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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함석헌의 교회관(최인식)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9.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씨알의 소리> 2001년 11,12월

 

 

함석헌의 교회관

A Study on the Ham Suk-Hon's Conception of the Church




 최 인 식

서(서울신학대학교수/조직신학)


< 차  례  >


I. 들어가는 말

II. 함석헌의 초기 무교회 사상과 신앙

      1. 인간주의 부정으로서의 무교회 신앙

      2. 신절대중심주의로서의 무교회 신앙

III. 함석헌의 후기 교회관의 변화

      1. 무교회적 교회 비판

      2. 교회의 “조직” 필요성 수용

      3. 화(和)의 교회

IV. 함석헌의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논의

      1. 함석헌의 초기 교회관: 영적 교회관

      2. 함석헌의 후기 교회관: 역사적 교회관

      3. 함석헌의 “화(和)”의 교회관

V. 맺는 말

 

 


I. 들어가는 말


지나간 역사의 한 인물을 정당히 이해하여 객관적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극히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 인물을 논하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결과에 이르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소개 과정은 좌우간에 평형을 이룰 수 있도록 우선 당사자 자신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특히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양극화되어 있는 상태여서 어느 쪽이 함석헌의 참 모습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함석헌의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특히 그의 교회관은 신학계 내에서 함석헌의 사상을 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하는 큰 원인으로 여겨질 만큼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다. 그의 사상과 생애가 한국 민족과 교회에 적지 아니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인정함에 어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석헌을 신학계 내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그의 교회관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신학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신학”이 주축이 되어 있는데 반하여, 함석헌의 교회관 기조(基調)에는 소위 “무교회” 사상이 뿌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학은 교회의 한 기능이고 산물이므로, 교회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사상은 신학 자체의 존재 의의를 파괴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렇다.

나는 함석헌의 교회관에 대한 기존의 이러한 우려를 일면 긍정하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볼 때 다른 평가에 대한 가능성도 많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특히 현대 교회가 제도주의와 교권주의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 어떠한 교회론도 제동을 걸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함석헌의 교회관은 보다 적극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논의에 관한 한 그는 “무교회주의자”로 처음부터 각인되어 왔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함석헌의 교회 이해는 “무교회” 사상을 떠나서는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결코 무교회주의자가 아님을 스스로도 밝혔거니와, 그러한 점이 있더라도 그 사상이 지니는 적극적 의의가 간과되어 왔다.

함석헌의 “종교” 사상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소개가 된 편이어도,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를 전반적으로 소개한 연구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이에 나는 함석헌이 자신의 무교회적 교회관에 대하여 정리한 글들과 교회에 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관과 후기 교회관으로 구분하여 살펴 본 후, 마지막으로 함석헌이 “화(和)”의 교회를 추구하였음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화(和)의 교회관이 현대의 신학적 교회론 논의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미 함석헌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이 나와 있기에,1) 나는 가능한 한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적극적인 면들을 찾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자 한다.


II. 함석헌의 초기 무교회 사상과 신앙


함석헌 교회관의 뿌리는 무교회 사상이다. 비록 그가 1957년 이후 분명하게 자신은 “무교회주의자”가 아님을 천명하고 있지만, 무교회 사상 내지 무교회 신앙은 그의 사상과 삶을 역동케 하는 뜨거운 피와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서 무교회 사상은 단지 신학적 교회론의 차원을 넘어서 그의 삶의 전 활동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들 중에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무교회 신앙은 그에게 세례를 준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우찌무라의 무교회론을 이해하는 것은 곧 함석헌의 무교회 신앙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찌무라는 그의 전 생애를 무교회 신앙에 걸고 이를 주창하는데 다 바친 신앙의 투사다. 확실히 우찌무라에게는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함석헌과는 달리 초지일관 무교회주의를 생애 끝까지 주창하였기 때문이다.2) 그러한 무교회주의자에게 세례를 받고 성서를 배우고 신앙의 훈련을 받고 돌아 온 함석헌을 이해함에 있어서 무교회 사상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함석헌의 무교회 사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인간주의 부정으로서의 무교회 신앙


함석헌은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자는 아니나, 그의 말과 글에는 언제나 신학적 논리와 예지가 번뜩인다. 이는 그의 신학적 사고가 살아 있는 현실의 교회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는 생각하는 실천인이었다. 그리고 실천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사상가였다. 그는 이미 틀이 잡힌 특정한 신학의 유형에 입각하여 생각의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직시함으로써 나온 물음을 성서 앞에 내 놓고 답을 찾는다. 그리고 그에 응답한다.

그가 교회의 현실을 대하면서 가장 비판적으로 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교회는 “인간주의”에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주의는 성서의 빛에서 볼 때 최우선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내용이다. 따라서 인간주의를 가지고 있는 어떠한 형태의 사상이나 행위 그리고 교회 할 것 없이 여지없이 비판한다. 무교회 신앙은 바로 교회의 인간주의를 거부하는 것을 핵심으로 이해한다. 인간주의를 공격하고 물리치겠다는 함석헌의 강한 의지는 그의 교회 이해에서 근본적인 태도로 자리잡는다.


“무교회주의는 인간부정주의다. 단체거나 개인이거나 그것이 문제 아니다.... 교회를 판단하려는 오만에서가 아니라 인간주의를 물리치고 겸손하기 위하여서다. ... 고독을 좋아하는 자같이 생각하나 어찌 고독을 자취하리요, 누구보다 더 교회를 원한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연결되는 형제 자매의 교회, 그는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그러나 허위를 범하여서까지 향락을 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 어찌 고독이 좋아서 최후의 겟세마네에서까지 홀로 기도하였으리요. 인간이 들어와서 아니 되겠는고로 부득이한 일이었다.”3)


이 인간주의가 신앙의 세계에 와서는 “교회주의”로 가기 때문에, 함석헌의 교회 비판은 그 강도를 더해 간다. 그의 눈에는 인간주의와 교회주의란 한 치의 차이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주의란 “인간”의 “조직”과 “교권”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주의를 미워하는 무교회주의는 ‘교회주의’를 미워한다”4) 함석헌이 보기에 교회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罪)인 인간주의의 최고 본산지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적대관계에 두는 것이 곧 죄요 죄는 곧 인간주의인데, 이 인간주의의 최고부는 궁정에 있었던 것도 아니오, 군영에 있었던 것도 아니오, 은행, 연구소에 있었던 것도 아니오, 도리어 신에 게 드리는 제단 밑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있다.”5)


그렇다면 교회가 “인간주의의 최고부”로서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가 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교회가 “조직”을 시인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것과 “교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함석헌에게 “조직”은 극히 부정적이다. 조직은 인간주의의 대명사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서야지, 그리스도 이외의 힘을 빌려서 교회가 서야 한다면 이미 그 교회는 죽은 교회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따라서 교회에 조직이 들어서는 것은 곧 인간주의의 승인이요, 이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태도다.


“하나님의 교회는 송이(松栮)같이 외대 기둥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스도만으로 서는 것이 참 교회다. 복잡한 조직이 필요치 않다. 조직은 인간주의의 표현이다. 사과(絲瓜)가 썩어져서 수세미가 남는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이 죽은 때에 조직이 드러난다. 생명의 불도가니 안에는 결정(結晶)이 없다. 결정은 냉각한 후가 아니고는 없다. 현 교회에 긴밀한 조직이 있다면 그는 생명이 식은 증거다.”6)


함석헌이 이처럼 조직을 거부하는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성찰에 기인한다. 그에 따르면, 원시 기독교는 현대의 조직된 교회를 기준으로 삼을 때 아예 “교회”를 가지지 않았다. “교육 헌법도 규모도, 성속(聖俗)”의 구별도 없는 “단순한 신앙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점점 커져가면서 “고정된 조직의 필요를 느끼게 되어 드디어 로마 교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인간적으로 완전히 죽은 자의 모임”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조직의 필요를 말함은 죽었을 인간이 아직 채 죽지 못한 데 기인하는 것”이라고 함석헌은 단언한다.7) 교회는 조직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조직이 없으면 교회가 “오합지중의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조직의 힘을 끌어들여 기독교를 “유력한 종교”로 만들어야겠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와 같은 사상을 “그리스도가 분명히 배척한 물질적인 생각”이라 비판하면서 거부한다.8)

함석헌이 인간주의의 최고부로서 교회를 지목하고 비판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권” 때문이다. 그에게 왜 교권이 문제인가? 그 이유는 교권이 “개개의 신자를 초월한 조직체로서의 교회가 명령적인 권위를 가지고 개인 위에” 임하기 때문이다.9) 즉, 성서 해석, 생활 전반에 “복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사랑이어야 할 신앙을 복종으로 오해”하고, “사람을 속이는 시대착오”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교권의 행사가 교회 안에서 버젓이 행해질 때, 복음의 능력에 의한 자유는 짓밟히는 것이오, 직접 신 앞에 나가는 길이 차단되어 결국 “유대주의로 역행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10)

이처럼 교회가 조직과 교권에 의해서 주도되는 인간주의의 온상이 되어있다고 할 때, 거부되어야 할 것은 교회 그 자체가 아니라 조직과 교권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교회주의” 외에 다름 아니다. 이것을 함석헌은 다시 “물질적 권위 하에 인간을 굴복시키려는 교회주의”11)라고 부르며 이를 물리쳐야 할 것을 강조한다. 무교회 신앙이 대결하고자 하는 바 그 주장을 다시 들어보자.


“한 말로써 하면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주의’를 배척한다. 거룩한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오, 그 지상의 투영까지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현 교회 안에 들어 있는 ‘교회주의’를 미워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발생할 것이지 만들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 교회 안에는 교회 본위로, 인간적 노력으로 교회를 만들자는 주의가 들어 있는 고로 그것을 미워한다.”12)


2. 신절대중심주의로서의 무교회 신앙


함석헌은 기독교의 바른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현실 교회를 비판한다. 그의 눈에는 이미 기독교와 교회는 동일시되어 있는데, 교회의 현실만을 볼 때 도저히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하나라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현실의 교회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비판을 통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지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함석헌의 시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교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오, 다른 하나는 복음의 본질을 다시 드러내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담아 하나로 묶어 주창하게 된 것이 바로 무교회 신앙이다. 따라서 무교회 신앙은 단지 교회론을 이야기하자는 것이기 전에, 교회 됨의 근본인 신앙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무교회 신앙이란 직접으로 단순히 하나님만을 알자는 신앙이라고, 곧 예수께서 보여주고, 바울이 가르치고, 루터가 주장한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신앙 그대로를 가지자는 것입니다.”13)


이에 따르면, 함석헌의 무교회 신앙은 교회론 상의 문제 이전에, 신론 혹은 신앙론(Glaubenslehre)에서 논의되어야 할 신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무교회 신앙이 예수, 바울, 루터를 관통하며 그들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사상이야말로 하나님 중심주의인데, 그에 따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적 차원의 어떠한 행위도 함석헌에게는 용납될 수 없게 된다. 하나님“만”이다.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그 형태를 달리할지라도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의 근간(根幹)이 된다.


“그[무교회주의자]의 소원은 광야의 예언자와 같이 침체하는 교계를 향하여 한 개 외침을 보내면 족하다. 그러나 저를 소극론자라고 오해하여서는 안 된다. 저는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진리가 있어서 반항을 하는 자다. 저는 신 절대중심주의자다. 인간주의를 배척함도 하나님 절대중심이기 위하여서요, 교권을 반대함도 그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귀족주의이기 때문이다.”14)


함석헌이 조직과 교권의 힘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는 교회주의자를 인간주의요, 바리새주의로 비판하면서 거부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만”을 사랑하자는 것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자는 것이다. 무교회는 “부정주의”며, “언제든지 부정적이자는 주의”라 할 때, 그 의도는 “고정화하려는 시류에 반항하자는 것”이다.15) 무엇에 고정화하는 것을 거부한 것인가? 인간주의다! 신절대중심주의에서 인간주의로 떨어져 거기에 의존하는 것을 부정하고자 함이다.

이와 같은 신절대중심주의 태도는 곧바로 “하나님의 절대통치 하에 성립되는 신앙의 데모크라시”로 간다. 신앙의 데모크라시란 곧 “성서의 데모크라시”로서 신절대중심의 가치관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예수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다같이 자녀요 제사(祭司)”라는 입장이다. 이에서 1마리가 99마리보다 그 가치에 있어서 결코 작지 않다는 태도가 나온다. 이것이 인간중심주의에서 나오는 판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절대중심주의의 사상과 윤리다. 함석헌은 무교회 진영에서 탈퇴를 선언한 후에도 자신의 신앙 중심에는 이와 같은 무교회 정신만큼은 한결같았다. 자신이 무교회 신자가 아님을 밝힌 1957년도 이후에 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무교회 정신 혹은 믿음을 간단히 요약해 말하며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직접 나감이요,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을 꼭 같이 대접함이다. 곧 참과 사랑이다... 무교회 신앙이란 곧 이 정신을 살리자는 것이다.”16)


함석헌의 부정주의, 곧 인간주의에 대한 강렬한 부정은 하나님 절대중심으로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청되는 한 단계일 뿐이다. 소극적으로는 “조직”과 “제도”와 “교권”과 “의식(儀式)”으로 대표되는 “교회”를 “버리는” 것이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절대복종에 의해 되는 절대평등, 절대자유의 나라”인 “사랑의 데모크라시”를 믿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국가적이기보다 가정적이어야 할 것”으로 본다. “법권이 지배하는 데가 아니라 사랑이 화합하게 하는 곳”이 바로 그가 이해하는 진정한 지상의 교회다. 즉, 그가 말한 대로, “사람이 육체적 존재를 이 물질계에 가지는 한, 천상의 교회는 지상에 투영될 필요성”이 있으나 “그 투영은 순수한 것이어야만” 하는데,17) 그 천상 교회의 순수한 투영이 바로 사랑의 데모크라시로서의 가정적 교회다. 신앙에 오는 일체의 간섭구속을 배척하며, 오직 신절대중심으로 다스려지는 교회다.


III. 함석헌의 후기 교회관의 변화


함석헌이 1936년도 2-4월 󰡔성서조선󰡕지에 발표한 “무교회 신앙과 조선” 및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라는 글은 교회의 현실에 대한 그의 초기 사상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음을 보았다. 한 마디로 교회가 조직과 교권에 의한 인간주의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것은 천상 교회의 지상적 투영이라 할 수 없기에 그러한 교회는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참된 기독교를 갖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가운데 그에게 특히 문제로 보였던 것은 “조직”이었다. 그것은 인간주의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의 힘으로 제도화 된 교회에 대한 거센 저항이 그의 초기 교회 이해의 특징을 이룬다.

그렇다면 교회의 조직에 대한 이러한 그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는가? 또한, 소위 무교회 신앙은 그 후에도 계속 견지되고 있는가? 나는 그가 무교회 신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실의 지상 교회에 대한 이해는 초기와 점차 달리 하고 있다는 점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발걸음 속에서 나는 함석헌 자신의 고유한 교회관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교회론(論)으로 정리하기에는 이르다. 오히려 부엉이가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찾아 응시하듯이, 함석헌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이 땅에 있어야 할 교회의 모습을 찾아 응시하였다. 그것은 “화(和)”의 교회관(觀)이다!


1. 무교회적 교회 비판


함석헌은 1955년 중앙신학교 월례강좌에서 “새 시대의 종교”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무교회”를 이야기하던 것을 거두고 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표명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그의 글 가운데 “교회”와 “종교”라는 용어가 서로 섞이면서 나오는데, 이것도 주목해 볼 사항이다. 교회라는 말이 보다 구체적이고 현상적이라면, 종교라는 말은 보다 보편적이고 개념적인 함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경직된 교회 개념으로부터 다소간 자유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초창기부터 현실의 지상 교회 자체를 부인한 바는 없다. 그러나 무교회를 말함으로써 그 정신이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무교회 주장은 제도 교회를 부인하는 것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무교회 모임을 이끌어 온 것도 사실이다. 즉 무교회적 지상 교회를 조선 땅에서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의 모교회는 무교회적 교회이게 된 셈이다.

함석헌은 무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종교는 변치 않으면서 변해야 하는 것, 늘 그대로 있으면서도 늘 새로워야 하는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한다. “참 종교는 완전한 부정 속에만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종교까지도 부정되어야 종교”라고 말하면서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자”를 “인류의 장래를 걱정하는 존경할 만한 자”라 설정한다.18) 무슨 말인가? 가까이는 자신의 무교회를 포함하여 기존의 모든 제도적 교회, 그리고 모든 종교들까지도 부정되고 개혁되어야 함을 내 비췬 것이다. “종교는 부단히 낡은 기구를 내 버리고 새로워서만 영원히 불변할 수 있다. 종교는 구슬이 아니오 씨다”.19)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 종교, 새 교회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교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모교회”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뚝 떨어져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기존의 모교회에서 새 교회가 나온다. 새 교회는 모교회 안에서 “새 시대의 주인으로서의 필요한 역량을 기르게 된다.” “이 새 교회가 크면 클수록 모교회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20) 여기에서 함석헌은 적어도 “모교회”를 기정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새 교회”는 “모교회”의 존재 없이 새로운 존재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론적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교회는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거부하려해도 ‘교회는 있다’는 의미며, 함석헌은 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함석헌은 “무교회”라는 모교회를 넘어선다.21) 무엇을 위해? 조선이 맞이해야 할 새 시대를 위해 무교회라는 모교회로는 안 됨을 직시한다. 왜 무교회로는 새 시대를 담아내지 못하는가? 비록 무교회라 칭하여 대 놓고 면전에서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속에 이미 몇 가지 무교회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드러나고 있다. 내가 볼 때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무교회는 조선 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최소한의 형식과 조직을 갖는다고 할 때, 아니 그것이 무교회적 “모임”이라고 할 때도 그것은 그 땅의 요구와 필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땅의 생명을 살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와는 동떨어진 천덕꾸러기밖에는 더 이상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조금 길게 들어보자.


“내가 무교회에 머물지 않는 이유로는, 우리 나라 모양이 이미 누가 열어놓은 길을 그저 따라만 가 가지고 되기에는 너무도 독특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만이 당하는, 우리만이 풀어야 하는 문제를 당하고 있다... 물건은 빌릴 수가 있지만 정신이야, 믿음이야, 빌 수 없지 않은가? ... 신앙도 우찌무라의 무교회를 가지고 우리를 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는 내 신앙은 내게 있다. 내가 발견해내고 내가 남김없이 다 써야 한다. 꿀 것도 꾸일 것도 없다. 그러니 나는 지난날에 배우던 무교회를 찾고 그것을 받들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오늘 나의 종교, 우리의 종교를 발견해야 했다. 그러노라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무교회 빛깔이 차차 멀어지게 되었다.”22)


“우찌무라의 무교회”로써는 조선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모교회인 무교회의 모태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 모교회도, 새 교회를 위한 미래의 딸도 다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함석헌은 그 이후로 무교회주의자들로부터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분명했다. “내가 우찌무라를 배웠지만, 죽으면 죽었지 밤낮 ‘우찌무라, 우찌무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않을 것이다.”23)

둘째, 무교회는 역사의 흐름에 뒤쳐져 있다. 역사는 급변하는데, 교회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듯했다. 역사의 현장으로 ‘돌격 앞으로!’ 나가야 하는 사명자가 곧 교회다. 그러나 교회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처음에는 “밑층 사회의 불쌍한 민중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지금은 중류계급의 종교가 돼버렸다”. “하나님의 발가락인 아래층 사회”가 모교회로부터 아예 내어 쫓김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악과 겨루는 싸움에서 뒤를 빼고 송아지 앞에서 절을 하고 둘러앉아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을 예배”라고 하면서 “안 나가”는 교회가 되었다. “20세기 가나안의 탐색부대가 됐어야 하는 것”인데, “고난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살리는 것은 그 길뿐”인데,24) 모교회는 어리석은 열심에 취하여 역사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역사는 돌격하는 군대 모양으로 죽은 시체와 깨진 무기의 너저분한 것은 그냥 내버려두고 그저 ‘저 앞으로, 저 앞으로’ 하기만 하는 듯했다... 너는 어서 쫓겨가는 대적을 더 따라 이제 아주 잡아버려야 한다. 이제 해야만 한다. 모든 종교가가 시체 치우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앞장을 서서 달리는 예수의 깃발은 벌써 지평선 끝에 가물가물 사라지려 하는 듯한데.”25)


셋째, 무교회는 “만”의 종교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함석헌은 무교회를 꼭 집어서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것은 나의 판단에 따라 높은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무엇만이’ 절대적이다든지, ‘이것만’ 있으면 된다든지 하는 것처럼 위험한 태도는 없다고 그는 비판한다. 특히 이 점은 무교회에 대한 그의 비판으로서 매우 중요한 점이다. 왜냐하면 무교회는 철저히 종교개혁자들의 “이신득의”의 신조 아래 하나님께 대한 “신앙만”(sola fides)을 강하게 주창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앙에 대립되는 것이 “조직”인데, 조직은 결국 “일”을 위한 것이므로 “행위”에 대한 강조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흰손’이라는 신앙고백시] 안에서 이날껏 정통적으로 인정해 오는, 무교회에서도 그것은 그대로 가르치는, 십자가의 공로로 죄 대속함을 받는다는 교리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상에 반대하고, 그보다는,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하나되는 체험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는 인격의 자주성을 살려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20년래 내 마음속에 싸우고 찾아 온 결과였다.”26)


여기에서 함석헌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신앙“만”, 기도만, 혹은 십자가만 하는 식으로 실재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고 나선다. 이와같은 오류에 무교회가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다.


2. 교회의 “조직” 필요성 수용


함석헌에 따르면, 무교회는 달리 표현하여 ‘무조직의 교회’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 그 자체를 교회의 원죄와 같이 본다. 그가 “현 교회에 긴밀한 조직이 있다면 그는 생명이 식은 증거다”고 말했을 때, 조직과 산 교회와는 상극이다. 조직은 곧 “힘”이고, 이 힘은 인간주의의 견인차다. 결국 교권주의와 바리새주의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조직이다. 그래서 신절대중심주의에서는 무엇보다도 조직을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신앙만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함석헌은 소극적이나마 “조직”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하나 되는 믿음으로 새 조직을 일으켜야 한다. 사귐이 생겨야 한다. 이 민중을 건지기 위해 최소한도의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지못해 하는 엉터리기 때문에 작게 할 수 있는 데까지 작게 하는 조직이 참 조직이다. 복잡한 조직은 속이는 조직, 죽이는 조직이요, 살리는 조직은 간단한 조직이다. 발을 씻는 데는 수건 하나를 허리에 차면 그만이다. 우리 모임이란 주님의 허리에 한 장 수건이다.”27)


여기에서 “새 조직”, “최소한도의 조직”, “참 조직”, “살리는 조직”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조직에 대한 관점이 크게 변화된 것이다. 한 마디로, ‘조직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왜 거부하던 조직에 대하여 입장을 바꾸어 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가?

첫째, 현실을 구하기 위해서 조직은 필요하다. 함석헌에게 “종교는 현실을 잊어버림이 아니다. 현실을 건지는 것이다. 현실을 건지기 위해 가장 작은 정도의 조직이 필요하다.”28)

둘째, 조직은 존재론적 현실이다. 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밖과 떨어져 홀로 있는 사람이라도 물건과의 관계없이, 한 나에 대한 또 다른 나의 관계함 없이, 한 순간도 삶을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삶이란 곧 많음의 하나됨이다. 그것이 곧 조직이다.”29)

셋째, 힘을 위해서, 일을 위해서 조직이 필요하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약 20년 전과 180도 그 태도가 바뀐 모습이다. 다시 한 번 더 들어보자: “조직의 필요를 말함은 죽었을 인간이 아직 채 죽지 못한 데 기인하는 것이다... 조직이야말로 힘이다. 기독교로 하여금 유력한 종교가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대체 이러한 생각이 들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분명히 배척한 물질적 생각이다.”30) 함석헌이 이처럼 조직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직 자체에 대한 것보다, “일”에 대한 생각이 그의 신앙관에서 중요하게 떠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직은 무엇 때문에 하나? 힘을 위해서다. 힘은 무엇 하잔 것인가? 일을 위해서다. 인생은 일하는 존재다. 어떤 영적 종교도 일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 행함으로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믿음으로 ‘만’ 구원 얻는다 하지만, 믿음으로 ‘만’이란 믿음은 생각뿐이지 사실로는 없다. ‘만’은 하나님에만 붙지, 있음의 세계에는 ‘만’은 없다. 있음은 쌍이다, 대립이다... 그러므로 믿음도 쌍으로 된다. 그 위 끝을 믿음이라면 그 아래 끝은 행함이다. 밑에 행함의 불을 피우지 않고 올라가는 믿음의 향내는 없다.”31)


이러한 그의 태도 변화는 순간에 온 것이 아니고, 그의 고백대로 “20년래 내 마음속에 싸우고 찾아 온 결과였다.” 처음에 그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하여 한 동안 그 가운데 머물렀다. 거기에서 신앙생활의 완성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땅에서 이미 완전한 영에 이르렀노라 주장하며 모든 인간적 힘씀이 없이 단번에 다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종교는 모두 협잡 종교다. 그런 종교는 언제나 역사가 어려운 대목에 다다랐을 때, 그 고통을 싸워 이기자는 의기가 부족한 마음들이 절망에 빠져 가지고, 한 때 스스로 취함에 들어가 힘드는 도덕적 노력의 의무감을 잊어버림으로 안심을 얻어보려는 잠재의식이 기도니 금식이니 영통이니 하는 종교적 정진의 형식을 타 가지고, 이상 심리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런 종교는 반드시 민심을 타락시키고야 만다.”32)


3. 화(和)의 교회


석헌은 이제 모든 유형 무형의 형태론적 교회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최종적인 대답일 수는 없다. 처음에는 신절대중심주의이기 위하여 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것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 쌍을 이루는 행함 역시 신앙과 더불어 이야기되지 않으면 안 됨을 보았다. 조직은 인간주의의 원죄와 같은 것이었으나, 현실을 건지는 일에는 최소한의 것일지라도 조직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조직은 힘이며, 힘이 있어야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 순례의 길 한 가운데서 함석헌은 아파한다. 절규한다. 어디에서 참된 사귐의 기쁨을 맛볼 것인가? 어디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인가? 교회에 관해서 만큼은 많은 질문을 했건만 대답은 희미할 뿐이다. 그의 나이 70이 넘었다. 퀘이커에 자의(自意) 반 타의 반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가 찾은 대답은 아니다. 그의 신음(呻吟) 섞인 듯한 처절한 고백을 들어 보라.


“나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내 임이 다섯입니다. 고유 종교, 유교, 불교, 장로교, 또 무교회교,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내 영혼의 주인일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같이 있는 퀘이커도 내 영혼의 주는 아닙니다. 나는 현장에서 잡힌 갈보입니다. 도덕과 종교로 비판을 받을 때 나는 한 마디의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일곱 악마를 그의 발 밑에서 고백해야 하고 내 마음의 옥합을 깨뜨려 단 번에 부어버려야 합니다. 내가 유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냉랭한 키스를 입에 받으면서도 ‘친구여!’ 하는 그이를 만날 것입니까?”33)


그는 모든 종교를 넘어섰다. 그러나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이 보인다. 그렇다. 그의 둘레에는 여러 종교인 친구들이 있었고, 다양한 기독교단 소속의 동역자도 있었을 테지만, 그들에게 속한 교회에 혹은 종교에 속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야인(野人)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교회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새 교회, 새 종교를 말하지 않고서는 눈을 감을 수 없다. 과연 함석헌이 마지막으로 그리고 간 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함석헌이 꿈꾸며 간 교회를 ‘화(和)의 교회’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화(和)의 교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내는 교회, 영과 진리의 교회, 곧 성령의 교회다.

첫째, 화(和)의 교회는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내는 교회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동일하게 사람을 일으켜 세워 진리를 드러낸다. 그는 말한다: “이사야를 일으킨 성령이 또 맹자를 일으키고 희랍의 성인을 일으켰겠지 누가 했을까? 동양도 사람으로 길렀겠지. 그랬기에 기독교 진리를 들을 수 있지”.34) 그는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예수를 돕는 자라고 말한 예수의 생각을 따라 예수를 거부하지 않는 종교의 하나됨을 꿈꾸는 화의 교회를 그린다.

둘째, 화(和)의 교회는 영과 진리의 교회다. 함석헌은 말한다: “종교의 할 일은 위에 있다. 위란 곧 영이요 진리다... 인간은 영을 지향한 존재다... 영! 그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세계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인생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종교다. 그것은 늘 모험이요, 늘 돌격이요, 늘 비약이다.”35)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의 나갈 방향은 “영화(靈化)”임을 제시하면서 “미래의 종교는 더 영적으로 순화되기를” 힘쓰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영의 세계는 무한의 세계다. 이제까지는 지구를 무대로 하고 출항 준비를 한 데 불과하다. 이제 앞으로 인류는 영의 세계를 향해 무한한 항해를 할 것이다.”36)

셋째, 화(和)의 교회는 성령의 교회다. 화의 교회는 “하나의 한 생명체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에 의해서 되는 교회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생각하였던 것이 제자들의 “하나됨”이었던 것처럼, 하나됨의 교회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서로 다르지만 그 다른 것들이 하나가 되어 보다 높은 새 생명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혜사라, 성령이라 하셨고, 요한 1서에서는 코이노니아라고 했다... 나는 화(和)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 화음(和音)이라 할 때의 화다. 서로 다른 음들이지만 그것이 하나로 되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화(和) 곧 하모니다.37)

조직으로 제도화된, 자칭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교회들은 예나 지금이나 신학사상의 면에 있어서 함석헌의 가슴에 “무교회주의자”라는 노란 패를 붙여놓고 이단적으로 다스리거나 “종교혼합주의자”로 일갈(一喝)해 버린다. 이에 대해 그는 대답한다: “남들은 나를 무교회주의자라 하지만, 나는 결코 무교회주의를 표방하고 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지만, 무슨 주의요, 파요 없이, 나 외톨이로 믿는 사람이니, 교파심은 무의식적으론 몰라도, 적어도 의식적으론 없다.”38) “천하에 밝히 말하거니와 나는 무교회주의자 아니다. 나는 도대체 주의란 것을 싫어한다. 주의란 사람 죽이는 물건이다... 주의란 언제나 제 권세를 위하여 남을 죽이고 싶어하는 압박자들이 공의의 이름을 빌어 민중을 속이려 할 때 크게 써서 제 앞에 세우는 깃발이요, 반대자의 목에 거는 죄목이다... 그들이 내 목에다 무교회주의 대표자란 패를 건 것은, 그렇게 하고야 때려죽일 수 있기 때문에 한 것이다.”39)

이처럼 자신의 입장을 처절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의 지나온 길을 살펴보아도 그렇지 않은데도 여전히 그를 “무교회주의자”로 - 그것의 신학적 타당성을 떠나서라도 - 취급하여 매도하고 있는 신학계의 현실이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단숨에 소화해버릴 수 있는 그렇게 부드러운 상대가 아니다. 물론 그에게는 쓰거나 썩은 것도 있어 조심스럽게 발려서 먹어야 할 인물이다. 윤리적으로 크게 넘어진 일이나, 종교간의 만남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듯한 입장에 서로 부딪히면 힘들어하지 않을 기독교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함석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첫째는 그의 때묻지 않은 신앙의 야성(野性) 때문이요, 둘째는 그의 겸허한 예수 그리스도 신앙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이 황야에 떨어진 마적의 아들들 같은 것”으로 말하며, “그리스도군의 편의대(便衣隊)”로 자라갈 것이라는 그의 신앙적 기백이 이 시대에 너무도 그리운 것이다. 또한, 그는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가지고 씨름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주가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팔순이 넘은 그가 어느 한 대담의 자리에서 드러낸 속내 마음의 고백을 들어보자.


“장기려 박사가 내가 노장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염려가 되셨던가 봐요. 한 번은 청년들이 묻기에 대답하면서 ‘내가 노자도 좋아하고 장자도 좋아하지만 내가 믿는 내 주님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지, 다른 이가 있겠느냐’라고 했더니 장 박사님이 우셨어요. 나는 ‘야, 말도 안 하고 속으로 얼마나 염려했으면 그랬을까’ 이렇게 생각이 들어 고마웠어요.”40)


함석헌은 “화(和)”의 교회를 찾으며, 먼저 그의 몸으로 화(和)를 구현하고자 했던 실험 정신의 구도자였다. 그에게 “하나됨은 일색(一色)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각 무한히 다르면서도 하나되는 것이다”. 그가 이를 위해서 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성령이었다. 함석헌은 말한다: “성령은 화(和)하는 영이지, 동(同)하는 획일주의 영이 아니다.”41) 함석헌은 화(和)의 종이요, 이 땅위에 화(和)의 교회가 창조되기를 꿈꾸면서 왔다 간 고독한 나그네였다.


IV. 함석헌의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논의


함석헌은 교회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체계적화 하지 않았다. 즉, 그에게는 일정한 신학적 교회론(Ekkesiologie)을 전개한 바는 없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그의 사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고, 그에 대한 그 나름의 고유한 “관(觀)”을 찾아볼 수 있다. 함석헌의 교회관은 그 뿌리를 “무교회 신앙”에 두고 자라 나왔기 때문에,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이 그 특징을 이룬다. 교회 비판의 핵심은 존재론적 교회가 아니라, 실존론적 교회다. 교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교회의 현실을 문제 삼고 비판한다.

그의 초기 교회관은 “무교회” 사상으로 일관되는데, 이는 “제도적 교회”를 비판하고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는 그의 이러한 무교회관을 “영적 교회관”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의 후기 교회관은 명시적으로는 아니지만 무교회를 포함해서 영적 교회관이 지니고 있는 한계점들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제도적 교회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핵심적으로 반대했던 교회의 “조직”을 긍정하고 나서는 등, 교회관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 후기의 교회관을 나는 “역사적 교회관”이라고 이름한다.

이처럼 초기와 후기 사이에 함석헌의 교회관은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여지나, 이것 역시 안으로 변증법적 변화를 거쳐 그가 이름한 바 “화(和)”의 교회로 나간다. 이 화의 교회는 그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는 영적 교회관이 지배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지상으로 나와서는 조직의 현실적 줄기와 가지를 갖춘 역사적 교회관을 지지하는 “하모니”를 추구한다. 이것은 그가 오랜 나그네길을 걸어온 후에 도달한 것이라 모양도 체계도 없어 희미하지만, 함석헌은 이 화(和)의 교회를 비전으로 바라보며 살아왔다.

이제 나는 함석헌의 이러한 교회관을 신학적 논의의 한 마당에 끌어들여 그의 교회 이해가 현대의 신학적 교회론이 씨름하고 있는 핵심에 와 있음을 밝히려고 한다.42)


1. 함석헌의 초기 교회관 : 영적 교회론             


교회를 종말론적 차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차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서 교회의 본질 이해는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이 두 차원은 보다 커다란 하나의 차원에 포섭될 때만 그 충분한 신학적 의의를 갖게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교회를 이해하는 자는 통전적인 관점에 먼저 도달하기 전에 특정한 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실존적 현실이다. 함석헌은 그의 초기 교회 이해에 있어서 역사적 차원보다는 영적이며 종말론적인 차원에 철저히 서서 접근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종말론적 교회관은 반제도주의를 그 기본 축으로 해서 교회의 제도와 교권, 조직 등을 반대한다.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며, 교회의 지도자는 조직의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카리스마적 능력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루돌프 좀(Rudolf Sohm)이 대표적으로 이와 같은 입장에서 교회론을 전개한다.43)

이와 더불어 교회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오고 있는 논점은 예수와 교회 사이의 단절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즉, 예수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입장과, 교회를 세웠다는 입장이 신약 신학의 교회론 논쟁에서 중요한 이슈다. 초기 함석헌은 예수와 교회의 단절을 명백히 주장하는 입장이다. 예레미야스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강력히 전개한다. 예레미야스에 따르면, 예수는 에클레시아를 창조하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다. 예수의 관심은 종말의 때에 가난한 자, 눈먼 자, 병든 자, 죄인들을 불러모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가족”이라 이름한다. 달리 말하여, 예수는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버트 슈바이처와 에른스트 케제만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한다.44)

그러나 예레미야스와 함석헌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예레미야스가 예수와 교회 사이의 단절을 주장할 때 그 근원적인 이유를 예수의 “하나님의 백성”에서 찾은 반면에, 함석헌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서 성서적 교회 사상을 발견한다: “기독교는 확실히 교회적이다. 그리스도도 사도도 전파한 것은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나라’였고, 그 ‘하늘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렸다. 저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로 끝난다. 그렇듯 기독교는 교회종교다.”45) 함석헌은 “나라”를 조직의 차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대복종에 의해 되는 절대평등, 절대자유의 나라다. 나라라기보다는 집이다.”46)

예레미야스에 따르면, 예수는 바리새파, 에세네, 쿰란 공동체의 태도를 거부한다. 그들은 각기 제사장적 계보를 강조하거나, 남은 자의 사상을 금욕주의적이고 역사 도피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세우려했는데, 예수는 그러한 모든 의도를 부정하였다.47) 이와 관련하여 함석헌의 무교회 신앙이 말하는 것은 교회의 “인간주의” 거부다. 바리새파도, 에세네파도 결국은 인간의 노력 혹은 분리의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다 인간주의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예수와 교회의 단절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단절론을 말하는 서구의 성서학자들의 논의가 대체적으로 여기에 머물렀던 반면에, 함석헌은 단절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면을 주장한다. 즉 이 모든 것은 신절대중심주의에 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함석헌의 신절대중심주의 가운데서 예수의 종말론적 삶의 태도와 하나님 나라의 영적 현존을 본다.


2. 함석헌의 후기 교회관 : 역사적 교회론


초기의 함석헌이 교회를 종말론적이며 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았다면, 후기의 함석헌은 또 다른 차원 즉, 역사적 지평에서 교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영적이며 개인적인 교회관을 20여 년 견지해 온 가운데 그는 자신의 교회관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급변하는 역사의 현실은 교회로부터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데, 무조직의 종말론적이며 개인의 영성과 신앙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교회는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그는 무교회의 순수한 정신은 견지할지언정 더 이상 무교회에만 머물 수 없다는 생각 끝에 무교회로부터의 탈회를 선언하였다.

그의 초기는 “초월주의”가 지배적이었다면, 후기는 역사적 현실의 구원을 위한 역사 참여의 생각이 그의 영적 교회관을 반성하게 했다. 최소한의 조직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믿음은 행함과 쌍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행함은 개인이 아니라 함께 하는 전체이어야 한다는 등의 사상이 교회를 이해하는 눈을 보다 크게 뜨게 했다.

조직과 제도는 교회의 본질과 배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교회에 내재해 왔었다는 것은 이미 아돌프 하르낙 이후 강하게 주장된 것이다.48) 또한 루돌프 쉬나켄부르크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는 한 교회에는 “직제(order)”가 주어졌고, “사도”로 하여금 이 직제의 대변자를 삼았다는 것이다.49) 교회에 대한 이러한 제도주의적 해석은 종말론적 해석을 하는 불트만에 의하여 강한 반대에 부딪히지만, 인간 사회가 규칙 없이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없듯이 적어도 최초의 교회 역시 점차 규칙과 조직을 형성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필연은 긍정된다.50)

함석헌이 소극적이나마 교회의 “조직”을 긍정하게 된 것은 결국 예수와 교회의 단절성 주장을 넘어서 예수의 교회 설립과 사도직 수립 등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함석헌이 “현실을 건지기 위해 가장 적은 정도의 조직이 필요하다” 또는 “하나 되는 믿음으로 새 조직을 일으켜야 한다”51)고 했을 때, 이는 예수가 12제자를 임명하고, 회계를 두고, 또는 70인 전도인들을 파송하는 등을 예수의 조직적 행동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것이다. 예수는 의도적으로 교회를 세웠다는 사실을 알란 리차드슨이나 제임스 던과 같은 이들도 제시한다.52)


3. 함석헌의 “화(和)”의 교회관


함석헌의 생애 마지막에 이른 것이 화(和)의 교회관인 것을 보았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본다: “교회라는 모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맨 첨의 교회를 보는 것이 가장 첩경일 것이다.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모인 열 두 사람의 모임 말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직전까지 전수히 마음을 쓰신 것은 오직 이것이었다... 좀더 분명히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한 생명체로 만들자는 생각이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각오가 다 되어 있지만 그 새 생명체가 스스로 살아서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이 오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화(和)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 서로 무한히 다르면서도 하나되는 것이다”53)

함석헌이 품은 이러한 “화(和)”의 교회에 대한 비전은 교회론의 영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이 변증법적으로 만난 지점에서 일체 됨의 하모니를 이루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가 “화(和)”의 비전을 제시한 것은 1977년 “한국 기독교의 오늘날 설자리”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그는 한국 기독교, 아니 한국 교회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 자신은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혀 성문 밖 광야에 홀로 외로움을 달래면서도 성문 안의 제사장 교회들을 향하여 끝까지 외쳤다. 실로 자격 없는 자의 고성(孤聲)이었다. 그래 교회는 더욱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예레미야스가 우주론적 종말론에 치우쳐 교회론을 약화시켰고, 리차드슨이 교회론을 강조하다가 종말론을 약하게 했다면, 내가 볼 때, 화(和)의 교회는 양자의 약점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전을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은준관은 게르하르트 로핑크가 예레미야스와 리차드슨의 해석을 역설적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로핑크의 생각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전 세계를 포괄하는 그의 종말론적 통치를 이룩해 가신다(우주론적 종말론). 그러나 그 통치는 바로 가족 같은 동아리(clan), 작은 사람 그 그룹을 시작함으로 이루어 가신다(공동체)”54)


이것은 함석헌의 표현대로라면, 신절대중심주의에 의한 영적 교회는 “국가적이기보다는 가정적이어야 할 것”이며,55) 우주 안에 “서로 무한히 다르면서도 하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관은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을 강조한 루돌프 좀과 역사적 성격을 우선시한 아돌프 하르낙을 극복하고자 했던 칼 홀의 시도와도 견줄 수 있는 것이다. 홀에 따르면, “신앙 자체 안에는 전통의 원리가 있으며, 이는 법률적-제도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즉, “신앙과 법령 혹은 카리스마와 제도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내적 관계가 상존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56)

그러나 칼 홀의 종합적 견해는 제도주의적 교회론자들이 제 자리에 안주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듯해 불안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교권주의, 제도주의로 떨어져 가는 교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다. 로버트 월리는 이미 오래 전에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 교회의 조직 갱신을 주장한 바 있다: “... 그러므로 그 희망은 우리의 현대적 제도들이 고정화하려는 경향에서 탈피하도록, 그리고... 미래가 요구하는 개방성을 지향하여 탄력성을 지닐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57)

대립된 입장을 극복한 균형 잡힌 논리는 자칫 시대의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해묵은 교과서 속에 파묻힐 가능성이 크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치유하고자 할 때, 화(和)의 교회관이 제시하는 “하나됨”과 “하모니”가 연골(軟骨)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세력을 더해 가는 현대 교회의 교권주의를 직시한다면 화(和)의 교회는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한다:


“대체 교회의 신자는 예수가 무엇을 위하여 뉘 손에 죽었는가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저는 이방 불신자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오 교직자의 손에 죽었다. 오늘로 말하면 법황, 신부, 감독, 목사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무엇을 위하여 죽었나? 그 교권을 깨치기 위하여다. 신자는 습관처럼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위하여 죽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추상적인 일개 명사 하에 죽은 것이 아니다.”58)


V. 맺는 말


함석헌의 초기 교회 이해에 한정한다면, 그것은 대체로 그의 스승이었던 우찌무라 간조의 신학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수 있다. 우찌무라는 일본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사고와 삶 전반에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아, 그에 입각하여 교회와 사회에 대해 예언자적 선포와 비판을 그치지 않았다. 그의 말과 글은 생동감이 넘쳐 자국의 지성인들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유학 온 청년들에게까지 큰 감화력을 미쳤다. 함석헌의 말과 글, 그리고 그의 예언자적 삶은 남강이나 다석 외에도 우찌무라의 모습을 크게 닮았다. 함석헌이 자신의 후기에 들어와서 무교회를 떠남을 선언했어도 스승 우찌무라에 대한 존경은 식을 수 없었다.


“오산에 있을 때만 해도 우찌무라의 테두리를 벗지 못했었다. 지금 내게는 그런 것 아무 것도 없다. 선생의 은혜를 몰라서가 아니다. ... 나같은 것은 백 년을 두고 따라가도 미치지 못할 위대한 우찌무라지, 그 위대한 선생을 내가 존경하지 않을 리가 없다.”59)


그러하기에 함석헌의 초기 교회관은 그것이 아무리 신절대중심주의에 근거하여 인간주의, 교회주의, 바리새주의, 제도주의를 부정하는 복음적이며 예언자적인 영성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점이 있다하더라도, 우찌무라의 제자로서 스승이 지니는 한계 또한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었다. 우찌무라의 교회론을 연구한 최홍석(Hong Suk Choi)은 우찌무라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는 가운데, 크게 4가지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원론적 경향, 진리의 일면만 강조, 실재 이해의 조화 결여(초월과 내재, 은총과 책임, 신과 인간, 성령과 직무 등), 그리고 초월주의. 그는 이중에 마지막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가 우찌무라 사상의 뿌리를 이룬다고 보았다.60) 나는 함석헌의 초기 교회관에도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함석헌은 우찌무라와 달랐다. 함석헌은 끊임없이 변증법적 부정의 사유를 하고, 또한 사유의 끝에 용기 있게 자신에게 익숙해져 가는 틀을 깨고 새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를 찾아 나섰다. 그의 정신은 금관과 보석이 번뜩이고 자주 빛 비단 가운이 눈부신 교회 왕국(Kirchentum)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발가락”인 그들 가운데 들어가 교회 없이 교회를 이루고자 했다. 화(和)의 교회라는 비전이 여기에 제시된다. 이것은 영과 육, 신앙과 행위, 말씀과 제도 등을 적당히 절충한 혼합이나 동(同)의 비전이 아니다. 화(和)의 하나됨과 하모니는 “성령”의 일이다.61)

과연 이 시대는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 교회, 의식, 제도의 다양한 형식과 조직적 틀을 넘어서 모두가 “영과 진리”로 하나되게 하는 “화(和)의 영”인 성령의 나타남을 갈급(渴急)해 하는 때가 아닌가! 특히 한국 교회는 기도, 축복설교, 그리고 성도들의 희생적 참여를 통해서 부흥을 경험했으나, 한국교회의 성장 뒤에 내면화되고 있는 “제도주의(institutionalism)”라는 비본래적인 것이 교회를 침체시키고 있다는 심히 우려할 만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62) 이러한 때에 교회에 대한 함석헌의 비전인 화(和)의 교회관이 중병을 앓고 있는 현대 교회에 반성의 계기를 끌어낼 수 있으며, 또한 문제 해결의 한 부분이나마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일으키셨던 성령이 다시 교회를 하나되게 할 것이다. 인간주의를 뒤로하고, 성령이 교회를 부흥케 하라!(




1)  한숭홍, 󰡔무교회주의󰡕 (서울: 두란노, 1991), 29-56쪽에서 함석헌을 무교회주의자로 보면서 그의 교회 이해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2)  우찌무라 간조, 󰡔내촌감산전집󰡕 제8권, 김종숙 역, (서울: 설우사, 1975), 353-453. 여기에 59편의 크고 작은 에세이들이 무교회에 관하여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야기되어 있다.


3)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성서조선󰡕 1936년 3/4월호 ; 󰡔전집󰡕 제3권, 109-124, 123쪽.


4)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3쪽.


5)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6쪽.


6)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3쪽.


7)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4쪽.


8)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4쪽.


9)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5쪽.


10)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6쪽.


11)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4쪽.


12)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2쪽.


13)  함석헌, “무교회 신앙과 조선” 󰡔성서조선󰡕 1936년 2월호 ; 󰡔함석헌전집󰡕 제3권 (서울; 한길사, 1993), 125-133, 125쪽.


14)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4쪽.


15)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3쪽.


16) 함석헌, “사자냐 아메바냐”, 󰡔신태양󰡕 1958년 12월 ; 󰡔함석헌전집󰡕 제3권, 89-108, 103쪽.


17)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1쪽.


18) 함석헌, “새 시대의 종교” 󰡔말씀󰡕 제2집 ; 1955년 3월 중앙신학교 월례강좌 ; 󰡔함석헌전집󰡕 제3권, 193-241, 195. 196.


19) “새 시대의 종교”, 197쪽.


20) “새 시대의 종교”, 208쪽.


21) 무교회 출현에 대한 함석헌의 이해에 따르면, 그 자신이 모교회인 무교회를 넘어서는 것 자체가 무교회 정신이고 종교개혁 정신인 것으로 이해된다: “기독교가 불과 400년 전에 전 로마제국을 정복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끈질기고 교활한 것은 승려다. 서로 형제로 부르는 교회 안에 차차 옛날 제사주의 계급제도를 침투시켜 드디어 가톨릭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중세다. 거기 견디다 못해 일어난 민중의 운동이 종교개혁. 그 개신교가 또 굳어져서 깨치고 나온 것이 무교회다.”(함석헌, “사자냐 아메바냐” 󰡔신태양󰡕 1958년 12월호; 󰡔함석헌전집󰡕 제3권, 89-108, 106쪽).


22) 함석헌, “말씀모임” 󰡔말씀󰡕 제6호, 1957년 8월호 ; 󰡔함석헌전집󰡕 제3권, 135-149, 139쪽.


23) “말씀모임”, 138쪽. 함석헌을 무교회주의자라 이단시하는 자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일본에서 그렇게도 강력한 무교회주의가 조선땅, 한국교회에 소개되었다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오히려 함석헌의 무교회 탈회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무교회의 정신적, 실제적인 지도자였을 그가 적(籍)을 끊고 나온 것은 무교회 운동의 대중화에 치명적이었으리라!


24) 함석헌,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씨의 소리󰡕 1971년 8월호 ; 󰡔함석헌전집󰡕 제3권, 21-34, 32. 33. 34쪽.


25) “말씀모임”, 140쪽.


26) “말씀모임”, 141쪽.


27) “말씀모임”, 149쪽.


28) “말씀모임”, 145쪽.


29) “말씀모임”, 144쪽.


30)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4쪽.


31) “말씀모임”, 144쪽.


32) “말씀모임”, 144쪽.


33) 함석헌, “펜들힐의 명상” 󰡔씨의 소리󰡕 1971년 8월 ; 󰡔함석헌전집󰡕 제3권, 307-318, 318쪽.


34) “새 시대의 종교”, 229쪽.


35) “새 시대의 종교”, 240쪽.


36) “새 시대의 종교”, 240쪽 이하.


37) 함석헌, “한국 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씨의 소리󰡕 1977년 1월호 ; 󰡔함석헌전집󰡕 제3권, 7-19, 18쪽(고딕은 나의 강조).


38) “사자냐 아메바냐”, 90쪽.


39) “사자냐 아메바냐”, 93쪽.


40) 함석헌, “퀘이커와 평화사상: 한용상과의 대담”, 󰡔마당󰡕 1983년 5월호 ; 󰡔함석헌전집󰡕 제3권, 151-174, 171쪽.


41) “한국 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18쪽.


42) 은준관은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주의에 경종을 울리면서 바른 신학적 교회론은 교회 중심주의에서 떠나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관점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학계의 학문적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내가 함석헌의 교회관을 신학적 차원에서 논의할 때 등장하는 신학자들의 입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들을 참고하라: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Basileia와 Ecclesia를 중심으로󰡕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95), 91-95. 107-113쪽.


43) Hans Conzelmann, An Outline of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Harper & Row, 1969), p. 41.


44) Joachim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London: SCM, 1971), pp. 168-177; 은준관, 앞의 책, 91-92쪽.


45) 함석헌,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09쪽.


46)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4쪽.


47) Jeremias, ibid., pp. 171-73.


48) Hans Conzelmann, ibid., 41-42 ; Rudolf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vol 2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5), p. 96. 은준관, 앞의 책, 108쪽 참조.


49) Rudlof Schnackenburg,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New York: Herder & Herder, 1966), p. 24.


50) Bultmann, ibid., p.96.


51) “말씀모임”, 145. 149쪽.


52) Alan Richardson,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London: SCM, 1958), p. 309 ; James Dunn, The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 김득중 역 (서울: 나단출반사, 1990), 174-75쪽.


53) “한국 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17-18쪽.


54) 은준관, 앞의 책, 94쪽 재인용 ; Gerhard Lofink, Jesus and Commu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2), p. 28.


55)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24쪽.


56) 은준관, 앞의 책, 109쪽에서 재인용; Conzelmann, ibid., p.42.


57) Robert Worley, 󰡔교회의 조직갱신󰡕 박근원 역 (서울: 한신대학출판부, 1977), 4쪽.


58) “무교회 신앙에 대하여”, 116쪽.


59) “말씀모임”, 138쪽.


60) Hong-Suk Choi, “Uchimura Kanzo's Conception of the Church”, in: Chongshin Theological Journal, vol. 6 (Feb. 2001), pp. 27-55, 52.


61) “한국 기독교의 오늘날 설 자리”, 18쪽.


62) Lyle Schaller, “Lessons Across the Pacific”; 목회문제에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한 라일 샬러 박사는 1991년 한국교회의 기적적 성장을 배우기 위해 한국교회를 돌아본 후 낸 보고서에서 한국교회는 “제도유지”나 “대우와 학위” 같은 비본래적인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현상을 보이며, 뜨거운 경험중심의 신앙에서부터 점차 지성적 신앙을 희구하고 있으며, 개척교회 설립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으며... 복음주의 노선과 사회참여 노선 사이에 생겨나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 앞에 아무런 해결의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였다(은준관, 앞의 책, 431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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