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太上不知有之, 其次親之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 有不信, 猶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맨 위에는 있는 줄도 알지 못했고, 그 다음은 친히 하며 기리었고, 그 다음에는 두려워했고, 그 다음은 업신여겼다. 믿음 모자라면 못믿어함 있다, 머뭇거리듯 말을 어려히 하니, 힘들여 일 다 되면, 씨알은 다 이르기를 내 제절로라 하느니라.
태상부지유지(太上不知有之), 태상(太上) 맨 위는, 부지유지(不知有之) 그러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하지유지(下知有之) 그러면 아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하(下)자로 하는 분들은 "아래 있는 것을 알고" 하지유지라. 아래서는 있음을 알고, 둘로 이렇게도 새기고 두 가지로 갈려있어요. 기차친지예지(其次親之譽之)하고, 친하고 예(譽)는 기리고, 친(親)은 가깝게 하는 것, 예(譽)는 높여서 명예라고 할 때의 예. 기차는 외지(其次畏之)하고, 그 다음은 두려워하고 기차는 모지(其次侮之)하고, 그 다음은 업신여기고 신부족이면 유불신(信不足, 有不信)이라. 믿음이 넉넉지 못하면 못믿음이 있다. 유혜기귀넌(猶兮其貴言)이라. 보통 위에서 예약동섭천(豫若冬涉川) 유약외사린(猶若畏四隣)이라 했던 그와 마찬가지로 이럴까 저럴까 두려워서 결단하지 못해하는,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 有不信, 猶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유혜기귀언(猶兮其貴言)은 말을 어렵게 안다, 말을 높힌다는 건 말을 하는 것을 어려히 아는거. 귀대환약신(貴大患若身)이라 하던 때 귀(貴) 모양으로 몸 사랑하기를 큰 병을 어렵게 아는 것같이 그렇게 하는 귀(貴), 공성사수(功成事遂)는 공을 이루고 또 일을 드디어 하매 백성개위아자연(百姓皆謂我自然), 백성들이 다 이르기를 내가 저절로 그렇다, 그런다.
태상(太上)을 어떤 사람들은 아주 매우 옛날이라고 그렇게 새기자는 사람도 있고, 제일 많은 의견이 태상(太上)이라 그러면 맨 위의 사람, 아주 참 잘난 사람, 훌륭하게 난 분, 지위가 높다, 물론 지위도 높으니까 상(上)이라 그랬겠지만 그런 것보다도 아주 인격이 높다든지 맨 위로 썩 잘하는, 그렇게 새기자는 분도 있어요. 그 다음은 그런 것도 아니고 썩 잘하는 맨위로 잘하는, 좋게 하는 것은, 그런 뜻으로 새기기도 하고, 아무 걸로나 새기려면 새길 수 있지만 구경은 하나에 가닿고 말꺼예요. 먼 옛날, 아주 저 옛날에 올라간다해도, 그때는 먼 옛날 사람의 살림이 처음에 올라가, 역사의 맨 처음에 올라가는, 그러면 지금처럼 세상이 어지러워지지 않은 때, 내용의 차이는 다 있어도 종교도 철학에서도 대개 사상사를 더듬어본다면 더 옛날에 올라갈수록 좋았던 시대가 있고 차차 내려오면서 역사가 발전했다고는 하는데, 하면서도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 보면 못해가는 거예요. 하락돼가는 거예요. 그렇게 보는거는 거의 다 의견의 일치예요. 왜 그런가 그런 문제는 두고 생각할만한 문제. 그래서 옛날이 나오는 거예요. 맨위에 있는, 태상부지유지(太上不知有之)하고 있는 줄을 알지도 못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는 거는 아주 알기 쉽게 하면, 나라의 무슨 지도한다는 사람. 임금이라는 사람, 있어도 있어도 있는 줄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 뜻이예요. 부자유지하고.
또 반대로 하지유지(下知有之)라고 하면 태상(太上)은 하지유지. 그 하(下)는 아랫사람은, 상(上)은 위레 있는 정치하는 사람, 맨 위에 옛날 시대에,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워지기 전에, 인심이 다 소박한대로 있어서 단순할 때에 그 위에 있는 사람이 잘하던 그 시대는 하지유지(下知有之)하고, 이랫사람이 그저 위에 임금이라는 이가 있지, 우리나라를 하는 이가 있지, 있는 줄 알 정도, 그런 정도다 그 말이야. 하(下)라고 하면 아래 사람이고, 차차 내려갈수록 나빠져요. 처음에는 아는, 있거니 그런 정도였는데, 그 다음에 가다 그 소박하던 무위(無爲)의 태도를 가지고 하는 정치가 없어지게 된다, 장자(壯子)에서 하던대로 처음에 하는 정치를 재유(在有)라고 그러잖았어요. 둬두는 정치. 그 다음은 기차는 친지(其次親之)하고, 그러다가 태초시대에 아주 무위(無爲)의 정신에서 하던 그런 정치가 지나가고 차차 그전 사람들이 하던 자취를 보고 그걸 따라서 우리도 그럭해야지, 차차 내려오는 시대. 그렇게 되면 그땐 아주 그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된 줄로 그렇게 알게 되니까 가까이 각별히. 친(親)은 부자지간에 아들에 대한 어버이, 부친, 모친, 가까이 친하게 한다는 친(親).
또 예지(譽之)는 아주 어진이라든지 고맙다든지 거룩하다든지 이렇게 잔뜩 높여서 그리고 그 다음은 거기서 또 떨어져 내려오면, 이제는 도덕으로 정치를 하다가 차차 세상이 사람도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그렇게만은 안되니깐 그때는 법이라는 걸 만들어 쓸 수밖에, 그렇게 되면 이제 친하고 부모님을 존중하는 모양으로 하던 그런거는 없어지고 자연히 법에 대해서는 "순종해야지" 두려운 생각이 나. 그래 기차외지(其次畏之) 두려워할 줄 알고. 거기서도 더 내려오면 그 다음에는 법으로 다스리게 되면, 처음에는 법으로 분명하게 다스린다 그러지만 법을 세우게 되면 종래는 법대로 안되게 마련이예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기차모지(其次侮之)하고 업수이여겨. 법을 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거 아니라 법으로 한다는걸 도리어 그걸 아주 업수이여겨. 뭘 속은 안그러면서 그런다 생각을 하니까 신용을 안하게 돼요.
그걸 또 하지유지(下知有之)하고, 부지유지(不知有之)대로 새기면 맨처음에는 있는 줄도 모른다. 정말 소박한 원시시대에는 지도자라느니 임금이라느니 그런거 있는 줄 알지도 못해. 그러니까 부지유지(不知有之)라고 그렇게 새기려고 해. 그것도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 시대에는 기록이 있을 수 없지 않아요 없지만 지금으로 봐서 또 우리의 이 조그만한 가정 살림이라든지 공동체 안에서 지내보는 걸로 하면 그러 수 있다, 원시사회 얘기를 잘 하지만 아무도 그 사회를 그대로 올라가서 본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후에 있는거를 미루어서 생각하는데, 후에 있는 사회란 문명했다는 사람들의 눈으로 하면 아직도 남양엘 간다든지 남쪽 아프리카라든지 남미대륙에 그런 데를 가면 원시적인 살림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 멸시해서 말을 하면 야만이라고 그러는거고, 그런걸 보고 대개 지금 사회학에서 연구하는 그런 것도 원시사회 얘기를 하면 그런거를 자료로 하고 하는 수밖에 없을꺼예요.
원시 그런 시대에 글자가 없었던 건 우리가 다 아는거고 또 유물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있지마는 남미엔 더구나 그런거 있다고 그러잖아요. 지금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뭣에 썼던 건지 놀라운 거 있다고 하긴하면서도 분명히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좀 말하기 어려울거예요. 가령 기독교에서 창세기라, 창세기에 천지창조라 그러지만 사실은 천지창조가 역사는 아니지. 그것도 넓은 의미로 하면 물론 역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종교에는 어느종교나 다 공통된 것이 맨 처음엘 올라가면 우주사가, 우주가 어떻게 됐다, 그런거 다 있지 않아요. 동양은 동양식의 서양은 서양식의.
우리나라에 옛날에 있던 신화라든지 그런거는 자세히 많이 전해온거 없어서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런데서 봐도 어느 정도 그 자취는 남아있지요. 그것도 엄정한 의미의 역사라고 그럴 수는 없지요. 우선 천지창조부터 얘기를 하는데 천지창조 할깨 누가 있어서 들었을 수도 없고 쓰진 물론 못하고, 옛날은 다 들은 것을 외워가지고 전해오지 않았어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던 거를. 종교경전은 처음에는 다 그런거요. 기독교의 구약만이 그런거 아니라 인도에서도 그렇고, 제일 오랜거 베다경이라고 그러는데, 베다경도 연구한 사람들의 말로는 다 아리안족에 와서 됐다고 그러지만 사실은 그 안에 보면 아리안족만이 아니고 아리안족 보다도 전에 있던 사람들의 형적(形跡)이 거기 있다. 그러니까 베다는 "네거 된다" 그래야 열심히 일하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기야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도 제것이 된다는 약속이 없으면 능률이 안난단 말이야. 중공이 지금은 인민공사라고 그러나요? 그걸 차차 고칠라고 그런다 그러지 않아요. 그런 것도 이쪽에서 보면 "그것봐! 그러 안되잖아?" 그러고 싶지만 한편 인간의 이성에서 생각하면 모처럼 실험해보던 너희도 실패한단 말이냐? 그래도 인간의 이상이 있다면 어느 때 가서는 그놈의 소유생각이 없어져야...... 마지막엔 내가 없어져야 한다, "나" 라는 것도 내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라고 하는 데 가면 물건만이 아니라 "나" 라는 것도 없는 던데.
이상이 있다면, 어느 종교에도 공통된 것은 "내버린다"라는 것. 포기예요. 집을 내버린도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내버린다고 그러잖아요? 불교에는 출가(出家)라는 것, 출가라는건 집 내버리는 거예요. 그게 아주 어렵잖아요. 다 훌륭한 명승(名僧)이 됐다고 하는 이들은 참 몰인정하리만큼 일단 출가를 한 다음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찾아와도 싹 "몰라요!" 하고 면회 안한다는 거 아니요. 그런 결심이 아니고는 깨치고 들어가는 자리엘 가지 못한다는거 아니요. 하기는 그렇게 어렵지만 이상을 말하면 무소유(無所有). 소유를, 없다없다하다가 마지막에는 나라는 것까지. 장자가 말한 망아(忘我)지경. 앉아서 좌망아(座忘我). 앉은 채로 나를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십자가에 달리는 거. 자기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거는 자기를 이기는건데 언제 가면 그것이 되겠는지 모르지만 이상으로는 있는거. 이상으로 그렇게 있다면 처음부터 있다고 그래야 논리상 또 옳지. 처음에 없던 것이 오다가 나오냐? 그거는 종교를 믿거나 안믿거나 간에 인간의 논리는 다 그래. 아무리 유치한 사람도, 학문을 못한 사람도 없던 데서 나왔다 그러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걸로 하면 다 바라는거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 네것내것 없는데로 갔으면! 네것내것이란 후천적으로 된거지. 사람에게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게 본래 거의 본능적으로 있는거 사실 아니냐? 그러니까 소유생각이 난거 아니냐? 그러고 하면 자본주의를 가지고 이걸 이대로 지키자고 하는 사람들은 실지로 지금까지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그 사람들이 그 힘을 가지고도 능률을 올려놓은 다음에는 '제것'된다고 해야 하는 그 때문에 사실상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 실행은 안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이 언제까지 문제가 되겠는지.
여기서도 이런게 있어서 태상(太上)은 하지유지(下知有之)혹은 부지유지(不知有之)라. 심지어 극단으로 말하면 부지유지요. 가지고도 가진 줄을 모른다. 내몸을 가지고 있지만 매 몸인 줄은 몰랐다. 제 씨족이지만 제 씨족인 줄도 몰랐다. 또 자기 위에 지도자가 있었지만 지도자인줄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하지유지(下知有之)하고, 위에 올라가면 있는 줄이나 아는 정도다, 지금같이 그렇게 그는 뭐 높은 분이예요. 그는 아주 잘나신 이예요. 하늘이 내신 분이예요. 위대한 영도자예요, 그따위는 없었다. 그거는 후에 오다가 자기네가 만들어서 그런거지 그런건 없었다. 없던건데 그때는 해도 후에 같이 지식이 발달이 되고 꾀가 발달한 건아니고 마음대로, 사람에 있는 이 소박한 마음대로 하니까 도덕적으로 착한 마음에서 하니까 친지예지(親之譽之)하고 참좋은 분이야, 그래서 또 그증거로는 부족시대 올라가면 족장시대 있지 않아요. 족장이라는 거는 자기네 부족에서 제일 나이도 많고 그런 사람으로서 구약시대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예요. 족장으로. 임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지도자가 돼서 원시적인, 상기도 국가라도 할만한 형태를 이루지 못한 때 공동체를 이끌어서 가는 사람들. 그래 친하고 기리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사람이란 차차 씨종이 많아가게 마련이고 씨종이 많아가게 마련이면 또 타고나기를 차등도 있고 재주에는 더구나 평등이라고 그러지만 사람에 생긴 데는 평등이 없어요. 키가 큰사람 있고 작은 사람이 있고, 나면서부터 본래 체질에 차등이 있게 생겼지 평등이 어디 있어요. 또 도덕에도 양심에도, 정신생활에 까지도 차등이 있지 똑같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평등은 없는거. 그런데 평등이라는거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평등이라고 해야하지 않겠느냐?
그거는 상당히 발달이 된 후에야 나온 생각이지.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만들어놓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은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이대로 있으니까 아무리 잘 다스리느라 해고잘 e,스리려면 감복(감복)을 시키는 것이 제일인데, 감복해서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서, 그게 원리야요. 제 마음에서 우러나서 찬동하게 되는 그게 원리는 원리인데, 그건 또 이상론만이지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또 안된단 말이예요. 노상 그렇게 맡겨둘 수는 없어. 그러니까 어느 정도에 이끌어주고 강요하고 그것도 있지 없지 않아. 집에서도 보면 애들을 완전히 사람을 시험을 해볼 수가 없지 않아요. 실험을 해봤으면 좋겠지만 실험을 해본다면 해본대로 될 리가 없지만, 벌써 가능성이 유전적으로 여기 붙어 있으니까 아무리 깨끗한 부부가 어느 외딴 섬에 가서 자식을 낳는다 해도 벌써 여기 오염이 돼 있는거 있지. 보고듣지 않는다고 아주 백지상태냐하면 그런 거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천진난만이라는건 말로만이지 사실상으론 천진난만이 없어요.
다 날때부터 물이 들어있고 상처도 있고 허물이 가고 그런 존재지. 그러니 이걸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나? 생각을 하려면 끝이 없는 거예요. 이래서 이런 이견이 나는데, 하여간 대체로 보면 아무리 순진하다고 하던 때도 차차 세월이 가면 그저 그대로 못있고 점점 타락이 되게 된다. 그건 누구든지 승복 안할 수가 없을꺼야요. 아무리 이상론자라하더라도 그러니까 친지예지()하다가 그 다음에는 도덕으로만 해도 듣지 않는다. 부득이 이거는 좋은 뜻에서라도 좀 강요. 강제해야겠다. 강제를 해서 법으로 만드니까 그담에는 "법대로 해라" 그러면 벌써 두려워하는, 겁이 나니까 "아이구 안하면 벌이 따르지." 그 다음에는 법대로도 순종을 했으면 좋겠는데, 법도 차차 가노라면, 꾀도 부리고 거기서 삐져나가고 잘못을 하고도 벌을 안받도록 그런 생각을 하게 돼.
그렇게 되니까 하는 사람도 그만큼 꾀가 늘고 그러니까 법을 업수이 여겨. 이렇게 되면 할 수 없어서 뭐 "각하"요, "장관님"이요, 그러지 속에는 다 "네가 뭐냐?" 그런 생각이 다 있어. 벌써 이미 이렇게 된 다음에는. 그러기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우리 이전에 보니깐 그 사람은 노골적으로 내놓고 그래요. 진심으로 안해도 좌우간 만나서 절을 하면 좋다는 거야. "네가 내게 잘했지, 됐다" 뭐 진심으로 했거나 안했거나 했으면 됐다(웃음). 정치나 하는 사람은 그러자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게 문제나 쉽겠나 보세요. 본래 정치는 다 그런거다 그럭하고 인정을 하면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건 또 말할나위 없지 않아요.
신부족(信不足)이면 유불신(有不信)이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 속에는 미더워야. 이럭하는대로 그대로 할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내쪽에서 하는거 완전히 믿을 수 있게 하면 모르지만 미덥지 못한 점이 있으면 유불신(有不信)이라, 안믿는 일이 생겨. 해도 안믿어. 하면서도 안믿는, 그런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다음에는 문맥이 좀 안통합니다. 말이 이런 말이니까 중가운데 빠졌는지 다른데 줄이 섞일 수도 있고, 이대로 꼭 문맥이 이어서 가는건 아니지요. 유혜(猶兮)는 이럴까 저럴까 하는 기귀언(其貴言)은 아까 말대로 말을 귀히여긴다, 말을 어렵게 알아. 말을 턱턱쉽게 하는 사람, 아무래도 잘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야. 말이란 어렵지. 내가 그대로 말한 다음엔, 말을 내속에 있는대로 꼭 한다면,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한다든지 또 한번 해놓은 다음에는 꼭 그대로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말을 어려워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말을 몇십배 백배해서 미리 아예..... 요 말을 다른 사람이 이렇게 취하겠다, 자기가 한 생각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취할까, 그러면 내가 어떻게 대답할까, 그 다음엔 뭣으로 그 말을 땔까, 그 생각을 하고 말을 하니까 점점 거짓인데, 유혜기귀언(猶兮其貴言) 마지못하는 듯해서 그 말을 어렵게 알며, 한다면 그래야 할꺼다, 무위(無爲)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면 그래야 할꺼. 그럭하면
공성사수(功成事遂), 공은 힘을 들이는거. 일을 하는거. 그 공을 이루고 또 일이 다 돼. 해서 할 것대로 다한 후에 이편에서는 나라 정치를 하는 사람 편에서는 공성사수(功成事遂)지. 해놓으면 백성개위아자연(百姓皆謂我自然)이라. 백성은 다 말하기를 아자연(我自然)이라. 백성이 누가 해서 그런 줄을 몰라. 내가 저절로 그랬지. 그거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틀림없어 거의. 조그만 애들한테 물어보시오. "너 그거 어떻게 아냐?" 그러면 "내가 알지 뭐" 거의 열이면 열 애들이 다 그럴거야. 물론 그런 거 언니가 가르쳐주고 제 어머니가 가르쳐주었고, 노래 이렇게 부르라고 그러면 "너 어디서 배웠냐?" 그러면 내가 알지" 그러지 아무한테 배웠단 말 안해요. 그건 속이느라고 그런거 아니라 그걸 배우는 건 줄을 몰라.
배우는 것은 머리로 배우는거 아니라 생리로 배운단 말이야. 그러게 참으로 배우는데,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거기 있는 사람이 다는 아니지만 남 하는걸 보면 저도 모르게 하품하지 않아요. 으레 그러는데 한 사람이 기지개를 켜면 다른 사람도 기지개를 켠단 말이야.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 앞에서 하품하거나 기지개 켜지 말라는거 왜 그런고하니, 하품이나 기지개는 이것이 속에 원기가 부족해서 나오는 거예요. 지금 말로하면 맑은 공기가 충분치 못해서 그걸 들이마시기 위해서 나오는 거니까 그게 자기의 부족, 이 '흠(欠)'자는 그거야요. 결함이 되어있는, 속에 원기가 부족이 돼 그러는거. 그런데 그거는 생각을 하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하면 자동적으로 그래요.
그러니까 어학을 배울 때 머리로 내가 "배워야지" 그런 생각을 안하고 생리적으로 배운거는 틀림없이 쉽게 되고 잊어지지 않는데, 그러니까 나와서 그담에보면 학교에 가서 낙제를 하는 애들도 대개 일년동안이면 말은 다 배운단 말이야. 밥 먹는건 더구나 못 배우는 애가 없지 않아요(웃음). 처음에는 숟가락질 더러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가르칠 것도 없이 그건 되는거요. 그러니까 후에 우리 더구나 그건 글이 없는 때니까 입으로 외우는거고 그래서 또 그거는 특별히 계급이 따로 있지 않았어요. 계급이 있다는 것도 후에 사람이 보니까 우리가 보면 계급이 나쁘다, 그러지만 그때 사람으로서는 계급이 있게 마련이 돼있어요. 그러니까 그럴 때에는 그걸 평하기는 좀 어렵지요. 잘 생각해서 해야지요.
처음에는 어느 한 부족이 있다가 그 다음에는 다른 부족이 들어가 살고, 아마 그런거를 지내지 않은 문명은 별로 없을꺼예요. 처음부터 어느 한 민족이 있어서 그게 오늘날까지 왔다, 그런 거는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른 부족이 들어갈 때마다 거기는 아무리 순박한 시대라고 그래도 마찰이 있었지 없을 리가 없지 않아요. 그건 뭐 지금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거는 군국주의 아니냐, 제국주의 아니냐? 그렇게 평하는거는 너무나 가혹한 평이고 또 그담엔 부족이라해서 큰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오는 말이 마한이 54국 진한12국 변한이 12국 하는걸 보면, 여기 서울도 골짜기마다 한 나라씩 있었을거요. 간데마다 사직골이라는데 많지않아요. 여기도 있고 천안 내려가도 사직골이 있고, 부산 내려가도 사직골이 있고, 사직골이 있다는건 옛날 터신을 섬기는 데니까 지명이 남아있는 거는 옛날부터 이유는 모르지만 전에 뭐 그런거 있었을꺼야요.
그러니까 그전에 사람의 영향이 아무리 서로 다르다고 그래도, 그대로 좋게 잘 화합해 그랬을 리도 없고, 반드시 마찰이 있었지. 정복 피정복, 후에 말로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꺼고, 그러면 그전 사람이 하던거를 다 없애고 아주 완전히 싹 새것 생겼을 리도 없고, 또 그대로 들어가 정복한 사람들이 그전에걸 받아가지고, 그대로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꺼고, 알 수가 없지요. 하여간 거기 단순하게는 안되고 그렇게 돼왔을 것인데 그나마도 그건 다 말로 전해온 거예요. 아직도 글자가 그 다음 후에 나오니까, 그래서 가령 인도의 실례를 든다면 부라만족에서는, 부라만의 자랑거리가 거기 있어요. 우리는 종교, 이거를 우리 민족을 아리안이 정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배를 하면서 살아갔으니까, "아리안족은 다 우수한 민족이라," 그거는 그담에 와서 생긴거지요. 그거는 어디서도 희랍민족도 "우리는 다 헬레네스다," 중국사람들도 "우리는 중화다" 중화(중화)라는 것도 자기네 높이는 말이고 다른건 다 오랭캐들이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해서 우리나라에도 오랑캐라는 말이 있으니까 우리보다도 다른 민족을 오랑캐라고 그래왔는데.
그러면 이제 베다를 실례로 든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뭘로해서 이렇게 우리민족의 문화를 이룰 수가 있겠나 그러면 우리 선조들이 옛날로 가지고 오던 그 무슨 진리라 할까 그것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까 그걸 절대 보호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거는 살아가노라면 아주 비밀이라고 그래. 귀한 것일수록 남에게 말해줄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남에게 모방을 하는 것도 잘 좋아 안하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들으면 아주 놀랠 지경이예요. 부라만 사람이 외우는 베다의 그 시를, 계급으로 낮은 민족이 들었을 때에는 우연히 어떻게 들었어도 죽여버렸어요. 이런거는 우리들이 살고죽는 비밀이 여기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거를 거니까 그런거를 귀히여겼을 것만은 사실이고, 그러니까 그거를 생각을 해보시오. 아무리 분량이 적다하더라도 그걸 일일이 다 읽어서 입으로 외워야했으니.
그러다가 그 다음에 차차 내려오면 늘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니까 거기다 계급의 차등을 붙혀서, 죽이지는 말고 살려두는, 노예라는건 그렇게 돼서 생긴건데 처음에는 부족이 다르면 서로 다 죽여보렸는지 몰라요. 지금 모양으로 인격관념의 발달이 되지 못했을 터고 그러니까 도덕이 아직도 초창기 시절이니만큼. 그랬다가 후에 차차 다른 민족과 부댔겨보는 동안에야 도덕이 아직도 초창기 시절이니만큼. 그랬다가 후에 차차 다른 민족과 부댔겨보는 동안에야 도덕의식이 발달이 돼서 사람을 서로 사랑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데까지 발달이 됐지. 처음부터 아무 차별이 없이 빛깔도 다르고 말도 다른걸 하더라도 다 우리 인류라고 그렇게는 아마 안그랬을꺼에요. 그런 과정을 밟아오는 동안에 이게 발달이 된거지. 그러니까 처음에는 죽여버리다가 그 다음에는 차차오느라면 살아가노라면 또 혼자선 다 할 수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기계가 발달이 돼서. 그때는 기계가 없는거고 농사 주로 하는데, 농사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다할라면 자기 힘만은 부족한 점이 있고, 그러니까 요새 말로는 에너지가 인력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 다 죽여버리는거 보다는 그걸 둬두고 부려서 쓰는 것이 좋지 않냐, 그래서 노예가 생겼다는거고. 그런거 아니요?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 차차 발달을 해 왔겠는데, 그러면 그러는거는 어디서 그저 나오는거냐? 사람을 순전히 다른 동물모양으로 이렇게.......... 요새는 그래서 다윈의진화론이 문제된다고 오늘 신문에 났데요. 다윈의 수염을 가진 얼굴을 그리고 그 아래켠에는 원숭이 발을 그리고 해서 다윈의 진화론이 지금 문제된다고 하는걸 표시하느라고 그런 모양인데, 지난 해도 미국에서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싸움이 일어나서 재판가지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다윈의 그 학설이 그것이 그대로 진리인줄로 그렇게 내려왔는데 또 차차차차 오니까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점도 있어. 거기서도 제일 문제되는거 미싱링크(Missing link)라고 하는거 철사모양으로 고리가 있어서 한시대 다음 시대 연결이 돼야하겠는데 여기서 인류 비슷한거 있고, 여기 내려와 또 있는거 있기는 있지만, 요게 뭐이 또 있어야하겠는데 그게 없어.
지금 반대하는 사람들의 제일 주되는 강점은 유인원(類人猿), 사람 비슷하고 원숭이와 사람과의 중간쯤되는 그런게 있다가 그 다음에 인류라고하는 것이 돼오는, 그동안 추측을 해서 아마 이랬을꺼다, 이랬는데 그러면 고 중간에 디딤돌 모양으로 연결이 되는 그게 날조라고 했을 때, 이거 전문으로 하지않는 노릇을 남이 하는 말을 전하니까 확신이 없소. 그런데 그게 지금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로하면 그게 전연 발견이 안된다는 거예요. 알아볼 수 있게 하면 쉽게 분명하게 됐으면 안그렇겠는데 이 몇해 전에도 아프리카에서 가서 했더니 부부가 그 사람이름 뭐지? 적어도 500만년 전이라고 그전에는 어떤 기록이 있는지, 500만년 전쯤 됐을 것인데 발자국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고 그건 확실히 "인류"라고 그러고 말했는데, 그런거 있어도 그리 강한 증거는 못되고, 또 확실하게 인간의 뼈다, 그래야 되겠는데 그런거 확실히 있지는 못하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요새는 반대를 일으켜서 그런거고 그걸 성명하느라고 또 이쪽 진화에서 말하는건 "종(種)은 하나도 고정된 게 없다", 종은 다 뭔고하니 변천하는 가운데서 살아있노라면 그 환경을 따라서 살아가기 위해 하는 동안에 자주 변경이 나고 거기서 변하고 변하고 이렇게 돼온거다, 그렇게 설명을 하는거고, 또 창조설에서는 더구너 기독교 구약 믿는 창조설에서는 종(種)은 창조할 때 하나님이 모든걸 다 일일이 했으니까 불변하다, 불변한다는 말은 그대로 유지해가기는 어렵구요. 그건 진화론에서 여러 가지 드는 증거가 있으니까 노상 그렇게 고정한다 그럴 수는 없고, 지금은 사람이 더구나 유전법칙 연구가 발달이 되고 되고 우생학이 발달이 돼서 사람이 자극을 줘가지고 신종(新種)을 만들어내잖아요. 그러니까 고정됐다는건 사람은 첫 번부터 사람이지 왜 원숭이에게서 나왔단 말이냐, 그렇게 진화론자는 원숭이에게서 나왔단 말은 아니다, 사람과 원숭이가 어느 때 한 선조에서 갈라져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 말이지. 그렇게 설명을 하지요. 그래도 하여간 둘이 싸움도 하고 그러는데.
임금은 이렇게 처음에는 있는줄을 알지도 못했을꺼다, 이러는 이거는 다 창조설을 말하는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에게는 처음부터 어떤 이 영그러운 성격이라할까 그런거 있는 것을 꽉 인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순전히 과학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도덕이고 뭐이고 없다, 그것도 다 변하는 가운데 차차차차 변천해서 나오는거다, 그러고 따지고 올라가면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그걸로 설명이 되느냐? 정신이라 하는 것과 도덕이라 하는 것도 유기화학적인 변천을 하는 가운데 자동적으로 나온거야? 그걸로 설명이 되냐? 그건 또 설명이 된다고 지금까지 말할 수가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싸움이 나고 그러는데, 이런 데선 변하는건 인정을 하긴 해도 그러니까 될 수록은 이렇게 보는 이들을 거의 소박하기는 하지만 지금같이 이렇게 타락이 돼 이렇지는 않다, 그 근본부터 무슨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걸 인정을 하니까 태상(太上)은 부지유지(不知有之)라 있는거야 있지만 있는걸 알지도 못해. 그힘을 힘입어서 살아가도 그때는 아주 소박은 했지만 원시사회로서 무슨 그래도 법칙이 있을꺼 아니예요. 그렇게 살아갔지만 요새 김일성이 모양으로 특별히 개인숭배를 받을려고하는 그런 따위 흔적은 없다. 그말이야.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기조차도 못했다 그러는거고, 하지유지(下知有之)라 그러면, 아래 하(下)자로 부치면, 아랫 사람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지만 있는 줄을 알아. 있다, 임금이라는거 있다, 임금을 숭배한다거나 그러기까지는 않았지만 있는 정도로는 알았다, 그렇게 인정을 해서 하는 말이고.
태상하지유지(太上下知有之) 맨위에는, 아래 사람은 있는 것을 있다, 있는 줄만 알았어. 그럴 숭배한다든지 모시라고 한다든지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소위 말하는 도덕정치 이전, 의식적으로 하는 도덕정치 이전, 도덕적으로 될 그럴 가능성이 있는 그 씨는 있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유지(下知有之)라고 아주 유선생님의 번역에는 대단히 넓게, 부지유지(不知有之)를 가진 줄을 알지도 못하고, 가지긴 가지고 있는데, 거긴 임금이란 말도 없어. 그저 가진 것은 알지도 못하고, 내 몸을 가졌다거나 물건을 가졌다거나 뭣이든지 가지고는 있었겠지마는 그러면 굉장히 더 깊은 말이죠. 철학적으로 하면 소유관념이, 내거라는거 없어. 그거는 그랬을꺼야요. 사실은 그랬어요. 소유라는 생각이 있었을 리가 있어요? 소유라는건 후에 오다가 사회가 복잡해진 다음에 나왔겠지. 사실은 이 소유관념 때문에 지금 이 싸움이니까. 그러니까 아주 이거를 의식적으로 사람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서 소유제도를 부인하고 그럴라고.......... 공산주의에서도 실행은 안하지만 그러려고 해보는게 공산주의 아니예요? 소유없다.
지금은 확실히 개인에게 소유권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오는 폐단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도 아직도 공산주의하고 대립을 해 있긴 있어도 역시 사회가 발전을 하는데는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 편이 나은가 봐요. 이담 가 안하는건 안해서 그렇지, 못하는거 아니란 말이야. 그때 그렇게 하던건데 지금 왜 그런고하니 다른데 생각이 갈려서 그래. 그렇지 않고 어린애가 좋은거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생각할 기능이 약하니만큼 그저 젖을 빨 때에는 그게 전부니까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으니까 그러면 저절로 그거 아는 거고 차차 와서 남이 웃으면 벌써 조금씩 내가 웃으면 제가 웃어요. 그래 나도 웃어야지. 아주 좋아서 웃는 거 아니예요. 여기서 웃으니까 거기서 그렇게 만든거지. 그런걸 뭐라고 설명하지요.
그러면 요새 생리학이나 심리학 이런 데서 설명을 하면 또 물질적으로 설명이 되겠지요. 세포가 어째 그렇고 유전인자가 어째 그렇고 하겠지만, 그거는 뒤따라가면서 발자국을 얘길하는 거고 그게 왜 그러는가는 설명을 할 수가 없잖아요. 왜 그렇게 됐어? 그 과정 된걸로 하면 "뭐야 생명이라는거는 별거 아니다 화학적인 작용이 이렇게 복잡하게 되니까 거기 뭐 단백질이라는 게 생겨나왔고 그게 복잡하게 이러니까 생명이라고 이랬지 별거 아니다" 뒤로 가면 그렇게 되겠지만 "당초 그 복잡한 노릇은 왜 했소?" 그러면 그건 말이 없어요. "그건 어떻게 우연히 그렇게 됐지." 그러니까 그것은 순전히 우연으로 됐다는거 바이 챈스(by chance). 이 우주라는거는 우연히 생긴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 왜 그런지 아주 그렇게 우연히 됐다면 좋다. 그러고 있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 가다가다가 이렇게 됐지 그러면 마음이 좋아서 그러냐하면 안그래. 그렇지 않다 그말이야. 이제 그걸 글로 만족이 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은 다 안그래 이런 의미가 있어 그런다든지 저런 의미가 있어 그런다든지 무슨 까닭이 있다고 설명을 해줘야 그때 우리 마음이 시원하고 좋지 않아요? 종교란 그런걸 만족을 시키자는데서, 만족을 시킨다는 것보다도 스스로 그러노라니까......... 처음부터 선지자가 어디서 나왔겠어요. 처음부터 살아가노라니까 남이 보기에 하나는 선지자가 됐고 하나는 선지자의 가르침받는 사람이 됐지. 처음부터 선지자라는게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있다 없다 그러지만 나는 그거는 걱정이 없어요. 이제는 몰라도 우리 자라날 때는 과학이냐, 종교냐 이런 싸움을 하던 때가 돼서 중학생도 조금 배운 다음에는 아주 야단을 하는거야. 하느님이 어디 있어요? 증거 대보라고 그러고 하는데, 그건 본래 몰라서 그러는거고, 증거하고 증거 못하고 그런 차원이라면, 그 차원에는 문제도 안되는거, 그게 아니데가, 안그럭하고 못견디는데가 있어서 그러는 건데, 그런 생각을 조금한다면 "하느님 있는 증거를 말하면 나도 믿겠소" 그런 어리석은 말은 안할꺼야요.
요새는 이렇게 자꾸 기술적으로 발달이 되니까 정말 걱정스러운게 아주 그걸 잊어버리고 거의 철학이란 없어진 것 같은데, 철학은 안없어질꺼요. 없어질 리가 없어. 철학이 안없어진다면 종교 더구나 안없어져. 없어질 수가 없는거야. 본래 그런거야. 그래. 공성사수(功成事遂)에 백성개위아자연(百姓皆謂我自然)이라 그러는거는, 참으로 한거는 배우노라는 의식도 없고 가르친다는 의식도 없이 된다 그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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