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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산인 이야기/마리산인 마음

[스크랩] 가을 산을 오르며

by 마리산인1324 2009. 9. 16.

산이 높은 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낮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른다.

                                                                                                                                                     - 논  어 -

  가을 산을 오르며

 나는 지금 좌구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마을에 차를 두고 우리 부부는 정상 가까이 있는 안봉천 마을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안봉천 마을까지 2.6 킬로의 골짜기를 따라 걷고 다시 고개 마루에서 1킬로 내려가면 질마재 정상에 이릅니다. 고작 왕복 7킬로 정도의 가벼운 산행이지만 오르는 길 내리는 길 모두 시야가 확 트여 가을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잇다는 것이 이 산의 매력입니다.

 우리는 장애자의 집 은혜원 입구 물가에 자리를 펴고 배낭에서 밥과 상추, 고추, 된장, 무졸임을 꺼내 펴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마 위 땀도 닦았습니다.

 

  생각나는 사람들

 가을하늘은 나를 미치게 만듭니다. 크고 높고 푸르고 맑고 깊은 그 속으로 그만 나는 빨려들고 있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세상사를 인간사 우리의 현실을 나는 잊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지난날 슬픔도 기쁨도 격정도 다 잊고 평온과 고요 그리고 감사 그 자체입니다.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도 감사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잎 소리에도 감사가 넘칩니다. 이 하늘 아래 사는 것이 고맙고, 이 땅을 딛고 사는 것이 고맙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같이 사는 것이 고맙습니다.

 내게 고마웠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내겐 엄청나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우리가 그리고 내가 있기까지 너무도 많은 시련과 싸워 온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정의와 민주를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이 땅을 가꾸어 온 사람들입니다.


  무얼해야 하는 건지

 가끔은,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서 마음 편하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농부로 사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골치 아픈 정치, 권력싸움에 뛰어드는 사람들 보며 실망하다가도 그들이 싸워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미디어법 때문에 국회에서 소란스러웠을 때도 나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미디어법 무효 천만인 서명을 받기 위해 땡볕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간절한 눈빛 보내던 젊은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미안했습니다. 용산 참사의 현장을 TV에서 지켜볼 때도 미안했습니다. 노무현님이 봉하 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며 삶의 잔을 비울 때도 나는 미안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도는 것이 아니다

 5살 때인가 외삼촌 따라 외가에 갈 때 버스를 타고 다시 사십 리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엔 버스를 타고 동네 앞에서 내렸습니다. 지금은 차만 타면 짧은 시간에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나는 꽤 커서도 그것이 세월만 가면 저절로 자꾸 발전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나라에서 교부금도 받아내야 하고, 많은 장비와 인력이 들어야 도로가 가능한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TV 사극 드라마를 보며 7살 도련님이 심부름을 시키면 60대 노복 할아버지가 머리를 굽혀 척척 존대말 쓰며 움직이는 사회를 보다가,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세월이 가서 저절로 발전되어 온 것인 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애써 온 것도 어릴 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라는 걸 그 땐 몰랐습니다.

 언론의 자유도 시간이 갈 만큼 가면 저절로 오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무장 괴한들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기차를 강제로 세우고 신문 뭉치를 화물차에 빼앗아 실어 불사르고, 권력의 말을 듣지 않고 양심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직시키고, 그렇게 어려운 순간들도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이 되어 다시 언론은 제 자리를 찾는 줄 알았습니다. 정권의 말을 듣지 않는 신문사에겐 기업의 광고조차도 못 내도록 만들어 경영란으로 망하는 지경으로 몰아가도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백지 광고와 시민들의 전단지에 위해,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에 의해 살아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는 몰랐습니다. 또 그 고초를 겪던 신문이 이제 변질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저 그러다가 저절로 다시 달라지려니 했습니다.

 그러나 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저절로 도는 것이 아님을, 애쓰는 사람들에 의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산은 말해 줍니다.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킬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는 불의를 볼 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산은 내게 가르쳐 줍니다.

 

출처 : 노공이산을 기리는 사람들
글쓴이 : 멱골농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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