교가 있으면서 각기 종교의 좁은 교리에 메이지 않고 종교의  큰 취지를 따라서 생각한 점이 같다.

   2. 종교 밖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권익을 도모한 점이 같다.

   3. 이들은 세상의 권력에게 이득을 구하지 않은 점이 같다.


   교조적이 아닌 유연함이 곧 큼이고 이며, 삶에서 신선함이 나오며, 자신을 버림으로 멋이 풍긴다.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정치의 실수를 바로 잡아 민주주의를 완성코자하는 이 시점에서 김대중씨의 동지 함석헌의 큼과 삶과 멋이 새삼스럽게 흠모된다.



1) 孟子 梁惠王 下 4장의 2


2) Lloyd, G. E. R.「Demystifying Mentalities」, Cambridge Univ. Press,1990


3) 민회문화 속에 관료조직을 내포함을 밝힌 사회학자는 Max Weber이다. 그의 관료조직 이론으로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책이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alogy. Translated by H․H․Gerth, & C. Wright Mills, Oxford Univ. Press,1958이다.


4) White, Leonard D.「Introduction to the Study Public Administration ,4th ed.」New York : Macmillan, 1995


5) 요한13:34이 새 계명이다. 이 새 계명을 성서의 중심개념으로 보는 생각은 성서를 간추린 개념을 요한 3:16으로 보는 통념과는 차이가 있다. 요한 3:16은 우주의 질서를 통치자와 피통치자와의 대결로 보는 민회 그리고 이 대결이 있기에 오히려 양자간에 화합이 있는 문화적이며, 수평적 질서가 아니라 통치자라는 상(上)과 피치자라는 하(下)의 계층 관계로 보는 수직적 질서이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불쌍하게 생각해 그의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냈고, 예수를 믿는자가 구원을 받는다는것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질서를 본다. 그리고 계층적 질서는 관료조직문화이지 민회 문화는 아니다. 나는 성서의 중심개념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요한 13:34으로 보지 요한 3:16으로 보지 않는다. 민회문화가 관료조직 문화를 내포한다.


6) 창세기 4:1-16


7) 김성수, 「함석헌 평전-신의 도시와 세속도시 사이에서-」(삼인,2001)은 저자의 영국 Sheffield 대학교에 제출된 박사학위 논문이며, 함석헌의 일생을 잘 간추린 책이다.


8) 로마 5:20「그러나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만연한 곳에는 은혜가 풍성해졌습니다」


9) 3․1민주구국선언 관련자 지음, 「새롭게 타오르는 3․1민주구국선언」(사계절,1998)


10) 여기에 적는 함석헌의 모습을 필자는 「함석헌 100주년과 비폭력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씨의 소리」 2001년 3․4월호에 게재한 바가 있다.


11) 위 두 개의 표를 대하면서 필자가 고백하는 성서해석을 나는 「인간․종교․국가-미국행정․청교도 정신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95개조」pp.257-258에 밝힌바 있다.


12) 이하의 글을 내 글「민주주의를 제의한다」「씨의 소리」2002년 1․2월호에서 인용한다.


13) 민회문화를 연 고전은 에집트에서 종살이했던 유대백성이 에집트를 탈출해 나온 역사를 기록한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이다. 이 출애굽 과정에서 생겨난 사건이 바로 하늘에서 내린 맛나, 십계명,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 사건이다. 이 세 사건은 경제 문화 그리고 정치만에서의 관이 아닌 민의 활동을 상징하는 사건들이었다.


14) 고창훈 「새국가 한국연합」씨의 소리 2002년 1.2월호


15) 유동식「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연세대 출판부,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