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7-11-05 오후 07:18:46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48159.html
꿈터에서는 생활과 교육이 하나예요 | |
교실 밖 교실 / 충북 괴산 방과후 학교 ‘하늘지기 꿈터’ | |
이종규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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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 대안교육 공간 자리매김
간식짓기 등 의식주 교육 차근차근
사회교육으로 현실과 끈도 단단히
충북 괴산군 청천면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끝난 뒤 ‘또 하나의 학교’가 열린다. ‘하늘지기 꿈터’라는 방과후 학교다. 꿈터는 여느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늦은 저녁까지 논밭에서 일을 하는 바람에, 학교가 끝난 뒤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2005년 4월 가톨릭 예수회와 성심수녀회가 공동으로 문을 연 마을 공부방이다. ‘공부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굳이 ‘꿈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단지 학습에 도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교육여건이 나쁜 농촌지역의 대안적인 교육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현재 꿈터에 오는 아이들은 중학생 네명을 포함해 모두 22명이다. 인근 초등학교 한 곳과 분교 한 곳, 그리고 중학교 한 곳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세 학교를 다 합쳐야 전체 학생 수가 90명 남짓이니 넷에 한 명꼴로 꿈터에 오는 셈이다. 꿈터 교사는 성심수녀회 남궁영미 수녀를 비롯해 꿈터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귀농한 지역 주민, 예수회 신부 등 여섯명이다. 남궁 수녀는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살림살이를 챙기고 교육활동을 이끄는 ‘꿈터지기’다.
아이들은 꿈터에서 요일별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초등부 아이들은 글쓰기, 역사, 생각 키우기, 공동체놀이, 생활교육, 미술, 음악, 몸놀이, 노작교육, 나들이 등의 활동에 참여한다. 중등부는 영어, 공동체놀이, 과학, 수학, 역사, 생각 키우기 수업을 한다. 꿈터에서는 이런 교육들이 삶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이뤄진다. 노작교육 시간에 텃밭농사를 통해 먹을거리를 기르고,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고 고칠 수 있도록 목공기술도 익힌다. 인근 농가에서 얻은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고 감잎차도 만든다.
생활교육 시간에는 간식을 만들어 먹으며 제철 음식과 요리법 등 먹거리에 대해 배운다. 생활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앞으로 옷 만들기, 흙벽돌 찍기, 생태 화장실 만들기 등으로 교육내용을 넓혀갈 계획이다. 남궁 수녀는 “꿈터에서는 삶이 곧 교육이 되고, 교육이 삶이 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꿈터는 아이들에게 사회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현실과 이어진 끈도 놓지 않는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경기 평택 대추리와 전북 새만금 간척사업지를 답사하고, 환경운동가인 윤호섭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를 초청해 재활용 운동 얘기를 나눴다. 지난해 지역에 생수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는 생수를 만들어 팔려고 산과 계곡을 파헤치는 것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손수 펼침막을 만들어 내걸었다. “자연이 슬피 웁니다. 한 사람의 욕심이 자연에게는 커다란 상처입니다.”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펼침막에 쓴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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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터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모델’은 형과 언니들이다. 프로젝트 활동을 할 때 한 모둠 안에서 고학년은 동생들을 이끌고, 저학년은 형과 언니들을 통해 배운다. 지난 7월에 꾸려진 꿈터 그룹사운드 동아리 ‘언저리’에서도 고학년들이 인터넷 등을 뒤져가며 독학을 통해 악기를 배운 뒤 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유우림(13)군은 “형, 친구, 동생들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다”며 “이런 공간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했다.
넉넉지 않은 삶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돕고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2005년에는 텃밭에 기른 김장 채소를 팔아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파키스탄 어린이들을 도왔다. 텃밭농사와 바자회 등을 통해 번 돈은 지금도 저금통에 한 푼 두 푼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내년 겨울방학 때에는 중등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도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여름방학 때 서울에 있는 성가복지병원 등에서 3박4일 동안 자원봉사 체험을 했다. 아이들은 감자농사를 지어 판 돈과 흙벽돌을 만들어 판 돈으로 여행비 일부를 마련한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꿈터요? 자유롭고 꿈을 키워가는 공간이죠. 꿈터 생활은 또 저에게 더불어 산다는 게 뭔지 느끼게 해준 값진 경험이기도 했어요.” 형, 동생과 함께 3년째 꿈터에 다니는 김한돌(13)군의 말이다.
괴산/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꿈터의 꿈은 ‘나답게 어울리기’
‘나다움’과 ‘어울림’.
‘하늘지기 꿈터’가 지향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나다움’은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해지는 것을, ‘어울림’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저마다 고유한 빛깔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보완하고 더 빛나게 하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담고 있다.
아이들의 자치회의인 ‘야단법석’은 꿈터의 이런 정신을 잘 보여준다. ‘야단법석’은 함께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아이들 스스로 정하는 자리다. 막내부터 맏형까지 모든 아이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여서 때로는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의견 조율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려준다. 아이들은 ‘야단법석’ 회의를 통해 ‘꿈터의 법’도 만들었다. 법 1조가 “욕을 하면 욕쟁이 모자를 쓰거나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2조는 “‘됐거든’이라는 말과 인터넷 용어를 쓰면 그날 하루 모든 사람한테 존댓말을 써야 한다”이고, 올봄에 만들어진 3조는 “친구에게 바보라고 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이다. 3조를 만들면서는 “벌칙이 법을 어기도록 부추기는 것 같다”며 벌칙을 없애자는 한 아이의 제안에 따라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벌칙을 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따로 또 같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빛깔은 ‘야단법석’ 이외에 꿈터의 여러 활동에 스며들어 있다. 여름방학 때 이뤄지는 야영과 여행을 어디로 가서 뭘 하며 놀고 뭘 먹을지 등을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방학 때 꿈터에서 함께 먹는 점심도 아이들이 역할을 나눠 손수 준비한다. 꿈터 생일잔치와 어린이날, 성탄 잔치 등도 아이들 모두가 힘을 모아 준비한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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