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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누명을 벗고 세상과 융화되기
- 하승우의 '아나키즘'을 읽고
OXFORD의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같은 기획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 ‘책세상’에서 나온 개념사 시리즈도 비슷한 의도에서 기획된 출판물로 보인다. 분량도 150~200여 페이지로, 다큐에서 지식채널e로 진화하듯 지식인들의 출판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으로 적합한 기획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머레이 북친과 촘스키, 이반 일리히, 프레이리 등등 사회생태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급진저항이론의 이론가들과 더불어 최근 생협에 대한 관심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체계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던 즈음이었다. 때마침 주변에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선배에게 선물 받은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아나키즘 그 오래된 '누명'
하승우의 아나키즘을 읽으며 2008년 명반으로 꼽힌 버벌진트의 '누명'을 떠올렸다. (그동안 한국의 힙합에 덧씌워진 누명에 대해 노래했다는 이 음반은 리스너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첫 번째 장 '왜 다시 아나키즘 인가'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오래된 누명을 이야기 한다. 하승우의 아나키즘뿐만 아니라 이반일리히를 한국에 소개한 박홍규 역시 아나키즘의 오해를 본인의 저작 '아나키즘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다. 왜 아나키즘은 오해와 누명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잠시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무정부주의, 테러리즘, 극단적인, 민주적이지 않음. 등등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이미지들은 이러한다. 이에 대해 하승우가 말하는 진실은 이러하다.
아나키즘을 받아들일 때 일본에서 무정부주의로 번역했을 뿐이고, '아나키즘은 국가만이 아니라 시장의 폭력과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주의 등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모든 권력을 거부하기 때문(12)'에 반강권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지만 아나키즘은 무차별적인 테러를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정의와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으라고 권한다. 아나키즘은 어느 한 가지 길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결정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19)' 라고 하며 아나키즘이 가진 극단적이고 민주적이지 않고 테러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은 어쩌면 조작된 측면이 더욱 많다는 것이다.
동양사상과 아나키즘
얇지만 아나키즘이 던지는 물음, 역사, 논쟁, 아나키스트의 저작, 현재적 의미까지 아우르고 있는 이 책은 몇 가지 지점에서 내게 흥미로운 물음을 주었다. 특히 동양사상과 아나키즘의 연관을 설명한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는데, 반전과 관련하여 묵가의 사상이 흥미로웠고, 대동사상과 관련하여 예기에 나오는 구절, '자기 부모만을 사랑하거나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고 모두가 한 가족같이 사랑하였다. 그럼으로써 늙은이는 수명을 다하고 젊은이는 재능을 다하고 어린이는 무럭무럭 자랐으며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들도 부양받게 되었다.... 도둑질과 약탈이 없으니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이것을 일러 ‘대동’이라 말한다.(33)’에서 대동사상과 68혁명의 개인의 출현, 동시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연관을 발견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러한 맥락과 더불어 동양사회는 농민중심의 공동체전통, 맹자와 노자, 묵자처럼 아나키즘과 연결되는 사상적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동양에 빠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58)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한국역시 계와 향약, 두레, 품앗이와 같은 전통. ‘홍익인간’의 이념 역시 아나키즘과 닿아 있다.(62)고 밝히고 있다.
스페인과 아나키즘
‘러시아와 함께 아나키즘이 가장 번창했던 곳은 유렵의 스페인이다. 당시 스페인은 유렵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농업 사회의 성격이 강했다. 19세기 중반부터 프루동과 바쿠닌 같은 사상가들이 스페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군주는 자신을 위협하는 아나키스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49)’ 사회주의자들은 아나키즘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인정하지 않지만 스페인에 한해서 그 영향력을 인정하는데 이에는 역사적 맥락이 숨어있다. 1931년 스페인 왕정이 붕괴되면서 아나키적 실험이 다양하게 진행된다. 이는 아나코-조합주의적 실험들이었다. 영화 ‘판의미로’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스페인 시민전쟁(스페인내전)으로 인해 아나키즘은 심각한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판의미로’에 등장하는 파시스트 장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농민의 가방에서는 ‘신도, 국가도, 주인도 없다’는 글귀가 적인 종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스페인 시민전쟁은...스페인을 무대로 벌어진 유럽 제국주의, 권위주의세력 대 사회주의, 아나키즘세력의 대결이었다...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50)’ 당시 언론에서는 스페인내전을 파시즘 대 민주주의의 대결로 혁명적 측면은 최대한 은폐시켜 모호하게 접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아가 스페인은 현재에도 몬드라곤 공동체로 대표되는 최대의 아나키즘의 정치적 역량을 자랑한다. 이러한 역량은 유럽으로 일본, 미국, 호주로 90년대 초 IMF이전 한국에게도 논의의 지형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일순, 김지하의 한국적 뿌리를 두고 있는 생명사상과 몬드라곤의 실험은 한살림운동이라는 구체적 운동으로 현재까지 귀결되기도 한다.
아나키즘을 뛰어넘는 정치적 역량과 상상력.
나는 아나키스트라는 자각도 사회주의자라는 자각도 별로 없다.(아나키스트는 아나키즘이라는 권위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난 에코맑시스트와 사회생태주의자에 가까운 회색인이다. 개별의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은 지향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대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 나의 안타까움이다.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와 친구이자 서로를 등지기도 한 배반자였다. 아나-볼 논쟁과 같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던 두 이념은 다시 현대에 와서 서로 다른 지향을 가진 무엇으로 여겨진다. 아나키즘의 정치적 역량은 과연 무시할만한 수준인가? 아나키즘은 이미 삶속으로 많이 침투해있다. 촛불시위때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었던 ‘비폭력’,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생협, 풀뿌리공동체, 23년째에 접어든 조합원규모 16만에 육박하는 한살림운동... 사회에 ‘상수원’역할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기에 한국의 아나키의 정치적 역량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재, 정세를 볼 때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화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해묵은 아나-볼 논쟁의 구도에서 벗어나 노동자, 농민의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적극적 연대로 아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일리히와 마르크스, 사르트르의 사상적 뿌리를 두고 68혁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앙드레고르의 저작이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고르의 사상적 융합은 새로운 상상력을 끌어내는데 굉장히 유용한 ‘무엇’이다.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내 머릿속의 아나키즘에 대한 누명을 벗어냄과 동시에 크로포트킨의 지식의 공동소유와 같은 개념을 새롭게 익히고 영감을 얻는데 유용한 책이었다. 다시 돌아온 독재의 시대, 시민사회와 좌파세력 그리고 아나키세력 모두.. 아나키적 상상력을 발휘해야할 때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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