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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산인 이야기/마리산인 마음

"화류관문, 금전관문" 다시 읽기

by 마리산인1324 2009. 6. 17.

"화류관문, 금전관문" 다시 읽기

 

 

실제로 자기 자신을 보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많은 종교에서는 자신을 발견하는 수련을 한다.

하지만 그조차 지난한 과정일 터.

세속의 삶에서는 더더욱 어렵고 더디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은 보지 못한채 '남'만 보고 '남'만 비난하기 바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는 글쟁이들의 수준이다.

학문적으로야 꽤 많이 채워넣었겠지만 그 사람 속에 '인격'이라는 창고에는 내용물이 거의 없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기 때문이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될 말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덕목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하며 자기 말만 하는 부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이름하여 '언론인'이고, '공기(公器)'를 다루는 고귀한 존재라 어떻게 건드리기도 어려운 높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정진홍이라는 언론인.

젊은 나이부터 논설위원으로서 당대에 문재(文才)를 뽐내는 부류.

그러나 그의 글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의 안에는 과연 어떤 것이  들어찼을까 하는 의문이다.

별 희한한 수사로 맘에 안드는 대상들을 갈겨대는 그 탁월한 능력이 감탄스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아래에 그 대표적인 글 "화류관문, 금전관문"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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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9.04.10 19:18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화류관문, 금전관문

 

 

자고로 인생살이에는 세 가지 지뢰가 있다. 돈, 여자, 그리고 권력이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밟으면 터진다. 아니 ‘너무 밝혀도’ 터져버린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들고 있는 박연차·장자연 리스트는 바로 돈, 여자, 그리고 권력의 지뢰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연일 곳곳에서 폭발음이 그치지 않는다. 가히 전방위적이다. 그 수다한 폭발음이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 하지만 폭죽놀이 구경만 할 일이 아니다. 끌끌 혀만 차며 개탄만 할 일도 아니다. 그 일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것들이 새삼 일깨워 주는 삶의 뼈저린 가르침을 되씹어야 한다.


‘여자’라는 이름의 지뢰=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에 거하고 있었다. 당대의 천하 제일 명기 황진이가 지리산 유람을 왔다가 남명 선생의 고명을 듣고 뵙기를 청하자, 남명은 주위에 있던 제자들에게 “천하에서 제일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제자들이 잠자코 있자, 남명 선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류관문(花柳關門)이다. 이 관문은 쇠나 돌도 다 녹여 없앤다. 너희들은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경계시킨 말이었다.


그렇다. 자고로 남자는 여자를 피해가기 어렵다. 특히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이런저런 경로로 자꾸 꼬여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 취하면 결국 녹아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쇠나 돌도 녹여내는 화류관문이니 사람 하나 녹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돈’이란 이름의 지뢰= “삼킨 돈이 자기의 목숨을 빼앗는다.” 잠언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경고다. 화류관문 못지않게 지나기 어려운 관문이 금전관문(金錢關門)이다. 박연차한테서 나온 돈은 늘 사람을 오염시키고 타락시켰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돈이 아니라 똥을 지천으로 뿌리고 다녔다. 게다가 그가 뿌린 것이 똥이건만 그것을 돈인 줄 알고 넙죽 받아먹은 자들이 숱하다. 한입 가득 똥이며 얼굴과 온몸이 똥칠로 가득하다.


꿈속에서 똥을 뒤집어쓰면 돈이 많이 벌린다는 속설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돈이 똥이 되는 때가 적잖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지지 말아야 할 돈을 만지면 그것이 똥이 되는 것이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아들이었고 활개 치며 내로라하는 얼굴들이었다니….


권력’이란 이름의 지뢰=사람을 가장 빨리, 또 확실하게 죽이는 방법이 있다. 돈 주고 여자에 빠뜨리고 권력의 감투를 씌워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권력은 돈도 만들어주고 여자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돈과 여자는 권력이 있는 곳으로 스며드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돈과 여자 그리고 권력이 섞이면 썩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어떤 인간도 그것에 빠져 취하면 결국 썩어서 패가망신하고 만다. 겉은 화려한데 속으로부터 썩어 종국엔 망신살이 뻗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은 방부제가 따로 없다.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어느새 곰팡이가 피고 썩기 시작한다. 권력의 자리에 앉는 사람은 자기가 앉은 꽃방석에서 구더기가 들끓을 때까지, 그래서 그것이 자기 엉덩이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 지경이 될 때조차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그것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권력의 추하지만 숨길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실존의 자리는 썩지 않았나 들춰봐야 한다. 화류관문과 금전관문 앞에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볼 때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