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가 보는 '테러와의 전쟁'
'소리없는 대량 학살'
Noam Chomsky(MIT 교수)
이 글은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지난 10월 18일, 미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테러와의 새로운 전쟁'이란 제목으로 행한 강연의 전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강연에서 촘스키 교수는 미국이 벌이고 있는 대테러전쟁의 본질과 의미에 관해 말하면서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비판하고 테러를 근절하려면 미국의 대외정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강연 원문을 www.zmag.org에서 받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두 분이 수고하여 번역하였을 밝혀둡니다. - 박성준
방송인들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건 누구나 다 알죠(웃음). 방금 나는 그들로부터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포럼에서 지난번 했던 얘기는 가볍고 재미있는 주제였죠. 인간이 얼마나 멸종위기에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것과 인간이 만든 제도를 들여다볼 때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스스로를 멸종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주제였죠. 그래서 이번에는 긴장을 좀 풀어서 재미있는 주제, 테러와의 새로운 전쟁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세상을 살벌하게 만드는 일들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얘기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을 가정해봅시다
첫째, 사실의 인식입니다. 9월 11일 참사가 무시무시한 잔학행위였으며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전쟁을 제외하고는, 한순간에 이뤄진 가장 파괴적인 인명살상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정은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대상이 우리건 다른 누구이건 이러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는 데 있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이러한 두 가지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받아들인다면, 많은 생각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많은 의문점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다섯 가지 의문점
첫 번째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입니다. 이 의문에 내재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입니다. 두 번째는 9월 11일 일어난 일이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역사를 바꿀 사건이라는 가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이 가정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가정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ꡐ정확히 왜ꡑ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의문은 ꡐ테러에 대한 전쟁ꡑ이란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그게 뭡니까? 관련된 의문점이라면 ꡐ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ꡑ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의문은 좀 범위가 좁지만 중요한 것으로, 9월 11일 범죄의 기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의문은 테러리즘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는 과정과 전쟁에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 어떠한 정책 선택사항이 있을 수 있는가 입니다.
1.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3백만~4백만 명의 굶주림
ꡐ지금 현재ꡑ로 시작해봅시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대해 말할 작정입니다. 먼저 뉴욕 타임스 같은 논쟁적이 아닌 소스에 매달려 보려고 합니다(웃음).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7백만에서 8백만명이 아사 직전의 상태에 있습니다. 9월 11일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그들은 국제원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9월 16일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가는 식량과 다른 보급품들의 많은 부분을 실어나르는 수송트럭들을 없애라고 요구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7일 유럽 전역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들어봤지만 내가 아는 한 수백만명을 한꺼번에 굶겨죽일 것을 강요하는 이 요구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9월 11일 참사 이후 군사보복 위협으로 인해 국제 자원봉사자들이 철수하면서 원조 프로그램도 쓸모없게 돼버렸습니다. 다시 뉴욕 타임스를 인용하자면 미군 주도의 군사공격이 아프간인들의 오랜 불행을 잠재적인 재해수준으로까지 만들고 있는 가운데 아프간에서 파키스탄으로 떠나는 난민의 힘겨운 행렬은 절망과 공포의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아프간이 힘겹게 생명줄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대피한 한 자원봉사자의 말을 인용해 뉴욕 타임스가 전한 소식입니다.
지금까지 주로 도움을 줬던 세계식량기구(WFP)는 공습 3주후부터 조금씩 식량원조를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아프간 내에 국제 자원봉사자가 없어 식량배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식량배급은 공습이 재개될 때마다 중지됐다 조금씩 재개되곤 합니다. 아프간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단체들은 미국의 아프간에 대한 식량 공중 투하가 선전도구에 불과하며 도움을 주는 측면보다는 해를 끼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연하게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를 인용하게 됐지만 계속하겠습니다. 공습 첫 주가 지난 후 뉴욕 타임스는 칼럼 한 부분에서 UN의 계산에 따르면 7백50만명의 아프간인들이 빵 한조각도 없어서 못 먹고 있는 가운데 혹한이 찾아오는 몇주 후 정도면 몇몇 지역에는 식량수송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더구나 공습기간 동안에는 식량 전달률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죠. 이 보도는 서양의 문명국들이 3백만에서 4백만 정도의 사람들이 굶어죽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같은 날 서방 국가들의 지도자는 다시 한번 테러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양도를 위한 탈레반측의 협상제의를 코웃음치며 거절했으며, 완전항복 요구를 구체화할 증거를 요청하는데도 역시 거절했습니다. 무시한 거죠. 같은 날 유엔 식량담당 특별서기는 미국에 대해 수백만의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공습을 멈추라고 탄원했지만, 내가 아는 한 보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17일 주요 원조단체인 옥스팜과 크리스천 에이드 등이 같은 취지의 탄원을 했습니다만 뉴욕 타임스에는 한 줄도 나지 않았습니다. 보스턴 글로브에 한 줄 실리긴 했지만 그것도 카슈미르 분쟁지역을 다룬 기사의 한 부분에 스치듯 언급하고 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소리 없는 대량학살
얘기가 잘도 진행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일종의 소리 없는 대량학살입니다. 또한 이 일은 엘리트 문화의 많은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문화의 한 부분이 우리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몇주 후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을 수 있는 계획이 계속해서 세워지고 실행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특별한 생각도 없이, 여기 저기, 유럽의 한 부분에서 소리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일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 중에서도 일부분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신문을 읽어보면 반응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충 그렇습니다.
2. 왜 역사적인 사건인가
본토가 공격당했다
우리가 탈레반을 빼더라도 3백만에서 4백만명의 민간인을 죽이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약간 더 추상적인 문제로 들어가 봅시다. 다시 9월 11일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희생자 수가 많아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규모면에서 말한다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최악이라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의 규모로는 아마도 가장 최악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영향면에서 더 장기적이고 더 극단적인 테러범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총구가 겨눠지는 방향입니다. 새로운, 극적으로 새로운 것입니다. 자, 미국 역사를 들여다봅시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본토에 대한 공격 또는 그럴 수 있는 위협을 받은 때는 영국인들이 워싱턴을 불태운 1814년입니다. 흔히들 진주만을 예로 드는데 좋은 비교가 아닙니다. 일본인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건, 미국의 식민지 두 곳에 있는 군사기지를 폭격했습니다. 본토가 아닙니다. 원주민들로부터 그리 좋은 모양새로 얻지 못한 식민지입니다. 하지만 이번은 미 본토에 대규모 공격이 이뤄진 경우입니다. 비슷한 예를 몇몇 찾을 수도 잇겠지만 이번 참사는 유일무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2백년간 우리 미국인들은 토착민들을 몰아냈거나 거의 멸종시켰습니다. 수백만이 넘죠. 또 멕시코의 절반을 빼앗았고 카리브해와 중미, 또 그곳너머까지에서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하와이와 필리핀을 정복했고 그 과정에서 수십만의 필리핀인들을 죽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영역은 전세계를 포괄했죠. 그 과정과 방법은 제가 도저히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우리 아닌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이고, 그 장소는 미국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학살당한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곳, 즉 미국의 영토가 아닌 곳에서.
유럽
유럽의 경우, 그 변화란 보다 더 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의 역사는 우리보다도 훨씬 잔인했으니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럽인의 자손입니다. 수백년동안 유럽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세계에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사탕을 주어가며 정복했던 게 아니죠. 이 기간동안 유럽인들은 수많은 잔인한 전쟁들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유럽인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었지요. 지난 수백년간 유럽인들의 가장 주요한 스포츠는 서로를 학살하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 이 스포츠가 종말을 맞았는데 그 이유는 민주주의라든가, 이제는 전쟁을 하지 말자든가 하는 고상한 생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번 전쟁을 하게 되면 그때는 세계가 끝장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됐기 때문이죠. 그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유럽인들이 너무도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냈기 때문에 게임은 끝을 맞게 된 것이죠. 사실 대량살상의 역사는 수백년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17세기에도 단 한번의 전쟁으로 독일 인구의 40%가 사라진 적이 있으니까요.
이 피로 얼룩진 잔인한 시대에 유럽인들은 서로를 죽이고,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콩고는 벨기에를 공격하지 않았고, 인도는 영국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알제리 또한 프랑스를 침공한 적이 없죠. 언제나 똑같습니다. 사소한 예외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유럽인과 우리가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해 행한 것을 생각해 보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사소한 것들입니다. 이번 사건은 최초의 변화입니다. 처음으로 총구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죠. 그러니 유럽인과 이곳 미국인들의 충격과 경악도 이해할 만합니다. 9.11참사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참사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앞에 말한 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 사건을 우리와는 매우 다르게 보는 것도 그 때문이죠. 희생자에 대한 동정이나 테러행위에 대한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자, 이제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봅시다. ꡐ테러와의 전쟁이란 무엇인가ꡑ, 그리고 부수되는 질문으로 ꡐ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ꡑ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전염병, 암과의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으로부터 일탈한 야만인들이 퍼뜨리는 전염병을 퇴치하겠다는 것이죠. 저도 물론 그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인용한 이 말은 20년전에 나온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슐츠 국무장관이 한 말이죠. 레이건 행정부는 20년전 취임하면서 국제테러와의 전쟁을 미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선언을 했죠. 방금 제가 말한 그런 내용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외교정책의 핵심이 됐습니다.
문명으로부터 일탈한 야만인들이 퍼뜨리는 테러라는 전염병에 대항하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제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를 창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례없는 규모의 이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는 전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기록들을 모두 다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하니 고등학교에서 이런 것을 이미 배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니카라과에 대한 레이건의 전쟁
자, 이제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놓고 논쟁할 필요는 없겠죠. 결코 최악의 사례는 아니지만 어쨌든 논쟁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왜 논쟁의 여지가 없냐 하면 국제사법재판소, 유엔 안보리 등 최고 권위의 국제기구들이 이미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국제법이라든가 인권, 정의, 뭐 이런 것들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제가 숙제 한 가지를 내드리죠. 지난 한달간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 사례를 언급한 신문 논평이 있었는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숙제인데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국가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국제테러리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니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알아보는 아주 중요한 선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테러의 심각성으로 보자면 9.11참사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한 나라를 회복 불능의 폐허로 만들어버린 니카라과 사태에 관한 것입니다.
니카라과의 대응
예, 맞습니다. 니카라과는 분명히 대응을 했습니다. 물론 워싱턴에 폭탄을 터뜨리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습니다. 물론 증거도 충분했지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제소를 받아들였고 니카라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미국에 의한 ꡐ불법적인 힘의 사용ꡑ을, 다시 말해 국제테러라는 뜻이죠, 규탄하면서 범죄행위의 중단과 니카라과에 대한 대규모 손해배상을 명령했습니다. 미국은 최대한의 경멸과 함께 이 판결을 무시했고 앞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다음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 갔습니다. 안보리는 모든 국가들에 대해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특정 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나라를 겨냥한 것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죠. 미국은 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제까지 국제법정에 의해 국제테러의 책임자로 비난을 받았고 동시에 국제법을 준수하자는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다시 유엔 총회에 상정했습니다. 총회에는 법적으로는 거부권이 있을 수 없지만 미국의 부정적 표결이 거부권에 해당하는 효력을 발휘하죠.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미국, 이스라엘, 엘살바도르 뿐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똑같은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 상정됐는데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니카라과가 법에 호소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으니까요.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법이 통할 리가 없었던 거죠.
니카라과의 사례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사례는 아니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ꡐ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얼마나 얘기하고 있는가, 학교에서 얼마나 배웠나, 언론에서는 얼마나 다루고 있나ꡑ 등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그 사태의 본질은 물론 우리 자신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죠.
미국은 전쟁을 대단히 빨리 격화시키는 것으로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에 응답했습니다. 그것도 초당적 합의에 의해서 말이죠. 전쟁의 양상도 또한 바뀌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테러군들에게 소프트 타겟, 즉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공격해도 좋다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니카라과 영공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테러 용병들에게 첨단 통신장비들을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통상적 의미의 게릴라가 아니었습니다. 니카라과군의 배치를 샅샅이 알 수 있었고 따라서 니카라과 군의 반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농장이라든가 병원 등의 소프트 타겟들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것도 공식명령에 의해서 말입니다.
미국의 반응은 어땠나
우리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 잘 알려져 있죠. 진보적 리버럴들은 이 정책을 양식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주류의 논의에서 좌파를 대변하는 마이클 킨슬리는 휴먼 라이츠 워치가 했던 것처럼 너무 성급하게 이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썼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ꡐ양식 있는 정책ꡑ이란 ꡐ비용-효과 분석의 틀에 맞는 것ꡑ이라 했습니다. ꡒ테러에 의해 발생하는 피와 고통, 그 결과로 민주주의가 생겨날 가능성ꡓ을 비교하자는 것이죠.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 그것은 미국의 주변국들에서 생생하게 그 사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이, 즉 미국의 엘리트가 비용-효과 분석을 행하고 이 분석틀에 맞는 정책들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가히 신성불가침이라 할 수 있죠. 그들은 분석을 행했고 이 분석틀에 맞는 정책들은 과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마침내 니카라과가 초강대국의 끊임없는 공격에 굴복했을 때, 논평가들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아주 기분좋다는 듯이 이 방법들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그 성공을 찬양했습니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예를 들어보죠.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의 성공을 이렇게 칭송했습니다. ꡒ경제를 파탄시키고, 길고 치명적인 대리전을 계속함으로써 탈진한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정부를 전복하도록 만들었ꡓ고 미국으로서는 ꡒ최소의 비용으로ꡓ 희생자들에게는 ꡒ부서진 다리와 파괴된 발전소, 황폐해진 농장들만을ꡓ 남겨줌으로써 미국을 지지하는 후보가 ꡒ이길 수밖에 없는 이슈ꡓ를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뉴욕 타임스는 ꡒ니카라과 국민의 빈곤을 끝장냈다ꡓ면서 이같은 결과에 대해 ꡒ미국인들은 환희 속에 단결했다ꡓ고 말했습니다.
테러는 통한다-테러는 약자의 무기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몇가지 사실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그중 하나는 테러리즘이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테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테러는 목표 달성에 아주 유용한 수단입니다. 대체로 폭력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세계 역사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흔히 말하듯이 ꡐ테러는 약자의 무기ꡑ라고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분석상의 오류라는 겁니다. 다른 폭력 수단과 마찬가지로 테러도 실상은 엄청나게 강력한 자의 무기입니다. 테러를 약자의 무기라고 말하는 것은 강한 자가 지배적 담론 구조를 장악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테러는 테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같은 측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역사적 예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상 최악의 대량학살도 세상은 그런 식으로(강한 자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 보고 있습니다.
나치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들은 유럽의 점령지에서 테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빨치산의 테러로부터 현지 주민을 보호한 것이죠. 모든 저항운동은 테러리즘으로 분류됩니다. 반면 나치의 행위는 대(對) 테러 행위로 인식됩니다. 물론 미국도 이같은 인식과 분류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차대전이 끝난 뒤 미 육군은 나치가 유럽에서 행한 대테러 작전을 면밀하게 연구했습니다. 우선 말해두어야 할 것은 미군은 나치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자신이 이를 수행했습니다. 어떤 때는 동일한 타겟, 즉 2차 대전 중에 활약했던 레지스탕스 세력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미군은 나치의 수법을 연구하고 이를 책으로 펴냈을 뿐만 아니라 나치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도 했습니다. 이른바 비판적 분석이라는 것이죠. 이건 잘했고 저건 못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중요한 것은 미군이 데려온 독일 육군 장교들의 조언에 의해 확립된 이 수법들은 미군의 중요한 전투 교범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폭동 진압(counter iusurgency), 대테러(counter terror),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conflict) 등 뭐라고 이름 붙여도 좋습니다. 어쨌든 이런 수법들이 미군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수법을 사용한 것은 나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서양문명의 지도자들은 이런 수법들을 정당한 것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은 미국이 서양문명의 지도자이고 따라서 미국도 이같은 수법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테러는 약자의 무기가 아닙니다. 테러는 ꡐ우리ꡑ-ꡐ우리ꡑ가 누가 됐든-우리들에 대한 무기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역사적 예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찾아보십시오.
우리 문화의 본질-우리는 테러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즉 테러리즘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는 우리 문화, 우리 고급문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흥미있는 사례입니다. 논의 자체를 아예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도 인식의 한 방법입니다. 테러가 바로 그러한 예에 속합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죠.
게다가 미국적 이데올로기와 그 선전력은 너무나 엄청나서 희생자들마저도 미국의 테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미국의 테러를 주제로 얘기를 꺼내려면 ꡐ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우리는 잊어먹고 있었네ꡑ 하고 그 사실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논의 자체가 아주 심하게 억압되고 있으니까요. 폭력의 독점은 이데올로기나 다른 분야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니카라과도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테러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로 나카라과도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반응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자료조사 등을 통해 매우 면밀하게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카라과도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ꡐ있을 수 없다ꡑ는 것입니다. 주류 언론의 논평 중에서 니카라과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글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점을 레이건 행정부와 그 선전요원들은 매우 흥미있는 방식으로 이용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니카라과 내전 당시에 니카라과가 러시아로부터 미그 전투기를 구매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미 정부가 정기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지요. 그러자 엘리트들은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립니다. 매파들은 말합니다. ꡐ그래, 그들을 폭격해 버리지ꡑ라고. 비둘파는 이렇게 말합니다. ꡐ조금만 기다려.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자.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폭격하면 돼.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니까ꡑ
어째서 니카라과는 미그기를 구입하려 했을까요. 사실 니카라과는 유럽으로부터 전투기를 사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압력을 넣어 팔지 못하게 했지요. 왜냐구요. 니카라과의 자위 수단을 봉쇄함으로써 그들이 러시아로부터 전투기를 사도록 만들기를 원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선전전에 아주 좋은 소재가 될테니까요. 즉 니카라과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니카라과는 텍사스에서 이틀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1985년에 니카라과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러니 니카라과로서도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니카라과는 왜 전투기를 구입하려 했을까요. 앞에 내가 말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 영공을 비행하면서 테러 용병들에게 온갖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따라서 니카라과 군과 마주칠 염려 없이 소프트 타겟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니카라과는 자국의 영공을 지키기 위해 전투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러나 비무장 민간인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하는 초강대국의 침략 행위에 맞서 니카라과가 영공을 지킬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외는 거의 없었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온두라스-존 네그로폰테의 주 유엔대사 임명
미국이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주 유엔대사를 임명했습니다. 누구겠습니까. 그의 이름은 존 네그로폰테로 1980년대 초에 온두라스 대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당시 미국의 지원에 의해 온두라스 보안군들이 자행한 대량 학살 행위를 그가 모를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시 온두라스 총독으로 불렸던 그는 온두라스내 테러리스트 기지의 현지 감독관이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안보리의-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자체는 무산됐지만-비난을 받은 바로 그 기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 주 유엔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이에 대한 세계의 반응이 어땠는지 여러분이 직접 한번 살펴 보십시오. 직접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테러와의 전쟁이란 게 도대체 뭔지, 나아가 우리들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알게 될 테니까요.
미국이 다시 니카라과를 접수한 이후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물론 80년대에도 많이 파괴됐긴 했지만 미국 접수 이후의 피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라든가 모든 면에서 말입니다. 니카라과는 현재 서반구(아메리카대륙)에서 2번째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사실 난 니카라과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미 말했듯이 니카라과를 예로 든 것은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남미 지역의 다른 나라들을 본다면 국가테러가 훨씬 심한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항상 워싱턴으로 귀착되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도 아닙니다.
국가 테러는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 보지요. 레이건 행정부 재임때로만 한정을 해도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남아공의 테러로 주변국 국민 약 1백5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약 6백억 달러의 재산상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더 훑어본다면 더 많은 국가 테러 사례를 추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조금전 조그만 사례를 들었던 테러와의 최초의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까요? 그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제까지 말한 사례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난 한달간 지구촌의 주요한 화두였던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한 현재의 논의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아이티, 과테말라, 그리고 니카라과
조금전 나는 니카라과가 서반구에서 2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난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아이티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아이티는 20세기에 미국의 간섭을 가장 많이 받은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완전히 망쳐 버렸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것이지요.
미국의 간섭 빈도로 치자면 니카라과가 2등입니다. 2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됐지요. 사실 니카라과는 과테말라와 2위 자리를 경쟁하고 있습니다. 1,2년마다 2위 자리가 뒤바뀌고 있으니까요. 두 나라는 또한 미 군사개입의 주요한 목표물로서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그저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고 싶어 합니다.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과연 그럴까요.
콜롬비아와 터키
크게 보아 1990년대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는 콜롬비아입니다. 테러와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콜롬비아는 또한 90년대 미 군사원조의 최대 수혜국이기도 합니다. 1999년 콜롬비아는 미 군사원조 수혜국 1위 자리를 터키로부터 빼앗았습니다. 별도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빼놓고 말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터키가 그토록 많은 미제 무기를 원조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터키는 언제나 미국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원조받았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나토 회원국이라는, 뭐 그런 이유 등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터키로의 무기 원조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지난 1984년의 일입니다. 냉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붕괴와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죠. 터키로의 미제 무기 유입은 1984년부터 1999년까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1999년부터 규모가 감소하면서 콜롬비아가 1위가 됩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1984년 터키는 국내 남서부에 있는 쿠르드족에 대해 대대적인 테러전쟁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부터 미국의 군사 원조가 늘어난 것이지요. 권총 따위를 원조한 것이 아닙니다. 전투기, 탱크, 군사훈련 등 온갖 지원을 했습니다.
터키군의 학살이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는 동안 군사원조도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정점은 1997년이었습니다. 1997년 한해 동안 터키로 간 미국의 군사원조는 1950년부터 1983년까지를 합한 것보다도 많았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2,3백만의 난민을 양산해 낸 것이지요. 90년대 후반 최악의 인종청소 중 하나였습니다. 민간인 수만명이 죽임을 당했고, 마을 3천5백개가 파괴됐습니다. 나토의 공습을 받은 코소보사태보다도 더 참혹했습니다.
그 인종청소에 필요한 무기의 80%를 미국이 대주었습니다. 학살의 규모가 커지면서 군사 원조가 많아져 1997년에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1999년에 군사원조가 줄어든 것은 테러가 통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자의 테러는 통하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 1999년이 되면서 터키의 테러, 물론 다른 사람들은 대테러(counter terror)라고 말하지요, 국가테러가 성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아직도 테러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콜롬비아가 1위 자리를 물려받은 것입니다. 즉 콜롬비아가 미 군사원조의 1등 수혜국이 된 것입니다.
서방 지식인들의 자축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역사상 쌍벽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요란한 서방 지식인들의 자축 속에 진행됐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2년전,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우리가 원칙과 가치를 지켰다는 것을, 이 새로운 시대에 지구상 모든 곳의 비인간성을 근절하는 데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축하한 성대한 자축연을.
우리는 분명히 나토 경계선 바로 바깥의 대량 학살은 용납할 수 없음을 되풀이해서 강조해 왔습니다. 반면 나토 경계선 내에서는 그보다 훨씬 참혹한 대략 학살을 용납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하기까지 했지요.
미국을 포함한 서방문명에 대한 이러한 통찰이 과연 얼마나 자주 제기됐을까요? 자, 한번 봅시다.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자유사회에서 선전시스템이 이러한 일을 이뤄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입니다. 정말 놀랄 만한 일입니다. 아마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터키는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터키는 미국에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전 에체비트 총리는 반테러 동맹에 참여할 것이라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열성적인 태도로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다른 나라들이 꺼리는 지상군 투입도 기꺼이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그의 말을 빌리면 ꡐ우리의 대테러전쟁ꡑ에 그토록 많은 것을 지원해 준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터키의 대규모 인종청소와 학살과 테러에 미국이 공헌했다는 뜻이지요.
다른 나라들은 도와준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나라들은 뒤로 빠져 있는 것이지요. 반면 미국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침묵, 아니 노예근성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겁니다, 진실을 쉽사리 찾아낼 수도 있었을 배운 자들의 노예근성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는 자유국가 아닙니까.
미국에서는 인권보고서를 비롯해 모든 자료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터키의 대량학살을 돕기로 선택을 했고 터키는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빚진 것이 그토록 많기 때문에 세르비아 전쟁 때 그랬듯이 지상군을 파병하려 하고 있습니다. 터키는 미국이 공급한 F-16전투기로 세르비아를 폭격했다는 이유로 커다란 칭송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전투기로 터키는, 그들 자신의 표현을 빌면, 내부 테러를 근절시킬 때까지 자신들의 국민에 대해 폭격을 가했습니다.
알제리와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이 포함된 반테러 동맹
참, 대단히 인상적이지요. 그리고 이는 현재 조직되고 있는 반테러동맹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동맹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자, 오늘 아침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를 봅시다. 아주 좋은 신문이지요. 세계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최고의 국제신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1면 기사를 봅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존경한다고 하는군요. 또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대해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예 사실은 유일하게 심각한 사례인데, 알제리입니다.
알제리가 미국의 테러전쟁에 아주 열성적이라는군요.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아프리카 전문가입니다. 기자는 알제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테러국가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지난 2년간 자국민들에 대해 참혹한 테러를 자행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한동안 이같은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알제리군의 탈영병이 프랑스로 망명해서 폭로를 하는 바람에 알려지게 된 거죠. 온 세상이 알제리의 국가테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는 세계 최악의 테러국가가 미국의 테러전쟁을 열성적으로 환영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쟁 주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기가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죠.
테러에 대항해 조직되고 있는 동맹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주도적 국가중의 하나인 러시아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는 미국이 러시아의 체첸 학살을 비난하기보다는 지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중국도 열성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른바 서부 회교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지원받게 됐기 때문입니다.
앞에 말한 터키도 테러전쟁을 반깁니다. 이들 모두 전문가들이지요. 알제리, 인도네시아도 아체 지역이나 다른 곳에서의 대량 학살에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한번 목록을 점검해 볼까요. 반테러 동맹에 참여한 국가들의 면면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들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세계 최고의 테러 국가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나라는 테러에 관한 한 세계 챔피온이지요.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이제 테러리즘이란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까지 나는 우리가 테러리즘을 안다고 가정했습니다. 자 뭡니까, 테러리즘이란? 몇 가지 손쉬운 답변이 있습니다. 공식적 정의도 있구요. 미 연방법이나 미 육군 교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 육군 교범에 나오는 간략한 문장으로 충분할 겁니다.
테러란 협박, 강압, 공포의 유발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폭력의 계산된 사용, 또는 폭력행사의 위협을 말한다.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미국이) 이 정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온갖 희한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말한 사례들을 보십시오. 현재 유엔에서는 테러리즘에 관한 포괄적인 협약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코피 아난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보다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자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포괄적 협약에 있는 테러리즘에 관한 공식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이보다 사정이 더 나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공식 정책인 저강도전쟁의 정의를 들여다 보면 방금전 내가 읽었던 그 정의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저강도전쟁이란 테러리즘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이죠. 내가 아는 한, 모든 국가들이 그들이 행한 끔찍한 행동에 대해 대테러작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를 폭동 진압, 또는 저강도 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그래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질적인 정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예기치 못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정의는 피해가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왜 미국과 이스라엘은 테러규탄 결의안에 반대했나
또 다른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1987년 12월, 테러에 대한 첫 번째 전쟁이 정점에 달했던, 다시 말해 전염병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유엔 총회가 테러리즘을 규탄하는 매우 강력한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테러라는 전염병을 아주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면서 모든 국가들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습니다. 거의 만장일치였죠. 기권이 1표, 반대가 2표였으니까요. 기권은 온두라스, 반대는 예의 미국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장 강력하게 테러리즘을 규탄한 이 중요한 결의안을 왜 반대했을까요? 그것도 레이건 행정부와 거의 비슷한 용어를 사용했는데 말입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문의 이 결의안 중 한 구절이 문제였습니다. 이 결의안의 어떤 조항도 인종주의적이며 식민주의적 정권, 또는 외국군의 점령에 대항하는 인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구절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등이 이 구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남아공 때문이었습니다.
남아공은 공식적 동맹국이었죠. 남아공에는 이른바 테러 세력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민족평의회(ANC)-넬슨 만델라가 주도하는-라는 것이었죠. 이 집단은 공식적으로 테러 세력이었습니다. 반면 남아공 정부는 동맹국이었구요. 그러니 인종주의적 정권에 대항하는 테러세력을 미국이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로 35년째 이스라엘군이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역 문제였습니다. 미국의 지원 하에 점령지역의 외교적 해결은 30년째 지연되고 있으며 이스라엘군이 여전히 점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당시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이, 미국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헤즈볼라 세력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헤즈볼라는 나중에 이스라엘을 레바논에서 몰아냅니다. 어쨌거나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에 맞서 싸우는 테러리스트를 지지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결의안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이미 내가 말했듯이 미국의 반대는 거부권 행사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얘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 사건은 역사로부터도 거부를 당합니다. 이 사건을 누구도 보도하지 않았고 누구도 테러리즘의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테러리즘에 관한 학문적 저작들을 살펴보십시오. 지금 내가 말한 것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총을 쥐어줬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테러리즘의 정의라든가 학문적 연구를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을 만한 학자라든가 권위 있는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 지금까지 말한 것이 테러리즘에 대한 포괄적 조약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문제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틀린 해결책은 걸러내고 옳은 해답만 나올 수 있도록 테러리즘을 규정하기 위한 학술회의 같은 것을 가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쉽게 해결책이 나오지는 못할 겁니다.
이제 4번째 질문으로 넘어갑시다. 9.11범죄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두 부문으로 갈라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누가 범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째서 테러와 테러범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 동기에 대해서만은 공감하고 나아가 지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범주 1: 용의자들
우리는 아직 범인이 누군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미국은 범죄의 증거,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증거를 제시할 능력이 없거나, 또는 그럴 용의가 없습니다. 1,2주일 전 토니 블레어가 증거를 제시하겠다며 일종의 쇼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의 행동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아마도 미국이 은밀한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죠. 또는 블레어가 처칠 흉내를 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같은 홍보전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가 내놓은 증거란 것들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어서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월 스트리트 저널은, 아주 진지한 신문이죠, (이 이야기를) 12면에 조그만 기사로 다루면서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미 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빌어 증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어찌 됐건 미국은 행동에 나서겠다는 얘기죠. 그러니 증거 따위에 신경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뉴욕 타임스 등과 같은 보다 이념지향적 언론들은 1면에 커다란 제목을 뽑아 주요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 저널의 반응이 보다 합리적이었습니다. 이른바 증거란 것들을 살펴보면 내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증거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 증거의 빈약함에 놀라자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정보기관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생각해 보십시오. 서방의 모든 정보기관들이 역사상 가장 집중적인 수주일간의 수사 끝에 나온 결과가 고작 이것뿐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라는 것이 명백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수사 결과도 맨 처음의 느낌,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사건 당일부터 누구나가 생각했던 것처럼 과격 이슬람 조직, 여기서는 원리주의자 조직이라고 하죠, 의심의 여지없이 오사마 빈 라덴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이슬람 과격파가 범인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들이 실제 범인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미국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서 왔나
지금까지는 배경설명이었습니다. 과격 이슬람단체들의 네트워크가 범인일 것이라는 얘기죠. 자, 그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죠. 아마 CIA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오랜 동안 그들을 조직하고 키워온 게 바로 CIA였으니까요.
1980년대에 이슬람 과격파들을 한데 모은 것은 CIA였습니다. 파키스탄, 영국, 프랑스,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중국 등의 정보기관들도 협력을 했죠. 아마 이들의 활약은 미국보다 조금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1978년쯤 될까요. 공동의 적인 러시아를 엿먹이자는 생각으로 이들은 뭉쳤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따르면 미국이 개입을 시작한 것은 1979년 중반이었습니다. 시기를 정확하게 가려 봅시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은 1979년 12월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브레진스키에 따르면 미국이 반정부 무자헤딘 세력을 돕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6개월 전이 되는 셈이죠.
브레진스키는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는 우리가 러시아인들을 ꡐ아프간의 덫ꡑ에, 브레진스키의 표현입니다, 빠뜨렸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무자헤딘을 도우면서 한편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유도해 덫에 빠뜨렸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미국은 끔찍한 용병들을 길러냈습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자그마치 10만 명입니다. 이슬람 광신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킬러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은 것입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어디서든 끌어 모았습니다.
이 킬러들은 아프가니(아프간인)라고 불렸지만 빈 라덴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은 아프간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한데 모은 것은 CIA와 동맹국 정보기관들이었습니다. 브레진스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나는 모릅니다. 어쩌면 그가 허풍을 떤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결과를 매우 자랑스러워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죠. 언젠가 관련 문서들이 기밀해제되면 진실을 알게 되겠죠. 어쨌거나 브레진스키의 인식은 그렇습니다. 1980년 1월이 되면 미국이 아프가니들을 대규모 군사력으로 조직화해 러시아인들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주려 한다는 게 분명해집니다.
아프간 사람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은 아프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토를 파괴하는 데 일조했을 뿐입니다. 마침내 아프가니들은 러시아를 물리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가 물러나자마자 CIA가 조직하고 무장시키고 훈련시킨 테러 세력들은 그들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뭐 비밀도 아닙니다. 첫 번째 행동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이었습니다. 사다트는 가장 열성적으로 테러 세력을 조직한 사람중의 하나였는데도 말입니다.
1983년에는 자살폭탄트럭이, 이 트럭이 이슬람 과격파와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는 매우 불투명하며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폭탄트럭 한대가 미군을 레바논에서 몰아냅니다.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은 계속됩니다. 그들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죠. 미국은 이들을 미국의 정책 목표에 활용했다는 점을 즐거워했지만 이들은 이들 나름의 목표가 있었던 것이죠.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1989년 러시아가 물러난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습니다. 이들은 이후 체첸, 중국 서부, 보스니아, 카슈미르, 동남아, 북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은 지금 아랍의 자유로운 TV방송 하나를 침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이 콜린 파월에서부터 오사마 빈 라덴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방송을 폐쇄하고 싶어하는 아랍의 권위주의 국가 대열에 미국이 합세한 셈이죠.
그렇지만 한번 들어보십시오. 빈 라덴의 인터뷰라든가 들을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빈 라덴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다면 로버트 피스크 등 서방의 쟁쟁한 기자들의 인터뷰도 많습니다. 빈 라덴의 발언은 오랜 기간을 두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빈 라덴이 유일한 인물은 아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연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빈 라덴의 발언은 일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도 일치합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죠. 그들의 주적(主敵)은 부패하고 억압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야만적인 아랍 국가의 정부들입니다. 그들의 말은 아랍지역에서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들 자신을 방어하고 나아가 억압적 정부를 교체하고 싶어합니다. 적절한 이슬람적 정부로 말입니다. 그들이 아랍 민중의 민심을 잃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입니다. 그러나 이 이전까지 그들은 아랍 민중과 함께 합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우디 아라비아조차, 사우디는 내 생각으로는 탈레반에 버금가는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원리주의 국가입니다, 충분히 이슬람적이지 못합니다. 어쨌거나 바로 이 부분에서 그들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그들에 대한 지지는 대단합니다.
그들은 또한 세계 곳곳의 무슬림들을 지키려 합니다. 그들은 러시아인들을 독약처럼 싫어하지만 러시아가 아프간에서 물러나자마자 러시아에서의 테러를 중단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CIA의 지원을 받아 아프간은 물론 러시아내에서도 테러를 자행했던 그들이 말입니다.
물론 그들은 체첸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무슬림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교도로부터 무슬림들을 보호하는 것이죠.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밝힌 그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미국에 저항하나
그렇다면 그들은 왜 미국에 저항하는 걸까요?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미국의 사우디 아라비아 침략과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 미국은 사우디에 영구 군사기지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 본다면 이는 러시아의 아프간 침공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우디가 아프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죠. 사우디에는 이슬람 성지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3년 이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폭파하려 했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계획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유엔본부와 홀랜드, 링컨 터널, 그리고 FBI 건물 등을 폭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들 외에 또 다른 목표물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 중에 이집트 출신 성직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이민귀화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압송돼 왔습니다. 다른 범인들을 찾아내려는 CIA의 개입 덕분이었지요. 몇 년 후 이들은 과연 세계무역센터를 날려 버렸습니다.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분명히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로도 표현을 했죠. 20년 동안 행동으로도 옮겨 왔구요. 그러니 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자, 지금까지는 첫 번째 범주, 유력한 용의자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범주 2: 지원의 저수지
이들에 대한 지지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9.11참사 이후 좋아진 것 중 하나는 언론 보도나 우리들의 토론 중에 이 문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좋은 사례는 월 스트리트 저널입니다. 이 신문은 사건이 난 지 불과 이틀 후부터 왜 아랍지역의 사람들이, 빈 라덴을 미워하고 그들의 행동 모두를 경멸하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그를 지지하고 심지어 누군가 말했듯이 그를 이슬람의 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기사들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나 다른 신문들이 여론조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 언론은 그들의 친구, 즉 은행가나 전문직 종사자, 국제변호사, 미국과 관련이 있는 사업가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값비싼 미국제 옷을 입고 맥도날드에서, 아랍지역에서 맥도날드는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간주됩니다, 식사를 하는 부류들과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미국 언론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이들 미국의 친구들의 생각이었던 거죠. 그들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고 매우 명확했으며 많은 측면에서 빈 라덴 등의 주장과 공명(共鳴)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미국에 분노하는 이유는 우선 미국이 권위주의적이고 야만적인 아랍 정권을 비호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를 위한 모든 행동을 봉쇄하고 경제개발을 저지하는 미국의 개입, 사담 후세인 정권을 강화시켜주면서 시민사회는 황폐화시킨 이라크 경제제재 등도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애써 잊으려 하고 있는 사실들을 이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에 대한 독가스 살포를 비롯한 후세인의 잔혹한 살상행위를 미국과 영국이 줄곧 지원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빈 라덴은 이런 문제들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고, 아랍 사람들이 잊어주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잔혹하고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에 대한 미국의 지원 또한 원망의 근원입니다. 벌써 35년째가 돼가고 있군요.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해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랍사람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죠. 특히 이라크에 대한,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이라크 시민사회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대비가 될 때, 원망은 더욱 커집니다. 대충 이런 것들이 이유입니다. 빈 라덴이 이런 이유들을 거론하면 아랍사람들은 물론 공감을 하고 지원을 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이곳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받은 리버럴들은 말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그렇고 특히 좌파 리버럴들이 심합니다. 충분히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오히려 보수파의 의견이 그래도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욕 타임스 의견란에 실린 로날드 스틸의 글을 한번 보십시오. 아주 진지한 좌파 리버럴 지식인이죠. 그는 ꡐ그들은 왜 우리를 미워할까ꡑ라고 질문합니다. 내 기억으로는 이 글이 실린 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아랍인들이 왜 미국을 미워할까라는 문제에 대한 현지 르포 기사를 실었습니다.
스틸은 자신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ꡒ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는 전세계의 보편적 기준이 돼야 할 자본주의, 개인주의, 세속주의, 민주주의 등에 기초한 신세계 질서를 우리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ꡓ라고요.
같은 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은행가와 전문직 종사자, 국제변호사 등의 의견을 청취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ꡒ봐라, 우리가 당신들을 미워하는 이유는 당신들이 민주화를 막고, 경제개발을 저지하며, 야만적 정권과 테러 국가를 비호하고,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이러저러한 끔찍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ꡓ라고.
이틀 뒤엔가 앤서니 루이스는, 대단한 좌파 지식인이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ꡐ묵시록적인 허무주의ꡑ이며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행동해 봤자,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랍 사람들의 반테러동맹 참여를 어렵게 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 문제를 빼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류의 해석이 우리들을 편안하게 해주기는 하겠지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선하고 좋은 사람인가 하는 인식을 심어주니까요. 하지만 이는 우리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간과하게 만듭니다. 이런 류의 해석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결점은 폭력의 악순환을 증폭시키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거죠. 만일 여러분이 모래 속에다 머리를 처박고 ꡐ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는 세계화에 반대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20년 전에 사다트를 암살하고, 또 러시아인들과 싸웠고, 1993년에 세계무역센터를 폭파하려 했던 거야ꡑ라고 생각한다면 뭐 마음은 편할 겁니다.
동시에 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폭력을 확대시키는 아주 확실한 방법입니다. 야만적 폭력 말입니다. 나를 쳤단 말이지, 좋아 나도 한방 먹여주지. 왜 그런지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아주 솔직한 좌파 리버럴들의 견해입니다.
5.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정책 대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죠. 가장 속좁은 대안은 애시당초부터 교황과 같은 진짜 과격파의 조언을 따르는 것입니다.(웃음) 바티칸은 사건 직후, ꡐ봐라, 이 끔찍한 테러리스트의 만행을ꡑ이라고 말했죠.
범죄의 경우, 우리는 우선 용의자를 찾아내죠. 그리고는 그를 법정에 데리고 가 심판을 받게 합니다. 죄없는 양민을 학살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 집을 털어갔다고 칩시다. 그리고 범인이 아마도 길 건너 이웃의 누군가로 추정된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엽총을 들고 가서는 그 일대의 모두를 쏘아 죽이지는 않겠죠.
그것은 범죄를 다루는 방법이 아닙니다. 지금 예를 든 것과 같은 작은 범죄든, 또는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테러전쟁과 같은 진짜 엄청난 범죄든간에 말입니다. 범죄행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례가 많습니다. 이미 내가 말했듯이 합법적 절차에 따라 테러에 대응한 니카라과 같은 경우 말입니다. 미국이 니카라과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한 것은 아마도 그처럼 철저히 원칙을 지켰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니카라과의 합법적 대응은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따라야 할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강자에 대항을 했으니까요. 반면에 미국이 하려고만 마음을 막으면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불법적 행동을) 칭송하겠지요. 그러한 선례는 많이 있습니다.
런던의 IRA 폭탄테러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런던에 폭탄테러를 가했다고 칩시다. 작은 일이 아니죠. 영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일단 가능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보스턴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구요. IRA측에 군자금을 가장 많이 대는 곳이 (아일랜드계가 많이 사는) 보스턴이니까요. 물론 서부 벨파스트도 작살을 낼 수 있겠죠.
이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실행에 옮긴다 해도 진짜 멍청한 짓일 겁니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응해야 합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구요. 용의자를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한편 범죄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뭔가 사연이 있는 겁니다. 필유곡절이란 말이죠. 길거리의 소소한 범죄든, 아주 끔찍한 테러행위든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찾다 보면 그 중의 일부는 정당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에 대해서는 범죄와는 무관하게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당한 근거가 있으므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런 범죄들에 대응하는 길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을 대응을 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국제기구들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기구들에 호소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았죠. 또 국제전범재판소 설립에 대한 비준도 거부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새로운 국제법정을 창설할 만큼 강력합니다.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종류의 법정이든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법정에 가든 증거가 없어서는 안 되겠죠. 토니 블레어가 TV에 나와 떠드는 그런 종류의 증거 말고 말입니다.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
9.11테러의 범인들은 범행과 함께 자신들의 목숨도 버렸습니다. 누구보다도 CIA가 잘 알고 있겠죠. 이들은 중앙지도부가 없고 위계질서도 없는 네트워크 조직입니다. 그들은 이른바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Leaderless Resistance)이라는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미국의 기독교 우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개발된 것입니다.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이라고 불리죠.
뭔가 일을 저지르는 아주 조그만 그룹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자기 그룹의 일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그룹들은 공통의 대의를 공유하고 있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사실 (60년대 이후 미국의) 반전운동도 이와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반전운동가들은 이를 친구집단(affinity group)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소속된 집단에 FBI 요원이 침투해 있고 이 조직이 뭔가 중요한 일을 꾸민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일을 공식 회의에서 얘기할까요? 하지 않겠죠. 당신이 아주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즉 친구집단을 통해 일을 추진할 겁니다. 정보요원들의 침투가 불가능할 테니까요. FBI가 미국의 대중운동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단 한번도 알아내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다른 정보기관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들은 절대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 친구집단의 강점이지요. 중앙지도부가 없는 네트워크 조직은 침투해 들어가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번 범행의 범인이 누군지를 아무도 모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번 범행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주장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무전기나 전화도 없이 아프간 동굴 속에 숨어 있는 그가 이번처럼 고도로 복잡한 작전을 꾸몄다고는 사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른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증거를 찾아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신뢰도의 확립
사실 미국은 증거를 제시할 생각도 없습니다. 증거 없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이 부분은 미국의 반응 중에서 아주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미국은 이번 테러전쟁에 나서면서 유엔 안보리의 결의도 요구하지 않았죠. 이번 만큼은 안보리가 결의를 해줬을 텐데요. 뭐, 썩 아름다운 이유는 아닙니다, 다른 안보리 국가들도 테러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선선히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테러를 위해, 그들이 테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항하는 이번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반겼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의 요구가 안보리의 승인을 받았을 텐데, 미국은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원치 않은 이유는 현 정부 이전, 클린턴 정부 때부터 내려온 전통, 사실은 그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이지만 클린턴 행정부 때 명확한 원칙으로 굳어진 것이지요, 즉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 때문이지요.
우리는 국제적 승인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따라서 국제적 승인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증거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협상이 왜 필요합니까. 조약 따위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센 놈이니까요. 동네 최고의 주먹 아닙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승인이라는 건 아주 골치 아픈 것이고, 따라서 그런 걸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태도를 지칭하는 아주 유식한 말이 있습니다. 신뢰도의 확립(establishing credibility)이라는 거죠. 신뢰도의 확립, 중요합니다. 많은 정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발칸전쟁에 참여한 공식적 이유였고, 그 밖의 많은 정책에서도 주요 근거로 제시돼 왔습니다.
신뢰도가 뭔가를 알고 싶다면 마피아 보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가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대학에서 고상한 단어들을 동원해서 설명하는 것 빼놓고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원칙은 같습니다. 말이 되는 얘기고 대체로 이는 통합니다.
수년전, 찰스 틸리라는 권위 있는 역사가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책을 썼는데, 책 이름은 ꡐ강압, 자본,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ꡑ입니다. 그는 지난 수백년간 유럽을 이끌어 온 가장 주요한 원칙은 ‘폭력’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는 폭력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아주 합당한 설명입니다.
거의 언제나 폭력은 통하죠. 내가 압도적인 폭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고 그 배후에 폭력의 문화가 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이같은 원칙을 따라야겠죠. 그런데 (이런 문화에서는) 합법적 수단을 추구할 때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골칫거리입니다. 만약 당신이 합법적 수단을 택한다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갖 위험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미국이 탈레반에 대해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요구한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탈레반측의 반응은 서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완전히 불합리하고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ꡐ그래, 먼저 증거를 내놔 봐ꡑ 그랬죠. 서방에서는 이는 아주 바보같은 짓입니다. 스스로 범죄를 인정한 꼴이니까요. 어떻게 감히 그들이 증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까? 내 말은 누군가 우리에게 범인 인도를 요구한다면 다음날 당장 보내준다는 거죠. 증거 따위는 요구하지 않습니다.(웃음)
아이티
예를 들어 봅시다. 최근 수년간 아이티는 미국에 대해 에마뉴엘 콘스탄트의 본국 송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유명한 킬러입니다. 1990년 중반 군사정권 하에서 4천 내지 5천명을 학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우리들의 환상과는 달리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는 이 군사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죠. 어쨌거나 그는 아주 악질적인 킬러입니다. 아이티 정부는 충분한 증거도 갖고 있죠. 증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아이티 내 궐석재판에서 형을 선고받았고 아이티는 그의 신병을 요구한 것입니다.
자, 여러분께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조사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언론 보도 등에서 이런 얘기를 듣거나 본 적이 얼마나 됩니까. 사실 아이티는 2주전에도 또 한번 신병 인도 요구를 해 왔습니다. 그 사실은 보도조차 되지 않았죠.
자그마치 4,5천명을 학살한 주범을 도대체 왜 미국이 인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의 신병을 인도한다면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죄다 말할 것입니다. CIA가 돈을 대줬고 CIA의 도움을 받았다, 뭐 그런 얘기들을 하겠죠. 그 얘기들은 거의가 사실일 겁니다. 우리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가 그 사람, 하나 뿐이겠습니까.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 중남미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죠, 이 나라는 지난 15년간 미국에 대해 존 헐이라는 미국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헐은 코스타리카 내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테러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땅을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테러전쟁의 기지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증거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는 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 얘기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없죠.
코스타리카는 또 다른 미국인 지주 존 해밀턴의 땅을 몰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땅값은 지불했습니다. 그 땅 역시 니카라과에 대한 미 공격의 기지로 사용됐는데, 코스타리카는 이 땅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코스타리카는 벌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한 겁니다. 미국은 동맹국의 이러한 불복종을 절대 용납 못합니다. 우리가 일단 신병 인도의 선례를 남겨 놓으면 온갖 유쾌하지 못한 결과들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신병 인도는 못하는 거죠.
아프간에 대한 반응들
자, 이제 아프간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최초의 반응은 뭐였습니까. 대규모 보복을 하겠다는 거였죠. 대규모 보복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주변국까지도 공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명하게도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났습니다.
나토를 비롯한 외국의 모든 국가원수들, 모든 전문가들, 그리고 아마 모든 정보기관들까지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설득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건 마치 전세계에 빈 라덴을 위한 테러리스트 지원 접수처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일이니까요. 바로 빈 라덴이 원하던 것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그들(미국의 지배엘리트)에게도 지극히 해가 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일단 대규모 보복은 포기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행한 일은, 내가 이미 말한, 소리없는 대량 학살이었지요. 내 생각은 이미 말했고, 더 덧붙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간단한 셈을 해본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합리적인 대안이 있긴 합니다.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고 망명 아프간인이나 아프간 내부의 부족 지도자들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인데, 러시아와 미국은 완전히 배제한 채 유엔 주도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겁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0년간 아프간을 망친 주범들인 만큼 그들은 반드시 빠져야 합니다. 이 두 나라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아프간에 대규모 배상을 하는 것뿐입니다. 유엔이 나서서 아프간내의 여러 분파들을 한데 모아 폐허로부터 뭔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충분한 지원을 해준다면 이는 성취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미국이 이 일에 끼어들겠다고 고집을 한다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미국의 역할에 관한 한 역사적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테러를 줄일 수 있는 쉬운 길
우리는 분명히 테러를 감소시키길 원합니다. 테러의 증폭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혀 논의가 안 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우리가 테러에 가담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테러의 수준은 엄청나게 약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논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테러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그 이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정책들을 재고해야 합니다. 아프간뿐만이 아닙니다. 테러 군인을 모집하고 훈련해 온 정책 말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결과들을 보고 있습니다. 9.11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재고해야 합니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지원의 저수지를 만들고 키워 온 정책들도 재고해야 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은행가와 법률가 등이 말한 바를 상기해 보십시오. 아마 거리의 민중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극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정책의 재고) 가능합니다. 그 정책들이란 게 10계명도 아니잖습니까.
나아가 덧붙여야 할 것은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2주간의 사태 발전이 그렇게 희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개방적 토론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주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문제들이, 일반 시민들은 물론 엘리트 그룹 내에서도 토론의 주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주 극적인 변화죠. 예를 들어 USA투데이 같은 신문에 가자지구에서의 생활과 같은, 아주 진지하고 좋은 기사입니다, 기사들이 실린다는 것은 분명 변화입니다. 아까 말한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도 물론 변화입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 동안 묻혀져 왔던 주제들에 대해 얘기해 보려는 개방성과 열의가 보입니다. 이러한 기회들은 반드시 활용돼야 합니다. 최소한 테러와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목표에 합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9.11테러쯤은 하찮게 보이게 만드는 진짜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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