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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재단>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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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회 다석 탄신 기념 강연  

                                            다석의 생애와 사상

                                                                                                                                                                     박재순

1975년 쯤 어느 봄날 퀘이커 예배 모임이 끝나고 뜻하지 않게 세검정 너머 다석 선생님의 구기동 자택을 찾아가게 되었다. 북한산 비봉과 보현봉에서 내려오는 맑고 아름다운 계곡물이 합치는 곳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울안으로 들어가니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드님께서 벌을 치셨기 때문에 뒤뜰에 꽃들이 많았다.


방안에 들어가니까 자그마하신 다석 선생님이 나오셔서 무릎을 꿇고 앉으시는데 머리털과 눈썹이 눈처럼 하얗다. 얼굴은 분바른 것처럼 하얗고 그 하연 얼굴 속에 붉은 볼색이 드러났고 입술이 빨갰다.


인상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신선같은 비범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앉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몇 사람이지요?” 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수를 세시면서 '수'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란 나누어지지 않는 큰 하나, 모든 것이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그때까지 나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고, 수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내 나이가 25살쯤이었고 서울대 철학과 공부 마쳤지만 철학과에서 그런 공부 한 적이 없었다. 또 셋에 대한 말풀이만 기억에 남는다. “셋은 서는 것이다. 다리가 셋이면 잘 선다.” 하나와 셋에 대한 풀이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고, 다 잊었다.


그리고 다석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삶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손이 하는 것을 발이 도와서는 안 되고, 발이 하는 것을 손이 도와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하시면서 무릎 꿇은 그 자세로 한 다리를 펴시더니 다리로만 벌떡 일어나셨다. 나는 몸이 자유롭지 못해서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참 힘든데 80 중반의 노인이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한 무릎을 세워서 그대로 일어서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있을 것이 있을 곳에 있는 것이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움이다.” 밥알이 밥그릇 속에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얼굴에 붙어 있으면 좋지 않다. 똥이 똥통에 있으면 괜찮지만 옷에 묻으면 좋지 않다.“


또한 문명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핵폭탄이 터질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살아서 인류가 존속할 수 있을지 참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는 앞뒤 내용 잘 모르고 “그럼 어떻게 해야 구원 받습니까?”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셨다. 그래서 나중에 또 물어 보았더니, “저 사람 왜 자꾸 저런 질문하느냐”고 나무라시면서 지나갔다. 선불교에서 그런 질문했더라면 굉장히 맞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렇게 해야 사는 것이라고 알기 쉽고 분명하게 다 말씀하셨는데 다 듣고 나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 보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문명이 살길, 인류가 살길이란 다름이 아닌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남 일 시키지 말고 스스로 하고’, ‘ 남 도움 받지 말고 스스로’ 살아야 한다. 스스로 하면 살 것이다. 또 있을 것이 있을 곳에 있게 하면 이 문명이 망하지 않고 살 것이다.


다석사상을 공부해 보니까 두분 선생님(김흥호, 박영호)이 말씀 하신대로, 다석의 글은 그냥 글이 아니다. 나 같이 남루하고 이렇게 낮은 생각하고 낮게 살아가는 사람이 다석의 글을 읽으면 아주 삶이 풍족해지는 것 같다. 그냥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몸과 정신이 몇 단계가 향상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다석은 단순한 이론가나 사상가가 아니다. 이분의 글에는 이분의 정신과 생명이 아주 꽉 차있으니까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감명을 받는다.


다석은 지금 이 순간을 옳 곧게 사신분이시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거나 망상이나 헛된 생각안하시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온전하게 사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은 사는 길이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인데 과거에 집착하면 할수록 오늘 삶은 낡아지고 죽어간다. 또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수록 삶은 힘이 빠진다. 사는 길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밖에 없다.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가 다 같이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도 만나야 되고, 나를 만나도 만나야 된다. 다석은 늘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사셨다.

박영호 선생께서 나에게 이런 귀중한 시간을 주신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학자로서, 말씀하라고 하셔서 사실 원고 준비 없이 메모만 해 가지고 왔다.

다석 선생을 세가지로 말씀 드리겠다.

1. 독특하고 주체적인 한국사상

1) 우리 말과 글의 사상

다석은, 독특한 한국사상을 펼치신 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가지고 우리역사와 삶속에서 사상을 형성하고 펼치신 분은 다석 선생과 함석헌 선생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철학자가 우리 역사와 삶속에서 우리 사상을 우리말과 글로 닦으신 분이 계신가? 없다. 우리 사상으로서 동학이나 증산사상을 들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대중적이고 민중적인 종교 사상인데 한자말로 되어있다.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는 한글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말은 다 한자말이다. 동경대전은 물론 다 한자로 되어있다. 증산조차도 주로 한자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동학이나 증산의 사상을 사상이라고 하기에는 주술과 부적과 주문에 의존하고 있으니 (동학이나 증산도가) 현대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류영모, 함석헌 이 두 분의 사상에는 동학에서 최제우와 최해월이 제시했던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의 핵심 사상이 그대로 나온다. 다석에게 그대로 다 나오고 있다.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 사상은 한국적인 종교사상인 것 같다. 한국적으로 우리가 영성과 정신을 파고들면 그렇게 표현되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다석과 동학은 매우 가깝다. 그러나 동학과 다석 선생이 아주 달라지는 것은 다석은 한 영혼의 깊이를 깊이 파고드신 분이고 생각을 그 정신과 사상의 중심에 놓으셨다는 데 있다. 생각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동학이나 증산교와는 아주 달라진다.

2) 자유로운 신선사상

다석사상은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영성적인 깊이는 없는, 정치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진정한 주체가 없다. 다석은 정말 우리 삶과 문화에서 우러난 우리 사상을 표현했으며 신선 같은 자유를 누렸다. 자유로운 삶과 정신세계를 추구했고 실현하신 분이다. 함선생은 한국문화의 맨 꼭지, 맨처음, 맨근원을 신선사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한반도 동북아지역 산수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면서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하나로 되고 자연 속에 녹아지는 자연과 한 몸이 되는 길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종교문화의 맨 꼭지다. 그런 신선사상의 흔적이 산에 가보면 남아 있다고 한다.


기독교 장로교인으로 한신대를 설립한 김재준 목사도 신선사상이니 자연주의, 자연합일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산으로 도망가고, 농촌으로 간다. 다 그만 두고 농사나 짓고 살고 싶어 하셨다. 그가 쓴 책에 자연산수에 대한 글이 참 많이 나오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재단 이사장을 하신 박형규 목사는 민주투사이자 민중선교의 대부이신데 거칠게 사시고 늘 투쟁적인 전선에 서셨던 분인데, 80이 넘어서 한번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는데 “이제 난 그만 두고 산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 저 산에 90넘은 어떤 스님이 계시는데 (농사만 짓는) 그 스님 밑에 들어가서 장작이나 패고 싶다.” 자연과 하나로 되어 초연하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은 한국사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꿈이 아닌가.여성들은 다를 수 있다. 사회 생활에서 늘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사회 속에서 자기를 펼쳐보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산에 들어가서 신선처럼 살고 싶은 꿈을 (그렇게 이루지는 못하지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석 선생은 정말 신선처럼 그렇게 사셨다. 70년대 중반에 내가 갔을 때도 세검정이 그렇게 좋았는데 일제 때에는 아주 깊은 산골 이었을 것이다. 문일평 선생이 그곳에 가서 보시고 집을 그린 글이 참 멋있었다. 다석은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시로 표현하고 있다.


“좋은 衣食 않은 것 우리집 자랑이요
名利를 웃 보는 게 내 버릇인데
아직껏 바람, 물 줄여 씀이 죄 받는 듯 하여라.”

산골에서 바람, 물 아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산골에 한 없이, 끝없이 있는 “바람, 물을 줄여 쓰는 것마저도 죄 받는 듯 하여라.” 이런 마음자리는 산속에 들어가서 다 깨달았다고 큰 소리 치는 것 하고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신선도 이렇게 겸허한 신선이 없어요. 자기를 낮추고 지극정성의 마음 가짐을 가진 신선이 아닌가?


다석은 “척추는 율려  거문고”라고 하셨다. 1990년대 들어서 김지하 선생이 율려 얘기를 많이 해서 율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석 일지에 앞쪽에 이 말이 나와 있었다. “척추가 율려다.” 율려는 기본음과 가락을 定하는 것이다. 옛날에 나라를 세우고 형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다음에 예의와 도덕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라 세우는 일이 다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맨 마지막에 세우는 것이 율려를 정하는 것이었다. 음악의 기본 성격과 기준을 정해야 나라가 제대로 된다. 율려를 바로 세움으로써 새 나라의 기초가 놓아지는 것이다.


다석은 “척추가 율려”라고 했다. 사람 몸. 몸에서도 중심이 되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는 척주가 삶의 근본바탕이다. 척추를 바로 세워야 삶과 생명의 음악이 나온다. 몸과 마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셨으니 깊기도 하고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난 이런 멋진 말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없다. 몸과 영을 예술로 보셨다. 사람들의 몸이 곧고 맘에서 음악이 나오면 나라가 바로 선다. 몸과 맘이 나라의 바탕이다.  


우리의 삶을 영과 예술로 높인 류영모의 삶은 자유롭고 초연한 신선의 삶이고 또한 그의 사상은 걸림없는 옹근 삶을 추구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원융무애다. 모난 것 없고 이지러진 데 없고, 걸리는 것이 없다. 원융무애를 추구한 이 땅의 종교인들, 사상가들을 보면 원효로부터 모두 신선을 추구한 것 같다.

3) 곧이와 하나의 사상

다석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줄이면 ‘곧이’ 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감”(歸一)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곧이’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 가지 말로 표현한다. '곧이'와 '동글암'. 하나님은 둥근 원이면서 곧음이다. 곧은 막대기 ‘ㅣ' 철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ㅣ’는 사람을 나타내며 똑바로 서 있는 ‘곧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곧이 라는 말 다음으로 다석 선생이 좋아 하시는 말이 ‘깨끗’이다. 곧으면 깨끗한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것, 지저분 한 것 없는 것, “내”가 없는 것이 곧은 것이다. 사사로운 것이 없는 것, 내가 죽는 것이다. 내가 죽으려면 나를 끝장내고 깨어나야 한다. 그것이 깨끗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이 분의 학문 자세에서 들어 난 것을 보고는 참 기쁘고 통쾌함을 느꼈다. 한국 종교사상의 경전이라고 하는 천부경(혹은 위서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서건 아니건 관계없이 우리 한국 종교가 담겨 있으면 귀중한 책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천부경을 풀기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천부경 풀이를 알기 위해 돌아 다니셨던 분이 다석 선생을 만나서 얘기 듣고는 다석 선생의 천부경 풀이가 제일 위대하다고 말했다는데 난 그것을 이해 할 수 있겠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로 시작하고 一終無終一로 끝난다. 처음부터 풀이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一始無始一을풀이할 때 하나를 없음(無)에 비취어서 해석하려 한다. “한”의 존재론적 뿌리 형이상학적 뿌리를 없음에서 찾으려 한다. 無라는 것이 심오해 보이고 끝없이 깊어 보이니까 그 없음에서 “한”의 깊이를 보려고 한다. 천부경의 사상은 한사상, 한철학일 텐데 “한”을 없음(無)으로 해소하고 無의 사상에 이른다. 이것은 한 철학이 아니라 무의 철학이다.


그러나 다석 선생의 천부경 풀이를 보면 군더더기 없이 그냥 직역해 버린다. 한자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말로 토만 단다. 어린 애처럼 직역한다. 다석 선생처럼 생각 많이 하시는 분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종일 생각만 하시는 분이신데, 얼마나 생각이 많으시겠는가? 그 생각 다 지워버리고 그냥 거의 토만 단다. 다만 좀 문제가 되는 것은 거기에서 無를 형용사로 보느냐 명사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無를 명사로 보면 無가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바탕이 되는 것이다. 다석 선생은 무를 형용사로 보았다. 이렇게 시작할 始를 비롯으로 번역해서 一始無始一은 “한 비롯 없는 비롯 하나”로 풀이하고, 一終無終一은 “한 마침, 없는 마침 하나”로 풀이했다. 시작과 끝이 하나로 시작해서 하나로 끝난다. 천부경이 말하는 사상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다. 그러니 한 사상이 맞는 말이다. 한겨레의 사상이니 한사상이다. 다석에게서 하나는 온 우주를 하나로 묶는 절대 하나일뿐만 아니라 有無를 포함하는 하나임(님)이다. 유무상통하여 하나에 이른다. 없음과 있음이 서로 통하여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歸一이다. 하나님 안에 없음과 있음이 서로 통한다. 하나님은 “없이(無) 계신(有) 님”이다.

4) 나라를 바로 세우는 사상

다석의 사상을 너무 정신적으로만 해석하면 좀 잘못 될 수도 있다. 다석 사상을 (아까 우리가 국기에 대한 경례도 했는데) 민족사적인 중심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아까 김흥호 선생께서 다석 선생이 67세에 돌아가실 작정을 하고 죽을 날 정하셨다고 하는데 제가 일지에 본 것으로는 남강 선생이 67세, 선친도 67세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자신도 67세쯤 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다석선생의 사상은 오산학교와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적인 큰 흐름에서 생겨났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라의 정신과 사상을 다지는 민족사적인 역사적인 맥락이 다석사상의 중요한 context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다석 사상은 정치나 사회 그런 것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석 사상의 문맥은 민족적인 것이고 그런 맥락을 놓치면 안 되겠다.
  다석 일지에는 처음에 상서, 서경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풀이 하시는데 그것은 나라를 세우는 일에 관한 경전이다. 그런 눈으로 보면 다석의 글에는 나라 세우는 일로 고심하신 흔적이 많이 나온다. 80넘어서 쓰신 한시나, 신앙시에서도 예수 얘기 많이 하시면서 나라 얘기 많이 하신다. 정치적으로 이 세상에 세우는 그런 나라 아니지만, 그러나 단군이 세운 나라, 예수의 나라, 하늘 나라를 일직선상에 놓고 늘 말씀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사적으로 다석 사상이 중요하다고 본다.

2. 몸 제사 드리는 삶과 사상

1) 몸 제사

다석 사상의 핵심에는 몸제사가 있다. ‘성경에.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 평생동안 이 성경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다석 선생이시다.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신학에 매인 사람들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다석 선생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실천한 사람이 있나? 관념적으로만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삶속에서 성경과 아무런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독교인이 천만이지만 진실하게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적다고 본다. 그냥 문자적으로 성경을 외우고 성경을 믿는다고 그런다. 그러나 다석 선생은 여러 종교를 말씀하시지만 다석 선생은 성경의 뜻을 생각하며 뜻대로 사셨다.

1955년 죽을 날을 정해놓고 일기 쓰신 날 첫 페이지에 올해는 내가 죽는 해, 나를 크게 제사 지내는 해라고 쓰셨다. 1년을 자기를 제사 지내는 해로 삼았다. 생사를 넘어 사는 삶을 살려 하셨다. 지식과 논리를 넘어서는 영의 세계, 내가 없는 내가 사라지는 나를 불살라서 제사지내는 그래서 내가 사라지는 성숙과 깨달음에 이르는, 자유의 세계에 이르는 그런 삶을 살려 하셨다. 다석 선생 사상의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의 원리가 있다. 다석 선생이 기독교의 속죄론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멀리한 것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속죄론적으로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고 저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것을 거부한 것이지 내 살과 피로 내 몸을 희생제사로 바쳐서 구원을 이룬다는 속죄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2000년 전에 예수가 자기를 희생제물로 인류를 구원했다고 하니까 2천년에 한번만 일어나고 지금은 안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그것을 부정한 것이지 속죄론 자체는 다석 선생처럼 철저하게 믿고 그렇게 사신분이 없다. 다석은 의인의 깨끗한 피가 세상의 죄와 더러움을 깨끗이 씻는다고 굳게 믿었다. 심지어 이분은 自然相贖殷이라고 했다.

먹고 먹히는 자연 생명세계가 서로 더러움과 죄를 씻어줘서 자연생명세계가 융성해진다는 것이다. 자연 생명의 먹이사슬 세계를 제사 드리는 관점에서 본 것이다. 자연 생명세계를 얼마나 깊이 본 것인가. 진화론에 의하면 생존투쟁과 자연 선택, 자연 도태설이다. 이것은 개체 중심으로 보고 생명을 현상적으로 보는 이론이다. 여기에는 혼과 영의 관점이 전혀 없다. 다만 현상적으로 자연 생명계를 보았다. 동학의 2대 교주 최혜월은 다윈의 진화론 보다 훨씬 깊이 보았다. 먹이사슬구조를 “하늘로써 하늘을 먹임”(以天食天)으로 보았다. 서양에서는 먹이 사슬 현상을 생존투쟁으로서 보았는데 해월선생은 하늘로써 하늘을 먹인 것으로 본 것이다. 생명세계를 먹이는 엄마의 관점에서, 생명세계 전체의 관점에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참으로 심오한 것이다. 위대하다고 본다. 다석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희생제물,로 속죄행위로 본 것이다. 이천식천으로 본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자리에서 보았다. 종교적인 깊이가 훨씬 더 깊다.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서로 밥이 되어 주는 것, 서로 먹이가 되어, 희생제물이 되어서 서로를 깨끗하고 힘있게 하여 신세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내가 먹이가 되어, 희생양이 되어 상대의 밥이 될 뿐 아니라 상대의 존재를 깨끗하고 힘있게,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서로 희생제물이 되어 서로를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석 선생의 글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때가 많다.  내 머리 가지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도 못할 얘기를 이렇게 많이 해 놓으셔서 고맙다. 몰랐던 것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된다. 염통노래라는 시를 보면 염통과 허파, 콩팥 피돌기 숨쉬는 것을 다 제사로 파악하셨다. 염통을 무어라 했는지 아세요?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뭐예요 offering이요, 제사장은 제물을 올려드리는 분이다. 염통은 사심없이 자기 안에 묵은 피를 다 돌리고 깨끗한 피를 아무런 사 심 없이 온몸에 돌려드리는 일을 하는 대 제사장이다. 염통을 Pope라고 했다. Pope는 교황을 뜻하고 염통 뛰는 소리를 나타낸다. 허파는 더러운 피를 태워서 깨끗하게 하는 자리다. 허파는 제물을 태우는 제단이다. 피돌기 자체가 제사다. 다석은 뚝딱뚝딱 건강하게 뛰는 맥박이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라고 했다. 피돌기가 제사고 예배다.


다석은 밥을 먹는 것이 진짜 예배라고 했다. 내가 받는 예배가 아니라 내 목구멍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다. 밥먹는 것이 제사 지내는 것이다. 다석 선생은 금식을 많이 하셨다. 금식은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살과 피를 먹고 사는 것이다. 금식하는 것은 제 살과 피를 태워서 에너지를 얻어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다 해보시고 이해를 다 하셨다. 성만찬의 성경 교리를 잘 이해한 것이다. 제가 87년에 “예수운동과 밥상 공동체”를 썼는데 예수의 생애와 성만찬을 밥상공동체로 풀이한 것이다. 이 책이 제법 널리 읽혀서 알려졌다.그런데 내가 다석 선생의 이런 글을 좀 알았더라면 좀더 깊게 썼을 것이다. 난 성만찬 얘기를 내가 독창적으로 한 것으로 알았다. 예수의 성만찬 얘기를 오늘의 밥먹는 얘기로 풀면서 오늘의 공동체 이야기로 풀어서 야! 내가 남들이 안한 얘기를 풀어서 가슴속으로 뿌듯한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미 50년대에 다석이 심오하고, 철저하게 밥의 문제를, 성만찬 얘기를 이렇게 완벽하게 하셨다.

2) 생각; 내 존재의 끝을 불사르는 제사

다석은 생각하는 것도 제사라고 했다. 생각이란 내 존재의 끝을 불사르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내나는 제사다. 생각을 하면 내 삶에서 향내가 나야한다. 이렇게 이해한 사람이 세상에 한분도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무언지를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인지 모른면서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자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서양 사상은 핵심에 이성이 있다. 이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이성적인 논리와 추론과 생각에 의해서 모름에서 앎으로 나가자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기본 생각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감각이나 현상세계는 믿을 수가 없는데 생각하는 나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 생각하는 내가 있는 한 나는 존재한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나'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했다.


숭산스님은 선불교를 미국과 유럽에 30년 동안 널리 퍼트려서 5만명의 제자를 냈다고 하여 그 분의 책들을 다 읽어 보았다. 핵심은 “오직 모를뿐, 오직 할뿐”이다. 생각을 끊어버려라. 생각을 끊어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삶으로 돌아오고 행동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오직 모를뿐, 오직 할뿐이다. 그것을 지켜야 오는 이 순간의 삶속으로 들어간다. 잔머리, 헛된 상상 이런 것을 다 지워 버려야 한다. 마당 쓸 때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마당을 쓸고, 차를 마실 때는 차만 마시고, 남의 얘기 들을 때는 남의 얘기만 들어야 한다. 딴 생각 말고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숭산이 미국에 가서 하버드 대학과 컬럼비이 대학의 석학들을 아주 꼼짝 못하게 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뒤집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없다. 내가 없어져야 비로소 참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없어야 비로소 내안에 주님을 모실 수 있다. 기막힌 말이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없다.’ 이 말에 서양의 학자들이 다 뒤집어 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논리가 그것을 도저히 반박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어 머리 깎고 중 되는 사람이 많다.


생각을 부정하기만 하지 않는 다석 선생 생각은 정말 좋다. 생각을 뛰어 넘으시면서도 글자와 말씀 갖고 얼마나 씨름하시는가. 난 불교의 선승은 아니지만 다석을 선승이라고 본다. 불립문자가 아니라 文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가정 안에서 득도를 하신 분이다. 난 요즘 선불교를 많이 보았는데 다석 선생의 깨달음의 경지나 정신 세계를 보면 훨씬 더 역동적이고 심오하고 높고 깊다. 그냥 이성적인 추론이나 사변에 머물지 않고 영감과 영성적인 깨달음을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과학과 추론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계속하면 비행기가 활주로를 쭉 가다, 비상하듯 곧이곧대로 쭉 하다 보면 마지막에 하늘로 갈 수 있다. 다석의 생각은 이성과 영성이 통합된 것이다.

3. 동서정신문화의 창조적 융합

다석의 사상은 동서 정신문화의 종합이다. 철저하게 한국적인, 동양적인 사상과 서구 정신과 근대 문화가 다석의 삶과 정신 속에서 창조적으로 통합되고 있다. 세계 문명사적인 퓨전이 일어나고 있다. 동, 서의 근대정신을 다석 선생처럼 철저하고 깊게 받아들인 분이 없다. 인류사적으로 지구화, 세계화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화되려면, 동서가 하나로 꿰뚫어 살려면 정신과 사상의 큰 뜻(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어디서 낼 수 있나? 이제까지 동서 문명이 직접 만날 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동양문명이 없었으니, 만날 수 없었다. 서양의 근대정신 문화가 동양을 침략해서 동양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동양에서 이런 만남이 이루어 질 수가 있었다. 남미에서도 전통문화가 서구의 정복으로 완전히 죽어버렸고 아프리카에서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서구 문명, 기독교가 일찍 들어갔지만,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종교 문화 속에 기독교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완전히 변두리 종교다.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 깊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와 서구 문명이 충돌하고 있다. 근대 문명이 들어와서 아시아에서 꽃핀 곳이 있다면 한, 중, 일 동북아시아다. 중국은 공산화되면서 전통 종교 문화를 억압하고 배척하고, 서구 종교나 문화를 거부했다. 중국대륙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전통문화와 서양 정신문화의 진지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본의 근대화는 천황과 지배 엘리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그래서 산업화와 군사 기술은 받아들였지만 민주화보다는 군국적인 정복주의, 파시즘적인 군사 문화를 이루고 말았다. 일본 민중을 정복전쟁에 동원했다. 일본에서도 일본 민족정신과 서구 정신이 만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민족사적으로 가장 비극적이고 쇠퇴할 때, 조선 왕조가 몰락하고 일제 식민지로 병합되었을 때 서구 문화와 기독교 정신이 들어왔다. 지배 권력과 엘리트가 약화되었을 때, 밑바닥 민중들이, 씨알들이 역사의 전면에 사회중심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기독교가 들어오고 서구 근대 문화가 들어왔기 때문에 민중과 서구 기독교정신, 민주정신이 직접 깊이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고 그분들이 독립에 앞장섰다.


  세계문명사적으로 한국에서 이렇게 서구 정신문화와 한국 정신문화가 창조적으로 깊이 만나고 있는데, 이 만남이 다석에게서 가장 깊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다석의 삶과 정신에서 기독교와 동양종교가 만나고, 이성과 영성, 민주정신과 공동체정신이 만났다. 깊은 죄의식과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 십자가의 곧음과 치열함이 원융합일, 원융무애를 강조하는 동양정신의 편안하고 원만한 동글암, 포용정신과 만난다. 다석은 자신의 삶과 정신 속에서 동양 종교들의 핵심을 체득하고 기독교 신앙을 깊이 받아들여 크고 아름다운 사상과 정신세계를 펼쳤다. 그가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자유롭게 동양의 종교들을 넘나들어도 그의 몸과 삶에 녹아든 정신과 사상의 세계는 편안하고 넓고 깊다.


다석의 사상과 정신세계는 우리만의 유산이 아니다. 세계 인류가 앞으로 민족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 공동체, 세계 평화 정부, 지구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는데 지구 공동체를 품을 수 있는 사상과 정신의 집을 지으신 분이 다석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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