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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촛불1년]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이기호, 경향신문090430)

by 마리산인1324 2009. 5. 1.

 

<경향신문> 2009-04-30 23:49:1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302349142&code=940100&s_code=as028

 

 

[제2부 촛불의 과제와 전망]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이기호(한신대 교수)

1. 촛불의 기억: 저항, 소통 그리고 축제의 공간


2008년 촛불항쟁은 한국 사회운동사 혹은 현대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08년 촛불항쟁의 경험이 있기까지는 길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집단적 체험이 자리하고 있고, 짧게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과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사건이 그 맥을 형성하고 있다. 전자가 이미 40대가 되어버린 386들이 경험한 투쟁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후자는 10대와 20대들이 경험한 ‘저항의 공간’ 혹은 ‘소통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8년 촛불이 이루어낸 집회공간은 이 두 세대를 뛰어넘어 가족 단위로 참여할 만큼 평화에 대한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광화문사거리에 높이 쌓아올린 명박산성과 경찰의 물대포 및 강제해산 과정은 더욱 더 국가폭력과 소통의 단절을 절감케 했다.


2008년 촛불의 핵심은 단순히 쇠고기수입 문제가 아니라 ‘평화적 소통’ 대 ‘물리적 단절’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촛불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부의 ‘물리적 단절’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인터넷에서 검열의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며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미네르바검거 사건과 기습작전을 통해 속전속결하려던 용산철거민사건에서 빚어진 참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촛불 시위가 만들어낸 ‘새로운 시민공간’은 저항의 공간이자 축제의 공간 그리고 소통의 공간으로 그 역할을 해냈고 세대를 가로질러 집단적인 체험과 역사적 공감대를 구성해내는 기억의 정치로 작동하게 되었다.


본 글은 촛불집회를 꼼꼼히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특히 촛불집회 혹은 촛불 항쟁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논하는 것은 더욱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2008 촛불이 가지는 의미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촛불이 지녔던 평화의 힘과 그 평화의 힘이 지속가능한 평화로 자라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논의해보는데 있다.

2. 촛불항쟁이 평화운동에 주는 교훈


평화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한국의 평화운동은 역사적 맥락을 달리한다. 3.1운동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비폭력저항운동을 강조할 수 있고, 분단극복의 운동에서 평화운동을 찾고자 하면 통일운동과 교차하고,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보면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연결되고 소수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권운동과 연결되며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의 맥락에 서면 문화운동 혹은 생태주의 운동과 연결되기도 한다. 그만큼 평화는 다양한 맥락에서 성장의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평화가 수단으로 때로는 목적으로 강조되어왔다.


평화운동이 성장해온 토양을 살펴보면 적어도 몇 가지 다른 시간 축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4.19, 5.18, 6.10 등 민주화투쟁의 역사에서 평화운동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왔으며 6.25에서 6.15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91년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6.15와 10.4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통일의 길이라는 역사의 축에서 성장해왔다. 그런가 하면 53년 7월의 휴전협정에서 최근의 UN안보리의 성명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동맹외교에서 6자회담으로 구성된 동북아국제질서의 축이 평화운동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해왔다. 게다가 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의 축을 들이대면 역사의 시간 축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생태계를 드러낸다.


2008년 촛불은 평화운동의 다양한 토양이 같은 시공간에서 어우러지면서 서로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역사의 공간이 같은 시공간에서 부딪히는 역동적인 전환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논자에 따라서 2008년 촛불이 만들어낸 시공간이 여러 한계를 드러낸 것도 사실이지만 커다란 흐름에서 보자면 과거와는 다른 시공간을 형성해 낸 점이 분명하다.


첫째, 이미 누구나 지적하고 있듯이 촛불은 다양한 주체들을 등장시켰다. 그런데 그 주체들이 누군가에 의해 조직되거나 지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개인이었다는 점에서 조직을 강조하면서 성장한 한국의 사회운동의 전통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평화운동의 시각에서 보자면 평화운동은 민주화운동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성장하는 종속적 성격을 지녔으며, 이른 바 6.15시대이후에는 정부의 통일사업에 의지하는 측면이 강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에 2008년 촛불의 공간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인과 그룹들이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사례를 자연스럽게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시민운동이 외롭고 힘들게 자신들을 희생해왔다는 점에서 깊은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지만 시민운동이 직업 활동가에 의지하는 경향을 띄게 된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촛불항쟁은 참가자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실천하는 당당한 주체로서 ‘시민’을 경험하는 거대한 의례의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현장에서 보면 이러한 의례는 혹자가 이야기하듯 마치 좀비가 되어버린 듯한 긴 야간 행진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혹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과정과 토론과정에서도 이루어졌다. 익명의 개인들이 집회공간을 통해서 친해지고 술친구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 하였으며 가족, 인터넷 카페, 직장, 동문회 등 숨어있던 다양한 조직단위가 스스로 ‘사회적 개인(social individual)‘으로 스스로를 각인하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둘째, 거시적 담론과 거시적 틀에서 제기되었던 평화운동을 미시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구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2년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오만한 제국의 장갑차 모습이었다면 2008년의 촛불집회가 던져준 이미지는 식탁에 오른 소고기 그리고 급식으로 먹게 될 음식의 이미지였다. 전자가 어린 여중생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증오와 미안함이었다면 후자는 본인들을 문제의 당사자로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구체적 일상의 이해관계가 고리로 작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조차도 광우병과 급식문제를 연결하였고 오린쥐로 상징되는 영어몰입교육에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레몬테라스나 소울드레서등과 같은 취미와 쇼핑 및 일상의 정보공간에서 조차 주부와 2,30대 여성들에게는 식탁의 안전과 일상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명박정부의 무례함이 연결되어 분노를 자극했고 이러한 공간은 젊은 여성들을 결속하고 행동하게 하는 운동의 장으로 작동하였다. 아마도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성장위주의 정책에 가려져 전혀 고려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은 현 정부에 실망을 넘어서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생활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절박한 문제의식 덕분에 이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문제를 표현하고 서로에게 말걸기를 시도하였으며 광장에서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던 셈이다.


셋째, 촛불항쟁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였고 장기화된 집회과정에서 새로운 방법론으로 정착함으로써 평화의 수단 혹은 설득력 있고 소통력이 좋은 평화의 무기를 창발, 정착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촛불집회가 본격화하기 바로 며칠 전, 일부 평화활동가들은 일주일동안 비폭력 직접행동에 관한 워크숍을 하고 있었다. 비폭력의 다양한 사례와 방법을 배우자마자 곧이어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활동가들은 한편으론 감개무량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집회에 참가한 모든 시민이 이미 이러한 훈련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들은 평화에 대한 원칙을 지키는 자기조절능력과 자정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을 뿐 만 아니라 활동가들이 워크숍에서 배운 다양한 비폭력직접행동의 방법을 이미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비폭력의 자기원칙은 투쟁에 익숙한 구운동세력을 상대화했고 일반 시민들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핸드폰과 웹갬을 통해 바로 전달하는 인터넷 생중계는 운동의 구석구석을 드러냈고 운동의 중심이 따로 없음을 동시에 전달했다. 무명의 밴드들과 춤꾼들은 촛불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예술과 놀이로 전달했고 심지어 떡복기, 오뎅, 꼬치 장사들이 집회주변을 장식해 축제를 방불케했다. 어린이 여성 그리고 가족단위의 참가는 집회가 더 이상 위험한 장소가 아니라 표현과 학습의 장소이며 동시에 놀이의 공간이기도 함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평화운동이 자신의 비젼과 과제의 무거움에 짓눌렸다면 촛불항쟁의 기간에는 평화운동에 대한 고정관념의 무게를 훨훨 털어내고 평화가 일상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곧 평화라는 목적을 향해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다던지 혹은 평화라는 것이 유토피아처럼 어떤 이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체감할 수 있고 감동을 받으며 그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한 것이다.

3. 한국 평화운동의 다원화

1) 개인을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의 확대: 비폭력, 영성
지난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거리의 최류탄 속에서 화염병을 투척하면서 투쟁하는 치열한 전투상황이었고 광주항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왔다. ‘평화운동’은 지난 운동의 과정에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민주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내면에서 자라난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불의(150u)에 맞서 싸우는 용기가 폭력이 아닌 비폭력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방식이 훨씬 더 깊은 내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보다 강렬한 힘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비폭력 행동에서 얻고자 하는 믿음이다.
비폭력 행동은‘영성을 통한 품성의 변화’,‘문화적이고 감성적인 의사소통의 개발’,등 일상에서의 개인의 변화와 개인간의 소통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승리하는 시위를 위해서 폭력을 준비하는 행위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반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 운동은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독교를 배경으로한 대표적인 단체로는 [비폭력 평화물결:www.peacewave.net][생명평화기독연대:www.lifepeace.org],그리고 불교를 배경으로한 [정토회: www.jungto.org],[지리산생명평화결사:www.lifepeace.org]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풀뿌리 지역성을 통한 평화운동의 확대: 지역과 생태
막연한 평화운동에서 풀뿌리에 기반을 둔 지역평화운동 또한 2000년대이후 커다란 변화이다. 지역운동에서 평화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평화운동은 마을만들기, 놀이터사업, 미군기지철수, 토지보상문제, 지역의 역사적 유산 등 다양한 지역의 사안과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결국 평화운동을 해나가는 주체와 범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풀뿌리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풀뿌리로 내려오지 않는 한 평화라고 하는 현장과 이를 공감하고 실천할 사람들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초록정치연대:www.greens.or.kr],[평화도시와 주민자치실현을 위한 도시공동체: www.puco.or.kr],[안양사랑청년회:www.aylove.net],[제주참여환경연대:www.jejugo.net]등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많은 자치운동, 생태운동등의 풀뿌리 운동이 평화운동과 결합해가면서 발전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3)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운동: 남북교류협력과 통일문제
8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운동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95년 북한의 식량난의 시급함이 알려지고 90년대말 탈북자 문제가 벌어지면서 북한을 통일을 위한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하는 절박함이 북한을 접근해 들어가는 또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90년대말 탈북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북한동포돕기 운동은 북한인권문제를 언급하는 운동으로 이어졌고 북한인권문제는 통일운동을 하는 그릅과 북한문제를 놓고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북한이 전향적으로 남북교류와 협력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한은 다시 대등한 교류와 협력의 동반자로 그 위상을 새롭게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단순히 북한지원 사업 뿐만아니라 역사,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 및 협력으로 이어지면서 남북관계를 둘러싼 평화운동은 반북운동에서 친북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대폭 넓어졌다.
이미 북한과의 교류가 일상화되어 있고 정기적인 행사와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는 평화운동 진영에서도 북핵문제 및 인권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들로는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www.kcrc.or.kr],[통일연대:www.615tongil.org],[통일맞이:www.moon.or.kr],[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www.ksm.or.kr],[정토회:www.jungto.org]등을 들 수 있다.

4) 동북아 그리고 세계로 연결되는 평화운동: 반전평화, 국제지원
평화운동이 다른 시민운동에 비하여 국제사회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한국의 시민운동이 국제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를 최근의 역사에 한정해서 보면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렸던 환경회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의는 한국의 시민운동이 국제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국제연대를 맺게 되는 계기였지만 그 후 본격적인 국제활동을 전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회의참가가 아니라 현장을 취재하고 분쟁의 현장에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 파견하는 등의 국제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국제적으로는 2003년 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국내적으로 북핵 2차위기가 발생하면서 6자회담이 가동되기 시작한 2003년 여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미국의 일방적인 아프카니스탄 및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이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앞서 시작되었는데, 내전 혹은 저개발로 인한 갈등이 심한 지역에 자원봉사의 형태로 들어가 장기체류하면서 그 지역의 빈곤문제, 갈등문제에 도움을 주고 교육사업을 전개하는 형태의 국제지원사업이다. 이와 달리 북한문제, 디아스포라, 혹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염두에 둔 동아시아 공동체건설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활동이다.
이들과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들로는 [경계를 넘어: www.ifis.or.kr],[나와 우리: http://nawauri.or.kr],[개척자들: www.thefrontiers.org],[아시아의 친구들: www.foa2002.or.kr],[지구촌나눔운동: www.gcs.or.kr] 등을 들 수 있다.

5) 씽크탱크형 평화운동 : 정보공유, 새로운 정책 개발
평화운동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넓고 동시에 현실적인 과제들과 직면해 있다는 점 등은 평화운동의 담론과 문화를 개발하고자 하는 과제와 생존권을 위협하는 다급한 과제들을 서로에게 알려 평화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하는 필요와 연결되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강한 국가 혹은 민족 국가의 담론과 발상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새로운 담론과 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기저에 깔려있는 시각과 정책대안들은 국가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차원에서 마련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이것은 새로운 씽크탱크형 운동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들 운동이 포괄적인 정책을 내놓는 수준에 이르고 있지는 않지만 매우 신속하고 비교적 정확한 정보들을 공유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로 포괄적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통전적인 대안들을 논의하고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실상과 동북아 주변의 군사안보의 위협 핵문제 및 군축 문제 등 앞서 언급한 다양한 평화이슈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단체의 특성에 따라 주제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단체들로는 [평화만들기:www.peacemaking.co.kr],[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참여연대 평화군축센타: www.peoplepower21.org],[청년평화운동 푸름: www.pureum.org],[코리아연구원: www.knsi.org],[평화공감: www.peace4us.net],[진보정치연구소:www.ppi.re.kr]등을 들 수 있다.

6) 평화교육과 평화문화를 중심으로 한 평화운동
씽크탱크형 평화운동 못지 않게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문화적 접근, 감수성 훈련 그리고 평화교육의 개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직 대학에서조차 평화교육의 내용이 자리잡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평화단체들은 활동가 및 지역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커리큘럼 개발과 교육방법론을 개발해가고 있다. 아울러 평화박물관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평화학교 혹은 평화재단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단체들로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www.peacewoman.or.kr],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www.peacemuseum.or.kr],[한국아나뱁티스센터:www.kac.or.kr],[남북어린이어깨동무: www.okedongmu.or.kr],[한국청년연합회: www.kyc.or.kr]등을 들 수 있다.

4. 맺음말


2008촛불항쟁이 평화운동의 지평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지속가능한 평화운동의 공간이 마련되었는가에 대하여 쉽게 자신할 수 없었던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촛불항쟁이 평화운동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운동이 극복해야할 본질적인 과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반공논리에 입각한 안보 중심의 논리와 가치관이다. 특히 안보우선의 사고는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냉전적 시각에 갇혀 있다.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단체를 적대시하고 인터넷공간에서의 검열을 강화하고 용산참사와 같이 모든 집회의 가능성을 신속하게 진압함으로써 평화공간으로 자랄 수 있는 싹을 원천봉쇄해왔다. 안보담론과 평화담론의 거리를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분단극복의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 평화담론이 깊이와 넓이를 가지지 못해서 이미 입방형의 크기로 확장되어오고 있는 실천의 공간을 인식의 지평이 담아내지 못하는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평화담론이 본래 애매하고 경계를 가로 질러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인식의 영역에서 확대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진행중인 운동의 성과와 내용을 글로 풀어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담론의 지형에서 자기 위치를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현장에서는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평화운동이 담론의 영역에서는 경계를 허물지 못하고 갇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수렴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논쟁들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이후 이른 바 친북좌파와 반북좌파로 나뉘어 북한의 핵개발 및 인권문제 등 북한에 대한 잣대를 특수한 잣대가 아닌 보편적 잣대로 이야기해야 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6.15시대로 일컬어지는 남북협력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북한을 둘러싼 양날의 칼날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의 북한 로켓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결정 및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에 결과적으로 동조하는 결과를 나을 수 있고 나아가 평화운동이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가는 이분법적 틀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평화운동이 국가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과제이다. 물리적 강제력을 합법적이고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국가의 폭력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등에서는 일찍이 이 문제를 ‘평화국가’구상으로 해결해보고자 시도한 바 있다. 근대국가의 근본적 전환을 꾀하고 있는 평화국가는 좋은 구상에도 불구하고 분단상황과 국제사회의 현실주의에서 아직은 이상주의로 다가온다. 담론의 영역에서는 안보국가와 평화국가의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나 좋은 논쟁지점을 형성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또다시 커다란 거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평화운동그룹에서는 군축보다는 군비동결을 현실적 과제로 추구하려고 하기도 한다. 오히려 시민국가 혹은 초록국가의 과정을 동시에 진행해가는 것이 평화국가를 둘러싼 전략적 지지를 구축해가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이러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평화운동 혹은 평화공간은 다양한 삶의 영역과 맞닿아 가며 조금씩 확대되고 있고 다양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평화공간이 풀뿌리 현장으로 내려가고 생태적 가치와 맞닿아 있고 새로운 평화감수성과 평화문화를 구성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운동은 과거와 달리 지속가능한 자기 생명력을 확보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더디가더라도 이러한 평화공간이 작지만 폭력에 기초한 담론들을 설득하고 포위해갈 수 있다면 2008년 촛불과 같은 모임이 항상 꺼지지 않고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화의 등불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