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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노암 촘스키와의 인터뷰(040725)

by 마리산인1324 2006. 12. 23.
 
2004년 07월 25일
노암 촘스키와의 인터뷰
 
더 프로그레시브(The Progressive) 2004년 5월호에 실린 미국의 양심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와의 인터뷰입니다.

오랫동안 MIT 에서 교수로 일해온 노암 촘스키는 자기 정치적 삶의 대부분을 권력자들의 거짓말을 고발하고 위선을 폭로하는 데 바쳐왔습니다. "어떤 일이든 먼저 그럴듯한 전제가 주어지고, 그 틀 안에서만 비판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촘스키는 주어진 틀을 깨라고 시민들에게 충고합니다. 주어진 틀을 깨는 일을 촘스키만큼 오랫동안 일관성있게 꾸준히 해 온 사람도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흔히 촘스키를 정치활동가나 정치평론가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외겠지만, 촘스키는 언어학의 선구자 중 하나입니다. 1950년대에 출간된 그의 <구문구조론> (syntactic structure) 은 언어학 분야의 혁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두 촘스키가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어학자인 촘스키와 정치활동가인 촘스키. 그러나 물론 두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다. 그는 최근에도 <9-11> 이나 <헤게모니, 혹은 생존> (Hegemony or Survival) 같은 날카로운 평론집을 잇달아 펴냈으며, 그와는 항상 껄끄러운 관계인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들 만큼 성공하고 있습니다. (두 얼굴의 촘스키에 대한 추가적 이해)

촘스키는 부시 행정부를 "제국주의적 폭력에 의존하는 급진적 민족주의자 그룹" 으로 파악합니다. 요즘 그가 걱정하는 일 중 하나는 미국에서 앞으로 4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미국 대통령선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과학자로서 그는 지금 상태가 계속될 경우 벌어질 환경에 대한 위협과 우주의 군사화에 대한 위험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일부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를 어쩔 수 없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케리는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시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촘스키는 부시 행정부가 너무나 야만스럽고 잔인하므로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대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75세인 원로 촘스키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2003년 브라질에서 벌어진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 대회에서의 일입니다. 그는 광장에 모인 2만여 명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곧이어 벌어진 가두 행진에서 청중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외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가 촘스키의 흔들림없는 태도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그가 누차 말했듯이, 촘스키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고마운 특혜라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오랫동안 그를 알아온 사람들은 그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머리 아래 크나큰 동정심과 따뜻함, 유머가 담긴 심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 인터뷰를 진행한 David Barsamian 에 따르면, 그가 인터뷰를 위해 MIT 의 교수 연구실로 촘스키를 찾아갔을 때, 촘스키는 막 영국 BBC 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인터뷰를 끝냈을 때, 촘스키의 연구실 밖에는 그리스에서 온 두 명의 저널리스트가 인터뷰를 위해 촘스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촘스키의 일상이라고 합니다.





Q: 부시는 거짓말에 의존해 이라크를 공격했고, 국제법을 마음대로 위반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부시가 저지른 전쟁 범죄가 논의되지 않는 걸까요? 또 왜 사람들은 부시에 대한 탄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요?

촘스키: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법률가 그룹들이 - 일부 미국인도 있지만 대부분 영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해외 지역에서 - 미국의 침략 행위로 발생한 전쟁 범죄를 논의하고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명백한 침략 행위이지만,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에 미국 공군기를 남베트남에 보내 폭격하고 화학전을 일으킨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명백한 침략 행위입니다. 동티모르를 쳐들어간 인도네시아는 어떻습니까? 2만 명을 죽인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또 어떻습니까? 인도네시아나 이스라엘의 침공 모두 배후에 미국의 막대한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후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침략은 계속됩니다.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또 어떤가요? 파나마 사람들에 따르면, 미국은 민간인 3천명을 학살했습니다. 아마 그들의 추산이 옳겠지요. 우리(미국)는 우리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한번도 조사한 적이 없으므로 아무도 정확한 숫자는 모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추측컨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때 발생한 사망자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 침공을 위해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총회에서 미국 규탄 결의안을 채택할 때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침략 결과 미국은 파나마 통치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불법으로 플로리다로 데려왔으며, 우스꽝스러운 법정에 그를 세우려 했습니다. 우스꽝스러웠던 이유는, 노리에가가 받은 혐의는 모두 사실이지만, 그것은 모두 그가 CIA에 고용되어 있을 때 저지른 것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만일 사담 후세인에 대한 재판이 벌어진다면 노리에가와 똑같은 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즉 미국의 지원을 받고 저지른 범죄 때문에 재판받는 꼴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결코 언급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한편, 이라크 경우는 많은 점에서 그 전의 사례들과는 좀 다릅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전쟁이 국제적으로 압도적인 반대 여론을 몰고 왔다는 것이지요. 어느 나라의 한 가지 행동에 대해 세계 여론이 이처럼 일사분란하게 반대하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의 법률가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하세요? 그건 참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좀 나면 법률 전문 학술지들, 예컨대 미국국제법학지 (The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같은 것을 좀 들여다보세요.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국제법 학자들은 복잡한 임무를 떠맡게 되지요. 진실을 말하는 일부 소수파도 있습니다: "이봐, 이건 국제법 위반이라구." 하지만 법학자 대부분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복잡한 논리를 동원하는 방어 위원회로 기능하게 마련입니다. 국가 권력을 뒷받침하는 방어 위원회, 이게 바로 그들의 일입니다.

그들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 사회의 의지를 관철시킬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그러한 역할은 강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 즉 미국이 대표로 나서서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전세계 90%의 인구와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 전쟁에 반대하며 격렬히 비난하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이게 소위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요. 어린애 장난처럼 우스꽝스런 논리에다 심오한 것처럼 덧칠을 하여, 그럴듯하게 보이는 복잡하고 난해한 주장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런 논리의 핵심은,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은 패자이지 승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똑같은 일을 그들이 하면 죄가 되고 우리가 하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또한 재판받아야 하는 것은 패자이지 승자가 아니라는 거죠. 이런 종류의 재판에서는 예외없이 정의는 승자의 편이지요. 종종 승자의 정의가 정당할 때도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Q: 부시의 제국주의적 전략은 무엇입니까?

촘스키: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은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안보에 위협이 되는 나라라면 어디나 찾아가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많은 미국인이 이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러한 미국의 뻔뻔함이 오히려 미국에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클린턴 시절의 국무장관이던 올브라이트조차 <포린 어페어즈> 에서, 이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라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들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저와 같은 태도를 가져 왔습니다. 다만 공공연히 떠벌리지 않았을 뿐이지요.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언제나 필요하면 써먹을 수 있는 명분 -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 매우 멍청하고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언급은 전 국무장관 키신저가 한 것입니다. 그는 미국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두고, 17세기 초기에 형성된 베스트팔렌 체제를 뒤엎는 혁명적인 새 국제 질서라고 합니다.1 그는 말하기를, 이러한 새 독트린은 좋은 것이지만, 이러한 독트린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수용되는 상황은 미국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2 이것은 이 독트린이 세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미국 자신만을 위한 것임을 잘 고백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가 잠재적 위협이 된다는 생각만 들면 언제나 우리 마음대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권리를 우리의 가신 국가들에게는 양도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주 1.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독일을 중심으로 벌어진 30년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며, 이 조약에 따라 서로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권국가들의 존재에 기초를 둔 국제 질서가 탄생되었다. 이것을 뒤엎는다는 말은 독립 주권국가의 고유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강대국이 편의에 따라 다른 나라에 대해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주 2. 이 말은, 미국이 세계 경찰로서 다른 나라에 대해 무력으로 응징할 수는 있지만, 이런 독트린이 널리 퍼져 어느 나라나 비슷한 역할을 떠맡으려고 나선다면 미국의 국익에 위배된다는 뜻이다.


Q: 두번째 요소는 무엇입니까?

촘스키: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을 비호하는 나라들은 테러리스트 자체만큼 나쁘며, 테러리스트와 꼭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테러리스트들을 비호하는 나라란 어떤 나라인가요. 국가가 곧 테러리스트인 나라들의 지도자를 비호하는 것은 제쳐둡시다. 이걸 따져보다가는 이게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테러리스트들, 알 카에다나 하마스 같은 것을 따져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나라가 이들을 비호합니까?

잠깐만 뒤를 돌아보자면, 미국은 1959년에 쿠바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케네디 행정부 아래에서 몽구스 작전 (Operation Mongoose) 을 수행했으며, 이 작전은 핵전쟁 직전 단계까지 상승됐습니다. 또 1970년대 내내 쿠바에 대한 테러 공격이 미국 영토에서 발진되었습니다. 이것은 국제법은 물론 미국 자체의 법까지 위반하는 행위였지요. 다름아닌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비호하여 왔으며, 그것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예컨대 올랜도 보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FBI로부터, 1976년에 73명을 죽인 쿠바 민항기 폭파 사건을 비롯해 30건의 중대한 테러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그를 추방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기 아들인 플로리다 주지사 젭의 요청을 받고 보쉬에게 특별 사면을 내려줍니다. 보쉬는 현재 플로리다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미국)는 우리 법무부가 매우 위험하다고 결론 내린 테러리스트이자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예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카라카스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도망간 두 군 장교를 미국이 추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장교들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이틀간 마비시켰던 쿠데타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미국은 그 쿠데타를 공공연히 지지하였으며, 영국의 한 보도에 따르면 쿠데타를 선동, 사주했다고 합니다. 이 장교들은 현재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놓고 있습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아이티의 엠마누엘 콘스탄트입니다. 그가 CIA 에 소속되어 일했던 기간인 1990년대 초반에, 그의 휘하에 있던 죽음의 군대는 4천에서 5천명에 이르는 아이티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현재 콘스탄트는 미국 뉴욕에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를 추방하라는 현 아이티 지도자 아리스타이드의 요청에 미국이 콧방귀도 뀌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테러리스트들을 비호하는 것입니까? 부시 독트린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이 "테러리스트들을 비호하는 국가는 바로 테러 국가" 라는 주장이라면, 우리는 대체 그로부터 무슨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까? 그 결론이란 키신저가 고맙게도 잘 말해준 바로 그것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독트린은 일방적이라는 것이지요. 국제법에 부합하려는 노력도 없고 국제 사회의 질서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오로지 미국에게만 마음대로 힘과 폭력을 쓸 권리, 테러리스트들을 비호할 권리를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독트린에 지나지 않습니다.

Q: 당신이 보기에, 부시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는 징조가 있는 것 같습니까?

촘스키: 아닙니다. 최근에 지지의 하락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가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그걸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죠. 부시가 진정으로 잘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량 살상 무기 문제를 보지요.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은 대량 살상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대량 살상 무기를 찾고 싶다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이지요. 현재 세계적으로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습니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이스라엘은 2백기에 이르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도 갖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살상무기 축적은 그 자체로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을 그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 무장시킴으로써 대량 살상 무기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갖고 옵니다. 이런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 있습니까?

Q: 도대체 왜 어린 자식이나 어린 손자 손녀를 갖고 있는 엘리트 정책결정자들이 그처럼 파괴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촘스키: 1950년 경에 미국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지구을 절반을 통제했으며, 양 대양 (태평양과 대서양) 을 통제하였고, 이들 대양의 건너편 쪽마저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근처에는 아무런 적이 없었지요. 단 하나만 빼놓고 말입니다. 열원자핵 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유도 미사일이 바로 그것이었죠. 당시에는 아직 무기로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개발의 막바지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심장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당신이 만일 당신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무기가 실현되지 않도록 뭔가를 했었어야 할 겁니다.

과연 그 무기의 개발이 성공적으로 중지될 수 있었을까요? 시도해보지조차 않았으니 그 가능성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무기의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각종 조약을 모색할만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만일 당신이 단기적인 권력과 특권의 극대화에만 눈이 멀어 있다면, 당신의 자식이나 손자 손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장기적인 안목은 결코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Q: 왜 수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잘못된 정책을 용납하는 것일까요?

촘스키: 놀라운 사실은 특별한 강제 없이도 국민들이 이같은 잘못된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만일 당신이 독재 체제나 왕정, 혹은 살인적인 종교 지도자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쨌든 그 지도층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곤경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불타는 나무 위에서 화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강제수용소에 수감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당신이 설사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곤경에 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여전히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조차 어렵습니다. 진실이란 너무도 깊숙히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전체주의식의 강제 없이도 전체주의 국가에서 진행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 에 붙이려고 했던, 출판되지 않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전체주의 소굴에서 벌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는 두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현했습니다. 첫번째는 언론이 부유층에 의해 소유되어 있고, 그들은 어떠한 생각이 표현되고 유통되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더욱 중요한 사실인데,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은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거부감없이 이해하도록 주입시킨다는 것이죠.

나는 잘못된 교육의 부정적 결과를 강조하는 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엔, 교육의 결과 사람들은 잘못된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당신이 좋은 교육을 받게 되면 될수록 당신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눈감고 지나치게 됩니다. 교육이 당신에게 어떤 중요한 것들, 중요한 것이지만 권력자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누구든 옛날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면,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이 미국 역사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 당당히 일어서서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선생님은 바보에요, 그걸 믿게?" 하고 맞서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겠지요. 그보다는, "좋아, 그냥 입닥치고 있다가 시험에 나오면 그대로 쓰면 되는 거야. 어쨌든 난 선생이 바보라는 걸 아니까" 하고 생각하겠지요. 이렇게 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택하게 되고, 자기 이미지나 경력을 관리하게 되는 겁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직시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편이 훨씬 쉽지요. 당신은 "나는 입으로는 권력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믿을 거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당신은 결국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Q: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 중에서는 "촘스키는 이 모든 사실과 역사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구나. 그럼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질문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어떻게 조언해 주겠습니까?

촘스키: 당신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제가 여러분께 드린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비롯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를 확인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자료를 들춰보면서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머리 속에 뇌가 들어있는 이유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떠한 생각이 옳다는 결론을 갖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 겁니다. 우리는 감옥에 던져지지도 않을 것이고, 고문을 받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살해당하는 일도 없겠지요. 우리 미국인들은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막대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기회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매일 밤마다 나는 많은 편지를 받습니다. 연설이 끝날 때에도 많은 질문이 내게 쏟아집니다. 그들은 모두 질문합니다: "나는 지금의 잘못된 상황을 바꾸고 싶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콜롬비아 남부의 농민들이나 터키 남동부의 쿠르드족 사람들처럼 억압 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결코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말할 뿐입니다.

종종 엄청난 자유와 특권이라는 상황은 오히려 무기력한 대응을 낳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요. 그러나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는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도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조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위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답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질문하는 진정한 뜻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빠르고 쉽게" 아예 "끝장내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급한 태도는 1968년에 나와 논쟁을 벌였던 콜럼비아대 학생들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이봐, 우리가 딱 두 주일 동안 총장실을 점거했더니 바로 평화와 사랑이 넘쳐 흐르잖아"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건 지난번 시위와 꼭같았지요. 2월15일에 천오백만명의 반전 시위대가 거리거리를 꽉 메웠는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네요. 이젠 희망이 없어요."

세상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That's not the way things work). 만일 당신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서서 따분하고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다음과 같은 일을 꾸준한 열정으로 계속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흥미를 가진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하고, 조금씩 조직을 확장하며, 다음 단계 일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하며, 때로 화가 나는 것을 억누르고, 결국 어떠한 성과를 얻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끝)
by deulpul | 2004-07-25 09:57 | 내 밖의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